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텀이 길지 않은 두 작품은 연작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For The First Time>이 블랙컨트리를 그려냈다면, <Ants From Up There>에서는 '뉴' 로드를 나타내려는 것일까. 자기 조직적인 시퀀스, 미드웨스트 이모, 체임버 팝, 포스트 록, 무료함과 카타르시스의 공존, 파괴 행위에 대한 경각심, 전지적 시점으로 인류를 손가락질하는 버릇까지, 이것은 완벽한 '올드' 로드다. 혁신적인 예술의 생산자들이 과거와 전통에 중독된 것이 비단 오늘날만의 일은 아니다. 특히 록 음악과 '새로움'을 결부시키는 수사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새로운 회화가 발견됐다.'라는 헤드라인만큼이나 허망하다. 새로움이 더 이상 새로움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런던의 평론가들은 몹시 남다른 관점으로 이 밴드를 바라본다. '현대 기타 음악의 중요한 이정표이자 매우 필요한 변칙.(Clash)', '슬린트 이후 가장 독보적인 사운드와 전달력.(NME)', '이들은 신이 아니지만, 이 독창성은 그들에게 백만 명의 추종자들을 안겨 줄 것이다.(musicOMH)' (피치포크가 작금의 위상을 갖게 된 데는 영국인들의 애국심이 큰 역할을 했다.) 앨범 발매를 며칠 앞두고 프런트 맨 아이작 우드가 개인 사유로 팀에서 이탈했다. 정작 밴드의 멤버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굴고 있지만, 외부 시선으로 봤을 때 이것은 독보적인 전달력의 불가피한 상실이다. 현대 록 음악의 실정, 프런트 맨의 이탈, 스노비쉬들의 애국심 등 이들을 둘러싼 상황이 어찌 됐든 간에, 지금으로서는 이 포스트 브렉시트 밴드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처럼 보인다.
현대 록 음악이 당면한 제일 큰 골칫거리는 바로 아이돌의 부재다. 딜런, 비틀스, 보위, 클래시, 핑크 플로이드, 토킹 헤즈, 라디오헤드 등 우상들은 모두 과거에 존재한다. 과거와 전통에 중독된 것은 혁신적인 예술가들뿐만이 아니다. 가장 심각한 증세를 보이는 것은 그 예술의 소비자들로서, 이들은 과거의 창작물을 찬미하고 아카이브를 관리하는데 일상의 대부분을 바친다. 이것은 지난날에 거울을 비춰 답을 구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두뇌의 배선 덕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 비상한 두뇌가 세상이 발전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어제의 세계에서는 너바나의 신보를 듣기 위해 영겁의 세월을 감내해야 했는데, LCD 패널을 두드리며 시간 여행을 하는 우리에게는 쉽게 헤아릴 수 없는 감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ㅡ고상한 평론가들, 젠체하는 힙스터들, 단정하고 우아한 연주를 선보이는 7명의 고전주의자들ㅡ는 내심 고대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보위와 스미스가 나타나 어느 시점엔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역사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기를.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라!"라는 팝의 명령에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우리를 한데 묶어줄 구심점이 필요하다. 현재 블랙 컨트리, 뉴 로드와 그들의 소포모어 앨범을 향한 극찬과 하이프의 이면에는 이처럼 적당히 회의적이고 적당히 낭만적인 견해가 반영돼 있는 것이다.
<Ants From Up There>의 사운드는 <For The First Time>에 비해 더 환하고, 더 정연하고, 더 확신에 차 있지만, 동시에 더 길고, 더 기이하고, 좀 더 극단에 위치한다. 그리고는 미니어처 피규어에서부터 디즈니 애니메이션, 롤랜드 에머리히의 재난 영화, 찰리 XCX와 빌리 아일리시에 이르기까지, 애벌렌치스도 질겁할만한 레퍼런스 목록이 있다. 내달리는 현악기, 정신없이 울려대는 베이스, 조마조마하게 되풀이되는 피아노 등 레퍼런스들은 더없이 노골적이다. 오프닝 Chaos Space Marine의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면 <For The First Time>을 듣고 슬린트를 떠올렸듯이, 앨범을 듣는 거의 모두가 아케이드 파이어를, 콕집어 <Funeral>을 떠올릴 것이다. 반면 Bread Song은 아이작이 즉흥으로 부르는 습작 같은 인상을 주며 피아노, 바이올린, 색소폰 등이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른다. 그러다가 찰리 웨인의 드럼이 이 행렬 속으로 뛰어들면 저마다의 습작처럼 여겨졌던 연주들이 돌연 독창적인 박자와 배열을 이룬다. 앨범의 모든 전주는 1991년의 슬린트스럽고, 모든 후주는 2004년의 아케이드 파이어스럽다. 이것은 귀로 듣는 프루스트의 마들렌이다. LCD 패널에 압력을 가할 필요조차 없어진 것이다.
