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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is Scott - ASTROWORLD 리뷰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2023.05.29 16:13조회 수 3560추천수 12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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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is Scott - ASTROWORLD

 

누군가에게는 트랩의 클래식, 혹은 그저 그런 웰메이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거칠고 날것에 가까운 Rodeo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작품. ASTROWORLD는 참 신기한 점이 있다. 모든 이들의 시선에 그럴싸하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ASTROWORLD 만큼 완성도 높은 트랩 앨범은 없는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장르 내에 본작만큼 준수한 트랩 앨범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고, Rodeo를 듣고 나면 이 작품이 비교적 허전하게 들리는 것 또한 맞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장르 내에 ASTROWORLD의 입지가 절대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의 이유는, 트랩이라는 장르에서도, 깊이 있고 의식 있는 힙합과 대척점에 있다고 보이는, 만연한 편견을 뒤로한 채 음악 문화의 오랜 팬들에게조차 당당히 권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의 음악만큼 장르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예술의 본질에도 충실한 음악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Rodeo가 발매되고서 장장 8년이라는 시간동안 다른 장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비교 데이터가 쌓였지만, 여전히 스캇의 음악은 특별하다 못해 독보적인 위치에 서있다. 특히 Rodeo가 그렇다. 내가 Rodeo를 감상하며 놀랐던 점은 다름 아닌 그의 랩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런 훌륭한 랩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트랩 비트 위에서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이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기본기가 탄탄한 래퍼는 셀 수도 없이 많지만, 비트와 어우러질 때에 훨씬 더 큰 감탄을 자아내는 래퍼는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무대가 Trap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센스 있는 피처링의 활용, 지루할 틈 없는 곡 전개, 독보적인 감성, 스캇은 본작의 무대가 될 고향 휴스턴에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만큼 이 모든 장점을 상당히 업그레이드해 왔다. 아닌 게 아니라 본작은 지금까지 그가 활용한 변주가 귀여워 보일 만큼 급격하고 변칙적이며 또 다양한 방식으로 곡을 전개한다. 마치 여러 개의 흥미로운 시퀀스가 모여 하나의 영화가 완성되듯, 입체감 있는 여러 트랙이 모여 ASTROWORLD가 완성된다. 분명히 각 트랙마다의 개성도 부족함이 없지만, 모든 것은 결국 메인 스테이지로 귀결되듯 ASTROWORLD의 구심력을 벗어나지 않는다. 테임 임팔라의 몽환적인 사이키델릭("Skeletons"), 제임스 블레이크의 차가운 앰비언트("Stop Trying to Be God"), 위켄드의 감성적인 컨템포러리 알앤비("Wake Up")까지 본작에는 수많은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프로듀서들의 손길이 닿아있지만 트래비스 스캇의 ASTROWORLD를 제외한 다른 심상들은 놀라우리만치 고요하다. 오프너 "Stargazing"은 앨범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트랙이다. 둔중한 베이스와 함께 느릿한 템포의 멜로디가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만드는 초반부는 전형적인 스캇의 스탠더드이지만, 이내 놀이공원의 비명소리와 함께 왜곡되며 갑작스러운 비트체인지가 일어나고 현재에서 과거의 시점으로 변경되는 가사가 타이트해진 비트와 맞물려 대비 효과를 극대화한다.

 

"Sicko Mode"또한 그렇다. 드레이크의 목소리와 함께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비트 드랍을 기대하게 만드는 익숙한 전개는 당연하다는 듯 1분 만에 뒤집혀버린다. 그리고 스캇은 천연스럽게 랩을 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의 목소리를 보태는 건 드레이크가 아니라 Ready to Die의 비기스몰스다. 그러나 1분도 지나지 않아 급작스러운 변주로 까맣게 잊어버린 드레이크의 목소리를 또 한 번 스캇의 스탠더드 위에 올리며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아쉬움을 전부 긁어내버린다. 긴장감과 기대감을 주무르는 5분간의 "Sicko Mode"는 이성적인 하나의 전략을 넘어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스캇만의 무언가다. 신디사이저와 제임스 블레이크의 목소리만 남은 미니멀한 사운드가 몰입도를 끌어올리다 스티비 원더의 하모니카가 포개지는 "Stop Trying to Be God"또한 특기할 만하다. 그의 음악에 이유 없는 변화는 없다. 내가 ASTROWORLD와 IGOR처럼 변주를 잘 활용한 작품들에 감탄하는 이유는 단순하게 끌어올린 기대감을 다른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프로세스가 여러 번 발생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을 돌이켜보니 정말 그럴싸한 모양새였다는 것을 확인할 때이다.

