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 a
제목을 보고 자연스레 이 글에 끌려온 분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참 궁금하다. 차후에 있을 아티스트 활동을 위한 준비운동인지, 유튜브 콘텐츠인지, 프랭크 자파를 본받아 양갈래 머리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건지. 아쉽게도 이런 재미난 목적을 위한 글은 아니다. 그저 가볍게 유튜브를 보던 중 모 축구 유튜버의 ‘하루 동안 호날두처럼 살기’ 콘텐츠에 감명받은 나머지 축구 대신 음악을 대입하고 기간을 좀 늘린 것뿐이다. 매년 새해 첫날이 되면 미리 세워놓은 장기 계획을 하나씩 실천하곤 한다 ― 올해는 장문의 글쓰기가 수반되어 시간을 잡아먹을 것이 뻔해 시작일을 한 주 앞당겼다. 그렇게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건 단순히 열정과 의욕을 위한 건강한 습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새로이 닥쳐올 역경과 고난들을 위한 예열이기도 하다. 2022년은 그렇다. ‘한 달 동안 예술가처럼 살아보기’가 낙점된 것이다. 말만 거창하지 특별한 건 없다. 지금 당장의 시급한 과제들을 곧 새 학기를 맞이할 한 달 뒤의 나에게 다 떠넘기고 완전무결한 백수로 지내면 그뿐이다. 물론 프랭크 오션을 위시하는 아티스트 꿈나무라면 이 기간이 직간접적으로 차후의 활동을 위한 자양분이 되겠지만, 나는 예술가와 전혀 무관한, 아니 정말 정반대의 꿈을 꾸고 살아가는 대학생이다.
A - b
프로젝트를 구상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답을 내야 할 질문이 있다. ‘과연 아티스트는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선 아티스트가 어떤 활동으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받는지를 알아보아야 했다. 보다시피 이 꼬리를 문 질문 또한 간단히 답할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여담이지만 그 유명한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은 프랭크 자파의 공연 도중 화재로 인해 공연장이 홀랑 타버리고, 건물이 무너지며 피어나는 연기가 제네바 호수 수면 위에 뒤덮인 상황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뿐인가. 에릭 클랩튼은 친구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를 향한 구애의 노래로 70년대 최고의 블루스 록 넘버 「Layla」를 써냈다. 훌륭한 곡을 위한 영감이 “자 이제 작곡 시작!” 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 화재로 건물이 무너지는 불구경이나 친구 아내를 넘보는 그런 ‘일상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절대다수의 예술가들이 입을 모아 답하는 공통분모는 존재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영화를 보며, 때론 전시회에 가 미술 작품 구경도 하는 것이다. 나도 취지에 맞게 이 모든 것을 다 하고 살고 싶었지만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현실적으로 마지막 조언은 따르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뭐 어찌저찌 정해진 것 같다. <음악을 듣고, 글을 읽고, 영화를 보자>
B - a
무책임한 자유이자 선택으로 끝날 공산이 충분한 일을 벌여 놓았는데도 걱정은 없었다. 아니, ‘내가 살면서 또 언제 이렇게 두발 뻗고 근심 걱정 없이 음악을 들어볼 수 있겠나’하는 마음은 이 유별난 취미에 투자하는 것에 미련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물론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수습을 해야 했다. 그렇다고 무슨 하루하루를 컴퓨터 앞에 앉아 본인의 음악을 그럴싸하게 꾸며줄 샘플을 탐색하고 비트를 찍는데 골머리를 앓는 청년 예술가처럼 보냈냐 하면 그건 당연히 아니다. 애초에 주제가 ‘예술가처럼 살아보기’지 ‘예술가의 고단한 삶’이 아니지 않나 ― 나도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대충 꿀만 빨아 먹겠다는 뉘앙스만 전달되었으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거기에 살을 붙이고 다듬었다. 그렇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미국 대중음악 근현대사의 흐름을 정리해 보기>라는 짧지만 명쾌한 계획이 수립되었다.

