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쪽으로든, 비판적으로든, 현재 힙합 씬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몰고 있는 Doechii. 물론 동시에 커리어 사상 가장 침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기도 한 그녀다. "DANIAL IS A RIVER" 바이럴 논란으로 시작된 잡음은 "Anxiety" 바이럴로 증폭되더니 "Timeless Remix"로 정점을 찍어버렸다. 이에 더해진 멧 갈라에서의 갑질 논란은 덤. 지금 그녀의 상황은 실로 비참하다. 각종 매체의 그녀에 대한 글에서는 그녀에 대한 비판과 조롱은 성행되다 못해 기본이 되어버렸으며, 그녀의 곡에 대한 바이럴을 그녀를 조롱하는 것에 대한 바이럴이 잡아먹다싶이 했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https://youtu.be/YzizrbBFTak?si=0ZazRwyMCZWck--Q
사실 그녀의 상황은 몇 달 전만해도 파란만장했다. Tyler의 "Balloon"에 참여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호평받았고 오늘 다룰 <Alligator Bites Never Heal>에 대한 힙합 리스너들과 대중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어쩌다가 몇 달이 채 안 되는 기간만에 이렇게 변해버린 것인가? 그녀는 왜 씬에 오래간만에 등장한 루키에서 'Industry Plant'로 변모해버린 것인가? 그녀의 체급을 올림과 동시에 그녀에게 바이럴 스타라는 악명을 드리우게 한 믹스테잎 <Alligator Bites Never Heal>의 첫 가사 "Let's start the story backwards"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거꾸로 짚어보자.
2022년, 여러 언더그라운드 - 메이저 래퍼를 배출해낸 TDE와 계약하고, 2022 XXL Freshman Cypher에 이름을 올리면서 메인스트림을 향한 전철에 오른 그녀는 "What It Is (Block Boy)"으로 바이럴에 성공하면서 힙합, 알앤비 팬들과 대중들 모두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 다음 해에 발매한 대망의 <Alligator Bites Never Heal>는 과연 대중들과 장르 팬들을 모두 끌어모으는 데에 성공했다. 알앤비와 힙합의 경계에서 그 둘을 넘나들며 혼합된 음악을 구사하던 그녀의 스타일이 짙게 묻어나온다. 또, 그녀가 자랑스레 여기는 플로리다 출신을 외치면서도, 그곳 특유의 어떤 트랩과 클럽 사운드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색채를 꾸준히 연구해 왔던 그 연구의 성과가 본작에서 빛을 발했다.
Doechii의 음악은 흔히 힙합이나 얼터너티브 알앤비로 구분되고, 본작에서 그녀는 이 범주를 탁월하게 따른다. 앨범은 두 파트로 나뉘어있다. 그녀의 날카로운 래핑을 선보이는 초반부와 여성 래퍼들이 익히 구사하는 달달한 알앤비, 소울 사운드가 주를 이루는 후반부로 말이다. 앨범의 초반부에 위치한 "DENIAL IS A RIVER", "CATFISH" 같은 곡에서 들려주는 래핑은 Trina나 커리어 초창기의 Nicki Minaj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전위적인 감상이며, 90년대 힙합의 사운드와 익스페리멘탈한 사운드까지 구현해놓은 프로덕션과 그녀의 날렵한 래핑이 맞물려 최고의 순간들을 선사한다. 현재의 Doechii가 여러 논란으로 조롱을 받는 중에도 래핑 하나만큼은 얘기가 없는 것을 보건대, 그녀의 랩 스킬, 퍼포먼스 만큼은 가히 흠잡을 것이 없는 수준임을 알 수 있다.
