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나온 트웬티 원 파일러츠의 앨범 Trench를 상당히 좋게 들은 저로써는
이번 앨범도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근데 싱글 shy away와 choker를 듣고 나서는 기대보다는 상당한 걱정이 몰려왔습니다...
전작의 실험적이고 다채로웠던 사운드와 구성에서 벗어나
너무나도 예상되는 구조와 뻔한 사운드를 가진 곡들이었기 때문이죠. ㅠㅠ
발매된 앨범을 통으로 들었을 때도 제가 생각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험 대신 안전한 길을 택한 듯한 이 앨범 Scaled and Icy는
저에게는 트웬티 원 파일럿츠가 음악적으로 퇴보했다고 느껴질 수 밖에 없었죠.
(p.s. 판타노는 최근 리뷰에서 이 앨범에 10점 만점에 2점(!)을 주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며 혹평했죠.)
근데 최근에 이 앨범에 관한 팬들의 말을 들어보니
"이 앨범은 '프로파간다'야"라는 말이 꽤나 자주 들리더군요.
지금이 무슨 소련 시대도 아니고 앨범이 프로파간다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싶어서
이에 대해 좀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니 상당히 재밌는 이야기가 있더라구요.
최근 엘이에서도 이번 앨범에 실망하신 분들이 많은 거 같아
이 얘기를 전해드리면 좀 더 앨범을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거 같아 이 글을 통해 설명해 드리려 합니다.
(간주중)
우선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트웬티 원 파일럿츠의 정체성에 대해 조금 설명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보컬 타일러 조셉과 드럼 조쉬 던 2명으로 이루이진 이 밴드는
사실 항상 정신건강과 우울증, 불안함 같은 주제에 대해 노래해 왔습니다.
1집 Vessel 부터 2집 Blurryface (사실 Blurryface도 타일러의 걱정과 낮은 자존감을 상징하는 캐릭터죠)를 통해
이와 같은 주제적 정체성을 점차 굳혀 나가던 그들은 3집 Trench를 통해 이를 더욱 확장해 나갑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Trench는 사람들의 우울함과 불안정함을 기반으로 세워진 도시인 Dema(디마)에서
타일러가 탈출하는 과정을 그려나가는 앨범 입니다. Jumpsuit(1번 트랙 제목)을 입고 디마에 맞서는
단체인 Bandito(11번 트랙 제목, 밴드의 팬들을 상징)와 함께 이 암울한 도시를 탈출(Leave The City, 마지막 곡)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타일러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강한 면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Clancy를 만나기도 하죠.
어쨌든 디마에 갇힌 다른 사람들과 힘을 모아 맞서 싸운 결과 타일러는 Clancy와 함께 탈출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며 Trench는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Trench 이후 첫 싱글인 Level of Concern과 관련된 홍보 이벤트 도중 여러가지 숨겨진 퍼즐들을 해결한 팬들 몇 명은
하나의 USB를 배달 받는데요,
https://www.youtube.com/watch?v=ELgtcF8Le-E
그 속에는 위와 같이 팬들에게 인사를 전하는 영상 하나가 들어 있습니다.
언뜻 보면 조금 다운돼 보이는 타일러를 제외하면 완전히 평범한 영상이지만,
오른쪽 뒤에 있는 검정색 TV에 순차적으로 나오는 알파벳을 순서대로 조합하면
"Clancy is dead (클랜시는 죽었다)" 가 됩니다.
이로 인해 사실 타일러와 클랜시는 디마를 탈출하지 못했다는 가설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로 클랜시의 손편지가 올라오던 웹사이트는 새 앨범 Scaled And Icy의 홍보 사이트로 변하게 되고,
그 곳에 올라온 앨범 포스터는 따뜻하고 밝은 색감을 쓰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드는 딱딱함이 느껴집니다.
앨범 제목인 Scaled And Icy를 재조합하면 Clancy Is Dead가 된다는 사실 또한 팬들은 쉽게 찾아 냈죠.
결정적으로 "In Production of Dema"라는 문구는 타일러가 디마를 탈출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디마가 트웬티 원 파일럿츠를 자신들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또한 이 가설에 강력한 힌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나온 싱글 Christmas Saves the Year 커버를 보면
선물들 앞에 웃고 있는 어린 타일러와 조쉬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선물들 중 클랜시가 보낸 빨간색 선물도 보입니다.
그리고 보기 힘들지만 희미하게 써진 문구가 하나 더 숨겨져 있는데요,
"Sai (Scaled and Icy의 약자) is propaganda." 이로써 팬들의 가설은 거의 확실시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nGkDwZuuJE&ab_channel=JakeAlanJakeAlan
앨범 발매 후 진행된 온라인 콘서트에서도 수많은 힌트들이 주어집니다.
