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AP Rocky - Don't Be Dumb
"스타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A$AP Rocky를 듣고 떠올릴 때면 이 빛바랜 관념이 곧장 떠오르곤 한다. 노숙이 익숙하던 길거리의 마약상에서 드레이크와 리한나의 오프닝 무대에 오른 래퍼, RealNiggaTumblr의 노골적인 하이프를 받는 떠오르는 신예, RCA Records와 수백만 달러 규모의 음반 계약을 체결한, 힙합신의 포틀랜드와 샘 보위가 될 뻔한 뜨거운 감자, 믹스테이프 한 장으로 일약 뉴욕 힙합 신의 온 기대를 짊어지게 된 라이징 아티스트, 여느 스타와 같이 그 기대를 보란 듯이 넘어서는 행보까지, 그는 전형적인 힙합신의 스타다. 그러나 으레 스타들의 인생이 그렇듯, 중년이 된 그들 모두는 더 복잡다단한 질문지를 하나씩 받게 된다. 스스로를 르네상스맨으로 결국 그 근본에 음악이 있음을 선언했으니만큼 라키를 배우나 디자이너가 아닌 음악가라 가정하면, 8년 전 그는 커리어 내내 꼬리를 물던, 그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대중들의 회의감을 해소할 순간에 있었다. 뉴욕 한복판에서 Clams Casino의 주도적인 손길 아래 Bone Thugs와 Three 6 Mafia, DJ Screw를 위시한 남부 찬가를 써내린 믹스테이프부터, 직전까지 U2의 앨범을 매만지던 프로듀서 Danger Mouse의 사이키델릭을 펴 바른 코데인과 LSD의 <AT.LONG.LAST.A$AP>까지, 라키는 칸예 못지않은 규모의 자문단과 외부인을 끌어들여 매번 프로듀싱 파티를 열지만, 에이셉 라키의 음악은 신기하리만치 본인의 앨범이 아니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Testing>을 기점으로 그의 음악에서 A$AP Rocky라는 인장이 희미해졌으니, <Testing>은 엄밀히 말해 실험을 가장한 무리한 확장 공사였기 때문이다. 마치 천상의 풍미라도 되는 듯 자랑하던 라키의 취향으로 빽빽한 레코드 컬렉션에 약간의 고전과 <Blonde>를 욱여넣는 과정, 그러니까 이제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에이셉 라키는 세련된 큐레이터이자 빼어난 외모와 패션 감각을 지닌, 그리고 랩도 좀 하는, 평행 세계의 DJ 칼리드인가, 타일러와 같이 고통스러운 예술적 갈등과 창작의 고뇌로 둘러싸인 크리에이터인가. 그는 8년간 묵비권을 행사했고, 2026년 1월 16일 나름의 답변을 들고 왔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음악적 취향은 그 자체만으로 재능이다. 힙합 음악의 스토리텔링 기준을 아득히 끌어올려 장르의 기수로서 예술적 가치와 의식적인 면모를 또 한 번 증명한 <Good kid, m.A.A.d city>, 하필 바로 다음 해 라키의 데뷔 정규 앨범 <LONG.LIVE.A$AP>이 발매됐다. <Only Built 4 Cuban Linx>풍의 "1Train"이나 전형적인 라키의 레퍼토리 "LVL"뿐만 아니라 차트를 종횡무진한 "Goldie"부터 "F**kin' Problems"까지, 이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힙합 앨범이 없음에도 이 작품은 주류와 비주류의 교차점에서 왼쪽으로 조금 더 기울었다는 점, 그리고 의식적인 순간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찝찝한 비평을 들어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짜증 나는 똥덩어리에 무리한 크로스오버, 유일한 패착이라던 “Wild For The Night”은 메인스트림의 선봉장격 