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Victory Lap]앨범 발매하기 1달 전인 2018년 1월 16일에 NPR Music의 RODNEY CARMICHAEL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제가 지니어스에서 닙시관련 몇개의 글을 읽다가 NPR에서 앨범에 대한 전곡 트랙 바이 트랙이 있다는걸 얼마전에 알게 되어서 번역해봤습니다. 당연히 이전에 쓴 [Victory Lap]의 리뷰랑 상당 부분이 겹치긴 하지만 리뷰와는 별개로 닙시가 생각하는 앨범에 대한 코멘트를 확인할 수 있고 생각보다 읽을거리가 많아서 진행 해봤습니다. 그냥 짬짬히 번역한거니 편하게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의역이 있으며 보너스 트랙인 Right Hand 2 God을 제외한 15곡만 올라와 있습니다. 가사해석은 LE 앨범 해석에서 따왔습니다.)
10년 동안 기다려온 닙시 허슬의 [Victory Lap] 앨범은 - 기대 이상의 메이저 레이블 데뷔 앨범이다. 이것은 그가 헌신적인 팬베이스를 양성하기 위해 고용한 인디펜던트 생산의 증거다. 이것은 같은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2013년 믹스테입 [Crenshaw]를 피지컬 음반 가격을 장당 100달러를 매길 정도로 뻔뻔(대담)했으며, 당시 비참하게 평가절하당한 음반업계에서 랩퍼들이 일제히 자신들의 음악을 공짜로 내놓던 시기에 말이다.
닙시는 그것을 사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배당금으로 지불했다. : 정확히 말하면 24시간동안 $100,000. - 심지어 Jay-Z가 그의 허슬함을 리스펙트하여 100장이나 주문할 정도였다. 그러나 훌륭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타고난 비지니스 윤리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Victory Lap]은 Atlantic Records와 계약한 그의 멀티 앨범으로 발매하는 첫 앨범이며, 그는 Thug motivation(갱스타식 동기부여)에 대한 신선한 비축량을 금고에서 꺼내 공개한다. LA의 악명높은 Rollin' 60s Crips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닙시의 갱동네 으르렁거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본능적으로 남아 있지만, 지금은 전) 거리의 엔터테이너로 합법적으로 허슬하고 있으며, 개혁된 현실주의자로 돌아와 후드에 영감을 주고 있다.
내가 NPR 뮤직과 그의 앨범에 대한 독점적인 분석을 위해 그와 이야기를 했을 때, 닙시는 어린 흑인 소년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칭찬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동성애 혐오 감정을 동시에 표현했다는 이유로 널리 비난 받은 후에도 여전히 social media의 열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하는걸 거절했으며, 음악이 스스로 말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얘기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 닙시가 허슬로 말하고자 하는 주된 목표는 (주변)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종종 Hypermasculinity(남성의 고정 관념적 행동의 과장에 대한 심리적 용어)의 피해망상적 감각이 발달한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그건 확실히 무방비 하지만, 어쩌면 뭔가 놓친 문맥일 수 있다.
"그들이 이 인터뷰를 읽으면, 그들은 앨범을 듣고 살펴본다면 정말로 나의 관점을 무너뜨리는게 가능할 것이다." [Victory Lap]을 정주행(deep-diving)하며 그의 가사에 대한 트랙 바이 트랙 한 뒤 그가 나에게 얘기했다. "그렇게 되면 어떤 트윗이나 성명, 인스타그램 게시물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믿는지에 대한 모든 통찰력을 얻을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음악을 들으며 내가 믿는 것과 내가 홍보하기로 선택한 것을 듣게 될 거야. 그리고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 "Victory Lap"
I'm an urban legend, South Central in a certain section
나는 도시 전설, South Central 특정 구역에 거주하지
Can't express how I curbed detectives
경찰들을 피한 방법은 설명이 잘 안 돼
Guess it's... evidence of a divine presence
아무래도, 분명하지 신성한 존재임은
만약 너가 LA내에 십대들이 한해 살인율과 감금율에 대한 통계를 확인 한다면 Crenshaw의 내구역 Rollin 60s의 동료들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음을 (알것이다). 내 동료들 중 누구도 감옥을 피하지 못했다. 아무도 없었어. 모두가 총상을 입고 중범죄에 스트라이크(두들겨 맞다.)를 당했어. 그래서 정신적으로 안정되며 감옥에 가지않고, 마약도 하지 않도록 도망갔지. 그게 이긴거야. 그것은 그 자체로 승리다. 그러면 그 위치에 있기 위해서 나는 전 세계에 존경을 받는 아티스트이자 사업가로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그것이 전설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매우 겸손하게 말한다.
