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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hiko aoba - 0 리뷰

여름의대삼각형3시간 전조회 수 81추천수 5댓글 0

동일본 지진의 여파와 충격 이후, 2년이 지난 시점의 일본의 분위기는 어떠했을까. 지진이라 함은 사실 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맥락이 결여된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천문학적 금액이 오가는 주식시장의 일상처럼, 상당히 실감이 잘 가지 않는 단어. 그럼에도 한번 조용히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일상이 한순간에 초토화되어버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 분명하다. 어디선가 들리는 엄마를 찾는 아이의 울음소리, 지진 잔해 파편에 깔려 도와달라고 외치는 사람을 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무력한 감정을 느끼고, 인공적인 백색광이 전체를 밝히지 못해 어둑어둑한 대피소의 적막한 분위기,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그 불안은 점차 공기를 타고 전염된다. 그런 당시의 감정은 2년 후, 잔향만을 남긴 채 상실감이 되어 분리되고, 가슴 속에 각인되고 만다.

이때 복구라는 표어는 당시 사람들에게 별 효력을 끼치지 못한 것 같다. 복구라는 단어 자체가 애초에 손실을 전제로 하며, 또한 그 복구의 방향 자체도 불확실한 현대 사회기 때문이다. 그러한 복구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어딘가 무기력한 감정에 맞서, 일본의 대중 문화는 두가지 방향성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불확실한 복구보다, 과거에 대한 추억으로 회귀하는 경향성, 또 하나는 일상에 집중하는 쪽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하는 경향성, 그러니까 상실로서의 일상이 아닌, 단지 하나의 자연스러운 일상으로의 초점화 작업이 진행되었다. 미니멀 문화 양식이나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그런 움직임이 문화 전반에 보이는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나온 이치코 아오바의 0은 꽤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텅 빈 공간에서, 단지 통기타의 소박한 연주와 따듯하게 청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치코 아오바의 보컬이 울리고, 퍼지고, 스며든다. 그런 단순한 음악이건만, 분명 이치코 아오바의 음악은 그런 문화적 상황과, 또한 음악 구조적인 요인 덕분에 짙은 호소력을 지니게 되는 것일 거다.

와비사비에 대하여

와비사비란 덧없음, 그러니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것이 낡아가고, 상실되고, 더욱 근본적으로 사람이 죽음으로 향해가는 모종의 자연 현상에 대해 조화를 이루자는 사상이다. 불교의 유입 이후, 13세기 즈음 부터 자리잡은 일본의 문화적 코드지만, 이러한 코드가 서양화의 화려한 물결 속에서도 다시 재발굴된 이유는 잃어버린 10년의 여파가 클 것이다. 거품 경제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엄청난 경제 침체기가 발생하고, 사람들을 지탱하던 국가 신화가 사라진 이후에 남겨진 것은 조용한 체념의 정서였다. 그 잃어버린 10년간의 공기를 체감하며 청춘을 보내온 감독들,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오야마 신지,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를 보면, 그러한 불안하며, 방황하고, 또 체념적이지만, 결국 일상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당시 공기를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신화가 완전히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히로시마 원폭 사태 이후 폐허가 되어버린 일본의 전후 상황에 대한 환상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발전 신화가 여전히 유효하기에, 노력을 통한 회복이 그나마 대중들을 지탱하고 있던 정서였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감독들의 영화들은 각각 관계를 통한 회복 가능성에 대해 작품 전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동일본 지진 이후 나온 하마구치 류스케의 친밀함에서는, 그러한 관계마저도 실패하며, 뚝딱이고, 결국엔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그런 영화들이 탄생한 것이다. 2021년에 나온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물론 다소 희망적인 결말을 그리지만, 2015년에 나온 해피 아워를 보더라도 참 한마디 교훈으로 축약되기 힘든 복합적인 관계의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해야하는가. 힘내라는 말도, 서로에 대한 의지도 유효하지 않은 완전히 허무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건넬 수 있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잘은 모르겠으나, 이치코 아오바는 단지 그럼에도 곁에 머무르기를 선택한 것 같다. 음악과 음성이라는 매체로 사람들 곁에 묵묵히 존재하기를. 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치코 아오바의 기타 연주는 상당히 뚝딱인다고 표현해야할까, 비슷하게 다소 미니멀한 구성과 핑거피킹 스타일로 이루어진 다른 앨범들과 한번 비교해보자.

핑거피킹 기법, 그러니까 한번에 기타 줄을 스트로크하여 화음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아닌 한번에 한 줄씩 연주하여 음의 잔향을 서로 조화시키는 연주법은 공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연주 가능하다. 예컨대 닉 드레이크의 핑크문 앨범도 대체로 핑거피킹 기법을 따르고 있으며 미니멀한 구성이지만, 공백이 존재하지 않게 촘촘하게 쌓았으며, 주앙 지우베르투의 핑거피킹 기법 또한 공백이 존재하기는 하나 그것은 기타의 파형을 강조하여 일종의 리듬감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치코 아오바의 공백은 무엇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가.

이치코 아오바의 공백은, 그 리듬감의 형성을 목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예컨대 기계장치의 우주에서 후반부 기타 연주) 전반적인 앨범의 곡들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정서는 그보다는 기다림의 공백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치코 아오바가 만들어내는 공백은 불규칙하고, 일반적인 연주들에 비해 길다. 그러한 불규칙함이 다음 음의 기다림과 설렘, 떨림 기타 등등의 감정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또한 이러한 공백의 강조는, 물론 주앙 지우베르투의 연주와도 겹치는 지점이긴 하지만, 필연적으로 공허하고 텅 비어있는 듯한 공간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치코 아오바가 공간감을 형성하는 방식은 공백뿐만이 아니다. 공백은 기본적으로 무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치코 아오바는 숨소리라든가, 혹은 보다 직접적으로 차도의 소리를 삽입하여 더욱 현대적이고 사실적인 무의 공간을 형성한다. 차도 소리라 함은, 물론 시끌벅적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존재하겠지만, 그것은 희미하게 들리며, 또한 무엇보다 하나의 지시물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공허함이 더욱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혼자 차도 곁을 걸으며 무신경한 차들의 소리에 어떤 갈피도 못잡아본 경험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그런 사실적이고 현대적인 공허 위에서, 이치코 아오바는 그저 묵묵히 옆에 존재한다. 여전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치코 아오바 공연에 방문한 사람들은 그녀의 연주에 눈물을 흘렸다.

그럼 다시 한번 현재의 한국의 문화적 상황에 맞춰 재맥락화를 해보자. 세월호 사건 이후, 분명 사람들은 정부와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약해졌다. 또한 이전부터 국가의 거대신화를 담당하던 국가 발전에 대한 갈망과 공동체주의를 기반으로한 낙수효과에 대한 강한 믿음, 또한 입시 신화와 취업 결혼등의 정석적인 루트에 대한 불신이 점차 퍼져나가던 시기였다. 그런 상실감과 더불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 그런 상태가 현대의 대한민국의 문화 전반적으로 공유하는 기조라고 생각한다.

물론 더 강한 믿음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러한 거대신화의 필요성에 호소한 복권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조용히 체념한 사람들에게 있어, 오즈 야스지로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구로사와 기요시, 하마구치 류스케, 아오야마 신지, 신카이 마코토,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이치코 아오바를 필두로 한 일본 문화의 정서적 공명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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