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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Kanye West - Late Registration 리뷰

title: Mach-Hommy온암9시간 전조회 수 245추천수 12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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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ye West - Late Registration(2005)

https://youtu.be/elVF7oG0pQs?si=VzTb6p755PbwZlYP

*풀버전은 w/HOM Vol. 26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hausofmatters.com/magazine/w-hom/#26

칸예 웨스트(Kanye West), 혹은 (Ye). 만약 20년 전, 그가 반유대주의 발언을 일삼고 나치 경례 구호가 담긴 노래를 만든다고 했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칸예의 행보에는 언제나 사건사고와 논란이 뒤따랐으나, 2025년 버전의 그는 커리어를 통틀어 최대의 위기를 스스로의 손으로 초래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오랜 팬들이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만드는 논란의 수위와 규모가 아니다. 그가 발생시키는 문제의 중대성을 떠나, 더 이상 그에게 논란을 무마할 수 있을 만한 음악적 역량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트러블메이커로서 칸예 웨스트의 정체성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그는 대신 언제나 자신에게 닥쳐온 위기를 극복하고 재능으로 보답할 줄 아는 아티스트였다. 단적으로, 이제는 현대 신화로 거듭난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역시 논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역작이었다. 칸예에게 개인적 역경이 닥치거나, 그가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 뒤이어 어김없이 대중음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명반이 배출되었다. 팬들은 이에 ‘명반행동’이라는 우스운 명칭을 붙이며 반 정도는 자조하고, 반 정도는 기대했다.

하지만 그들은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착각하고 있었다. 칸예의 논란 수위와 음악성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그 자신의 죄업을 정면돌파할 만큼 음악가로서 그의 결과물이 걸출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예에게서 과거의 걸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혁명을 바라기는 요원해보인다. 이와 정반대로, 인고의 기간이 연장됨에 따라 자조와 기대 중에서 자조는 점점 옅어지기만 한다. 지나간 광휘에 아직까지 집착하는 신도들은 반인륜적 기행에 어떻게든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고, 그가 힙합을 또 한 번 바꿔놓을 것이란 근거 없는 기대만 일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칸예는 지난 5년 간 힙합을 바꿔놓은 적이 없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이미 힙합을 한 번 바꿔놓은 자신에게 도전했을 때마다 또 다시 힙합을 바꿨다. <Late Registration>은 그에게 본능적으로 내재된 전위예술가적 욕구에서 기인하며, <The College Dropout>으로 완성한 칩멍크 소울 유행에 정면으로 내미는 도전장과도 같다.

흔히 ‘올드 칸예’로 분류되는 대학 3부작 중 일렉트로팝/아레나 락 친화적인 프로덕션으로 확연히 구별되는 <Graduation>을 제외한다면, <The College Dropout>과 <Late Registration>은 동일한 범주에서 설명되곤 한다. 의아하게도. 소울 음악에 기반한 온난한 톤의 유사성 탓에 두 앨범 간 변화의 폭은 언제나 과소평가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작에서 <Late Registration>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칸예가 가한 혁신의 규모는 상당한 수준이다. 앨범 제작을 위해 60만 달러의 빚을 졌다는 등의 재밌는 사실이 여럿 포함된 제작 비화를 살펴보면, 우리는 칸예 웨스트가 커먼의 <Be>와 자신의 정규 2집 앨범을 동시에 작업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시카고의 수재를 위해 Dilla의 과업을 승계한 <Be>의 프로덕션은 그야말로 칸예 칩멍크 소울의 최종 완성형과도 같았다. 육감적인 차핑과 리듬에 대한 칸예의 천부적인 감각이 재단된 소울 음악의 결을 따라 흐르며 완성된 비트들은 당시까지 칸예가 프로듀싱한 그 어느 비트들보다도 칸예다운 방식으로 훌륭했다. 그렇다면 본작의 음악적 과제는 당연히도 과거 자신의 최고를 뛰어넘는 일이었을 것이다. 20년이 넘는 커리어 내내 끝없이 자기 자신을 초월하려는 강박적 본능의 일환, 바로 그 첫 순간이었다.