그 라인(구절)이 내가 얘기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걸 되돌아 보니, 이건 믿을수 없는 일이다. 그건 신성한 존재의 증거다. 왜냐하면 내가 단지 가장 똑똑한 사람이거나 또는 그냥 나의 길을 비틀어서 (wiggled) 가는게 아니기 때문이지. 이건 내 인생과 그것을 보기 시작한 것들에 대한 소명이어야 했다.
2. "Rap Nigga"
나와 Diddy는 이미 음악산업과 그 모든 것에 종사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지만, 내 아들의 엄마[배우 Lauren London]가 일찍이 Sean John(Diddy의 회사)의 광고를 찍었고 그녀는 그때부터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와 Cassie는 정말 가까웠다; Cassie가 생일파티를 하거나 그들이 어울릴 때면 Lauren이 나를 초대하곤 했다. 난 마치, 아무 관계없이 비틀거리며 살려고 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과의 유대관계가 완만하길 바란다.) 하지만 한 번은 Puff가 "Nip 나에게 (자신의 소속사로)들어올건지 말해봐; Nip이 나와 *나 함께 할껀지 아님 말껀지?"라고 얘기했다. 난 내 갈길을 (스스로)만들기로 했다. 나와 Puff는 정말 좋은 Convo(Conversation: 대화상대)이다. 난 그저 "너도 알잖아 브로, 난 Diddy의 손바닥 위에 가까이서 놀면서 그 모든걸 하려는 Nigga들 중 하나가 아니야. 난 너의 에너지(돈와 능력)를 얻으려고 애쓰는 백만의 사람들이 있고 너의 자원이 너에게서 빠져나오려 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는 이렇게 말헸다. "Nah 브로, 난 LA에 살고 난 너의 움직임(닙시의 커리어)을 리스펙트해. 함께 짓자.(build라 얘기하는데 이는 함께 커리어를 쌓자는 뜻이 됩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에 대해 Convo 했다. Puff는 Biggie만큼 훌륭한 아티스트가 있다는 것이 축복이었고 Biggie는 Puff만큼 훌륭한 프로듀서를 갖는 것이 축복받은 것이라 했다. 나에게 Bad Boy는 랩의 모타운이었다. - 이 모타운은 송라이터, 프로듀서, 스타들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 그래서 나는 프로듀서로서 Puff를 절대적으로 존경한다. 난 그에게 "난 너와 함께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그 레벨에 맞게 (음악을)건설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Nah, Nip. 난 West Coast 앨범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 그건 완전 크레이지한(죽여주는 일) 짓이야. 내가 너의 앨범 전체 프로듀싱을 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난 "좋아 내가 널 붙잡은거야!" 그러다 앨범 (작업완료) 시간이 되자 난 그에게 말했다. "이봐, 내 앨범이 완성되었어, 난 너를 위해 이 곡들를 연주할거야." (앨범 크레딧을 보면 Creative Marketing에 Puff Diddy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난 원래 "Rap Nigga"란 곡을 그에게 자문을 구할려고 했었다. 그는 내 곡을 듣곤 "Yeah, "Rap Nigga"는 강력한 허슬 곡이지만 이걸 한번 들어봐." 라고 했다. 그리고 들려준 곡은 Ice Cube와 Dre의 (1994년작) "Natural Born Killaz"였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이게 그거보다 사운드가 더 좋지않냐, 브로"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내놓기 전의 "Rap Nigga" 버젼이였다. 이건 프로듀싱이 부족했다. 그래서 난 내 프로듀서를 데리고 그가 L.A에서 막 구입한 Puff의 저택으로 갔다. - 그는 그(저택) 뒤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이때 시기가 2014년쯤 인걸로 알려져 있는데 [Victory Lap]앨범과 "Rap Nigga" (오리지널 버젼)에 대한 얘기가 나왔지만 결국 이때 발매하지 못합니다.)
그는 "Natural Born Killaz"를 다시 들려주면서 "난 니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들었어. (하지만) 이건 음파(sonically)같은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어; 이건 준비가 안됐어, 브로."라고 했다. 난 "젠장, 니가 맞았어!" 우린 믹싱과 마스터링을 했는데 드레와 아이스 큐브의 곡은 현저히 소리가 컸다. 우린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가 [사운드 엔지니어] Mixed by Ali에게 요청했다. "브로, 우린 이걸 다시 믹싱해야 해, 이건 소리가 충분히 크지 않아." 그는 "아니, 마스터링에서 더 크게 할거야."라고 했다. "아냐, 브로" 난 "Natural Born Killaz"를 모두(프로듀서와 키보디스트)에게 들려줬다. 난 "이 곡의 에너지를 들어봐. 우린 이거보다 더 크게 만들어야 해."라고 말했다. (louder란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단순히 소리가 크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운드가 빵빵하다는 의미 아닌가 싶네요.)