 

나는 스캇과 다른 트랩 래퍼들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drugs, melodic, atmospheric, 그리고 Trap과 Southern Hip Hop. 정확히 같은 포맷임에도 수많은 Lil xxx들의 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스캇만의 매력이 무엇인지가 궁금했고, 릴 베이비가 피처링한 거나의 "Sold Out Dates"와 "YOSEMITE"의 비교가 도움이 되었다. 둘 모두 기타 연주로 구현한 미니멀한 트랩 비트 위에서 멜로디컬한 래핑으로 곡을 완성시키지만, 내 쪽은 "YOSEMITE"가 훨씬 풍성하게 들린다. 공기 빠진 듯한 관악 사운드와 부유하는 스캇의 백 보컬, 추임새. 단순한 듯 보이는 그의 음악에는 언제나 지루함을 쪽 빼버린 채 같은 감성을 두 배로 증폭시키며 곡을 풍성하게 빚어내는 디테일한 편곡이 있다. 같은 트랩이어도 다른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트랩 넘버에서 비슷한 결의 래퍼를 피처링으로 활용하거나 하나의 루프를 끝까지 끌어대며 지루함을 야기하는 등 장르의 일반적인 공식에 프로듀싱을 가둬버리는 레토르트 식품에 비해, 스캇은 프로듀싱에 대한 것이라면 장르의 관습을 넘어 다양한 문법을 수용하려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절한 피처링의 파트 배분은 "Carousel"에서의 프랭크 오션이나, "Sicko Mode"의 드레이크, "Stop Trying to Be God"의 제임스 블레이크와 "Skeletons"의 위켄드까지, 모두가 스캇을 위해 최고의 순간을 만들게 할 뿐 아니라 각자의 커리어에서조차 손에 꼽을 피처링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스캇의 데뷔앨범 Rodeo에서 Yeezus의 급진성을 떠올리게 했던 "Piss On Your Grave"가 생각난다. 분명 칸예의 손길과 입김이 이 곡을 주도적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러한 곡을 본인의 앨범에 하나의 트랙으로 삼는 것은 스캇의 확고한 주관이 필요한 결정이다. 이제 막 데뷔앨범을 발매한 래퍼가 그러한, 어쩌면 감당 못할, 트랙을 넣어두고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앨범을 매만진 것을 보면 그의 모습은 어떤 특정한 장르를 넘어 음악에 있어 비범한 능력을 지녔다는 설명이 정답에 가깝다고 본다. 내가 지금까지 트랩 음악을 듣고서 글을 써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정말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고, 스캇에 대해서 이토록 긴 글을 쓰게 된 것도 그의 음악이 장르적 원료들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에게조차 들어볼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본작은 더 그렇다. 누군가는 이 앨범을 감상하고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왔다는 것에 혹평을 할 수 있지만, 나는 이 점이 전혀 아쉽지가 않다. 시도해 보지 못한 것으로 적당한 만족감을 주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게 배로 어렵기 때문이다. 둔중한 베이스와 몽환적이고 음산한 분위기, 본인의 비트 안에서만큼은 누구와도 비교당하지 않을 성벽과도 같은 오토튠의 활용과 거기서 나오는 쾌감, 앨범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와 탄탄한 유기성까지. 마치 앨범 단위로 감상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 듯한 이 장르에서 본작 ASTROWORLD는 정확히 반대의 길로 걸어간다. 이것은 그저 뛰어난 아티스트가 만든 훌륭한 힙합 레코드이기 때문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타일러나 오션(얘는 가능성이 없으니까), 위켄드, 페기보다 스캇의 UTOPIA가 더 기다려집니다. 그 이유는 구구절절 설명해놨듯 그의 비범한 재능을 또 한 번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트랩이라는 장르에 심폐소생술 혹은 다른 유의미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스캇뿐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https://blog.naver.com/nikesfm/223114637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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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 1 5.29 16:22

