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eeknd - After Hours
발매일자: 2020.03.20
나만의 평점: 8.8
짧은 평: The Weeknd 는 항상 쓸쓸하고, 사랑에 굶주려 있었다. 신나는 요소가 많은 앨범인 Starboy 에서도 사실 그는 마냥 신나있지만은 않았다. The Weeknd 의 특별함은 천사의 목소리로 섹슈얼한 가사를 굉장히 직설적으로 내뱉는다는 점에 있다. 가사만 봤을 때는 색광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의 음악에는 항상 외로움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 등에서 보이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에 상처받은 듯한 느낌까지 든다.
야한 말을 뱉으면서도 Often 비디오에서 Weeknd 는 어떤 여자도 터치하지 않는다. 심지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사실 Weeknd 의 비디오에서는 그가 직접적으로 여자에게 손을 대거나 눈길을 주면서 (성적으로) 즐겁게 즐기는 듯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주변에 항상 여자가 있지만 그 속에서 홀로 만족하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모습이다.
처음 믹스테입 3장 각각을 제외하고, 그 3장을 묶어서 3-CD 로 발매한 Trillogy 부터는 모든 앨범 커버에 본인의 얼굴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앨범 커버속 Weeknd 의 표정을 살펴보는 것은 그 앨범의 컨셉을 이해하는 재미있는 한가지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번 앨범의 커버는 왜 저런 모습인걸까? Blinding Lights 뮤직비디오에서 나왔듯이, 누군가에게 맞고 나서 피를 흘린 채로 자조적인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다. 반쯤 미친 듯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섬뜩한 표현이다.
이 앨범은 Bella Hadid 와의 교제가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도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해서 다 정리하려면 한 지면을 다 사용해야 할 정도인데, 사실 그것까진 속속들이 알 필요는 없다. 최고의 모델과 뜨겁게 사랑하고, 깨지고 다시 만나고 깨지는 와중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여러가지 감정을 느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My Dear Melancholy, 가 Selena Gomez 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이해하는 작품이라면, After Hours 는 Bella 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이해하는 작품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Weeknd 는 여자를 밝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한 여자에게 집착하는 듯하다. 때로는 과도하게 찌질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엄청난 음악이 나올 수 없다. Trillogy 부터 시작한 그의 감성은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그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적 방식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선공개곡인 Heartless 가 나오기 전에 원래 계획했던 앨범 제목인 Chapter VI(챕터6)는 매 앨범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많은 팬들은 여전히 'Trillogy vibe' 를 원하지만 최고의 아티스트들은 과거로 회귀하려고 하지 않는 법이다. Tyler, The Creator 가 말했듯이 과거의 음악이 듣고 싶으면 그걸 들으면 된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머리핀을 꼽은 모습은 Gesaffelstein 의 Lost in the Fire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닮아있다. 아시아 투어를 끝내고 돌아간 Weeknd 의 다음 앨범 헤어스타일 컨셉은 아마 헤어핀을 꼽는 것이었나보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Heartless 라는 엄청난 신보와 함께, 한국 팬들에게 흥국이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60년대 멕시코 마약왕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Metroboomin 과 함께 한 이 트랙에서 Weeknd 는 잔뜩 취한 채 술담배와 마약을 하며 get fucked up 되어 버린다. 겉으로는 굉장히 신나는 음악 같지만 뭔가 복잡미묘한 감정이 뒤섞인 듯한 곡이다. 특히 가장 인상깊었던 라인은 바로 첫 마디, 'Never need a bitch, I'm what a bitch need' 인데, 이는 엄청난 자신감의 표현임과 동시에 앞서 언급한 Often 뮤직비디오 등에서 보여준 그의 스탠스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10년 가까이 되는 여정 속에서 많은 것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 중 별로 의미부여 하지 않는 여자들 또는 과도하게 의미부여하는 여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엄청난 사이즈의 부와 명예도 있었을 것이다. Weeknd 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쉽게 상처받는다. 선공개곡의 포문을 여는 이 짧은 라인은 After Hours 앨범 전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이다.