우리는 다시 돌아가서 리프로듀싱했고, 특정 부분에 있는 악기를 빼내는 대신에 곡 전체에 신스가 들어가도록 추가했다. 이건 West Coast street anthem이야. 곡 전체에 흐르는 신스(소리)를 들어봐. 그래서 우린 리믹스한 것을 가져왔고 Puff는 "이제 준비됐어, 브로"라고 했다.
3. "Last Time That I Checc'd" (feat. YG)
나는 West Coast에 사는 그들이 명확하게 느낄수 있는 창의적인 무언가를 원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거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난 이것이 Coast에 속할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난 그냥 하고 싶었다. 난 Jeezy의 가사에 레퍼런스 한 - "Last time I checked I was the man on these streets" (지난번에 내가 이 거리에 있는 남자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 난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기) 시작했고, 그 순간이 Jeezy에게 얼마나 중요한 순간이었는지 기억헤 냈다. 나는 이 거리와 나의 세대를 위한 국가(anthem)을 만들어내길 원했다.
우리들 중 많은 수가 Jay-Z 카탈로그나 Tupac 카탈로그, 그리고 나중에는 Jeezy 카탈로그나 E-40 카탈로그에서 얻은 이러한 원칙에서 자라났다. 거기엔 보석이 들어있으며, 만약 너가 정말로 그들처럼 산다면, 너의 삶은 풍족할 것이고, 너의 재정상태는 이득일 것이다. 나의 관점은 이 음악안에 뿌리깊이 배어있다. 그리고 이건 다른 아티스트들을 겨냥하는건 아니지만, 만약 우리가 나의 시대에 노출되어 있는 음악의 원칙에 따라 살아간다면 , 우리는 결국 쇠약해서 끝나고 말것이다. "나는 롤모델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아티스트들이 있는데 난 그들을 리스펙트해. 난 자신의 삶을 반영하는 예술을 이해하지만, 우리는 삶을 가르치는 예술을 사랑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난 :젊은 형제들과 그곳에 있었고 그것이 너에게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여기에 빵 부스러기와 같은 위치에 있다. 잠시후, 나는 [이 곡으로] 그 게임(힙합씬)을 포기 해버리는 것이 거진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난 이것(곡)이 청사진을 보는것 같았다.
(번역 하면서도 좀 어려웠는데 자신보다 OG들이 만들어낸 카탈로그(음악적인 스타일나 내용)을 그대로 따라한다면 안정적으로 돈을 벌것이다. 그런데 범죄에 노출되어 사는 우리 시대의 내용을 음악적 원칙으로 삼는다면 결국 좋지 않게 끝날것이라고 생각하는거 같네요. 그래서 난 롤모델이 아니라고 하는 아티스트을 존중하며 닙시는 자신의 삶을 얘기하는 랩이지만 우린 삶을 가르치는 예술을 더 사랑하면서 자랐고 난 비록 나의 형제들과 갱단의 삻을 살았으며 그게 힘들었는 시절이 있었고, 전체가 아닌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이 힙한씬을 포기한다면 그건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 곡을 자신이 생각하는 청사진과 같다고 언급하는거 같네요.)
4. "Young Nigga" (feat. Puff Daddy)
(Puff와 함께한) 그 세션은 매우 전설적이었다. 난 "Puff, 넌 내 앨범에서 그어떤 으뜸패(trump)라도 나의 에너지를 압도하지 못해. Nip과의 첫 번째 세션에서 단지 나보다 너가 더 흥분한거 같다는 것만 알아둬."라고 말했다. 우린 녹초가 될 정도로 매일 작업했다. 나는 Marathon O.G.(마리화나) 1파운드를 사가지고 왔다. 그는 리듬을 타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의 허슬을 하는데 그 떨은 더이상 피울 필요가 없을거 같아, (오히려) 내가 이 조인트에서 나의 떨을 피워야 할거 같다." 우린 정말 전설적인 세션을 가졌다; 그는 나의 에너지를 느끼고, 나는 프로듀서로서 그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부스에서 소릴 지르고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로 가득찬 방이었고 나는 항상 "이봐, 그가 부스를 나올 때, 모든 사람들이 그 에너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박수를 쳐줘. 자존심에 상처주는게 아니고, 그냥 에너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말이야. 너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러니깐 난 너가 이 곡작업에 모든걸 바쳐줘서 고마워 한다는 거야." 이건 그냥 화재 진압 같았다.
