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가 나온지 시간이 ㅈㄴ게 흘렀지만,
이제서야 야호를 들어봤습니다.
에피도 시스템서울도 에이겐진도 즐길만큼 즐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나이많은 양반이 말아주는 하이퍼팝을
들을 용기가 안나더라고요.
온갖 평론가들과 엘이님들과 유튜브에서도 극찬에 극찬을 하는데,
영 땡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머신 라이브 영상을 봤습니다.
가사가 너무 슬프더라고요.
"그녀를 떠나보내고 다른 걸 집에 들이고 내가 날 생각해 봐도 난 진짜 짜증나는 놈 그냥 우스갯소리로 엄마한테 사고 치고 손주를 보여준다고 했지만 안에 싸는 놈 내 자식 꿈이 있다면 음악이 아니었으면"
뒤이어 반복되는 "우리 다음은 어디로"
그리고 훅에서 외치는 도익환은 댄스머신, 밤만되면 섹스머신
곡 말미에 절규하는 댄스머신, 섹스머신, 엑스터시.
"연탄재"로 유명한 안도현 시인은 "똥을 똥이라고 부르는 것이 시" 라고 했습니다.
이는 모든 예술에 통용되는 말입니다.
예술의 가장 위대한 점은 설명 없이 본질을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개인이 느낀 시대정신, 나의 삶, 사회의 문제, 사랑의 감정 등등등 주제가 무엇이 되었던
예술가는 자신이 느낀 것을 본질적으로 드러내어 대중에게 전달합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큐레이션이 붙을 순 있지만
예술가 본인이 붙어서 구구절절 설명해버리면 그 작품은
작품으로써의 의미가 점점 퇴색될 수 밖에 없는 거죠.
따라서 예술가는 똥을 똥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똥을 보면 수식하고 설명하고 싶어합니다.
굵다던지, 질다던지, 냄새가 난다던지,
사회적 체면치레를 생각하며 배설물이라던지, 대변이라던지, 매화라던지
여러가지 옷들이 똥을 덮습니다.
예술가의 목적은 이 옷들을 찢어버리고 똥은 똥이야 라고 말하는 거죠.
물론 이 본질적 외침에 다가서는 방법은 모두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야호는 예술적 작법으로 릿의 완전한 대척점에 서있습니다.
저스디스는 자신이 느낀 똥을 현미경 사진을 찍은 뒤.
글로 그 사진을 묘사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저스디스는 그것을 그저 디스플레이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저는 디스플레이는 저스디스의 자기변명일 뿐,
가장 말이 많은 예술가가 다 ㅈ까고 하루종일 자기 작품을 설명하는
전시회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YAHO야 말로 진정한 디스플레이 입니다.
전시 안에 설명은 없습니다. 설명은 전시에 따라오는 것이지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다.
EK는 야호로 스스로를 전시 합니다.
댄스머신도 나고 섹스머신도 나고 엑스터시를 빨고 싶은 것도 나입니다.
자지털 보지털들이 섞여 놀아보자고 말하는 것도 ek입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도 ek입니다.
그런데 시발 내 자식이 음악은 안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의 아구창을 박살내고 싶기도 하고,
여전히 형제들을 생각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파편적이지만, 생각을 예술로 꺼내는 과정에서
인간은 파편을 이어서 서술하려고 합니다. 모든 표현은 서술이기 때문에 이는 어쩔 수 없는 과정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생각이 논리를 입어 서술되기 시작하면 열화된다는 점이죠.
따라서 머릿속에 떠오른 가장 날것의 생각을 그대로 예술로 표현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스스로를 완전히 버리고, 내가 가진 사회적 위치와, 어쩌면 "나"를 잊어야 가능한 일이죠.
이센스의 에넥도트, 씨잼의 킁, 빈지노의 노비츠키 같은 앨범이 닿은 지점이 그곳입니다.
진짜 나를 보여준다는 것, 진짜 내 생각을 보여준다는 것은 이토록 어렵습니다.
EK는 이번 앨범으로 그곳에 닿았습니다.
Yaho가 단순히 견실한 래퍼의 흑화한 앨범으로 끝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음악의 생명력이 파리목숨인 한국힙합씬에서 yaho는 6개월 넘게 타오르고
오히려 불길은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yaho는 고평가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월에 ek의 단공이 계획되어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30살 넘은 아저씨도 가서 표고버섯을 외쳐볼까 생각합니다.
에피 공연은 갔다가 90년대 생이라 뺀찌 맞을거 같은데
익환이형 공연은 가도 될 거 같네요.




익환이형 댄스 반드시 구경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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