뒤이어 공개한 Blinding Lights 는 다소 신나는 음악이었다. 80년대로 돌아간 듯한 쿵칫쿵칫 드럼비트와 함께 발랄한 멜로디는 모두를 흥분시켰다. In the Night 에서 함께 했던 프로듀서 Max Martin 의 존재감이 빛을 발했다. 멜로디도 Catchy 하고 듣기 좋았지만 가사는 즐겁지만은 않았다. "The city's cold and empty, No one's around to judge me, I can't see clearly when you're gone" 무언가 허전한 마음을 전하는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자 Weeknd 의 마음은 더욱 더 선명해졌다. Heartless 뮤직비디오에서 잔뜩 취한 뒤의 시점을 그리고 있었는데, 취한 채로 담배를 피며 차를 타고 텅 빈 도시를 누비지만, 그는 혼자였다. 어떤 남자들에게 두들겨 맞고 나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도망친 뒤 도로 한복판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빌런인 조커의 모습이 스쳐지나가면서, 반쯤 미친듯한 외로운 남자의 감정이 증폭되어 다가왔다. 특히 마지막에 자조적으로 실없는 웃음을 짓는 장면이 압권이었는데 이걸 보고 나서는 도대체 얼마나 미친 앨범이 나올까 하는 기대감밖에는 남지 않았다.
마지막 선공개곡이자 앨범 타이틀과 동일한 제목인 After Hours 가 나오고 나서 XO 팬들은 열광했다. 깨질 듯한 미성과 함께 비트가 드랍되는 부분에서 Kiss Land 시절의 감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동요했다. 도대체 이번 앨범의 컨셉을 종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Metroboomin 식의 트랩비트와 Max Martin 식의 올드팝 비트, 그리고 Kiss Land 의 2020년 버전인 듯한 비트 이 세 가지가 어떠한 조합으로 앨범 내에서 연결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After Hours 앨범은 그야말로 Weeknd 의 커리어를 집대성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이 앨범은 겉으로는 반쯤 미친 사람의 신나는 독백 무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없이 외로운 사람의 쓸쓸한 외침이다. 첫 트랙 제목에서부터 Weeknd 는 자신이 다시 혼자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음악이 무작정 슬프지만은 않다. 오히려 희망차고 조금은 발랄하기까지 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리스너들은 조금은 혼란스러워진다. 이 사람이 지금 신난건지, 슬픈건지 헷갈린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Blinding Lights 의 느낌과 같이 80년대 음악을 현대식으로 리메이크한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묻어있다는 것이다. Hardest To Love, Scared To Live, In Your Eyes, Save Your Tears 모두 비슷한 감상을 불러 일으킨다. 재미있는 점은 모두 Max Martin 이 참여한 곡이라는 것이다. 조금은 직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정직하게 듣기 좋은 멜로디 라인과 옛날 식 드럼 비트는 자칫 잘못하면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Weeknd 의 보컬을 만나면서 이 곡들은 아무데서나 듣기 편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명곡들이 되었다. 앨범이 나오기 전 Scared To Live 를 라이브 무대에서 먼저 공개했을 때, 나는 Weeknd 가 80년대 명곡을 리메이크해서 부르는 건줄 알았다. 그래서 원곡을 찾아보려 했지만 아직 음원 플랫폼에 공개하지도 않은 신곡이었다. 정말 묘한 곡이다.
https://youtu.be/6Nm9RZqBaBM?t=40
Weeknd 는 이번 앨범 수록곡들의 라이브 무대에서 모두 빨간 정장을 입었고, 대부분의 무대에서는 얼굴에 상처를 입고 밴드를 붙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뮤직비디오에서 등장하는 모습을 그대로 연출한 것인데, 그만큼 상처 입고 반쯤 미친 사람이 된 컨셉이라는 걸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가사에서 Weeknd 는 쓸쓸함과 전 여자친구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상처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목소리에는 조금 힘이 빠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세하게 떨리면서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목소리는 외로운 감정을 증폭시킨다. 이에 대비되는 빡센 비트들, 혹은 희망찬 멜로디들은 피를 흘리며 웃는 모습처럼 상반된 개념이 공존할 때 느껴지는 희한한 느낌을 준다.
