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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re Groove, Why Not] 02. Brutalist Architect (完) free from this dance

감살주의5시간 전조회 수 38댓글 0

free from this dance 

https://brutalistarchitect.bandcamp.com/album/free-from-this-dance

 

예술을 향한 소년의 순수한 열정과 처절한 분투라는 시나리오는, ‘댄스(dance)’라는 울타리 너머의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는 어린 양의 우화와 그럴듯하게 매치된다. 적어도 내가 세운 이 각본을 단편적으로만 훑어본다면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순간, 이 감상의 유희는 너무 쉬워지고 만다. 단언컨대 그의 콜라주는 그토록 마냥 단순하지 않으며, 나 역시 그의 곁에서 그를 온전히 지켜봐 온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섣부른 추상의 영역으로 건너가 이 서사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자부하는 대신, 구체적인 소리의 뼈대가 어떻게 직조되어 있는지 서툴게나마 한 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일을 앞세우려 한다.

 

인트로의 제목부터 차분히 곱씹어 본다. 파인튜닝은 단지 재조정 차원의 개념이 아니다. 요지는 ‘특화’에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운드 콜라주 통상의 ‘재구성’은 물론 (어쩌면) pathetic beats에서의 ‘재해석’의 차원 마저 건너뛴다. 이는 곧 자기-서사를 건축하는 치밀한 작업과 재맥락이라는 더 거시적인 차원의 도상에서 자신의 방법론으로 가장 ‘맞춤화된 언어 모델’을 수립하는 것이다.

 

눈으로 밑그림을 봤다면 이번에는 그가 웰딩 마스크를 쓴 채 자재를 일일이 깍아내는 과정을 상상하며 질감들을 손으로 더듬어 본다. 그말인즉슨 그는 설계사이기도 하지만 직접 현장 작업을 도맡는 시공자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트랙들은 정밀한 세공 및 깔끔한 마감을 거부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dayb4free처럼 극단적인 수준으로 깔아뭉개는 시도는 지양한 모양새다. 이는 인식을 겉잡을 수 없는 혼란의 영역으로 빠뜨리지는 않지만 감각적인 긴장을 지속적으로 유도한다. 이를테면 어딘가에 차폐가 이루어지지 않아 스파크가 튀는 현상, 안테나의 일부 혼선으로 인한 잡음 및 수신 에러, 석재 코팅이 덜 돼서 까끌까끌한 느낌 등이 주는 투박함이 만연하다. 그러나 부실 공사가 아니라 건축 철학처럼 다가온다.

 

그 이유에 대해 나는 ‘그것이야말로 브루탈리즘의 미덕이라는 결론’에 그치고 싶지 않다. 대신에 완공된 건물을 마주하다가 문득 그 공간을 배경으로 삼은 어떤 생생한 최신 영화가 그려지는 특별한 경험에 빗대고 싶다. 이에 따라 나의 은유는 자연스럽게 건축에서 영화 제작으로 넘어간다. 각 트랙은 시퀀스가 되고 그 안에는 여러 씬과 컷이 뒤엉킨다.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장면, 본 적이 없더라도 어딘가에 나왔던 장면을 레퍼런스를 삼았을 장면들로 이루어진 영화. 이렇게 비유하니 이상하게 들리지만 실험영화라서 그런 것이라고 치자. 연출과 연기 등을 모두 편집만으로 구현했음에도 극적인 생생함을 고스란히 살린 그런 영화인 셈이다.

 

그런데 그 감각 이상으로 신기한 점은 다른 배경음과 대사가 불연속적으로 배치돼있음에도 인물의 서사가 그려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마치 그 인물의 바로 옆에서 카메라의 포커스나 프레임을 일절 끊지 않고 ‘정서적인 흐름’을 계속 따라붙는다. 흡사 원컨티뉴어스 숏을 방불케 하는 밀착감과 유기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패치워크 더미에서 저마다 자유롭게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https://brutalistarchitect.bandcamp.com/album/sleep-and-wait-single

 

시나리오로 다시 돌아가서, 초반부를 장식하는 심상을 짚어볼까. 고립감과 불안정, 이것이 과연 테마일까. 암부 닌자가 후드와 가면을 뒤집어쓰고 비밀 작전을 벌이듯 인파를 스치는 어느 음침하면서도 비범한 소년. 전작 you’ve helped me see에서 암시한 것처럼 그 모습은 특정 페르소나나 억압된 삶의 레파토리 속에 자신을 가둔 채 연기해오던 유령이었다. 확실히 그 사운드는 쉽게 누군가 다가가기 힘든 아우라를 뿜어내지만 그 차갑고 위태로운 감투 안에는 열렬한 갈망이 엿보인다. 그것이 결속을 위한 것이든, 비상을 위한 것이든 말이다. “u and me”의 에너지가 언뜻 이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혈류만큼은 그러한 동기에 충실해 보이는데, 그를 둘러싼 하루는 자신의 감정과 함께 시시각각 명암이 뒤바뀐다. 춥고 외로운 계절감이 음습한 앰비언트 사운드로 “sleep and wait”를 감싼다. 아무래도 그는 동굴을 감내해야 할 시간이 길었나 보다.