(닙시와 Puff와 절친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둘다 열정적으로 작업했고, 닙시는 Puff가 자신의 곡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참여해주는 것을 감사를 표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다. 그리고는 그냥 앉아서, 나중에 편집하면서 내가 말하는 것에 대해 그가 진정 반응하는 부분은 그대로 유지했다. (Puff에게 자신의 벌스를 들려주고 그가 공감하는 부분만 살렸다.) 하지만 그래, 난 Puff가 이 곡에 더 많은 다이나믹함을 추가 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진짜 삶 이야기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울 형은 길거리 생활을 접으면서 60번가에 있는 우리 엄마네 뒷마당에 25만 달러를 묻었었다. 그는 그걸 1년 동안 그곳에 놓아두었고, 그가 가서 파냈을 때 그것의 절반 이상이 곰팡이가 쓸었다. 그는 내화성에 지반 방지용 비닐에 싼 금고를 떨어뜨린 다음 묻었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파냈을 때, 그 돈의 절반은 곰팡이가 쓸어버린 것이다. 내 기억엔 그는 그냥 쌍욕하며 분실된 것에 (충격 받은거 같았고), 난 "Oh man, 이건 엄청 충격적이야."라고 말했다. 내 기억엔 우리 모두가 엄마 집에 있는 거실에 있었던 것 같다. - 우리 엄마를 포함해서, 내 여동생도, 아마 그 당시 10살이나 11살 정도였을 것이다. - 우리는 이 모든 돈을 다 모아놓고 있었다. 이건 컨베이어 벨트 같았다. 누군가가 부엌에서 헹구고 있는 중이었고 곰팡이를 모두 긁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돈은 반으로 쪼개지고 있었다. 수백, 수천 개가 뭉쳐진 것 같았다. 이제 돈을 펼쳐보지도 못할 정도로 곰팡이가 피었다. 그리고 난 그저 우리집안에 방풍 건조기가 거실에 있는 것을 기억하고, 모든 돈을 드라이어로 말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인양을 시도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이 곡에 남기고 싶었다. 전체 벌스와 섞였지만, 박자를 타다보면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하는 순간을 듣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내 직감이고 내 정신이었다.
5. "Dedication (feat. Kendrick Lamar)"
This ain't entertainment, it's for niggas on the slave ship
이건 엔터테인먼트가 아냐, 노예선에 탄 이들을 위한 거지
These songs just the spirituals I swam against them waves with
이 노래들은 내가 파도를 거슬러 헤엄칠 때 함께 했던 영혼이야
난 나의 정신을 그것으로 의미했고, 나는 결코 그것을 명확하게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앨범을 메이저 지원을 받으며 냈다. - 우리는 마케팅에 수백만 달러를 썼고 - 그 내용을 가사에 썼다. 누군가가 미국에서 우리의 입장을 보고 그것에 대해 의견을 가진다면, 나는 나의 직업이 그 선을 끊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로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난 정말 이게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어 왜냐하면 난 이 가사를 하나도 쓰지 않고; 그냥 부스로 들어갔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건 내 직감과 내 정신에 대해 그런 얘기를 한거야. 그것이 내게 정말 중요한 가사야.
Marathon은 내가 모든 노래에 대해 쓴(lyrics down) 마지막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것을 쓰지도 않았다. 난 그냥 부스에 들어가서 음악을 들려주면 더욱 열정적으로 전달했다. 이게 융통성 없고 구조적으로 부족해서 때로는 너의 콘텐츠로서 가치를 잃기도 한다. 하지만 난 최근엔 이 밸런스가 잘 잡힌다. 난 결코 그들처럼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제이 지의 이야기(narrative)이나 비기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결코 그것들을 배껴놓고 있어 보이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아마 13살, 14살 때부터 랩을 썼던거 같다. 그래서 진화해 왔다. 난 부스에서 들어가 비트를 듣고 그것을 쓰는 대신에 마이크를 잡고 얘기한다.
(새로운 사실이네요. 닙시가 제이지나 비기처럼 가사를 적지않고 머리에서 정리해서 뱉는다는 걸 처음 알았네요.)
6. "Blue Laces 2"
Lebron James가 첫 챔피언쉽에서 우승을 했을때,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라커룸에 있는 그의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입수했고 그는 헤드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가 헤드폰을 벗었을 때, 그의 헤드폰을 통해 나의 노래가 울려퍼졌고 그게 오리지널 [Marathon]의 "Blue Laces" 였어. 난 진짜 우쭐했었지. 그래서 나는 [Victory Lap]에서 "Blue Laces 2"를 만들고 싶었어. 그래서 나는 텍사스에서 온 Mr. Lee에게 전화했지. 그는 휴스턴 남부 출신의 전설적인 프로듀서이다. 난 나와 처음 계약했던 Cinematic Records의 오너인 Jonny Shipes의 소개로 그를 만났어. Lee의 귀는 마치 Rick Rubin 같았어; 그는 믿을 수 없는 정도로 힙합 귀를 가지고 있다. 우린 오리지널 "Blue Laces"을 만들었다. 내가 [Victory Lap]을 포장(조율)하고 있을때, 난 그를 불렀고, "Bro, 내게 'Blue Laces 2'를 만들어 줘." 그는 이틀만에 그걸 만들어 내게 보냈다. 나는 날아가 버렸다.(너무 좋아서 날아갈거 같은 기분.) 그리고 다시 부스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혼동할까봐 적습니다. 앞문단의 이야기는 오리지널 "Blue Laces"를 만든 이야기 입니다.)