인물을 데려왔다는 이유로 온갖 부정적이고 단선적인 평을 들었지만, 지난 13년간의 힙합을 회고해 보면, 이 스크루드 업 보컬에서 브로스텝으로의 매끄러운 전환부만큼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좀처럼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만큼 스크릴렉스의 지배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곡조차 신기하리만치 라키의 정서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걸 보면, 그의 음악은 단순한 드레이크식 큐레이션의 결과물이라기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하다. 일전에 에이셉 라키를 하이픈(-)으로 비유하던 글이 기억난다. 휴스턴의 린(lean)이든, 할렘 거리의 붐뱁이든, 모스 데프와의 사이키델릭이든 그 어떤 무드와도 부드럽게 맞물리는 기민함은 분명한 라키의 장기이고, 일종의 기준이 되는 템플릿처럼 매 앨범마다 크게 벗어남 없이 흘러가는 분위기는 뚜렷한 응집력으로 라키만의 보랏빛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실상 라키만의 A&R 역할을 도맡았던 멘토 A$AP Yams 없이 제작된 첫 앨범 <Testing>은 앨범의 컨셉부터 실제 감상의 경험도 중구난방이다. "Praise The Lord"나 "Hun43rd"처럼 그의 과거 어느 순간과 비교해도 감각적인 곡들은 라키의 취향 그 자체가 문제라는 의심은 불식시키고, "Changes" 역시 작위적인 느낌을 억제하며 스포큰워드에 가까운 덤덤함으로 그의 세계관에서는 꽤나 드문 내면적인 고백을 이어감으로 그 기민함 역시 여전함을 증명한다. 그러니 본작 <Don't Be Dumb>이 <Testing>의 생리를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건, 라키의 취향과 능력의 문제라기보단 그의 큐레이터적 면모가 좀 더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딘가 미래적이면서 호러 사운드트랙의 분위기가 연상되는 "STFU"에 이어 - 이 곡의 평가가 몹시 낮은 걸 보면 “Wild For The Night”이 오버랩된다 - 테임 임팔라와의 "Sundress" 프로젝트를 스스로 마무리하는 듯한 "PUNK ROCKY"로의 전환을 보면 역시 적재적소에 매력적인 구간을 끼워 넣고 환기시키는 그 감각만큼은 아직도 생생한 듯하다. 뿐만 아니라 라키의 역사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Three 6 Mafia의 음산함은("Helicopter$") 이제 라키와 동의어로 여겨질 만큼 그 어떤 곡보다 중독성이 강하고, 믹스테이프와 Clams Casino가 떠오르는 짙고 흐릿한, 앰비언트스러운 "DON'T BE DUMB / TRIP BABY"는 그의 디스코그래피 속 흔치 않은 감상적 순간으로 진부하지만, 아름답다. 특히 고릴라즈가 재단한 "WHISKEY"의 Westside식 애드립과 터지는 화학작용은 분명히 설명하기 힘든 묘한 전염성을 가진다. 다만 "SICKO MODE"만큼, 아니 그보다 더 극단적인 비트 스위치의 "AIR FORCE"는 무언가 해방되려는 듯한 느낌이 들려는 찰나, 이 변주마저 안전주의라는 강력한 중력 위에서 기계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마무리되고, "ORDER OF PROTECTION"은 조금 과장하면 지금까지의 커리어에서 가장 매력 없는 오프너로 멜로딕한 트랩을 구사하는 그 누구를 데려와도 그럴싸할 듯하며, 리한나와의 안온함을 형상화한 결과물처럼 들리는 "Playa"는 솔직히 말해 별 경쟁 없이 낙점되지 않았나 싶다. Doechii와 함께한 재즈 랩 "ROBBERY"는 어떤가. 