때문에 <Late Registration>은 <The College Dropout>의 공식을 의도적으로 회피해간다. 많은 청자들이 놓치고 넘어가는 부분이지만, 본작에는 칩멍크 소울이 사용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원형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 느려질 뿐, 모든 샘플들은 프로듀싱 프로세스의 선율적 청사진으로 기능하기보다 거대한 하모니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융화된다. Adam LeVine의 관능적인 믹스보이스 테너와 함께 대학 정문을 여는 “Heard 'Em Say”의 대체 불가한 서정미를 음미하라. 또 Hank Crawford의 “Wildflower”를 힙합 역사상 가장 훌륭하게 샘플링한 “Drive Slow”의 도시적 세련미를 목도하라. 두 곡 모두 2개의 상이한 샘플을 거의 가공없이 합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원래 한 곡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오히려 칸예의 손길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된 것 같기까지 하다. Etta James의 관능적인 “My Funny Valentine”을 샘플링한 “Addiction”은 또 어떠한가? 기타는 차핑되었음에도 그 잔향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공간감은 증폭되며, Etta James의 보컬은 미세하게 절단되어 박자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다양한 장르를 탐닉하면서도 칸예는 이어짐의 미학을 결코 망각하지 않는다. 최상의 리프만을 추출해 이음새 없이 정결하게 자신의 곡으로 승화시키는 재능, 본능적인 대담함이 정장을 차려입고 우아함까지 더했다.

https://youtu.be/6vwNcNOTVzY?si=vbMml8L_TzKYz-7z

드럼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전까지는 드럼 샘플러를 애용했던 그는 본작에 이르러 수제 드럼 프로그래밍의 비중을 확연히 축소한다. 대신 고전적인 붐뱁 브레이크비트 기법을 전격적으로 도입해 악곡의 빈티지한 질감을 강조하며 향수감을 더해낸다. “Crack Music”에서 칸예가 어떻게 “It’s Your Thing” 브레이크를 본작 최고의 드럼으로 만드는 지 주목하라. 그것은 너무 위력적인 나머지 Kendrick Lamar, Run The Jewels와 Denzel Curry, 그리고 칸예 자신마저도 “POWER”에서 다시 사용했다. 물론 불여일견 본작 최대의 히트 싱글인 “Gold Digger”의 반례를 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Ray Charles — 로 빙의한 Jamie Foxx — 와 James Brown을 MPC에 담고 “Bumpin' Bus Stop”이라는 저명한 드럼 브레이크를 자기 마음대로 뜯어 개조한 비트의 연속적인 킥은 정말 참을 수 없이 천박하지만, 동시에 빌보드 싱글 차트 10주 연속 1위에 걸맞는 중독성을 지니도록 디자인되었다. 더 놀라운 점은, 그러면서도 “Gold Digger”가 <Late Registration>에 수록된 것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전에 등장하는 “Touch The Sky” 또한 마찬가지이다. 유일하게 칸예의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한 비트, 하지만 동시에 유일하게 칸예의 작품이 아닌 비트. 그럼에도 앨범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Curtis Mayfield 불후의 명곡 “Move On Up”을 샘플링했기 때문일까? 혹은 단순하게도 Just Blaze의 스타일이 칸예와 유사했기 때문일까? 이 당시 칸예의 예술적 비전을 정확히 형용해내기엔, 본작은 모든 발상과 우연이 마치 마법처럼 맞물리며 섬세하게 조직된 결과물이다. 본작의 핵심 정체성이 팝이 아님에도, 결과론적으로 팝이 되었다. 위대한 예술성을 가장 보편적인 모델로 개량해 제시하는 선구자로서의 능력, 그것이야말로 칸예의 진정한 천재성이었다.

이 모든 예술적 성취에서 결코 제외되서는 안될 이름이 존재한다. Jon Brion. 본래 인디 음악 프로듀서였던 그는 <리노의 도박사(HARD EIGHT, 1996)>를 시작으로 영화음악에 발을 들이며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의 오리지널 스코어까지 작업했다. 그리고 극장에 칸예 웨스트가 있었다. <이터널 선샤인>을 관람하고 지대한 감명을 받은 그는 앨범의 완성을 위해 Jon Brion을 스튜디오로 소환했다. Paul Thomas Anderson이나 Michel Gondry, 혹은 Fiona Apple 정도만 있었던 그의 이력서에 엉뚱하게도 Kanye West가 추가된 것이다. Jon Brion의 조력이 단순 편곡에 그쳤는지, 혹은 샘플 채택 과정에도 관여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Jon Brion의 존재가 칸예 역량 외의 작업에서 필수적이었다는 사실이다. Just Blaze의 “Touch The Sky”, “Drive Slow”, <Be>의 레프트오버 인터루드 “My Way Home”, 그리고 “Late”을 제외하면 Jon은 모든 곡에 참여했다. 그의 능력은 칸예가 <이터널 선샤인>을 관람하고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로 발휘되었는데, 본작에서 그의 실질적 영향력은 영화 OST에서 발휘되었던 재즈적 터치의 미니멀리스트보다도 오케스트라를 위시한 맥시멀리스트에 가깝다.

