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플로우가 잡지 '씨네21'에 기고한 글이 최근 올라왔다.
글 제목은 '당신은 언제 힙합과 사랑에 빠졌나요?'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0141
이 제목을 봤을 때는 그냥 던지는 말인가 싶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아주 중요한 문장임을 알게 되었다.
When did you fall in love with Hip Hop?
영화는 이 질문을 레전드 MC/PD 들에게 던지며 시작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LBnebmFkJA
여기 나오는 힙합 뮤지션들은 모두 전설적인 인물들이고
그들이 언급하는 힙합과 사랑에 빠진 순간들은
힙합의 역사에서 태동기로 불리는 7~80년대로 돌아간다.
익숙한 래퍼들이 로맨스와 음악 사이를 은유적으로 오가며
힙합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정의한다.
딥플로우의 글에서 강조되었던 부분이 나오길 기다렸다.
“랩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거라면
힙합은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다.”
- <브라운 슈가> 중 시드의 대사
그렇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왔지만,
이렇게 깔끔하면서도 공감되게 정의해주길 기다려는데
영화 속 Sidney(시드)가 이렇게 한방에 정리해준 것.
요즘 어린 학생들에게 힙합을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화려한 랩스킬이나 복잡하게 짜여진 사운드 등을 꼽는다.
랩도 사운드도 내가 좋아하던 '그 힙합'보다 진화했는데
난 왜 그런 세련됨에 끌리지 않는 지 생각해본 적이 많다.
아내에게 프로포즈할 때 색소폰을 연습해서 연주했었다.
미친 듯이 한 곡만 연습해서 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당일에는 앞에 그녀가 있다는 사실로 인해
손도 떨리고 호흡도 다 망가져서 연주가 무너졌었다.
모든 게 망했다고 생각할 때쯤
아내는 나에게 웃으며 Yes라고 했고
나중에 내가... 연주를 망쳐서
프로포즈를 못 한 것이 후회된다고 하자
아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만일 그날 실수없이 매끈하게 연주했더라면
나는 아마 No 라고 했을 것이다
진짜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내 앞에서 긴장할 것이고,
그런 떨림이 표정과 손놀림에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에
그 마음(사랑)이 진심이라고 느껴져서 Yes 한 것..."
지금 힙합을 좋아한다며 랩을 하는 친구들 중에
여전히 이런 떨리는 진심을 담아 랩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상당수는 마치 닳고 닳은 사기꾼처럼
상대방이 좋아할만한 화려한 말과 선물로
음악 자체보다는 부수적인 것들에 대한 욕심을 보여준다.
이게 내가 요즘 힙합 대부분에 감동하지 못하는 이유이고
100번도 더 들은 30년이 지난 힙합 앨범 하나를 들으며
아직도 가슴 떨리고 감탄하는 이유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0ThOKdE4xdc
새롭게 치고 올라오던 어린 칸예의 샘플링 센스와
블랙스타 시절의 그 느낌 그대로의 모스 데프의 랩...
진짜 가슴 떨리던 힙합과의 사랑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그녀 = 힙합 / 힙합 = 그녀) 개념을
한 곡으로 표현할 수 있는 트랙
Common - I used to love H.E.R. (1994)
"H.E.R" means "Hip-Hop in its Essence is Real"
-그것(힙합)의 본질 안에 있는 힙합이 진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rUERC2Zk64
여주인공 시드니가 후반부에 책으로 발표하는 작품 제목도
I Used To Love H.E.R. 이라는 점은
커먼의 1994년 발매된 이 곡이
브라운 슈가 영화의 모티브 (혹은 영감)의 일부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사 해석을 보고 싶다면...
그리고 남주인공 드레가 새로운 레이블을 만들고
Cavi (모스 데프)를 영입하여 방송국에 발로 뛰며
CD를 틀며 홍보하다가 결국 그 곡이 라디오를 타던 장면은
내가 첫앨범 '훈장질'을 내고 몇달만에 MBC 라디오에서
처음 나오기로 결정되고 그 순간을 기다릴 때 느꼈던
그 설렘과 흥분의 감정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수록된 곡들은 다 아는 곡들이지만,
영화로 미처 챙기지 못하고 지나갈 뻔 했던 20년전 영화를
다시 꺼내어 볼 수 있게 해준 딥플로우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마음에 드신다면 이 영화 OST 꼭 찾아서 들어보시면 좋겠네요. 아주 좋습니다.ㅋ
사실 ost는 과거에 너덜너덜해지도록 듣다가 팔았는데 정작 영화를 못 봤던 상황입니다...ㅎㅎㅎ
ㅎㅎ 그렇군요.ㅋ
.
연결되는 곡이란 건 알고 있었는데
자세히 해석은 안 봤던터라 제대로 들어볼게요
고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글은 허접하고 영화가 너무 좋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봐왔던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 중에서 가장 유익한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울림이 있는 글이였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와... 제 스스로 다시 보니까 좀 오글거려서 중간에 좀 지울까 하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해주시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좋은 음악,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날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마음 변하셔서 지우실까봐 서둘러서 pdf 땄습니다ㅎㅎ 작성자님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
좋은글입니다. 넘나 즐겁게 잘봤습니다. 그립습니다 정말 찬란한 90년대
영화가 참 좋았어요 그 느낌... ㅠㅠ
글도 잘봤는데 와이프분 너무 멋지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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