B - b
사실 감상한 영화와 읽은 책도 전부 나열할까 생각했지만 내 블로그와 이 글은 엄연히 음악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한 목적하에 만들어지고 쓰였다. 무엇보다 퇴고하는 작업조차 부담을 느낄 정도로 글이 길어져 버렸으니, 안타깝지만 영화와 책은 나중에라도 소개하기로 하고 저 위에 나열된 앨범이 뭔지부터 설명해야겠다. 밑에서 또 한 번 언급하겠지만 한 달간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다. 이전부터 아침에 일어나 재즈를 듣던 나름 생산적인 습관이 있었고, 점심 독서 이후, 저녁 독서 이후, 그리고 밤까지 총 네 개의 앨범을 날마다 들었다 ― 이 사이 어딘가에 영화 한 편을 끼워 넣었다. 수치상으론 124개의 앨범을 들었어야 하지만 가끔 개인적인 일이나 휴식 속의 휴식을 위해 자전거를 타는 등의 일로 아마도 100개 언저리에 머물 것이다. 그중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몹시 인상 깊었던 앨범만을 추린 게 위의 리스트이다. 이 25개의 앨범 하나하나 전부 글로 늘어놓을 순 없는 노릇이고, 듣는 과정에서 마주한 사소한 고민과 한 달간 들었던 음악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여성 아티스트의 앨범에 관해 작성하게 될 것이다 ― 아쉽게 탈락한 Blood Orange에게는 『Freetown Sound』를 한 번 더 듣는 것으로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B - c
계획은 차질 없이 차근차근 진행되어 갔고, 어디서 많이 듣던 ‘일과 취미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라는 문장을 조금이나마 공감해 보는 귀한 경험도 했다. 다만 프로젝트 시작부터 갖고 있던 난제 하나가 끊임없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이것을 해결한 일이 이 한 달 동안 가장 잘한 일이라고 단언한다. ‘음악을 들을 것이냐, 아니면 음악도 들을 것이냐’. 이 둘의 균형이 워낙 팽팽했던 나머지 해결하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스트리밍이 보편화되고 음원 구매 행위마저 기념비적인 일이 되어버린 작금의 시대에 음악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져 만 원짜리 이어팟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듣는 음악의 무게에 추를 달아 온전히 소리에 집중할 것이냐, 뇌에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복잡해지지 않는 선의 무언가를 ― 예컨대 검색이나 청소 같은 ― 곁들여 음악을 들을 것이냐의 문제다. 사실 2022년에 와서 DAW가 뭔지도 모르는 일반인이 전자의 선택을 하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보이는지 고민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20세기의 예술가들이 음악을 들으며 디시인사이드를 하고, 힙합엘이를 보지는 않았을 것을 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이 얼마나 찬란히 빛나는지도 잘 알고 있다 ― 물론 모든 음악을 이런 식으로 들었다는 건 아니다. 『Off The Wall』을 눈 감고 차분히 앉은 채 듣는 건 고문이다.
B - d
첫 주는 하루에 얼마만큼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보기 위해 새로운 음악을 정말 닥치는 대로 들었다. 여기엔 Kelela와 Sampha, Blood Orange처럼 독특한 색의 R&B 싱어들이 있었고, Stan Getz나 Jackie & Roy, Clifford Brown처럼 부드러운 재즈도 있었으며, Blondie, Talking Heads, The Clash 등 70~80년대를 책임진 펑크/뉴웨이브 밴드도 있었다. 지나온 모든 음악이 또렷이 기억에 남을 만큼의 깊은 감상은 아니었지만, 특별한 인상으로 각인된 『Parallel Lines』같은 신나는 음악은 요즘도 자주 꺼내 듣곤 한다. 뭐 그렇게 내 인생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으로 한 주를 보내고, 또 이게 끝이 아니라 꽤 긴 시간이 아직 더 남았다는 것에 묘한 감정을 느끼며 둘째 주를 맞이했다. 아마 바깥이 어둑어둑해지던 저녁 무렵일 텐데, 갑작스레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평화로운 정경을 감상하며 미리 찾아두었던 Björk의 『Debut』를 재생했다 ― 사실 빈스 과랄디나 키스 자렛으로 노선을 바꾸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잠깐 고민했다.