별다른 조정도 없이 라키의 카리스마에 의지한 채 될 대로 돼라 식으로 순수한 두 개체를 결합시키는 과정처럼 느껴져 그 뻔뻔함이 재미있다. 믹스테이프를 매끄럽게 다듬은 듯한 1집처럼 본작 <Don't Be Dumb>은 마치 <Testing>을 매만지고 정돈한 느낌이 강하다. <Testing> 못지않게 다양한 장르들이 규합되고 라키의 레코드 컬렉션은 더욱 터져나가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앨범의 응집력을 신경 쓰며 뱅어를 뽑아내고 그가 잘 하던 것들을 여전히 잘 해냈다. 그런데 어쩐지, 바운더리를 넘은 뒤부터 라키는 절묘한 곡예로 긴장을 유지하던 작가주의의 밧줄 위에서 어느새 떨어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그의 답안지를 확인하는 이들의 생각보다 심심하고 미적지근한 반응을 본다. 흔히들 말하듯, 다른 래퍼에게서 발매된 작품이라면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았을 앨범일 수도 있다나. 틀린 말은 아니지만 스타의 프리미엄과 레거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는 그의 커리어를 전부 되짚어 보며 진부할 수 있는 매 순간순간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8년 가까운 공백, 시간과는 크게 비례하지 않는 고뇌의 흔적, 물론 본작 <Don't Be Dumb>의 모양새는 2024년부터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긴 했지만 그 품질은 햇수를 약간 늘이고 줄인다 해도 조금은 부족한 부분이다. A$AP Yams의 부재 때문일 수도, 헌사를 위해 8년 만의 작품 일부를 떼어낼 만큼 소중한 리한나가 그의 비전을 무디게 만들어버린 걸 수도 있다. 그럼 방황과 고독의 순간일까, 에바 부인과의 행복한 순간일까, 알은 깨진 걸까, 그의 아브락사스는 무엇일까. 풍성한 재료가 앨범을 수놓는데 정작 결합을 시도할 실험체가 부재한 기분이다. Simon & Garfunkel부터 Jimi Hendrix, Aphex Twin과 OutKast를 지나 Prince까지. 오션만큼 넓은 범위의 취향을 아우르는 아티스트도 없지만, 오션의 음악은 과거의 라키처럼 신기하리만치 그의 고유한 미감으로 귀결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라키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은, 마치 과거의 애플처럼 내가 원하는지도 몰랐던 무언가를 그가 넌지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즐겨 입는 브랜드명을 줄줄이 나열하는 것으로 가사가 약점이라던 비평가들의 일관된 분석에 입도 뻥긋할 수 없었던 "Fashion Killa"를 써내리는가 하면, 뻔하게 닳고 닳은 클리셰를 넘어 가사만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고("Suddenly"), 거부할 수 없는 레퍼토리를 들고 다가와 우리의 머리를 흔드는 믿음직한 큐레이터가 되기도 하며("NO TRESPASSING"), 동부와 남부의 절제와 과잉을 넘나들어 Bone Thugs와 Three 6 Mafia, UGK처럼 건들대면서 또 어느새 래퀀처럼 랩을 뱉는다. 붐뱁과 트랩, 늘어짐과 타이트함, 맥시멈과 미니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한 명의 주관으로 작품을 만들고 거기에 하이패션을 사랑하는 적당히 잘생긴 남자의 미적 감각을 덧대어 완성시키는 것, 단언컨대 이런 종합 예술적 결과물은 아직까진 라키만이 해내고 있다.
