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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OPIA와 함께 거니는 길

title: Frank Ocean - Blonde오션빠돌이2023.08.03 09:48조회 수 1259추천수 14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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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등록하기 전에 미리 말해두고 시작하자면, 이건 정확한 의미에서의 리뷰가 아닙니다. 아티스트의 어떤 요소가 어떻게 진보했고, 곡에 쓰인 요소가 무엇인지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해 이 글은 순수한 감상평과 같습니다. 어떤 순간에 이 앨범을 어떻게 접해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에 대한 가벼운 일기 형식의 글인 것이죠. 글이나 주장의 객관성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근데 사실 솔직히 말해, 저도 당최 이 글의 정체를 모르겠어요. 수필과 가장 비슷한 정체를 지니기는 했지만, 이 글엔 깨달은 점이나 귀결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엘이 여러분은-혹시 이 글을 읽어주신다면 말이죠- 이 글을 감상기 비슷한 느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건 그야말로 순수하고 의미 없는 글의 나열이니까요. 이렇게 전언을 길게 써놓으니 뒤에 뭔가 엄청난 글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대단한 글솜씨를 자랑하는 글이 아닙니다. 다만 갑자기 생각 나 두서없이 갈겨쓴 글이고, 아무런 부담 없는 기술의 나열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기대는 버리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글솜씨가 좋아지길 바라주시면서요.


 

 집 앞 편의점에서 에너지드링크를 사 들고, 버스를 기다리며 스캇의 UTOPIA를 재생한다. 괴기스러운 음색의 오프너 인트로덕션을 들으며 본 버스의 도착 시간은 12분, 다른 때였다면 짜증이 치밀었겠지만 시간이란 건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르게 느껴지나보다. 스캇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새 앨범의 재생 버튼을 누르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기분 좋은 일이다. 새로운 앨범 커버가 눈 앞에 놓이고, 어쩌면 나의 주변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음악의 존재가 헤드셋 속에 메아리 치는 그 순간, 인상이 시작된다. 그건 마치 매끈한 CD를 플레이어 속에 알맞게 먹이는 듯한 쾌락적 감각이다. 그 익숙한 손맛이 앨범을 재생하는 내 손 끝에 닿을 때, 난 어쩌면 그 때의 몸 속 깊은 세로토닌을 위해 앨범을 듣는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스캇의 음악도 그런, 뭐랄까, 중독적이고 유흥적인 세로토닌의 분비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다. 이토록 세련된 음감을 지니면서도 더럽고 퇴폐적일 수가 있을까? 내게는 익스페리멘탈 힙합과 트랩의 접합지에서- 카티와 스캇만큼 빛나는 이름도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스캇의 음악들을 듣다보면 이는 더욱 확고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말하자면, 대체할 수 없는 스타일 같다. 

 스캇이 주조하는 음악에는 그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트랩적 풍미가 있고 음악적 광기가 있다. 그는 이를 자신의 근본적 신체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결함 없이 피력한다. 거기엔 과한 것이 거의 없다. 굳이 덧붙일만큼 급박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번의 UTOPIA에는 그런 여유가 잘 느껴지지 않는 것 같지만, 아직도 그의 음악에선 독특한 트랩의 향취가 느껴진다. 칸예라는 존재를 따라가기 위한 여정을 떠나- 그는 결국 새로운 자아와 스타일을 구축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앨범 커버 또한 단연 '스캇'스럽다. 날 것 같은 움직임으로 만들어내는 매끈한 질감, UTOPIA의 커버는 스캇의 지향점이 오롯이 담긴 작품이다. 색감이나 미학적으로는 특별한 지점이 없지만, UTOPIA의 커버는 제목과의 기묘한 역설미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스캇이 화려하고 다채로운 여로였던 ASTROWORLD에 종말을 고한 것처럼 무채색의 아득함을 연출하는 스캇의 움직임엔 DBR로의 귀로가 마련된 것이다. UTOPIA 속의 불안정하게 뒤틀린 스캇의 맨몸이 Day Before Rodeo를 떠올리게 하듯, 이 앨범 커버는 믹스테잎 시절로의 회귀를 은근히 시사한다. 음악이 DBR을 가리키고 그게 ASTROWORLD와의 확실한 이별을 시사할 때, 앨범 커버도 그 기류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청량한 모드의 탄산 에너지드링크와는 다른- 야성미를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 또한 에너지드링크의 달콤함을 느끼며 UTOPIA의 역설미를, 전위적인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즐겨본다.