만약 앨범을 청취하다가 샘플이 아닌 것처럼 들리는 키보드를 인식하게 된다면, 그것은 온전히 Jon Brion의 공이다. 신스 키보드, 보코더, 어쿠스틱 기타, 실로폰 등 차마 다 세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악기를 가용해 사운드의 공백을 촘촘히 채워나가는 그의 프로듀싱은 칸예의 기상천외한 발상이 어디까지 뻗어나가는지 상관없이 그것을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Jon Brion의 존재감이 칸예 웨스트를 완전히 압도하는 호화로운 사이키델릭 소울 프로덕션을 재현하는 “Celebration” 정도를 제외하면 Jon은 철저히 무대 뒤의 조력자로 남아 칸예의 비전을 현실화한다. 그 중 그의 조력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다름 아닌 오케스트라이다. “Bring Me Down”처럼 다소 상투적인 사례도 있으나, Otis Redding으로 시작해 잦은 변주로 삼라만상을 담아내며 칸예 커리어 최고의 벌스로 종결되는 뮤지컬 엔딩 “Gone”처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례도 존재한다. 정점은 뭐니 뭐니 해도 “Diamonds From Sierra Leone (Remix)”와 “We Major”이다.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1971)>의 테마곡을 골격으로 빈틈없이 보간하며 영화적인 프로덕션을 이룩한 “Diamonds From Sierra Leone (Remix)”의 규모는 가히 감격적인 수준이다. 그리고 그 감동이 채 지나기도 전에, “We Major”의 장대한 오케스트레이션은 힙합이 고위 예술로도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언한다. 우리는 고작 두 작품 만에 칸예에게서 전성기 The Beatles에 버금가는 예술적 야망을 포착할 수 있었다.

<The College Dropout>이 습작처럼 들릴 정도로 웅장한 <Late Registration>의 세계는 당시 힙합이 도달할 수 있는 예술적 한계와도 같았다. 동시에 그렇기에, <Late Registration>은 힙합으로 성립하기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앞서 짚어낸 본작의 모든 장점은 역설적이게도 칸예의 음악이 힙합으로 충분히 가공되지 않더라도 좋게 들릴 수 있다는 반증과도 같았다. 그가 음악의 완성도를 개선하기 위해 동원한 수단은 하나 같이 힙합 외적인 원소들이었고, 설령 그것이 힙합 문화 자체가 발전한 역사와 동일하다고 한들 프로덕션 자체도 기성 힙합보다는 전위적인 네오 소울에 보다 가까웠다. 때문에 <Late Registration>에는 그 무엇보다 칸예 본인의 역할이 가장 중대해진다. 오직 그의 랩으로 인해 본작은 힙합 앨범으로서 무사히 규정될 수 있다. 사실 지금이야 Playboi Carti나 Lil Durk와 어울려다니는 게 자연스러워졌지만, 그때의 칸예는 Common, Talib Kweli, Slum Village 같은 이름들과 유사한 존재였다. 동시에 흔치 않게 대중적 성공까지 거두며 그들의 희망이 되기도 한 장본인이다. 바로 다음 앨범에 이르러 백팩을 집어던지고 탈출해 빛바랜 감이 있긴 하지만, <Late Registration>은 Jungle Brothers, De La Soul과 A Tribe Called Quest로 대표되는 계보의 마지막 걸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체음악적인 혁신의 연속과 독특한 의식적 관점은 그를 칼리지 래퍼로 분류하기에 충분하게 만들었지만, 매니아들이 본작의 성취를 관망하며 결정적으로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 대학 중퇴생이 다분히 자아도취적이라는 것이다.