여러 유명인사들에 대한 펀치라인과 기초적인 라임 배열로 이루어진 Snowchild 에서 Weeknd 는 마약과 돈, 여자, 자산을 언급하며 얼마나 즐겁게 살았고, 얼마나 성공했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verse1과 vesre2 모두 "And for that money I been fiending, Cali was the mission and now a nigga leaving" 이라는 라인으로 끝난다. 돈을 위해 악마처럼 살았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화려한 삶을 살며 무엇이 되었든 남용하며 살았던 그의 인생에 현자타임이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Cali was the mission 이라는 문장은 그의 첫 믹스테입이자 명반인 House of Balloons 의 The Morning 이라는 곡을 평소에 자주 들었던 사람이라면 익숙했을 것이다. The Morning 에서 "Order plane tickets, Cali is the mission, Visit every month like I'm split life living" 라는 라인이 나오는데, 실제로 Weeknd 는 2011년 Echoes of Silence 를 녹음하기 전까지 캐나다를 떠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California 에서 음악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청년은 이제 Cali 를 떠나려고 한다.
Cali 를 떠나려고 하는 마음은 다음 곡인 Escape from LA 에서도 여실히 들어난다. "LA girls all look the same" 라고 까지 말하며 LA 에서의 삶에 확실히 지쳤음을 강하게 어필한다. 이 곡은 첫 소절에서 비트를 잠깐 멈추고 verse를 뱉은 뒤 다시 비트가 드랍되는 순간에서의 쾌감부터 아웃트로까지 완벽한 곡이었다고 생각한다.
신기한 것은, Escape from LA 이후에 선공개곡이었던 Heartless 와 Blinding Lights 가 중간에 Faith 라는 곡을 끼고 나란히 이어지는데 생각보다 흐름이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 앨범의 분위기 때문인지 Heartless 와 Blinding Lights 가 더 슬프게 들리기까지 한다. 싱글로 들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애절함도 들리기 시작한다. 물론 앨범의 흐름에 흠뻑 취했을 때의 이야기다.
Interlude 가 이렇게 좋은 앨범은 흔치 않다. J.Cole 의 KOD 앨범에서의 Once an Addict - Interlude 이후로 Interlude 가 웬만한 수록곡보다 좋은 앨범은 처음이다. Repeat After Me (Interlude) 는 정말 찌질하면서도 솔직한 가사로 공감을 일으킨다. 그리고 짧지만 섬세한 사운드가 일품이다. 이렇게 섬세한 터치는 After Hours 를 지나 마지막 곡인 Until I Bleed Out 에서도 이어진다. "I wanna cut you outta my dreams, 'Til I'm bleeding out,'Til I'm bleeding" 코러스에서 함께 얹어지는 효과음은 절박한 감정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앨범의 사운드가 House of Balloons 나 My Dear Melancholy, 와 같은 작품에 비해 한 방향으로 모아지는 느낌은 덜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때만큼 다크한 그만의 감성이 대놓고 드러나지도 않는다. 이 앨범은 Weeknd 라는 사람의 미묘한 감정과 복잡한 성격에 평소에 여러 음악을 통해 공감해 오던 사람일수록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어려운 앨범이다. 그러나 반대로 멜로디가 심플하면서도 강렬하기 때문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쉬운 앨범이기도 하다.
The Weeknd 는 처음 House of Balloons 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특별한 존재였다. 우리는 Weeknd 를 통해 신나게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하고, 위로받는다. 우리는 The Weeknd 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정성스러운 리뷰 잘 읽었습니다 술술 읽히네요 공감도 많이 되고
최고의 아티스트들은 과거로 회귀하려고 하지 않는 법이란 말이 와닿네요ㅎㅎ 잘 읽었습니다!
멋진 리뷰 쵝ㄱ오
추천누르고 갑니다 리뷰 정말 잘쓰시네요
푹 빠져서 읽었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해요
잘읽엇어욤~!!
정말 공감합니다. 곡 뒤에 담겨있는 외로움과 공허함.
플레이보이처럼 행동하지만, 누구보다도 한 여자를 사랑하고 사랑받고싶어하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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