 

 앨범의 오프너 HYAENA는 독특하고 버스의 타이밍은 완벽하다. 날카로운 질감의 퍼커션과 보이스들이 청각을 둔탁하게 오가면 UTOPIA는 얼핏 '익스페리멘탈 힙합'의 근간에 도달해있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스캇이 Yeezus의 아류임을 거부할지라도 UTOPIA의, 이 변칙적인 무드를 듣자면 이 앨범에서-그 숱한 사람들이 말한 것과 같이- 칸예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건 실로 거부할 수 없는 인식이다. 스크린에 띄워진 애플의 로고를 보고 애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듯이, 이 앨범에서 칸예-정확히는 Yeezus-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웅장한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이어지고, 정신 사나운 몇 개의 프레이즈를 지나다 보면 어느새 트랙은 THANK GOD에 도달해있다. 참 흥미로운 오프너라는 인상이 앨범의 포문을 연다. 아마 얼마간 보기 힘들 듯한 환시적 익스페리멘탈, 그 정수가 HYAENA에 담긴 것처럼 느껴진다.

 두 번째 트랙 THANK GOD의 사운드 역시 비슷하다. 하지만 그보다 THANK GOD은-내게는- 새삼 스캇의 목소리가 얼마나 좋은지를 환기시키는 트랙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가만히 들어보면 귀를 자극하는 저음질의 사운드 속에서도 스캇의 목소리는 참 저돌적이다. 섹시한 허스키와 매끈한 고급스러움이 목소리에서 묻어나면, 어느새 그 보이스는 주위의 음악과 신기할 정도로 동화된다. 그 인트로부터 칸예를 떠올리게 했지만, UTOPIA는 스캇의 목소리를 통해 칸예 음악이 생각나지 않게 만든다. 난 아주 잠깐 동안 Yeezus에 칸예의 목소리 대신 스캇의 목소리가 들어갔다면, 하는 망상을 해본다.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겠지만 솔직히 그렇게 안 어울릴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질리지 않는 목소리의 여흥이다. ASTROWORLD와는 또 다른 의미의 질리지 않는 감각, 스캇의 목소리가 흐르면 버스 플랫폼 앞의 옷 가판대마저 무게감 있게 튀어오른다.

 하지만 이윽고 이어지는 MODERN JAM에 이르러서는 찬물을 끼얹은 듯 어딘지 의문스러운 감각이 청각을 거닌다. '기마뉘엘의 참여'라는 요소가 내 기대치를 너무 올린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MODERN JAM은 음악적 요소를 차치하고서도 버스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게 하는 면이 있다. 중독성 있게 울리는 드럼 라인은 '분위기 환기'로 볼만 한 담백함을 가지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흐릿한 멜로디와 강박적인 랩 스타일이 이 무의미한 곡 장치를 UTOPIA 속 뜬금없는 일면으로 만든다. 그래서인지 얼핏 Black Skinhead 같은 야성미가 느껴지더라도 스캇은 칸예와 같은 완급조절과 세련미를 보이지 못한다. 스캇이 전작 ASTROWORLD에서의 화려하고 박자감 있는 랩을 색다르게 일신했다고 하더라도, 이 트랙이 도저히 장점으로 다가오지 않는 까닭이다. 모르긴 몰라도 스캇은 그가 새로이 선보인 딱딱한 랩 스타일의 방향 변화가 별로 좋지 않은 선회라는 것을 염두해야할 것 같다. 솔직히 말해, 그건 아주 좋지 않은 방향이다.

