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ndrick Lamar - GNX
https://youtu.be/U8F5G5wR1mk
Ty Dolla $ign과의 합작 <VULTURES> 2부작으로 깊은 절망을 안기고선 한국과 중국에서의 역사적인 이벤트로 금의환향한 Kanye West, 절대적일 것만 같았던 몇 규율에서 탈피하고 신작 <CHROMAKOPIA>로 하나의 문화 유행을 선도한 Tyler, The Creator. 이 힙합 아이콘들을 모두 제치고,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는 앨범 한 장 내지 않은 채 순수히 리릭시스트로서의 역량과 무자비한 폭력성만으로 힙합 디스 역사의 한 장을 캐나다 출신 래퍼의 피로 물들이며 한 해를 대표하는 래퍼가 되었다. 다섯 차례에 걸친 —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었던 — 계산적이고 폐륜적인 공격으로 Drake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철저히 짓밟은 켄드릭의 승전가를 전 세계가 열창했고, 세상은 'The Pop Out: Ken & Friends' 콘서트로 웨스트코스트의 저력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사랑과 평화를 위해 때로는 폭력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최근 그의 철학이 Drake라는 제물에게 잔혹한 방식으로 반영되며, 각각 장르의 상업성과 예술성을 상징하는 초신성 충돌로 인해 마침내 힙합이 부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0년대에 들어 코로나바이러스의 시대를 거치며 유독 부족한 성적을 보여주었던 힙합은 2024년 현재, 5년 만에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동반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자신이 피와 살을 직접 발라내며 살려낸 무대에서 켄드릭 라마는 과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Mr. Morale & The Big Steppers>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갈릴지언정, 그 자가적 심리 치료 과정에서 켄드릭 라마가 '구원자', '영웅' 등 기존에 그를 수식했던 모든 컴플렉스를 내려놓고 본인의 삶을 되찾겠다는 결말에 감동을 받지 않은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그의 서사는 위대해지진 못했지만 인간적이기에 더 아름답게 종결되었다. 그런데 꽤나 당혹스럽게도, 지난 디스전에서 그는 이미 내려놓은 사명을 다시 짊어진 듯 보인다. 그것도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그가 내려놓은 것은 영웅 일대기의 주역만이 아니라, 일말의 도덕적 책임감마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각설하고, 한 시대를 수놓았던 그의 지성이 건재하다 한들 그의 화법은 분명 더 직설적으로 변화했다. 'euphoria'의 악명 높은 "I hate the way that you walk, the way that you talk, I hate the way that you dress" 라인이 대변하듯, 켄드릭의 전달은 컨셔스 래퍼보다도 배틀 래퍼의 것에 근접하며 그의 당위는 지극히 단발적인 욕구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단발적 신경 반응은 켄드릭 본인의 철학과 직결된다. 그는 문화의 일부라기보다도 자기 자신이 곧 문화라는 프라이드에 지배당하며, 여느 위대한 힙합 아티스트들이 그러했듯이 그 허황된 비전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 본인이 '생존 경쟁'이라 묘사한 바 있는 험난한 생 속에서 외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변모한 켄드릭의 폭력성에 대한 자기 정당화를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그가 지난 10년 동안 가장 모범적인 자가성찰로 이룩한 업적의 방향을 이제 스스로 부정하고 있을 때, 그가 그토록 절박하게 호소했던 심리 건강 악화에 귀기울인 이는 얼마나 존재했는가? 애석한 일이지만, <To Pimp A Butterfly>의 켄드릭 라마는 이제 없다.