https://youtu.be/t8VC50Q2R6A?si=GM36LVXLsVZbh5SG
필자가 지금까지 글을 통틀어 그녀를 호평했지만, 그녀의 바이럴과 논란을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획사의 막무가내식 바이럴, 광고 공세로 억지로 곡을 차트와 SNS에 띄우는 유니버셜 뮤직식 바이럴 공세는 힙합 씬 뿐만 아니라 음악 산업 전체에 있어서 크나큰 폐단이다. 억지로 대중들을 세뇌시켜서 소비하게 만드는 것을 음악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억지 바이럴은 당사자—아티스트에게도 심각한 부작용을 준다. 예컨대, Kendrick Lamar를 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중 하나고, <GNX>와 일련의 디스전으로 그가 씬에 남긴 풍파를 부정할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가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데에 유니버셜 뮤직의 바이럴이 있었다는 것을 모를 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씬의 굵직한 아티스트를 넘어 사실상 위인으로 남을 지도 모를 그가 일부에게 공격받고 인정 받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바이럴 논란이 클 것이다. 이처럼 억지 바이럴 공세는 아티스트의 커리어 자체에 크나큰 오점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녀의 태도 논란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멧 갈라에서의 갑질 논란은 그 영상을 보기만 해도 거북하고 정이 뚝 떨어진다. 그녀의 태도는 아무래도 그녀가 무명이던 시절, 유튜브에 업로드했던 영상들에서 보여준 MZ식 마인드가 팬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고, 각광받았었다. 허나, 당시의 그녀는 일반인이었고, 현재의 그녀는 엄연한 공인인데, 당시의 태도를 아직도 지니고 공적인 자리에서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무리 힙합이 자유분방한 장르라고 한들, 그녀에 대한 눈쌀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에 더해서 이후 틱톡에 업로드한 대충대충식 해명 영상도 큰 공분을 샀으니 말이다. 이 바닥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다시 앨범 이야기로 넘어와보자. 후반부의 잔잔한 알앤비, 소울 무드는 여타 여성 래퍼들에게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요소이지만, Doechi 특유의 스타일이 접목되었다는 점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SLIDE", "BEVERLY HILLS"를 보면 그렇다.
따스한 분위기로 가득 찬 후반부이지만, 그녀의 퍼포먼스와 하드한 래핑을 가장 잘 담아낸 트랙이 여기 존재한다. 바로 "NISSAN ALTIMA". 2분 7초의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빠른 플로우와 강렬한 에너지가 돋보인다. 또,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놓고, 유머스러운 가사들로 집중력을 기하게 만든다.
https://youtu.be/F0cdbR5ognY?si=CVnioSg-rbnrq2_t
본작과 Doechii를 음악적으로만 놓고 보았을 때, 필자는 훌륭하다는 평을 남기고 싶다. 특히 본작을 칭찬하고 싶다. 그녀의 'Swamp Princess'라는 독특한 페르소나를 도입했고, 잘 활용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을 잘 담아낸 탓이다. 필자는 지금의 그녀에게 조롱이나 비판보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싶다. 본작이 드랍되었을 당시에, 필자는 그녀가 Tyler, The Creator나 Kendrick Lamar의 전철을 밟아 예술적인 힙합으로 충분히 대중을 설득할만한 대목이 될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그녀는 Ice Spice, Cardi B와 별차이가 없어보인다. 유니버셜 뮤직의 압박으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바이럴 중인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만, 자신이 충분히 그것을 끊어낼 수 있었거나, 혹은 자신이 바이럴을 원한 것이라면 필자는 상당히 실망스럽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아무튼, 이미 바이럴은 돌려졌고, 논란은 쌓여버렸으니, 그녀가 아티스트로서 소생할 방법은 직접 증명하는 것 뿐이다. 그녀가 자신만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를 들고 올지, 혹은 지금의 Kanye처럼 몰락할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 생과 사의 지점은 오로지 그녀의 자취에 담겨있다. 3.5/5
https://rateyourmusic.com/~kmming_real
추천은 선택 아닌 필수
꾸준히 좋은 글 쓰시네요 잘읽엇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추후감
좋습니다
국내에 마미손 뷰티풀노이즈만 보더라도 억지 바이럴은 아티스트에게 큰 독인 듯 싶습니다 앨범 잘 뽑았는데 참
노래는 잘 뽑는데 유명하지 않은 아티스트들 체급 올리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는데
문제는 그렇게 올라가면 자신이 직접 증명을 빡세게 해야한다는 것이 문제
좋을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 진짜 공감되네요ㅋㅋ
그런데 아무리 바이럴이 문제라 해도 역시나 문제는 본인에게 있는법이죠
차기작으로 여론을 뒤집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블핑제니랑 싱글 낼 때 이미 래퍼에서 연예인으로 노선을 틀었다고 봅니다. 힙합 좋아하는 척 하며 대중 앞에 섰지만 결국 예능방송인 수준에 머물게 된 이영지나 딘딘처럼. 사실상 언제든 넘어갈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지금 꼴 보면 그래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을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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