 

 

https://brutalistarchitect.bandcamp.com/track/stuck-in-my-defensive-half-what-ive-always-wanted

 

 

그렇게 동면을 취하듯 오랜 시간 ─그러면서도 꿈속에서 부단히 전초전을 치루며─숨죽이던 자세는 링 위에 올라 #Swag을 선언하기 전까지 그의 서사와 작품의 진행 양측에 있어서 반쪽이 된다. 그것을 ‘defensive half’라고 명명하는 것, 각본가로서의 나는 이 반쪽은 1부로 구분하겠다. 그렇게 가정하고나니 내 상상 속 과거의 그가 마치 잘자 푼푼에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오노데라, 악의 꽃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의 카스가, 혹은 진격의 거인에서 벽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의 에렌 예거처럼 보인다.


 

다만 충동과 억압 간의 이 모든 아귀다툼은 도쿄도 파라디 섬도 아닌 내가 DM을 보내면 건너편에 하루만에 닿는 영국 맨체스터의 평범한 홈, 침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의 프로필 이미지가 제 아무리 지면으로부터 붕뜬 감각을 일으킬지라도 어쨌든 영국의 어딘가에 실제하는 시골길뿐인 것처럼 말이다. 어떤 식으로 발을 디뎌도 결국 현실의 어느 곳에 불과할 이곳이다. 어떤 심정으로 기억을 오려내고 제멋대로 짜맞춰도 실존적 고행의 연속일 시간의 지평선 아래다. 당최 무슨 해방과 자유를 쟁취할 수 있으리란 걸까. 그가 가장 원해온 순간이라며 어린 소녀가 그 마음을 대변할수록 나는 되려 이 덧없는 콜라주의 의의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지 되묻게 된다.

 

 

https://brutalistarchitect.bandcamp.com/album/forbidden-fruit-ep 

(* 아트워크에 노출이 포함된 관계로 링크만 게시했습니다) 

 

이 모든 모순과 고통을 가장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을 이는 결국 B.A. 그 자신일 것이다. 안락을 등지고 모험을 감행한 순간부터, 그의 사투는 갈수록 처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는 『달과 6펜스』 속 찰스 스트릭랜드의 파멸적인 운명을 그대로 뒤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협과 안정이 보장된 궤도 안에 머무는 편이, 영혼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는 예술가의 길로 이탈하는 것보다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 ‘자유’라는 선악과에 시선을 빼앗긴 채, 결코 손대지 말았어야 할 예술이라는 금기에 홀려 있는 것일까.

 

그러나 가면을 쓴 채 연기를 이어가도 그 텅 빈 속내를 짐작조차 않던 속세와 달리, 이 매혹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세계는 껍데기뿐이던 우리를 기꺼이 환대하며 내면에 영혼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 온기 덕분에 우리는 이 은밀한 살롱에 둘러앉아 저마다의 감각과 경험, 벼려둔 진심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창작과 매개, 그리고 감상과 해석이라는 일련의 고리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그 연대의 가치를 동력 삼아, 우리는 이제 결말을 향해 무력하게 곤두박질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세계를 넓히며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살롱에 초대를 받은 우리들, 이 플레이리스트에 진지하게 몰입하고 있는 우리들은 서로 대등한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 각본가가 되고, 그가 처음 암시한 주제적 기반 위에 각자의 맥락들을 새롭게 콜라주하며 경탄스러운 한 공간의 건축 의도가 완성된다. 물론 그 의도란 어디까지나 이 여정의 시사점을 제시한 것일 뿐, 건축물 자체, 나아가 세계 전체를 완성했다는 뜻이 아니다. 여전히 친밀한 살롱과 음습한 암실을 오가며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쳐야 한다. 그 빌어먹을 노동과 피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언제 끝이 날 것이란 기약 따위도 없다. 우리의 춤은 끝나지 않았다.

 

Epilogue

https://brutalistarchitect.bandcamp.com/track/what-do-we-have

 

이 일련의 각본을 써 내려가며, 나는 어느새 그에게 나 자신을 온전히 투영해 버린 것만 같다. 그에 관한 구체적인 배경이나 생애를 알지 못함에도 말이다. 고뇌하는 지점이 같을 것이라는 믿음 역시 이 소리의 공간에 흠뻑 빠져든 내 주관적 착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 해방을 갈망하며, 지독하리만치 끈질기게 꿈에 엉겨 붙어 살아온 인간이기에 어떻게든 닮은 구석을 찾아내 공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세워 올린 서사는 어쩌면 그런 비루한 갈망의 반영일 테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그의 심리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내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서 그의 작품 세계를 바라봐 온 셈이다.

 

돌아보면 내게 ‘거울’이라는 모티프를 처음 안겨주었던 핑크 플라밍고의 서사 또한, 자신이 갇혀 있던 춤으로부터 실존적 자유를 얻어내려던 현세 및 자기자신과의 각축전이였을 테다. 우리는 예술이라는 거울 앞에서 한없이 피폐해지기도, 때로는 눈부시게 찬란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고된 길 위에서 이들과 모종의 연대감을 느끼며 모험을 지속할 위안을 얻는다. 결국 나라는 인간을 끊임없이 되비추어 줄 ‘나 같은 놈’을 기어이 찾아내기 위해, 나는 여태껏 이 소리들을 발굴해 온 것이리라. 앞으로도 영문 모를 기이하고 외딴 건축물들이 자꾸만 내 발길을 붙들고 시선을 앗아가려 한다면, 얼마든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세계 안에 온전히 머물며 내 멋대로 이야기를 적어 내리도록 기꺼이 자리를 내어준 이 젊은 건축가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어느덧 2편도 끝냈습니다. 서사적인 콜라주 앨범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력히 추천드리는 아티스트였습니다. 다음 주인공은 하드코어 힙합과 관련돼있는 래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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