This is not for lyricists, I swear it's not for the sentiments
Fuck a double entendre, I want y'all to feel this shit
Kendrick Lamar, 'wacced out murals' 中
때문에 본작 전체에 걸쳐 분노와 환멸감, 우월의식이 느껴지는 것은 결코 의아한 바는 아니다. 오프닝 'wacced out murals'는 현재 켄드릭 라마의 심정과 그가 처한 상황을 완벽하게 축약한다. 충격적일 만큼 육중한 전자 베이스를 필두로 엮어낸 미니멀리즘 오케스트레이션이 조성하는 긴장감 속에서 켄드릭은 지난 9월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던 트랙 'Watch The Party Die'의 연장선을 그리며 업계에 대한 회의감과 개인적인 분노를 표한다. 특히 2025년 슈퍼볼 공연을 언급하며 Lil Wayne의 반응에 예상 이상의 실망을 표하고 Wayne이 자신의 업적을 폄하한 것이라 여기는 켄드릭의 모습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피해망상적이다. Snoop Dogg의 'Taylor Made Freestyle'에 대한 반응 대목도 마찬가지이다. 켄드릭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며, 말 그대로 "Fuck everybody"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극적인 프로덕션 구성 능력과 경악스러운 랩 스킬로 아슬아슬한 선에서 그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에 성공한다. 청자로 하여금 인간적인 모순을 타당한 것으로 여기게 할 수준까지 이입시키는 음악적 연출력의 힘이다. 결과적으로 'wacced out murals'는 켄드릭 라마의 오프닝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극적인 곡 중 하나로 승화되며, 성전을 알리는 포고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처럼 강력한 인트로에도 불구하고 켄드릭은 이에 버금가거나 그를 능가하는 트랙들을 배치함으로써 전성기의 편린을 톡톡히 보인다는 사실이다. 오랜 동지인 Sounwave, Taylor Swift의 프로듀서라는 정체성에서 탈피하기 위해 '6:16 in LA'를 기점으로 켄드릭과 함께 한 Bleachers의 Jack Antonoff, 그리고 'Not Like Us'로 화려하게 부활한 DJ Mustard까지, <GNK>는 그 켄드릭 라마의 앨범답게 다채로운 레퍼런스를 두고 있다. Sounwave가 그의 경력을 살려 비트의 메인 리프를 설계하면 Jack Antonoff가 세세한 연주와 엔지니어링에서 보간하는 방식으로, 이는 <Mr. Morale & The Big Steppers> 에라부터 시도한 미니멀리즘 기반 얼터니티브 힙합 프로덕션의 개량형이다. 다만 본작의 음악적 성격을 결정적으로 정의하는 이는 DJ Mustard이다. Monk Higgins를 다시 한 번 샘플링하며 훨씬 폭발적인 'Not Like Us' 마크 2로 가공된 'tv off'부터, 너버스 뮤직(Nervous Music)의 영향을 지대히 받아 약동하는 베이스 위 위협적인 글리치가 희미하게 스쳐가는 'hey now'까지 Mustard는 그의 솔로 음반에서보다 더 흥미로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Luther Vandross 샘플과 SZA의 압도적인 존재감만큼이나 'luther'에서 결코 부재해선 안될 Kamasi Washington의 스트링은 금상첨화이다. 각 트랙의 색채가 뚜렷하지만 대부분이 동일한 기획과 동일한 프로듀서 하에 제작되었기에 전작보다도 오히려 향상된 유기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44분이라는 짧지 않은 앨범 볼륨에도 '뱅어 모음집', 혹은 켄드릭 라마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말초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GNX>가 상당한 흡인력을 지니는 이유이다.
반면 안타깝게도 소수의 트랙은 아득한 고점에 손가락을 뻗치지도 못한다. 'peekaboo'는 본작 내의 우수한 래칫 싱글들과 통렬히 비교되며 가벼운 엔터테이닝 정도를 제한다면 뚜렷한 존재의의를 찾을 수 없고, 앨범 발매 고작 이틀 전에 비트를 받았다고 알려진 'gnx'는 비트와 벌스 모두 명백하게 수준 이하의 속 빈 강정에 가깝다. 특히 켄드릭 버전의 Outlawz 포스 컷이라 할 수 있는 'gnx'의 LA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은 역시나 본작에서 켄드릭이 보여준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hey now'에 참여한 dody6 정도를 제외한다면 그들의 벌스는 의미있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기 어렵다. 환상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명불허전의 가창만으로 'luther'와 'gloria'에서 켄드릭이 절대 채울 수 없을 공백을 채우고 곡의 격을 한층 높이며, 그녀가 어째서 컨템포러리 알앤비 씬의 최정상에 존재하는지 다시 입증한 SZA와는 무척이나 상반된다. 커뮤니티에 대한 프라이드에 기반해 무명의 신인들이 그들의 이름을 알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의도 자체는 공익적이지만, 그 활용도에서 <GNX>는 가장 무계획하다.