전 라키의 음악을 정말 좋아합니다. 특히 1집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만큼 순수한 재미가 뛰어난 힙합 앨범이 있을까요. 물론 그래서인진 모르겠지만 이번 앨범도 상당히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Testing>의 그 어정쩡한 느낌은 버리고 깊이는 부족할지언정 아예 작정하고 이것저것 다 들려줘버리니 이번에도 순수 재미는 보장되는 느낌입니다. 라키의 음악은 뭐랄까, 뭐 어떤 방식으로 따라 한다 해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듯합니다. 라키가 있어야 완성되거든요. 그런 느낌이 조금 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40줄을 바라보는 라키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 귀를 즐겁게 해준 것 자체에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패션부터 영화, 법정 단골 고객, 결혼까지 음악 빼고는 안한 걸 찾기가 힘들 정도지만 적어도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고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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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라키의 4집을 8년간의 공백에 대한 대답으로 생각한다면 상당히 성의가 없었다고 느꼈습니다. "나 그만좀 찾고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는 식의 무성의함이 느껴질 정도였달까요. 앨범에서는 그의 음악적 비전이나 음악에 대한 애정을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8년 동안 공개되지 않은 작업물들을 급히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음악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어떤 고민을 거쳤는지 전혀 느껴지지 않아 개인적으로는 매우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네요. 믹테부터 2집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테스팅도 즐겨들은 입장에서 이번 앨범은 실패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들으면서도 느끼지만 지금의 라키는 Views를 만들던 드레이크의 길을 따라 가는 것 같긴 합니다. 물론 드레이크보다야 더 신경쓴다는 느낌은 있지만 8년이면 좀 과장해서 오션하고 크게 차이도 안 나니까요ㅋㅋ 말씀하신 대로 더 나은 작품을 가져왔어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한 것 같습니다. 라키를 기다렸던 팬들도 팬들이지만 본인도 그 기다림에 꾸준히 장작을 던져줬으니.. 다만 신보만큼이나 라키가 진득하게 음악을 해줄 환경에 안착하는 걸 기다렸다 보니 신보의 아쉬움이 저에게는 약간 덜한 것 같아요. 만약 말씀하신 무성의함이 진짜라면 음악을 그만둔다는 소식보다 더 슬플 것 같긴 하군요.
앨범 발매 당일 막심한 실망과 분노에 사로잡혀 Don't Be Dumb의 패착을 쓰려다가 개인 일정으로 인해 그냥 취소해버렸던 기억이 나네요. 이번 앨범이 라키 디스코그래피 역사상 최악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Don't Be Dumb의 패착은 — 물론 라키 본인의 음악적 역량이 쇠한 까닭도 존재하겠으나, 발매 지연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명반은 오랜 기간의 사유와 상당히 짧은 기간의 창작력 집약으로 완성된다고 보는 입장에서, 라키는 Don't Be Dumb을 그렇게 제작할 수 있는 조건조차 갖추지 못했어요. 마지막에 말씀하셨듯 패션, 영화, 육아, 재판,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는데 Don't Be Dumb 프로젝트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을 리 만무한더러, 여러 차례의 유출로 본래 수록될 예정이었던 선공개곡들도 최종본에서는 증발해버렸죠. Tailor Swif나 RIOT 같은 곡이 들어갔다면 최소한 좀 더 즐길 수라도 있지 않았을까요? 음악 외적인 이유로 여러 차례 갈아엎은 앨범이 결코 뚜렷한 비전을 가질 일은 없죠. 개별 수록곡에 집중해보아도 분명 발매된 버전 이상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트랙들이 많은데, 만개하긴 커녕 꽃봉아리조차 피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곡들이 대다수이고요. 특히 STFU이요.
더 실망인 점은 라키 본인조차 Don't Be Dumb이 별로인 점을 알고 있는 것만 같다는 사실입니다. 혀가 길어지는 것은 보통 자기 작품에 자신이 없는 아티스트들의 특징인데, 라키는 너무 오랫동안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차기작을 홍보해왔죠. 발매를 확정짓자, 정작 작품 내적으론 별로 상관도 없는 팀 버튼 사단의 미학을 끌여들여 '힙해보이는' 마케팅을 했고요. 3번 트랙 스킷에서 "너희 인터넷 리스너들이 뭘 알길래, 내 작품과 예술에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꺼내는 건 황당하기 이전에 정말 라키가 이 앨범에 자신이 없다는 반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게 가사에서까지 이어져서 똑같은 강도 범죄, 스웨거, 나 잘 나간다, 프리티 플라코, 리아나와 자식들 얘기만 무성의하게 반복할 뿐이고요. 본문에서는 라키의 작사 능력을 논하고 있으나 정작 Don't Be Dumb에는 바로 그 진중함과 독창성이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이 가장 치명적으로 느껴지네요. STOLE YA FLOW 정도를 제외하면 가사를 볼 가치도 없는데, 그것마저 Family Matters의 디스에 한 곡을 통째로 할애해 디스할 정도였나 싶습니다. 가성비만 따지면 켄드릭과의 전투에서 단 몇 줄만을 라키에게 배분해 제대로 저격해버린 드레이크가, Show of Hands에서 했던 얘기를 한 곡 분량으로 확대해 반복하고 있는 라키 쪽보다 훨씬 우수해보이는 것도 팩트고요. 솔직히... 요즘 드레이크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만, 그래도 그동안 꾸준히 앨범을 내며 수준급의 곡을 몇 개 내기라도 했던 드레이크가 라키보다 아티스트로서도 훨씬 앞서나갔다고 생각합니다. 8년 만에 낸 게 Don't Be Dumb이라뇨.
