오늘 일요일 학원 가는 김에 이때껏 미뤄놨던 영화 ‘오펜하이머’를 영화관에서 보았습니다.
장장 3시간의 여정에 지루할 법도 한데 오히려 너무 빠른 느낌이 들 정도로 3시간이라는 시간이 꽉 차 있더군요.
고뇌와 사명 끝에 찾아 온 윤리.
한 문장으로 이 여정을 일컫기엔 부족할 정도로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당대의 사회와, 사상. 과학자들간의 갈등. 트리니티 계획. 치졸한 정계 등. 추축국의 패색이 완전히 드러난 때에 세계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이 영화의 유일한 단점은 너무 많은 메시지가 서사 방식과 엮여 이 시대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가 조금은 난해하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얄팍한 배경지식을 가진 저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도 벅차더군요.)
나머지는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마치 그랑블루에서처럼 깊은 심해 속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잠시고 ‘Blue’라는 색의 다양한 의미. 즉 슬픔과 후회, 당시 미국의 사회 분위기를 체감하게 합니다. 매카시즘의 광기에 사장되면서도 후회라는 불안정한 방패막을 걸치며 묵묵히 받아들이는 그.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쳤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에게 주었다.
이로 인해 그는 바위에 쇠사슬로 묶인 채 영원히 고문을 받아야 했다.”
어떻게 보면 인류의 역사는 성화의 불이 이곳 저곳에서 옮겨 붙으며 현대까지 온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최초의 불 이후 농경사회부터 청동기, 철기, 이제 눈앞에 닥친 4차 산업혁명까지. 많은 불이 인류를 밝혀온 것이죠.
불의 형태는 씨앗이었고, 방적기였고, 컴퓨터였음이 시사하듯 불은 ‘연소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빛’뿐만 아니라여러 형태의 트리거인 것이죠.
‘오펜하이머’는 수많은 불의 형태 중 하나인 핵폭탄을 다룬 영화입니다. 핵폭탄은 새로운 시대를 불러왔고, 공포로써 세상을 다스리고 있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도합 21만 명의 사망자들이 6.2kg의 플루토늄과 64kg의 우라늄으로 증발했습니다.
우리의 불은 작아져왔지만 위력은 그의 몇십 배로 커져왔습니다.
원자 이론이 처음 제시됐을 때는 그 실체도 모르는 작은 중성자 하나가 약 20Kt의 TNT와 맞먹는 위력을 가지리라곤 상상도 못했겠지요.
돌턴이 불인 불이 톰슨, 러더퍼드, 보어에 이르러 양자역학으로 타올랐고, 중간에 불이 옮겨져 오펜하이머로 비롯된 과학자들에게 온 불씨를 그들이 키워낸 결과가 핵폭탄이죠.
불씨가 어디에서 터질 지 우리는 앞으로도 모를 것입니다. 우리로써는 그저 작아지는 불을 지켜볼 뿐입니다. 실제의 크기든 개념적인 크기든.
허나, 영화는 불씨에만 주목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심해와 같은 중압감에 놓이게 하는 원인은 바가바드 가타에서 나오는구절이자 오펜하이머의 상징.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21만 명의 직접적인 사망자와 몇만 명의 간접적인 사망자들은 오로지 민간인 만을 집계한 통계입니다.
그들 모두의 목숨을 앗아간 두 폭탄은 (비록 직접 만들진 않았어도) 오펜하이머에게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평생동안 그의등 뒤에는 이들이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상호확증파괴에 의거하여, 자기 자신도 21만 명보다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상상에 평생을 시달릴 것입니다.
영화 속의 핵폭발 장면을 본다면 황홀함에 잠시 잠기겠지만. 곧 자신이 심해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마냥즐길 수가 없습니다.
매카시즘에 몰락하는 그를 보면 불은 작아지지만 우리 개인은 커지는 것같은 느낌에, 저는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구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개개인이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쉬워졌죠. 제 예상으론 언젠가 우리는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에, 저는 오펜하이머의 죄가 저의 죄처럼 느껴집니다.
영화를 보기 전, 제가 먹고싶었던 부타동을 영화 본 후에 먹으려고 했는데, 보고난 후, 저는 그 음식을 먹는다는 게 참으로죄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있을 지도 모르는 신에게 죄송하다고 했네요.
여담으로,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느낀 인물이 두 명이었는데요. 바로 당연하겠지만 오펜하이머가 포함되고, 나머지 한 명은 아인슈타인입니다. 그 두명이 프로메테우스라고 느꼈기 때문인데요.
둘 다 불을 피워올렸지만 일생동안 고통에 시달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상 두 시간 가까이 글을 쓰면서 피로해진 탓에 끝에 부분이 흐지부지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음악 글이 아닌 영화 글이어도 끝까지 봐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드립니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사실 이전작들에 비해 이해하기 쉬운 영화라고 생각이 되는데 초반부에 연출이 조금은 불친절하긴 하죠
제가 놀란 감독 영화를 제대로 본 게 이 영화여서 그런듯 합니다. 초 6때 인터스텔라를 보곤 중간에 잔 뒤로 놀란 감독 영화를 아예 보지 않았거든요
첫 관람은 (기대가 컸는지) 그냥 나쁘지 않네 정도였는데 작성자님 글이라던가 여러 리뷰? 같은 걸 보면서 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좀 드네요
로버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했던 영화,,,저는 올해의 영화였습니다
저는 로버트의 고난은 핵분열처럼 그가 자초한 것이다라고 생각해서 그런 면보단 다른 부분에 꽂혔네요
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과의 관계, 로버트의 삶 등등 끝없는
핵분열의 시초는 2차 세계대전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전쟁이 아니었다면 로버트가 핵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로버트가 한 일은 결국 이 분열에서 파생된
불가항력적인 폭발이었다고 생각했구요.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난다” 논란감독이 늘
언급하던 멘트였고, 여기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로버트가 자초했다긴 보다 그저 그가
원래 해야만 했던 일을 했다. 라고 봤어요.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줘서 참 재밌네요👍
리뷰 덕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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