 

 그러나 버스가 플랫폼에 도착할 때쯤 들려온 MY EYES는 곧 이러한 우려를 단번에 잊게할 만큼 강력한 무언가를 선사시켜낸다. 후반부에 어떠한 클라이막스가 준비되어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MY EYES가 전반부의 맹점이라는 것쯤은 쉽게 간파할 수 있을 정도다. 비트체인징이 다가올 땐 독특한 전율을 느낄 수 있고, 본 이베어에 대한 찬사들이 머릿속에 메아리칠 때쯤엔 UTOPIA에 대한 호감도가 가파르게 오른다. 생각해보면 본 이베어만큼 전위성에 빛나는 피처링도 없는 것 같다. 독특하고 기묘한 분위기의 덩어리감, 그것이 본 이베어가 스캇에게 선물한 무언가가 아닐까, 나는 버스에 오르며 상상한다. 다만 아쉬운 건 GOD'S COUNTRY에 이르러서 스캇이 이러한 프로덕션적 무게와 고유의 사운드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앨범의 세련됨을 없앤다는 점이다. 무의미한 랩과 무의미한 에코의 반복, 아이들의 괴기스런 합창이 On Sight의 풍취를 그대로 베낀 것 같다는- 기분 나쁜 기시감만이 2분의 짧은 트랙 끝에 남고 만다.

 한편 SIRENS와 MELTDOWN은 내게 노량진의 테마곡처럼 다가온다. 그건 내가 막 노량진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지럽고 삭막하면서도- 동시에 젊은 분위기까지 가지고 있는 그 두 곡이 노량진과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귀 옆을 빠르게 지나는 세션, 촉촉하고 늘어지는 보이스, 무언의 항의를 담은 듯한 마이너 코드 등은 스캇적 스타일에 머물기보단 UTOPIA 자체의 인상적인 기호로 들려온다. 이 곡 자체에 대한 나의 호오를 떠나, 훗날 어스름한 노량진을 조감할 때 추억처럼 떠오를 어떠한 인상이 될 것 같다는 감상이다. 물론 그것을 떠나서도 전반적인 준수함이 따르고, 다소 뻔하긴 하지만 의미 있게 다가올 무언가쯤은 된다. 앨범의 전반부를 장식하기에 나쁘지 않은 트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곡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반부의 인상을 FE!N이 다 깨버린다. 좌우의 모노를 간드러지게 넘나드는 신스나 전체적 프로덕션은 나쁘지 않은 수준이지만, 카티의 치명적 추임새가 들어서는 순간 스캇의 목소리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하다. WLR 때나 숱한 카티의 피처링 곡들에서 뼈저리게 느낀 바이지만, 카티의 목소리는 위험하리만치 매력적이다. 특히 피처링 곡에선 말이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카티의 존재감을 넘나드는 수준의 보이스 등을 활용해 카티를 IGOR의 완벽한 부속품으로 만들어냈지만, 유감스럽게도 스캇에게 타일러와 같은 앨범적 센스는 없었던 듯 하다. 과한 수준의 사운드, 그에 잠식 당해버리는 스캇의 보이스는 MY EYES의 쾌감을 의심케 하는 경지까지 간다. 그래서 이 곡이 나쁜가? 하고 생각해보면 결코 나쁜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앨범의 전체적 분위기와 기반을 한 순간에 뒤엎어버린 트랙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그래서인지 본 이베어가 또 한 번 참여한 9번째 트랙 DELRESTO(ECHOES) 역시 큰 인상으로 남지 않는다. 단일 곡으로 볼 때 THANK GOD이나 MODERN JAM보다 괜찮은 사운드를 자랑하지만, 이들보다 적은 인상으로 흐릿해지는 DELRESTO(ECHOES)는 안타깝기만 하다.