https://youtu.be/92FCRmggNqQ?si=60YhuSsgbTAaTSHI

고작 세 곡만에 우리는 본작을 대표하는 칸예의 모든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냉소적인 관찰자(“Heard 'Em Say”), 승리감에 도취된 랩스타(“Touch The Sky”), 우회적으로 비판하지만 개선의지가 없는 남성(“Gold Digger”). 스킷에서 질릴 정도로 반복되는 ‘Broke Phi Broke’ 클럽 시퀀스로 칸예의 블랙 코미디적 본능과 흑인 커뮤니티에 대한 비판적 성향이 온존해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나, 그는 전작보다도 약간 더 진지하다. “Heard ’Em Say”에서의 묘사적 서술은 아름다운 피아노 멜로디를 반어적으로 들리게 만들 정도로 현실을 냉정하게 수용하고 있으며, “Diamonds From Sierra Leone (Remix)”에서 블러드 다이아몬드 생산자와 소비자의 현실을 대조하면서도 이내 방관을 택하며 모순적인 드라마를 형성하는 탁월한 리릭시즘은 MC로서의 칸예를 자칫 저평가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이러한 능력이 폭발하는 순간은 “Roses”에 존재한다. NBA, Sign some T-shirts, Auntie team 등 주옥같은 라인을 남기며 위독한 병상의 모습을 프랑스 시네마적으로 조명한 칸예와 코러스에 이르러서야 드럼을 해방시키는 프로덕션의 조합 — 그야말로 극적인, 프로듀서로서 생략을 택한 칸예와 작가로서 감정선의 엇갈림을 택한 칸예의 천재성이 양면에서 각광받는 시점이다. 혹자는 이와 같이 탁월한 가사를 칸예가 혼자 작성했을 수 있겠냐며 의심하지만, 그가 이미 대필 사실을 밝힌 시점에서 요는 ‘칸예가 어느 부분에서 대필을 썼냐’보다 ‘칸예가 대필을 받았다면, 그것을 얼마나 자신답게 본인의 정체성에 수용했느냐’가 될 것이다. 특유의 종결운을 늘리는 라이밍 스타일과 시종일관 비꼬는 투의 컨셔스 래핑, 이것이 칸예의 자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물론 그가 언제나 굳은 얼굴로 쓴 미소를 날리며 냉소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칸예는 랩스타로서 본인의 기적적인 성공에 축배를 들다가도 불안해하며, 동시에 반대자들에게 강하게 응수한다. 그러다가 다시 불안해하며 실존적 위기를 느끼고 자조 섞인 사회비판을 일삼기도 한다. 그 수위가 Reagan이나 Bush를 언급하는 것 이상으로 정치적으로 변질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컨셔스 랩에 사회 변혁 의지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중산층 출신이라는 스페셜리스트로서 그의 성향은 다분히 이기적이지만, 그렇기에 여타 래퍼들이 보지 못하는 맹점을 짚어낼 수 있다. 물질만능주의로 왜곡된 이성 관계, 약물과 섹스에 중독된 다수의 삶, 미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 등 지금까지 랩에서 쉽게 거론된 적 없는 사회적 문제를 거론하지만, 정작 그것은 묘사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변화를 촉구하지 않고 청자들에게 선택을 전가하는 무책임함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극의 주인공으로서의 그를 입체적인 인물로 만드는 원동력이다. 게다가 그는 그 모든 주제를 총망라하면서도 앨범의 집중력을 저해하지 않는 — 힘 있는 목소리의 지휘자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가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역시나 그가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다. “Dear Mama” 이후 힙합 최고의 모성 찬가인 “Hey Mama”의 가사는 비단 한 곡의 감동을 초월해 칸예의 커리어에서 결코 논하지 않을 수 없는 중대한 기점으로 승화된다. 그가 비록 본작의 예술적 성취에 걸맞는 랩 기술자는 아닐지언정, 그의 독특한 캐릭터는 본작의 특별한 지위에 확연히 어울린다.

이는 칸예보다 게스트들의 활약이 더 뛰어날지라도 그의 존재감을 희석케 용납하지 않는 억제제로도 작용한다. 다시 말해, 주객전도가 발생할 염려 없이 풍부한 다양성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객원들로부터 최고만을 요구하고 끝내 받아내는 완벽주의적인 연출가로서, 칸예는 타 MC들이 본인보다 뛰어난 라임을 쓰도록 권장한다. 당시로서는 “Touch The Sky”에서 잊지 못할 벌스를 남긴 당찬 시카고 신예 Lupe Fiasco가 최고의 발견이었겠으나, 2000년대 힙합에 친숙하지 않은 뉴비들에게는 Paul Wall, Cam’ron, Consequence 등 원숙한 견고함을 들려준 이들의 활약이 의외로 인상적일 것이다. 물론 최고의 벌스들은 앨범 최고의 곡 2개에 각기 존재한다. 그것도 최고의 래퍼들에게서 말이다. 마치 자신은 “Takeover”를 프로듀싱한 적 없다는 듯, 칸예는 “Diamonds From Sierra Leone (Remix)”에서 힙합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Jay-Z의 등장을 주최한 후 곧바로 Nas가 “We Major”에서 “N.Y. State Of Mind”의 전설을 재현케 하도록 한다. 둘을 견준다면 ‘I’m not a businessman, I’m a business, man”이란 라인을 남긴 Jay-Z의 활약이 근소히 우위로 판단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예술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경쟁의 역사 따위는 과감하게 무시하는 칸예의 대담함이다. 그는 진정 <Late Registration>을 걸작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 부응하듯, 그 모든 수단과 방법은 최고를 선사했다.

