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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a Nice Life - Deathconsciousness 리뷰

여름의대삼각형3시간 전조회 수 90추천수 4댓글 3

우선 앨범 내 요소들을 언급하기 이전에, 이 앨범에 함께 동봉된 책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앨범의 세계관, 그리고 허무주의적 정서를 보다 구체적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이 북클릿은 이상하리만치 앨범과 닮아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앨범의 내용물이 하나의 풍경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을 주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여기서 발생한다. 서로 별개의 기관인 청각과 시각은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는가?

먼저 책의 내용에 대해 다루어보자면, 허무주의적 정서를 그 주요 교의로 삼는 어느 한 종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는 이상하다. 종교란 필히 어떤 믿음이나 가치관을 토대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무주의, 그러니까 생에 있어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주장하는 사상이 어떻게 종교화될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하기로는, 그것이 하나의 종교로 굳어지면서, 그 핵심 교의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의미 없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언어도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어느 한 종교의 놀랄 만큼 현대적인 통찰, 그리고 그것이 종교화되어 쇠락되어가는 과정 자체는 또 하나의 허무주의적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교주가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은 단지 소멸되어가는 과정에 놓여있을 뿐이다. 북클릿 맨 처음에 언급했듯이, 역사라는 학문이 우리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단지 건조한 역사적 지식의 인지가 아니다. 다만 그보다 더 포괄적인,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른 소멸성을 우리에게 알레고리로써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북클릿이, 하나의 역사 보고서의 형식을 띄고 있는 것은, 그러한 주제관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체감하는 것이 아닌, 다만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만들려는 방식인 것이다. 보고서의 담담한 문체가 그러하듯, 하나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고하는 듯한.

앞선 질문으로 다시 돌아올 때이다. 북클릿의 내용을 추상화하는 작업은 끝났으므로, 이 추상화된 결과물이 어떻게 앨범의 사운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지, 그 인과관계를 밝힐 차례인 것이다.

물론 처음으로 가사의 역할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탁월하다. 가사야말로 앨범의 주요 정서를 구축하는, 일종의 감상 지침서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은, 가사의 역할을 배제하더라도, 앨범의 사운드는 책 속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아있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를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우선 앨범의 포스트록적 구조를 언급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포스트록적 구조라 함은, 악기의 추가를 통해 사운드를 과포화시키다가, 결국 마지막에 정적을 삽입하여 청취자로 하여금 일종의 카타르시스, 혹은 허무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책의 내용을 인용하면 더욱 와닿는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결국에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만약,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관념, 그에 뒤따라오는 두려움이나 허무함 등을 포괄한 총체를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죽음의 전제조건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인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존재는 소멸을 무조건적으로 전제한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소멸의 씁쓸함, 허무함, 고통들을 동시에 인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록에서 볼 수 있는 상승 하강 구조는, 구조적 유사성에 말미암아 어느 정도 이러한 정서를 간접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고 추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둘째로 앨범 사운드에 과할 정도로 걸린 딜레이와 리버브 효과를 지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는 사운드의 소멸 과체를 부각하는 방식이다. 이전에 리버브 효과를 평면에서 벗어나 하나의 입체적인 공간을 구현하여 청취자가 이를 체감하는 효과라고 설명한 적이 있는데, 이처럼 리버브와 딜레이는 참으로 다층적인 감상을 부여한다. 예컨대 드레인 갱을 필두로 하는 클라우드 랩 씬에서는 약물 효과의 몽환감을 구현하기 위해 그러한 효과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분석을 앨범에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 그러나 이치코 아오바의 안정적이며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음역대의 기타 사운드와 달리, 데스콘셔스니스의 사운드는 보다 고음역대를 넘나들며 마치 성당과 같이 대리석 소재의 반사도가 높은 재질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상상하게 된다. 또한 딜레이 효과를 넣어 현재와 과거가 끊임없이 그 경계를 넘나들고 교차되는 사운드를 구현하여, 선형적인 시간선을 붕괴시킨다. 따라서 이러한 효과에 의해 몽환감이 구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주제로 돌아와, 나는 소멸성을 강조하는 방식이라고도 생각하는데, 말하자면 평면적이며 그 지속이 일시적으로 국한된 사운드 효과는 사운드 요소가 마치 전체 곡 구조를 실현하기 위함으로 여겨지게 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예컨대 멜로디 전달이라든가, 혹은 이 부분은 훅이라든가 하는 구조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요소에 딜레이나 리버브를 걸어 지속성을 더욱 길게 늘린다면, 사운드의 소멸성을 구조의 진행에 있어 당연한 것으로 파악하기보다는, 그 소멸 과정 자체에 집중하여 사운드를 듣게 된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보컬의 역할 또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보컬은 기능적으로 치환되는 악기의 사운드와 달리 하나의 실존으로 인식되는 경향성이 강하다고 언급했는데, 따라서 악기의 노이즈 속에 파묻혀 가녀리고 약하게 진행되다가, 때로 분에 못 이겨 고함치 듯 그 힘을 쥐어짜내는 보컬은 특유의 허무적이고 무기력한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이 종합되어 북클릿에서 추상화한 허무주의적 정서를 다시 강하게 체감하게 만든다고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데스콘셔스니스는 북클릿의 존재와 앨범의 사운드가 단지 서로 각각 제시되어 붕 떠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 서로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맺으며 더욱 깊고 다층적인 감상을 낳는, 탁월한 종합 매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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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2시간 전

    잘 읽었습니다 데스컨셔니스는 들을수록 보컬이 너무 좋은 것 같은데 그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주셨네요

  • 1 2시간 전
    @Satang

    쥐어짜내는 듯한 보컬이 너무 좋죠

  • 1시간 전

    분명 인스타에서 읽었던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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