C - a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디스코그래피는 무조건 첫 번째 앨범부터 훑는 강박과, 또 눈(Snow)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Homogenic』이 아닌 『Debut』부터 선택한 것이 뜻밖의 행운이라는 것이다. 『Post』나 『Homogenic』은 나와 같이 Björk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대혼란의 소용돌이 같은 앨범인지라 아마 요란하기만 한 BGM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또 눈을 구경하느라 「Venus as a Boy」까지 자연스레 휴대폰을 놓고선, 앨범이 끝날 때까지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눈을 감고 집중했으며, 이내 그녀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형상을 발견했으니 확실히 덕을 본 셈이다 ― 평소라면 스쳐 지나갔을 일이다. 이는 마치 드럼의 규칙적인 박동을 제외한 수많은 소리들이 ― 그것이 공기의 진동이든, 주파수의 합성이든지 간에 ― ‘질서정연하게’ 흩어져 있고, 자유로이 부유하는 보컬이 퍼지려는 소리들의 구심이 되어주는 것만 같았다. 빠르게 지나가는 다양한 전자음과 사운드 스케이프, 흔하게 보기 힘든 독특한 악기들, 무엇보다 메인 프로듀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 모든 조화를 박살 내듯 들리는 그녀의 모순적인 보컬은 구심이 아닌 원심에 가깝다. 그럼 대체 이 음악 부적응자가 어떻게 섞였길래 트랙마다의 분위기를 형성시키는지 단 50분으로는 어떠한 갈피도 잡을 수가 없었다 ― 같은 의문을 데브 하인스에게도 던졌다. 나는 이 새로운 난제를 풀기 위해 이미 자극을 받을 대로 받은 호기심을 억누르고 다음날 그녀의 소포모어 앨범인 『Post』를 듣기로 결심한다.
C - b
수많은 예술가의 디스코그래피/필모그래피를 보다 보면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상승곡선이 겹쳐지곤 한다. 저마다의 예술적 성취에 도달하는 과정이 함축된 것이다. Björk도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거시적으로 Björk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이것을 일차원적 변화만 나타내는 그래프 따위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Debut』는 폭풍 전야와도 같은 앨범이다. 그저 약간의 배려, 그리고 타협을 통해 기상천외한 음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이들을 전야에 선별하는 것이다. 『Post』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음악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선을 가볍게 넘어버린다 ― 이 앨범이 1995년에 발매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니까 남들은 원 안에서 인더스트리얼이니, 익스페리멘탈이니, 글리치니 하며 신경을 곤두세운다면 비요크는 애당초 원 넘어에서 밀고 당기며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 Nine Inch Nails가 공연을 하고 현악기가 아름다운 라나의 공연이 이어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이미 『Post』는 상식 밖의 일들이 펼쳐지는 4차원 공간이고, 이것을 받아들인 청자는 어느새 예술을 통한 모종의 각성을 한 것이다.
C - c
때로는 불친절할 정도로 어렵고, 거칠며, 부담스러운 음악이 있다 ― 혹 만나본 경험이 없다면 데스 그립스의 앨범을 권하고 싶다. 존 파웰의 저서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에선 음악에 두 가지의 불협화음이 있다고 한다. 우선 감각적 불협화음이다. 아직 열심히 연구 중이라니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지만 청각계와 뇌, 그러니까 신경과학적으로 인지하는 불편한 소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음악적 불협화음으로 본인의 취향에 따라 부드럽게, 또 억세게 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 왜 뜬금없이 과학 얘기인지 의아할 텐데 『Homogenic』은 책에서 주워들은 이론이라도 빌려와야 내 머릿속에서 부유하는 정제되지 않은 문장들을 꺼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뇌와 귀가 평소 각별하던 현악기에 공포감을 느끼고, 강렬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한 격정적인 보컬과 그 밑에 깔리는 IDM 리듬 패턴을 감각적으로 견디기 힘들어한다. 완급조절을 위한 차분한 전자음이 들려올 때 멈출지 말지를 고민하지만 따라가지 않기엔 그녀의 뒷모습이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하는 것이다. 가치관이 흔들릴 만큼 무자비하게 연주되는 관현악에 주춤해도 전자음과의 어울림 속 심오한 균형미가 경탄스럽고, 앨범을 윤택하게 하는 단발적인 소스들은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감각적 협화음으로 들릴 지경이다. 무질서하고 분간하기도 어려운 소리의 폭풍 속에서 존재감 넘치는 그녀의 목소리가 길을 안내하는데, 방식은 몹시 거칠지라도 이것조차 압도라는 새로운 음악적 경험인 것이다."