 반면 이어지는 I KNOW ?의 피아노 인트로덕션은 상당히 진취적이다. FE!N의 강한 중독성에서 벗어나려는 듯한 스캇의 몸부림은, 카티의 본의 아닌 어뷰징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듯한 새로움을 준다. 스캇의 커리어 전체로 볼 때 결코 독특하지 않지만, UTOPIA에서는, 특히 이 앨범을 듣고 있는 나에게는 적격인 분위기 환기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서술도 웃기다. 세상에, 무슨 카티가 앨범을 테러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FE!N의 임팩트는-좋든 나쁘든- 크다. 열성적인 FE!N 추종자가 있는 반면 앨범의 악수로 취급 하는 이들 역시도 꽤 많은 것이다. 그리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FE!N이 싫다. 카티는 카티의 앨범을 들을 때-와 IGOR를 들을 때-만 좋을 뿐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것이 취향과 맞닿아 있듯이- 그냥 그런 것이다. 

 

 한강대교를 건너기 시작할 때쯤에 TOPIA TWINS가 흐르고, TOPIA TWINS는 내게 UTOPIA에서의 중간- 그러니까 '스탠더드를 골라보라'면 이 곡을 가리키고 싶다는 충동을 일게한다. 단촐한 리듬, 큰 철학 같은 건 담기지 않아 보이는 드럼 라인이 특징적이다. 퍽 혼란스러운 분위기 위에 퍽 혼란스러운 랩이 깔리고, 엇박과 정박을 넘나드는 Rob49와 21 savage는 UTOPIA만의 혼돈을 중용 상태로 담아냈다는 인상을 준다. 곡의 완성도로 치면 달리 코멘트할 것이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이리저리 돌려 말했지만 한 마디로 무색무취의 적당한 UTOPIA 트랙이었다- 라는 것이다. 

 따라서 CIRCUS MAXIMUS의 존재가 더 웅장하게 다가오는 단초가 마련된다. 퇴근 시간의 차 막히는 버스 안, 은은한 남회색 한강대교는 미치도록 알맞은 배경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타이밍, 미래 지향적 신스 안에서 살아숨쉬는 이전 세계에 대한 윤곽은 UTOPIA 내에서 특출나게 거대한 존재감을 자랑하고, 위켄드의 은은한 코러스가 이를 도회적 감정으로 바꿔놓는다. 그건 억지로 Yeezus를 따라하려는 듯 느껴지는 UTOPIA 안에서, 유일하게 그 절륜하고 생생한 덩어리가 원형 그대로 남은 트랙처럼 들린다. 스캇의 아름다운 면들을 짙은 콘트라스트에 묻혀, 고요히 발치에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곡과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가 준비되었다는 사실은, 골수 영화광인 나의 심장을 UTOPIA의 존재보다 더욱 강하게 두드린다. 그저 영화가 이 곡과 같은 청렬한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일 뿐이다.

 그러나 좋았던 이전 트랙의 신스음이 사라지더라도 아쉬움은 없다. 그건 영 린의 야심적인 프레이징과 보이스가 특출난, PARASAIL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영 린으로 말하자면 내게는 참 독특한 인물이다. 가장 사랑하는 오션의 Self Control을 비롯한 다수의 애청곡에 피처링한 인물이지만, 단언컨대 나는 그의 개인 작업물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나는 PARASAIL을 들으며 다음엔 영 린의 앨범을 청취해야겠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빠져본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어쨌던 생각은 해보았다는 말이다.