나와 샌디에이고에 있는 링컨 파크에서 온 Big Reese는 정말 친해졌다. 그는 마치 O.G.와 같다. 그는 이제 영원히 내주변에 있지만 (팀원으로서 함께 있다), 그의 투쟁에서 나온 진짜 긍정적인 녀석이 (그를) 변하게 했다. 그는 Xzibit's 움직임의 일부였다. 그래서 난 "Blue Laces 2"를 작업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있었고, 그는 Mike & Keys의 프로듀서 그룹의 일원이 되어 우리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됐다. 그는 내 첫 벌스를 듣더니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거 타이트 하네 허슬, 어딜 갈려는 거냐?" 난 "(먼저)나갈려고. 내일 다시 올거야."라고 말했다. 그는 "가지마. 지금 당장 두번째 벌스를 해봐."라고 했다. 난 두번째 벌스까지 불렀고 그는 "젠장, 타이트하네. 브로. 두번째 벌스가 첫번째 벌스보다 더 빡센거 같다."고 말하며 "지금 당장 곡을 마저 끝내라 Nip. 넌 지금 확실한 정신을 갖고 있어. 가지마."
내가 가서 세번째 벌스를 했는데 세번째 벌스가 나를 날려 버렸어(변화시켜 버렸다); 이건 내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는 것이라 힘들었어. 난 압도당해 버렸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얼마나 진실하고 그에게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야. 난 잠시 부스에 머물었다가 부스 밖으로 나와서는 "젠장, 브로. 오늘 너의 어떤 더 높은 힘에 의해 이용당한거 같아." 왜냐하면 내가 만약 그냥 떠났다면 그 벌스는 이렇게 나오지 않을거 같았기 때문이야. 난 알고 있었다. 그래서 Reese에게 그것에 대한 신용을 돌려줘야 했어. 그게 내가 좋아하는 곡들중에 하나야. 나는 그것을 폭식하듯 계속해서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진짜 자연스럽고 진심 정직하다. 특히 세번째 벌스는 내 인생의 한순간 같은 것이다.
7. "Hussle & Motivate"
내 고향 여자아이들 중 한 명이 내 믹스테입 목록들에 많은 훅을 작업했다. 그녀는 그저 올바른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숙련된 Songwriter처럼 글을 쓰지만, Hip-hop Swag 또한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이 곡을 위한 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분좋게 데리러 갔더니 그녀는 내가 그전까지 만난 적이 없는 남자를 데려왔다. 난 "내가 네게 말할때 아무나 데려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데리러 간다 했잖아!" 라고 얘기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조금은 화가 나긴 했지만 스튜디오에 누가 오는지 대해서 정말 재미있어 한다. 그래서 난 "네가 내 스튜디오에 [저 사람]을 데려왔니?"라고 얘기했다.
비트가 플레이되기 시작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벌스가 끝나자 그는 허밍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허밍을 시작 했을때 난 "오, 이 Nigga 진짜배기인걸. 아주 좋은데." 그래서 난 그에게 말했다. "허밍 그만하고 부스로 바로 들어가. 브로!" 그래서 곧장 부스로 그를 들여보냈다. 만약 당신이 훅의 절반이 단어가 아니란걸 알아 차린다면, 그건 허밍이다. 이건 마치 감성적이며 흑인의 영적과 같은 것이다.
그가 "내가 이걸 고쳐야 할거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아니, 넌 아니야! *나 좋으니깐 그대로 놔둬." 이것에 대한 의사소통은 본능적이였다. 당신은 필연적으로 그것의 지적인 부분을 이해해야 하는건 아니지만, 그것을 느낄순 있을거다. 이건 바이브이다; 이건 너를 사로잡는 주파수이다. 우리는 다른 아티스트들과 이 곡에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고, 난 이렇게 말했다. "우린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거야. 그냥 그대로 놔둘거야. 그가 앨범에 (작업한) 있는 그대로 내놓을거야." 그러고 들어가서 난 두번째 벌스를 작업했다.
분명히 이건 Jay-Z의 "Hard Knock Life"를 샘플링 했다. Jay에게 샤라웃 해. 왜냐하면 그가 이 곡을 쓰도록 승인해줬기 때문이지. 이 훅은 기본적으로 내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narrative)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을 겪으면서 위험을 감수하며 거리에 있고 싶어한다는 가정을 한 것이다. 그것은 단지 진실과는 꽤나 거리가 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이 곡의 추가 보컬로는 Lauren London과 Maurice David Wade이 참여했다.)