공연은 타일러가 TV쇼에 나오는 컨셉으로 시작되는데요, 이 TV쇼 역시 디마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쇼호스트들 사이에서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던 타일러가 자신의 상상 속에서 Choker를 부르면서 시작된 공연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난장판으로 변해갑니다.
공연 중간중간 전파를 끊으며 다시 나타나는 쇼호스트들은 나타날 때마다 점점 괴물의 모습으로 변하는데요,
앨범 CD를 들며 "이 앨범은 날 생기있게, 활기차게 만들어줘요."라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TV를 통해 자신들의 사상을 전파하려는 프로파간다의 앞잡이 같은 모습입니다.
결국 마지막 곡인 Never Take It 에서 누군가가 디마를 탈출하려 한다는 경보인 사이렌이 울리며
개판이 되버린 스테이지에서 다시 TV쇼로 돌아온 타일러는 처음 부르던 Choker를 마저 부르며 공연을 끝냅니다.
이를 통해 공연 전체가 사실 타일러의 상상 속에서 일어난 것이었다는 해석도 해볼 수 있죠.
앨범 자체에서도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 곡인 Good Day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힌트들이 존재하는데요,
이전 앨범들에서의 강렬한 오프너 트랙들과 달리 발랄한 피아노로 진행되는 이 노래는
아내와 가족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애써 자신에게 좋은 날이라고 말하는 타일러를 그리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지 못하게 하고 행복을 강요함으로써
사람들이 우울의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디마의 선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른 곡들 역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앨범을 보아 하니
디마를 생기있고 밝고 행복한 도시로 광고함으로써 사람들을 끌어드리려는 모습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한 듯 합니다.
결론적으론 이렇습니다.
이번 앨범 Scaled And Icy는 디마에서 탈출하지 못한 타일러와 조쉬가 그들의 압박을 받아,
사람들을 끌어들일 만한 밝고 색깔이 넘치는 선전용 앨범입니다.
그러다 보니 앨범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고 과한 느낌이 날 수 밖에 없으며
팬들은 이 다음 앨범이 Trench와 같이 더 파격적인 음악적 시도가 드러나는,
Trench의 진정한 후속작이 될 거라고 믿고 있죠.
라이브 공연 마지막 부분에서처럼 탈출 시도자가 나타나기도 하는 암울한 도시인 디마에서
타일러와 조쉬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다음 앨범에서 알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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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 개인적 의견을 달자면 스토리는 좋으나 이걸 진행시키기 위해서 굳이 이런 앨범까지 만들어 가며 몰입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없진 않으나...ㅎㅎ
팬들도 좋아하는 거 같고 트웬티 원 파일럿츠 얘네도 무슨 생각이 있으니까 일부로 좀 구린 앨범까지 만들면서까지 노력하겠지 싶어 일단은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ㅋㅋ
트렌치에서 굉장한 음악적 역량을 보여주었기에 충분히 다시 그런 앨범을 낼 만한 능력이 있다고 믿고
저는 다음 앨범을 기다려 보려 합니다.
참고로 영어 영상을 해석해 가며 제 머릿속으로 정리된 내용을 기반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정설이 아닌 내용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 점 유의하시면 될 거 같고 다시 한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그린데이 생각이 나는 지독한 컨셉이네요
ㅋㅋㅋㅋ 컨셉 하면 그린데이죠
이번 앨범은 ㄹㅇ 처음부터 끝까지 답답하고 이해가 안되는 느낌의 앨범이었어요...
사실 스토리 다 제외하고 앨범만 보면 정말 답이 없긴 하죠... 신선함이 싹 다 빠져버린 느낌
저도 절대 자주 찾아 듣진 못할것 같습니다
오.. 흥미롭군요... 전 자전거 타면서 들어서 그런지 경쾌한 분위기도 나쁘진 않았는데 여기저기 혹평이 많네요ㅋㅋㅋ 아무튼 이렇게 되면 다음 앨범이 너무 기대됩니다..
듣는 장소랑 시간, 기분에 상당히 영향을 받을 앨범인 듯합니다...
저도 담엔 자전거 타면서 들어볼께요 ㅋㅋㅋ
음악 듣기 첨 시작할때 들었던 아티스투!
저도 중학생 때 오지게 들었죠! ㅋㅋㅋㅋ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구리더니...컨셉 확실하게 잡아가는 과정이었군요ㅋㅋㅋㅋ
제발 이랬으면...
흥미로운 접근이네요
아무리 주제가 좋아도 그 주제를 잘 못 살리면 의미가 없죠..ㅠㅠ
인디게임이 생각나는 창의적인 마케팅이네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으면!
지난번에 trench는 진짜 좋게 들었는데 신보는 좀 그래서 뭐지? 했는데 오호 이런 속뜻이 있을수도 있겠군요 감사합니다... 다음앨범이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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