C - d
이젠 멈출 수도 없이 멀리 왔지만 『Vespertine』은 다행히도 정신없이 이끌려온 나를 위해 Björk가 공유한 영기로운 안식처였다. 세간의 평가가 어찌 됐든 그녀의 만발하는 재능은 이 앨범에서도 여전히 돋보인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커리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지점이다 ― 적어도 나에게는. 나는 『Vespertine』을 들으며 드뷔시의 달빛을 떠올렸다. 파리의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는 낭만주의 시대에 태어나고 연주했다. 이 시기는 음악적으로 더없이 활발하고, 연주자들은 창의적이고 자유로워지던 클래식의 황금기였다. 다만 재즈의 비밥처럼 정교하고 화려한 기교적 측면에 집중했을 뿐이다 ― 모든 낭만주의 음악이 그렇진 않다. 「Clair de Lune」에서 우리는 드뷔시의 기교를 가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곡은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린다. 입체적이고 신비로우며, 아름답지만 아련하다. 그는 낭만주의 불문율의 화음을 해체시키고 음악에 공간감과 이미지를 부여했다. 비단 「Clair de Lune」뿐 아니라 『Vespertine』이, 또 Björk의 음악들이 그렇다. '그녀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게 맞을까', '과연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게 뭘까', '이 음악들은 어떤 기본형을 갖고 있던 사람에게 맞을까'. 그녀의 음악을 들었다면 유별난 답변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보컬은 분위기에 완벽히 조율되어 있고, 소리는 입체적이고 신비로우며, 아름답지만 파괴적이다.' 모두 본인의 기본형을 한껏 늘리며 그녀의 음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음악을 지배하는 확고부동한 규칙은 없다. 과거에 통했던 것들을 그저 관찰할 뿐이다.”라는 문구가 기억난다. 과거의 지식으로 그녀의 음악을 내다보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어린이들의 장래를 예측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비요크의 음악은 미래를 향해 있다. 아마 먼 훗날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한다면, 손꼽아 기다려온 듯 가장 먼저 음악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D
이 글을 쓰다 보니 감상하기로 한 스티비 원더의 디스코그래피가 자꾸 미뤄지고 있다. 글을 작성하는 데 이틀이나 걸리는 게 한 달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질 것 같다. 뭐 31일을 다 채우지 못한다 해도 예술가의 일상을 공유해 보는 색다른 경험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닐까. 역시 난 그들의 자유롭고 예술적인 삶에 매료된 것 같다. 물론 그들이 창작의 고뇌 속에서 허우적대는 시간에 대한 반대급부만을 취하니 체험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매일같이 새로운 이들의 목소리와 연주를 듣고 자유로이 생각할 수 있는 것에 기쁘다. 내일, 또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이 되는지는 숱한 어록이 증명해 주지 않나. 나의 한 달을 아름답게 빛내준 모든 예술가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https://blog.naver.com/nikesfm/222628179385




비요크 음악 처음 들었을 때 마음 속으로 환호성 질렀던 거 생각나네요
그런 순간은 참 오랫동안 잊혀지질 않더라고요.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요크 음악 처음 들을 땐 메인 프로듀서가 본인인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나무위키 보다가 알게 되고 한 10초간 가만히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비요크 음악 들어보면 참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가장 궁금한 사람입니다.
정말 좋은 글이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미뤄두고 있었던 비요크 음악을 오늘은 자기 전에 꼭 들어봐야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보위 말처럼 예술가라는 것이 별 게 아닌 듯해요. 관습과 유행에 얽매이지 않고 남들과는 다르게 사는 것. 딱 비요크가 떠오르네요 ㅎㅎ
이런 예술가의 음악은 해체주의가 아니라 그냥 자기 자신을 표현하다 자연스레 달라지는 느낌이라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욬 노래 들어보면서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재밌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글 읽고 Debut 바로 돌렸는데 미친듯이 좋네요. 마지막 트랙에서 눈물 흘릴뻔 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저도 비요크 앨범 중 딱 하나 꼽으라면 Debut 고를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되게 잘 쓰시네요
쓰느라 고생 좀 했는데 칭찬 감사합니다.
평소에 책 많이 읽으시나요
음악 관련 도서는 사두고 자주 읽는 편인데 그 외엔 한 달에 두 세권 정도 읽는 것 같습니다.
와 정말 좋은 글이네요...저는 지금 작곡을 배우는데 수업 끝나고 집에 가는 길입니다. 작곡은 배우면서 음악가의 삶이란 무엇일까는 정작 생각을 많이 안 해본 것 같네요. 뷔욕 새 앨범이 곧 나온다니 기대하는 마음으로 정주행해야겠네요
저처럼 흉내가 아니라 정말로 예술의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에 놓였다는 것 만으로도 내심 부럽네요. 작곡 응원합니다!
이것도 나름대로 칼럼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암튼 ㅎㅎㅎ. 최근 커뮤니티에서 본 칼럼 중에 제일 재밌고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게 일기장이 적합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추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고두고 읽을 것 같네요. 벌써 2번째 정독했는데 너무 유익한 것 같아요. 추천 할 수 있다면 10개라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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