8. "Status Symbol 3 (feat. Buddy)"
난 나의 프로듀서인 Mike & Keys를 통해 Buddy를 만났다. 우리는 스튜디오를 차리고, 그 전체적인 목표는 마치 모타운과 데스 로우 같이 프로듀서, 작가, 아티스트, 경영진 팀이 모두 한 지붕 아래에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스튜디오는 네 개의 방, 두 개의 사무실과 운동실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돕한 에너지를 (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Buddy는 그들이 작업하기 위해 데려온 아티스트였다.
즉시, 난 그가 재능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는 Compton 출신이지만 네가 알고 있는 Compton 출신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그 친구는 네 최고의 랩퍼만큼 랩을 잘 할 수 있다. 그는 너의 최고의 싱어만큼 노래를 잘 부른다. 그리고 그는 이런 유형의 개인 중 하나가 되려는 모든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100% 자유로워졌다. 그것이 내가 버디를 최고로 리스펙트하는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펑크 스타일(갱스타일을 말함)의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갱 멤버가 아니다. 그는 갱단 지역에서 자랐지만 - 그는 단지 아티스트이자 멋진 사람이다. 그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그는 마치 스타처럼 하나부터 열가지 모든게 좋다. 내가 그와 둘이서 그의 곡에 참여하길 희망한 것은 내가 음악을 믿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우리가 만들게 된 곡이 첫번째 "Status Symbol."이다.
1, 2년 전만 해도 이 곡의 제목은 "Almost Forgot"이였다. 하지만 난 다시 생각해보고 결정하던 차에, 아냐, 이건 "Status Symbol 3."야. 그리곤 나와 Buddy가 함께 곡을 만들면서, 이건 이제부터 "Status Symbol"이라고 불리게 될거라 얘기했다.
9. "Succa Proof"
난 최근에 진짜 긍정적인 걸로 알려졌는데, 실제 비지니스엔 영악할 정도이며 영감을 주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난 이것에 쓴 에너지를 다시 한 번 이용해야 한다. 우리는 셀럽들과 갱 멤버쉽을 지지하지 않아. 우리 부족(tribe)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우린 부족을 재정립하려 노력한다. 우리는 감옥을 갔다온 젊은이들에게 자극이 되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난 여기에 있고; 우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이건 그들이 성공한 이후 튀어 보일때(bangin')에 대한 무의적인 Diss가 아니다. 그건 Soulja Boy이고; Chris Brown이지. 만약에 그 신발이 맞다면, 신어라. 난 Soulja Boy와 Chris Brown을 알지만 난 진짜가 되고 싶다. Gang bangin'을 하는한, 그들은 Gang bangers가 아니다. (Bangin'이 방방 날뛰다는 의미인데 여기에선 갱인척 하는 녀석들을 의미하며 아무리 날뛰어봤자 결국 그들은 진짜갱스터가 아니라고 닙시가 얘기하고 있네요. 신발얘기는 그 일이 적성에 맞다면 해보라는 것입니다.) 넌 아마 진짜 Nigga 겠지. 하지만 Piru, Crip, Blood에 있는한, 넌 Blood도 아니고 Piru도 아니야. 너는 결코 하나가 될수 없다. 넌 Crip이 아니야. 그건 그냥 사실이야. (갱) 놀이 그만해. 난 이걸 죽은 형제들에게서 진심 인정 받았어.
Soulja Boy가 남자가 아닌거 같아? 난 Soulja Boy를 리스펙트해. 난 Soulja Boy와 클럽을 같이 가기도 했어. [하지만] 만약 내게 남동생이 있고 그가 바보짓(goofy) 한다면, 난 그에게 말할거다: 그건 바보짓이다, 브로. 그건 hundred이 아니야. (YG가 자주 언급하는 단어죠. 100이란 뜻이지만 여기선 간지, Swag의 의미로 쓰는거 같습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널 사랑해. 넌 여전히 내 동생이지만 그건 바보같고 우린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는 동안엔 용납하지 않을거야. 이 노래는 그것들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너에게 gang bang(갱활동)에 대해서 얘기하는게 아니다; 우린 너에게 한 블록(동네구역)을 사라고 할거야. 그리고 우린 이 주변을 비지니스와 관광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거야. 이 유명한 거리인 Crenshaw 대로에서 말이야.
10. "Keyz 2 The City 2 (feat. TeeFlii)"
이건 LA이란 도시에 대한 팩트 체크이다. 내가 보기엔 소위 경쟁이 심한거 같다;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Diss하는거 같아. 모두가 축하해주면서 그들은 찬양하는 느낌이야. 그리고 내겐, 만약 우리가 직진하길 원한다면, 우리 공동체 그리고 내 구역인 Rollin' 60s의 갱단 조직원으로서 내부적으로 무엇을 했는가, (대해 물어볼 것이다.) 그것은 청사진이다. 그래서 LA내 다른 갱 모두가 - 그리고 이건 무례한게 아니다 - 그 청사진을 따를거다. 너의 팀과 연계하고, 비지니스를 만들고, 대기업을 만들고, 너희 젊은이들이 그 밑에서 일할 수 있게 추가할 자리를 만들거다. 그것이 바로 자랑하는 거다. 우린 이미 숫자를 올렸어. 점수판을 확인해봐. (이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우린 길거리 같은데서 진적이 없어. 하지만 그건 자랑할 가치도 없어. 그것은 측정할 게 아니다; 측정은 우리가 사업가나 리더로 만들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Crenshaw와 the Marathon store의 본성이다. 그래서 이건 그것들에 대한 노래이다.