저도 정말 에이셉 라키라는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Live.Love.A$AP, LONG.LOVE.A$AP, AT.LONG.LAST.A$AP 모두 애정하는 입장에서 Don't Be Dumb이란 앨범은 라키가 드디어 음악에 흥미를 잃었다는 확인서밖에 되지 못했네요. 그나마 유일한 성과가 있다면, TESTING이 생각보다도 괜찮은 앨범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아갔다는 것이겠네요. 생각해보니 Don't Be Dumb의 단점은 TESTING에서 무리하게 벌인 그 '실험'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는 것도 있네요. 구조적으로 더 안정적인 음반이긴 하지만, 사실 두 작품은 크게 공통분모를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더 어설픈 실험(을 빙자한 확장공사)들만이 새롭게 발생했을 뿐이죠. TESTING의 고점은 상당히 흥미롭고 멋들어지기라도 했거든요. 아무튼 저에게 Don't Be Dumb이란... 아티스트의 앨범이 상당히 현실적인 이유로 질적 하락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제대로 알려준 프로젝트였네요.
전 라키에게서 직관적인 힙합의 재미를 처음 느꼈다 보니 STFU도 적당히 즐길 순 있더라고요. 발매된 뒤부터 자주 듣고 있기도 한데 언급하신 스킷은 공백기간과 겹치면서 좀 더 아쉽게 다가오긴 합니다. 과거에도 저런 마인드에서 크게 벗어난 건 아니다만 노골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었던 기억인데, 말씀하신 그 본인 스스로도 아쉬운 작품이라는 인식이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된 결과같기도 해요.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공감가네요ㅋㅋ 사실 가사는 정말 꾸준하고 일관되게 얕고 가벼웠다 보니 이젠 크게 놀랍진 않습니다. 정신적 지주의 죽음 이후에 발매된 앨범의 80%도 비슷한 결이었다보니.. 무슨 연유에선지 갑자기 앨범을 발매한 게 전 아직도 신기하긴 합니다. 그런 갑작스러운 모멘텀은 대게 외부적인 요인보다는 내적인 감정의 변화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뭐가 됐든 이전처럼 음악만 바라보고 제대로 하나 더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본인도 찝찝하지 않겠습니까. Testing의 후반부나 이번 앨범의 곳곳에서 뭔가 대단한 게 나오려다 마는 느낌이 자꾸 들어서 이번 앨범으로 그만두면 너무 아쉬울 것 같긴 해요ㅋㅋ 이제 좀 더 다양한 원천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만큼(지금 하는 영화나 육아처럼) 잉여 에너지를 음악에 쏟아주면 이 앨범보단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해요.
Testing 확장판이라고 생각하고 들었을 땐 다양한 장르의 혼합이나 킬러 트랙의 존재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기다린 시간에 갸우뚱하게 되는...
차라리 덴젤 커리처럼 헬리콥터, 스톨 야 플로우 같은 남부 힙합 뱅어 모음집 콘셉트로 밀고 나갔다면 저는 더 재밌게 들었을 것 같네요.
그렇게 나오면 진짜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기대도 되네요ㅋㅋ 보통 시작부터 특정 장르나 인물에 강한 영향을 받았던 아티스트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 그림자 밖으로 어떻게든 나오려는 경향이 있는데 Testing부터의 행보가 딱 그 과정이지 않나 싶더라고요. 다만 라키가 남부를 대체한답시고 가져온 것들의 깊이를 보면 남부 힙합만큼 그것들을 진지하게 좋아한 적이 있냐 라는 회의감은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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