<For The First Time>과 <Ants From Up There> 둘 모두 수수께끼 같은 도치와 대조법으로 가득하고 능숙한 합주 속에서 아이작의 초현실주의 작곡이 빛을 발한다. 그런데 이 앨범에서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은 사운드가 아니라 태도의 변화다. 블랙 컨트리, 뉴 로드는 무미건조한 말장난과 위트로 각광을 받았지만 이 앨범에서는 불과 1년 전 말투와 몸가짐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이런 변화와 광범위한 레퍼런스들이 거의 30분에 달하는 후반부 3곡에 집약돼 있다. 이 3곡들은 모두 들릴 듯 말 듯한 아르페지오가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연못에 돌을 던지는 불청객은 대개 아이작의 절규와 찰리의 드럼이며, 청취자 모두를 그 광경의 일원으로 만드는 현장감을 자랑한다. Snow Globes는 매크로 같은 기타 패턴으로 시작되는데, 클래식 퍼커션으로 출발했지만 크레셴도 기호에 따라 요동치는 찰리의 퍼포먼스가 돋보인다. 드럼과 보컬이 반쯤 미쳐가는 와중에도 기타와 바이올린은 철저하리만치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한다. 나는 앨범의 후반부를 들을 때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Spirit of Eden>의 불가사의한 면모들을 생각했다. 그것이 음미할만한 예술이란 것을 알지만, 왜 예술인지, 또 어떻게 예술이 됐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핑크 플로이드식 선형 서사시의 사생아들.', '지나치게 장황한 바로크 팝.', '일순의 보상을 위한 작위적인 서스펜스.' 포스트 록에 관한 표현들을 <Ants From Up There>에 대한 반응에 대입한다 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한데 '포스트 록'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1분을 위해 10분을 허비하지만, 바로 그 낭비된 10분 때문에 충직한 수요가 발생한다. 물론 모든 공급이 모든 수요를 충족할 수는 없으니 블랙 컨트리, 뉴 로드에 이 조그만 세상의 이목이 쏠리는 것이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현재로서는 <Ants From Up There>가 아이작 우드가 참여한 마지막 블랙 컨트리, 뉴 로드 앨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의 바리톤에는 불안한 떨림과 절박함이 있는데, 그것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고, 쓴웃음을 지으며 사사로운 농담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윈 버틀러가 없는 아케이드 파이어를 상상할 수 없듯 아이작 우드가 없는 블랙 컨트리, 뉴 로드에는 많은 의문부호가 붙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각별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버질 아블로의 마지막 손길이 닿은 나이키 스니커즈가 소더비에서 35만 달러에 낙찰되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을 살라!"라는 팝의 명령을 잊었는가? 밴드의 한 팬이 쓴 감상평을 인용하는 것으로 앨범만큼이나 장황했던 글을 끝맺고자 한다. "내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파괴적인 앨범이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심지어 나는 이 앨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표현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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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컨뉴로' 하이프가 굉장합니다.
하이프냐, 걸작이냐.
이러니저러니 해도 둘은 공생관계니까요.
다음 행보가 무척 궁금해집니다.
블컨뉴로 후기에서 뜬금없기는 한데
빅 시프 앨범 진짜 미쳤네요..
ㅎㅎ




블로그에서도 리뷰 종종 봤는데 글 정말 잘 쓰시는 것 같아 부럽습니다 ㅠ 연말결산 리스트 보면 생전 처음 보는 음반도 있고 해서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디깅 어디서 하시는지 신기하구 ㅋㅋ 새 리뷰도 잘 읽었습니다 이번 앨범 평이 좋던데 꼭 들어봐야겠네요 :)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빅 씨프 신보도 리뷰 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하이프는 시간이 지날수록 평가가 떨어지겠지만 이 앨범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빠져들 걸작인 것 같네요
빌드업이 너무 긴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마지막 세 트랙 듣고 싹 사라질 만큼의 감동이었습니다. 이 앨범 리뷰해 주시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기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진짜 잘쓰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1집은 약간 포스트락적인 느낌이었는데 이번 앨범은 지난번보다 좀 더 접근성이 좋아진것 같습니다. 빌드업에서의 지루함도 덜하구요 보컬이 상당히 매력적인데 이번에 탈퇴해 버려서 향후 행보가 어떻게 될지 가늠이 안되네요 밴드의 스완송이 될지 재도약의 발판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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