11. "Grinding All My Life"
난 [프로듀서] Murder Beats에게 클럽에서 (틀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가 얘기했다. 난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는 업-템포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신속하게, 그게 (이 곡의) 영감이다. 난 라스베가스에서 일어난 실제 상황에 대해 말했었다. 50 Cent와 Mayweather가 거기 있었다. 어떤 Nigga새끼가 보석 때문에 우리와 함께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을 강탈하려고 했다. 그 혐의는 뒤집혔고, 상대방은 그렇게 잘 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난 진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한평생 난 갈고 닦았었다. 난 내가 14살때 학교를 그만뒀고 그이후 자퇴를 헀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난 허슬과 음악에 풀-타임으로 추구해나갔다.
이건 단지 내게 음악이 들려오는 그대로 였다. 나는 이 앨범이 이야기들(narratives)의 집합이 되기를 원했고 내 인생에서 일어났던 실제 이야기들을 대변해 주길 원했다. 그래서 난 진짜 하루를 보냈는데, YG는 내가 호스팅하던 바로 그 클럽에서 호스팅 중이였고 50 Cent도 거기에 있었다. 우린 모든 차량을 내보냈고, 이것은 단지 진짜 밤이었다. (이게 아마 그정도로 자신이 음악으로 성공했음을 나타내는거 같음.)
12. "Million While You Young (feat. The-Dream)"
나의 목표는 길거리에서 거래하며 백만 달러를 버는 것이였다. 그것은 플레티넘(음반 100만 판매)같은 거야. 만약 당신이 음악을 [팔아] 플레티넘 달성하면 Grammy상을 받고싶을(Win) 것이다. 하지만 그 문턱을 넘기 위해서, 문자그대로 이렇게 말할거다. "젠장, 나 백만 달러나 써버렸어." 난 이 곡을 쓰면서, 그 느낌의 감정을 기억하려고 했다. "어떻게 백만 달러를 벌 수 있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심지어 난 노하우 또는 어떤 경로인지도 몰랐다.
난 단지 그 여정과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길 원했다. 너가 백만 달러를 만지기 전까지 연방 수사관에게 잡히지 않고, 감옥살이를 하지않고, 당신의 사람들이 살해 당하거나 또는 배신당하거나 돌아서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예상 밖인 일인지 말이다. 이건 단지 축하하기 위한 표현이다. 그걸 왜 앨범 후반부에 실었냐고 (물어본다면), 결국 너가 거기(목표)에 도달할거 같기 때문이다. 이건 승리를 축하하는 그순간을 위한 약간의 청취의 경험같은 것이다.
13. "Loaded Bases (feat. CeeLo Green)"
그것은 나의 진짜 삶을 묘사하고 있다. 내가 19살때 인걸로 기억한다. 난 나의 모든 청소년기 목표를 이뤘다. 그게 거의 10년, 15년 전 이였다. 나는 처음으로 벽돌 두 개(건물을 뜻함.)를 만졌고, 난 내 자신이 (가고자하는) 방향을 향해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한번은 너가 보이지않는 선(범죄)을 건널려고 한다면, 그건 다시 돌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난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를 느꼈다(마음먹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형제여(homie)?"
나는 10대 때부터 음악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여러 번 파산해서 음악을 포기하려 했었다. 난 그런 타입의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돈을 갖길 원했다. 난 우리 동네에서 독립하고 유명해지면 어떤 기분일지 느꼈었다. - 심지어 앞에서 언급한 얄팍한 단계에서 말이다. (시작부터 가난했기 때문에 성공해서 이 동네를 벗어나 호화롭게 사는건 생각해 볼 수도 없었다.) 어린 십대들이 나를 좋아해주는 여자들에 대해, 차와 보석을 사는 것; 난 그게 사춘기였다. 난 그 느낌이 좋았다.
