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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아프리카, 인종차별, 짐 크로우, 백색과 황색의 빛으로 점칠된 미국의 상류 사회와 그 빛의 가장 아래 매질에서 탐욕스러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불평등과 범죄의 심연. 이 요소들은 미국의 흑인 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힙합 음악—에서 흔히 다뤄져오고, 반추(反芻)되어 왔던 것들이었다. 가장 시초 격으로는 8,90년대의 Public Enemy와 N.W.A가 흑인들의 비참한 현실과 울분을 퍼덕거리고 쿵쾅대는 격렬한 생동감을 지닌 음악으로 선보였으며, 사회 비판적인 힙합 음악들은 그 후에도 크고 작은 물줄기를 거쳐, 오늘날에는 Kendrick Lamar와 언더그라운드 씬의 잔뼈 굵은 래퍼들로부터 대두된 복잡하고, 성찰적이며, 깊은 내용을 담은 음악들이 뿌리를 뻗어나가고 있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뿌리의 주근(主根)을 담당하면서도 은닉되어 있었던 뮤지션이 여기 있다.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는 인물, billy woods다. 스스로 얼굴을 감추고는, 비범함이 느껴지는 톤과 소름 돋는 필력으로 무장한 채 음악을 휘둘러대는 그는, 데뷔 이래로 지금까지 씬에서 가장 위대하고, 걸출한 음악을 분출해오던 명실상부한 명인이었다. '앨범'이라기보다는 '산문'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그는 명료하고도, 암유적인 가사로 자신의 과거와 미래, 미국이라는 거인의 기구한 몸짓의 역사를 앨범 하나하나에 집대성해왔며, 그 결과물들은 역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작품들로 남아 왔다. 예컨대, <Aethiopes>는 그의 음악적, 문학적 능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내어 보여준 최고의 앨범으로 자리잡았고, <Maps>는 일상의 소소한 요소들과 여행이라는 친숙한 소재로 뉴욕의 어두컴컴하고 일그러진 어두운 면들을 비틀어 선보였으며, <Hiding Places>는 그의 스타일을 가장 뒤틀리고 껌껌한 무대에서 가장 잘 토해낸 곳으로 남았다. 한 번, 한 번의 자취마저도 크나큰 폭풍우로 변형되어 우리를 휩쓸었던 그의 다음 여정은 오늘 소개할 <GOLLIWOG>였다.
billy woods는 이번에도 미국 흑인들의 어두컴컴한 이야기를 담아왔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반복적으로 이 주제를 다뤄왔다. 아무리 미국 흑인들의 음울하고, 끔찍한 역사, 그리고 현재가 묵직한 중압감을 지닌 서사라고 할지언정, 소재가 반복되면 그 소재가 얼마나 육중한지는 소비자들에게 하여금 그다지 큰 기여를 해주지 못하는 법이기에, 흑인 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비판도 점차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billy woods도 당연히 알고 있었고, 그는 항상 이 소모재를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신화적인 작사 능력으로 구현해 내는 공감각적인 이미지로 이를 무마해왔다. <GOLLIWOG> 역시 그러한 그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 중 하나이지만, 새로이 도입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청자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호러코어다. "Jumpscare"는 앨범의 초장부터 으스스한 분위기와 소름 끼치는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못박아놨고, "STAR87"은 공포 영화 <낯선 사람에게서 전화가 올 때>의 장면을 그대로 샘플링하여 노골적으로 앨범을 공포적인 배경으로 꽉 채울 것을 예고한다. <Hiding Places>와는 결이 다른 호러코어에, 청자들은 흥미를 최대로 높이고, 공포감에서 오는 거북함과 거부감 속에서 billy woods의 가사를 곱씹으며, 앨범에 푹 빠져들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호러코어를 통한 새로운 발걸음은 실로 엄청나고, 성공적인 시도였다.
섬뜩하고 괴이한 에움길을 굽이져 걸어가다 보면, 가끔씩 등장하는 익숙한 사물들에 안도감을 느끼듯, <GOLLIWOG>에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billy woods 특유의 스타일이 직선적으로 드러나는 트랙들이 우리의 마음을 달래준다. 관능적인 색소폰 위로 그의 담담한 톤과 래핑이 두드러지는 트랙 "Misery"부터 EL-P의 여전히 뛰어난 프로듀싱이 포함된 "Corinthians", 그리고 기괴한 에움길을 모두 지나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하기 직전의 비교적 평온해진 감정이 떠오르는 앨범 막바지의 "Born Alone" - "Dislocated"까지.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GOLLIWOG> 속에도 우리가 사랑했던 billy woods의 익숙한 모습들이 잘 담겨있다는 것이다.
잔혹한 냉소를 품은 채로 우리에게 칼날 같은 단어들과 문장을 들이대왔던 그는 적개심과 암영의 실루엣으로 가득 차 있는 사운드 위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폭발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진부함을 경감시켰다. 이제 그와 비견할만한 인물이 산 자 중에서 남아있을까? MF DOOM의 정신과 실력을 모두 인계받은 듯한 그는 이제 씬에서 넘볼 자가 없는 인물로 떠오른 것이 자명하다. <GOLLIWOG>의 마지막 트랙의 제목처럼, 그는 이제 래퍼들에게 있어서 "Dislocated"한 인물이다. 얼굴 없는 전설이여, 영원하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얼굴 없는 전설이여, 영원하라!
고맙습니다
글잘쓰시네용
고맙습니다
AOTY
압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좋아요
고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개추가 두배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추천 버튼 두번 누르셨다구요?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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