빈티지와 혁신은 합치하고, 소울과 재즈는 오케스트라와 협력하며 고전에 걸맞는 풍미를 더해갔다. 힙합이 여태 겪어본 적도 없는 거대한 노스탤지어의 파도 속에서 오직 칸예의 식안만이 유일한 한 줄기의 등불과도 같았다. 당시로서 가장 앞서나간, 그러나 지금까지 힙합 외 어느 장르를 둘러봐도 복제품을 찾을 수 없는.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과 <Aquemini> 이후 가장 디테일하게 설계된 힙합 맥시멀리즘의 걸작. <Late Registration>은 올드 칸예 최고작 논쟁을 벗어나 힙합의 혁신성과 예술성을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클래식이다. 그리고 다시 눈길을 20년 후로 옮겨보자. 작금의 그는, 정확히는 그의 음악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 그의 떼묵은 도전정신이 한낱 공산품보다도 못한 범작으로 귀결되고 있는 시점에, 그가 아직도 세상에 반기를 들고 있음에 대안 우파적인 의미라도 부여해야 하는가? 그는 오직 자기 자신을 초월함으로써 음악을 바꾼 위대한 아티스트였고, 때문에 그가 변화를 멈추고 정신병증적인 부산물을 여과없이 토해내기 시작한 시점부터 — 음악가로서나, 스피커로서나 이미 그는 수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가 과거와 같은 명반을 배출하지 못한다면 그는 더 이상 표면상으로나마 용서받을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에게 모질어질 수 없다. 그의 과거는 숱한 명반을 창조해 힙합 음악을 바꾼 위대한 전위음악가이기에. ‘He made The College Dropout’, ‘He made Late Registration’, ‘He made Graduation’, 이 문장들이 더 이상 칸예의 기행에 대한 변명은 되지 못하더라도 그를 마음속에서 잃지 못할 이유는 될 수 있다. 이미 내심 그에게 면죄부를 부여해버린 것이다. 그를 빼놓고 힙합을 논할 수는 없다. 더 간단하게, 그의 음악은 너무나도 좋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부류의 천재가 다시 등장하지 않기에, 더욱이 그에게서만 만족스러운 규모의 힙합 혁명을 고대하는 기약 없는 기다림만이 무한하게 연장될 뿐이다. 더 이상 칸예에게서 <Late Registration>이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같은 걸작을 만날 수 없다는 걸 내심 인정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7월 26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폭죽과 함께 “Touch The Sky”가 재생되고 첫 벌스의 마지막 네 라인을 따라불렀을 때, 당신은 달 위의 칸예에게서 무엇을 비쳐보았는가? 오직 라이브로만 만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예술가로서의 칸예? 혹은 이미 한참 지나가버린 거장의 잔상? 무엇을 보았던 간에, 단발적인 쾌감 뒤에는 공허한 절망만이 남았을 것이다. 그는 이미 짙은 연기 속에 묻혀 너무나도 멀어졌기 때문이다.

https://youtu.be/YkwQbuAGLj4?si=ImvG_4KDpjqE5ztz


 

블로그: https://blog.naver.com/oras8384/223999973357

 

역시나 정확히 20주년은 아닙니다. 8월 30일에 나왔어요.

향후 칸예의 과거 걸작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다루는 글이 더 나온다면, 아마도 현재 예가 얼마나 망가졌는지와 동시에 과거 그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지 대조하는 양식이 유행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요.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이처럼 극적이고 믿기지 않는 몰락이 또 있었나 싶습니다.

그와 별개로, Late Registration의 프로덕션은 정말 놀랍네요. 말도 안될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워요.

사견이지만, 음악적 성취 면에서 The College Dropout은 Late Registration에게 정말 상대도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Diamonds From Sierra Leone이나 Gone을 들으면 새삼 이런 걸 무슨 수로 만들었나 싶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보다도 뛰어난 면이 있을지도...

칸예는 본인을 예라고 불러달라고, 칸예라고 부르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거라는데...

저는 공적인 자리를 제외하면 계속 돈다의 아들 칸예로 부르고 싶네요.

제가 이기적인 건지, 혹은 과거의 그와 현재의 그를 다른 존재로 보는 건지...

저는 칸예 웨스트가 좋습니다. 진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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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7시간 전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 7시간 전

    누가 뭐래도 칸예 커하.

  • 4시간 전

    근 몇년간 칸예의 행보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추한 몰락중 하나였음. 별개로 이 앨범은 칸예 커하 맞는듯 앨범이 너무 아름다움

  • 좋은 글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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