그 일련의 논리가 나의 사고 과정을 달리게(drove) 했다. 나는 거리에서 1억 달러를 벌어본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엔 - Jay-Z, Puffy, Master P - 이런 사람들은 1억 달러를 가지고 있어. 그리고 이것이 Marathon이야; 아주 긴 여정이지. 하지만 난 허슬해서 1억 달러를 번 사람을 모른다. 난 그 Nigga가 100만 달러, 1000만 달러, 어쩌면 5배 더 벌었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연방 수사관을 피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에게 얘길 들었다. 그들은 5번의 여름의 남자였고 그들은 그 주(state) 또는 연방 수사관에게 20번의 여름을 줬다. (여기에서 Summers란 의미가 기간을 뜻하면서 핫한(인기) 의미도 되겠지만 뒷 얘기를 미뤄봐서는 범죄에 연루되지 않고 음악으로 성공해서 장기간 유지를 한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네요. 번역은 하면 할수록 어렵네요.ㅠ) 그래서 리스크 있는 상대는 보상(성공)받지 못했다. 같은 날, 난 나의 모든 장비와 보석을 팔았다. 내 Lincoln도 팔았다; 내겐 여러 차량(rims)를 갖고 있었는데, LA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Alpina 차량에 대해서 계속 물어봤다. 난 팔고 싶지 않았지만, 난 결정을 내리게 됐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결정 중 하나였다. Lincoln을 팔고 나는 기타 가게에 갔고 내 남동생을 그곳에서 나를 만나 함께 어울렸다. 우리는 모든 (음악)장비를 샀다.
그래서 이 구절(line)이 [결과가] 바로 그거야.
Look, I was sittin' on my Lincoln, I start thinkin'
봐봐, 난 Lincoln에 앉아서 생각했지
Nigga, I ain't gon' make a hundred mil' off in these streets and
이 거리를 통해서는 1억 불은 못 벌 거고
More than likely I'm gon' end up in somebody's precinct
결국엔 누군가의 구역에 남게 될 거라고
Even worse, horse and carriage, front the church, laid off in a hearse
아니 그보다도, 말과 마차에, 교회까지 껴서, 영구차에 눕겠어
14. "Real Big (feat. Marsha Ambrosius)"
이건 나의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보는 내용이다. 난 항상 그것에 대해서 얘길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건 항상 오르막이었는데, 어떻게 계속 이어나가야 할지 모르겠어. 난 그냥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 난 만약에 그쪽 방향으로 한발찍 옮기면, 그 길이 저절로 드러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난 지금 이 순간이 무엇인지 보면, 이걸 다시 확인하게 된다; 우린 여기있다. 그게 나의 목표였다, 메이저 앨범을 내고, 내 레이블을 올리고, Hip-Hop 아티스트로서 리스펙트 받고 훌륭한 비지니스 구조를 갖는 것이다. 난 항상 결국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난 많은 일을 겪었고, 우린 그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많은 좌절과 상실과 순간들을 겪었다. 그리고 난 그 모든 압박과 모든 기대와 슬럼프와 모든것을 다 처리했다. 그리고 그저 우리가 있는 곳에서만, 이것은 단지 그것을 반영하는 노래일 뿐이다. 너가 정신적으로 힘을 발휘해야 하고, 신념에 따라 걸어야 한다면 말이다.
15. "Double Up (feat. Belly and Dom Kennedy)"
My new shit sound like it's "Soul Train"
내 새 작품인 Soul Train 같이 느껴지지
Tookie Williams over Coltrane
Coltrane보다는 Tookie Williams
그것은 앨범에선 나에게 그렇게 들려. Coltrane보다는 Tookie Williams처럼 들리거든. 만약 내가 이걸 요약한다면, 난 그렇게 말할 것이다. 내 톤은 보통 사람들이 듣는 것보다 훨씬 느긋하다. 난 거의 (그렇게) 얘기한다. 그런데 Belly의 참여는 죽여준다.(Crazy) 그는 이 게임(씬)에서 가장 돕한 아티스트, 랩퍼, Songwriters 중 한 명이다. 나는 그가 왜 그 단어를 선택했는지 들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단어들은 유니크하고 나 개인적으론 준비된 작업에 허용되는 팔레트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 아티스트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새로운 팔레트와 새로운 컬러를 고른다. 그래서 난 그의 (작업물을) 사랑한다. 그 후 나와 Dom은 돕한 곡들을 함께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참고로 West Coast씬의 신진 강자로 YG, Nipsey Hussle, Dom Kennedy를 3대장으로 언급합니다.) 그래서 앨범이 완성되기 직전에 우린 전화를 했고 난 "난 이 앨범에 니가 필요해. 나는 네가 앨범에 참여하지 않고는 내가 앨범을 마무리 할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켄드릭도 왔었고, YG도 왔었어; 난 니가 필요해." 그래서 이 앨범은 (웨스트) 코스트에 속해 있다. 나는 우리 모두가 함께 이 West Coast를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키 내한관련 글들로 묻히겠지만...혼자만 읽기엔 너무 아까워서 글 올려봅니다. [Victory Lap]들으면서 읽어보면 감동이 2배가 될거라 생각되네요.
멋있는 아티스트와 좋은 앨범. 좀더 일찍 찾아 들을걸 많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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