 

 이어지는 영 서그와 스캇의 시끄러운 소리가 SKITZO를 통해 매력 없이 울리는 걸 참아내고 나니, 채찍을 주었으니 당근을 주겠다는 듯 LOST FOREVER가 흘러나오고- 제임스 블레이크는 기마뉘엘과 달리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버스는 차츰 이태원에 들어서고, 랩 밑에 깔리는 사운드들은 내 주변 환경과 놀랍도록 적은 위화감을 생성해낸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적은 위화감이 아니라 기시감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오직 제임스 블레이크만이 주조해낼 수 있는 평화로운 포크 분위기과 알맹이 진 공간감이, 아주 깊숙하고도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분위기는 스캇의 기이한 음색의 선율에 금새 깨지고- 이는 웨스트사이드 건의 적절한 독주로 이어지지만 그 특이한 두 색채의 조화는 내게는 여전히 독특한 무언가다. 가장 적설한 보이스 샘플과 가장 적절한 기이함, UTOPIA의 장점들을 집합한 듯한 곡처럼 다가오는 것도 예사는 아닐 것이다. 

 그를 이어가듯 LOOOVE 역시 프로듀서의 힘을 강하게 받는다. 가장 노골적으로 칸예의 색채를 담아낸 듯한 이 곡의 프로덕션은 퍼렐의 입김을 받아 더욱 깔끔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베일을 드러낸 LOOOVE의 정체는 다소 중구난방의 사운드 소스 나열처럼 느껴졌던 대다수의 이전 트랙과는 다른, 힘 있고 정리된 듯한 혼란스러움이다. 듣자마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Yeezus적' 완급조절의 융기, 좋은 프로듀서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트랙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개인적인 호오로 보게 되면? 흐음... 솔직히 모르겠다. 그건 아마 퍼렐의 프로덕션임에도 LOOOVE의 바이브 속에 퍼렐의 색채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말할 가치도 없는 K POP의 때 지난 팝 여흥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려고 안달하다보니 어영부영 버스가 도착하고, 추억처럼 TELEKINESIS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이 곡은, 세상에, 조금 미친 듯한 느낌마저 준다. 가히 환상에 가까운 SZA의 보컬 피처링은 둘째치고- 이 곡은 퓨처의 목소리가 이렇게 좋게 쓰일 수 있단 걸 Life Is Good 이후, 새삼 오랜만에 내게 떠올리게 한다. 귀를 꽉 채우는 베이스가 공간을 확장시키면 스캇, 퓨처, SZA의 목소리가 거부할 수 없는 돌풍처럼- 헤드셋 이곳저곳에서 발로된다. 터벅터벅 거니는 골목길과는 무서울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거대함이 주변 세계를 UTOPIA로 바꿔놓고, 어두운 이태원의 골목 골목이 시야에서 재빠르게 스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곡은 여러모로 칸예의 뒤꽁무니만을 쫓아 '전위성/Yeezus'만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던 스캇이, 그 피처링에 힘 입어 가장 자연스런 본연의 스타일을 보여준 트랙처럼 느껴진다. 그게 아니더라도 상관 없다. 어쨌던 내게는 가장 '스캇'스럽게 들렸다는 것이다. 

 그보다 내게 중요한 것은 TIL FULTHER NOTICE가 앨범의 가장 무시무시한 마무리를 주조한다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UTOPIA에 TIL FULTHER NOTICE와 같은 앨범 전체 통일성에 관한 고찰, 사운드의 흐름에 관한 탐구가 있었다면, 이 앨범은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만 같다. 솔직히 말해, 이 얼마다 아름다운 혼란함과 불안정인가. TIL FULTHER NOTICE는 현실의 소음을 떠나 UTOPIA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 우리를 이끈다. 나는 한참 동안 이어지는 블레이크의 음울한 보이스를 질리지도 않고 가만히 즐긴다. 여러 사운드적 다양함을 내세운 UTOPIA지만, 이 보컬과 같은 내면의 상처와 혼돈을 지닌 보이스를 난 경험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그냥 감정적 파고를 일으키는 보컬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메트로 부민의 프로덕션과 만난 감정적 사운드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다. 이건 그러니까, 흡사 다른 세계로 도달하는 혼돈이자 상념 같다. 아무리 21 savage가 준수한 랩을 하고 스캇이 앨범의 끄트머리를 잘 여닫아도 느낄 수 없는- 아주 찰나의 감흥이자 인상이다. 그리고 이는 앨범 전체가 끝나면, 정작 들쭉날쭉한 무의미의 나열처럼 느껴지던 앨범의 여운을 강하게 한다. 물론 이게 단순 블레이크의 보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말을 두서 없이 주저리주저리 하다보니 나온 거지만, 나에겐 앨범의 전체적인 인상(좋은 인상)을 농축시킨 것이 블레이크의 보컬처럼 들렸다- 는 말이다. 하지만 이건 뒤늦었더라도 분명한 감정의 발현이고 귀가 아릴 만큼의 여흥이다. 앨범이 끝나고 온 정적에서 더 큰 인상이 다가왔던 까닭이다.