    yosemite 관련된 부분이 흥미롭네요 잘 읽고 갑니다

  •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글쓴이
    1 5.29 17:37
    @오서독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 5.29 16:43
  • 잘 읽고 갑니다

  •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글쓴이
    1 5.29 17:37
    @파버카스텔콩테하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 5.29 17:2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혹시 마지막 트랙 coffee bean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앨범이 나온지 꽤 된 시점에서 저 곡만 아직까지 듣고있네여

  •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글쓴이
    1 5.29 17:41
    @Detro

    Coffee Bean이 클로징으로 꽤 매력적인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앨범을 감상하고 나면 유난히 더 멜랑꼴리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로데오처럼 클로징도 빡세게 밀고 나가기엔 아스트로월드가 전체적으로 더 부드럽게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강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트랙만 따로 떼어내서 감상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스트로월드의 마지막 트랙으로 Coffee Bean보다 나은 사운드가 상상이 가질 않네요. 저 스캇 특유의 백 코러스가 진짜 이런 분위기에 찰떡인 것 같아요.

  • 1 5.29 17:27

    잘 읽었습니다

  •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글쓴이
    1 5.29 17:37
    @NorthWest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 5.29 18:03

    현 트랩씬에서 막강한 대중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혁신을 일으킬 만한 음악성을 기대해볼 수 있는 사람은 스캇밖에 없죠 확실히

     

    유토피아가 아스트로월드 이상의 작품이 될지, 혹은 전작을 담습한 다소 실망스러운 작품이 될지 알 순 없지만 '트래비스 스캇'이라는 아티스트의 이름값과 특성만으로 올해 나오게 될 트랩 음반 중 최고봉의 자리는 이미 예약해놓지 않았나 싶습니다

  •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글쓴이
    5.29 18:57
    @온암

    정말 공감합니다. 저도 생각해보면 과장 하나도 없이 스캇 딱 한 명 떠오르네요. 덴젤 커리는 익히 아는 그런 트랩이랑 멀어진 지 한참은 된 것 같고.. 신보는 구리다는 옵션은 아예 없고 정말 좋거나 생각보다 무난하거나 일 것 같아요. 근데 저도 그 무난하다가 20년대에 나온 트랩 앨범보단 무조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title: Kanye West (Vultures)yi
    1 5.29 18:15

    나이키님 앨범 리뷰 넘 재밌어요.

    어렵지 않게 쏙쏙 이해되는 맛이 있는 듯

  •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글쓴이
    5.29 18:55
    @yi

    예전에는 어렵게 쓰는 게 멋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보니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분명한 글이 가장 좋은 것 같더라고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 5.29 18:41

    앨범에서 최애곡이 궁금합나다

  •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글쓴이
    5.29 18:54
    @아니

    Carousel이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Stargazing으로 어느정도 감만 잡은 앨범의 무드가 Carousel 듣자마자 뚜렷해지더라고요. 사실 제가 오션을 워낙에 좋아해서 더 매력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ㅋㅋ..

  • 5.29 19:31
    @NikesFM

    오션 나올 때 진짜 하.. goosebumps

  • 5.29 20:10

    진짜 처음에 시코모드 나왔을 때 사운드 지렸던 기억이 납니다

  • 5.29 22:46

    제가 생각하는 스캇음악의 가장 큰 장점은 타격감 높은 드럼인거같아요 항상 다른 트렙음악을 들어도 스캇앨범을 들은 이후에는 타격감이 너무 아쉬운 느낌이 들더라구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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