 

 전반적으로 좋은 음악들, 준수한 아류라 할만 한 소스들이 많았지만 통일성이 안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 서사의 기승전결이 깔끔하게 전달되었다거나 완급조절을 잘했더라면 더욱 좋은 앨범이 되었을 것 같다. 물론 피치포크의 낮은 평점으로 말이 많았지만, 역시 그 정도로 좋지 않은 앨범은 아니다. 다소 몰개성한 면이 있지만 어쨌든 스캇은 칸예를 충실히 따랐고,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성과니까 말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몇몇 트랙 외엔, 솔직히 말해 큰 인상을 느끼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준수하다, 라는 말 정도는 할 수 있다. 뱅어가 없는 것은 오히려 좋게 다가왔고, 스캇이 상업성을 벗어던진 것-케이팝은 예외다, 그 곡에 대해 말해보자면 하고픈 말이 산더미다-은 반갑게 느껴진다. 최고작은 여전히 ASTROWORLD 혹은 RODEO라고 생각되지만, 이 앨범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둘 가치가 있다고 저념한 이유 또한 그곳에 있다. '칸예랑 너무 비슷하다'라는- 그 얇고 간헐적인 생각만 벗어나면 훨씬 즐길 것이 많은 앨범, 그것이 UTOPIA의 정체처럼 -나에게는-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화젯거리도, 즐길거리도 많은 앨범이었고, 오션만 주구장창 기다리는 진중에 단비 같은 작품이었다. 당분간은 이태원과 노량진의 거리들을 버스로 오갈 때 UTOPIA만 떠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호오를 떠나 경험의 파편으로 새기고, 인상의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우리가 음악을 즐기는 하나의 이유이니까 말이다. 친구의 집까지 가는 발걸음은, 그렇게, UTOPIA를 통해 웅장해진다. 우리의 즐거운 밤을 상징하는 음악이 되지 않을까.

 나는 앨범의 여운을 곱씹으며 가로등 깜빡이는 무수한 골목을 소음 없이 내려간다. 내 걸음이 빨라짐에 따라 불이 꺼져가는 상점과 키스하는 연인과 따끈한 음식 냄새 등등 하는 것들이 재빠르게 뒤켠으로 지나쳐가는 느낌이다. 이들은 어느새 내 세상에서 이탈해버린다. 감각에서 그 존재가 한 번 지나치면 그런 것들은 내 세상 속에 아무 의미 없는 무언가로 잊혀지는 것이다. 그 대신 내 눈에 비치는 건 오로지 어둠으로 깊어져가는 서울 골목길의 밤과 밤을 채우는 어둠 뿐이다. 하지만 그런 감각들이 희미해지고- 내 세계가 점점 무無로 바뀌어갈수록 귓가에 아른거리는 음악의 여운은 커진다. 이윽고 그 어둠을 따라 조금씩, 마치 다른 세상으로 건너 간 것처럼 혼돈스러운 세계가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공간 속에서 희미하게 베이스가 웅웅댄다. 빈 에너지드링크 캔만이 고요한 공간 속에 둔탁하고 나지막하게 떨어진다. 유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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