그렇기에 이 모든 것이 켄드릭 라마만의 랩 디자인이 아니라면 결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방증으로 작용한다. 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에서 전성기의 André 3000를 능가하는 진보를 이룬 켄드릭은 라이밍에서 행할 수 있는 실험보다도 랩의 전달 방식에 더 집중하기로 결정한 듯하다. Drake와의 디스전을 기점으로 새롭게 채택한 듯한 그의 딜리버리는 <To Pimp A Butterfly>와 <DAMN.>보다 덜 정갈하지만, 감정적으로 변모하는 데 유리하고 청자를 이입시키는 데에 능하다. 그가 연기자로서 지닌 천부적인 재능이 표출되는 대목이다. 'wacced out murals'는 냉혹하리만치 신경질적이고, 'squabble up'은 우스꽝스러움과 중독성 사이를 영리하게 넘나든다. 'tv off'의 두 번째 파트에서 마이크가 찢어져라 Mustard의 이름을 연호하는 보컬 딜리버리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압권이다. 물론 'reincarnated'는 모든 면에서 가장 강렬하다. 그의 저명한 미공개 작업물인 'Prayer'와 'How Much a Dollar Cost'를 결합시킨 후 'The Blacker The Berry'의 기조를 대입한 것처럼 들리는 이 트랙은 켄드릭의 우상인 2Pac의 Outlawz 시절 클래식 'Made Niggaz'를 샘플링하며, 96년의 격노한 영령에 이입해 짐승처럼 라이밍하는 켄드릭 라마의 플로우가 일품이다. 이제 리릭시스트로서 켄드릭 라마만큼의 전율을 선사할 수 있는 래퍼는 전무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설령 위로는 Nas와 Black Thought, 아래로는 Freddie Gibbs와 Denzel Curry, JID 등 그에 필적하거나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 MC들이 존재하긴 하나, 그의 대외적 영향력을 능가하는 이는 전무하다. 어느 래퍼도 켄드릭만큼이나 자신감과 고통으로 충만하지 않고, 그가 독점한 정당성과 적법한 자격을 강탈할 수 없다. 그렇기에 켄드릭 라마는 분명 지구상 최고의 래퍼다.
Time flies, I'm carryin' debates of a top five
Buryin' my opps and allies
But I'd done a half job communicatin' feelings of being stagnant
Life was gettin' bigger than just rappin'
Kendrick Lamar, 'heart pt. 6' 中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프로덕션적 미학이 창작자의 의중과 부합하는 시점이다. 'heart pt. 6'는 비트와 가사 양면에서 — 그리고 제목에서까지 — 가장 훌륭한 곡 중 하나이다. 켄드릭은 그의 과거를 회모하고 TDE와 Black Hippy의 결성, 그리고 그 해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Not Like Us' 뮤직 비디오에 이어 Drake가 'Family Matters'에서 주장한 불화설을 완전히 종식시킨다. 하나 재밌는 점은 이 곡이 SWV의 명곡 'Use Your Heart'를 샘플링했다는 것인데, 이 곡은 The Neptunes 시절의 Pharrell Williams가 프로듀싱한 곡이다. Drake가 그의 정적들과의 신경전에서 Pharrell을 어떤 방식으로 모욕했는지 상기해본다면 켄드릭이 얼마나 영민하게 다방면적으로 그의 억측과 기행을 우습게 만들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으리라. 'heart pt. 6'에서 켄드릭이 채택한 표현법은 Dr. Dre의 'Talking to My Diary'를 연상케 하는데, 끝내 배드엔딩을 맞이한 후에야 뒤늦게 외양간을 고친 N.W.A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켄드릭은 보다 현명하게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만 같다. 우리는 아직 소중한 가치들을 놓지 않은 켄드릭에게서 일말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켄드릭 라마의 에이징 커브는 여타 래퍼들과는 너무나도 상이하다. 그의 역량은 날이 가면 갈수록 믿을 수 없이 향상되어만 가는데, 정작 그의 전달과 표현은 점점 간소화되고 축소된다. 본작은 믹스테입이라는 의심을 받으리만치 켄드릭의 직관이 가감없이 투입된 앨범이다. <GNX>는 <Mr. Morale & The Big Steppers>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사적 발상의 무분별한 나열이며, 전작이 지녔던 일말의 폭력성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개조한 음반이다. 그리고 직접적인 언급 없이도 몇 번이고 계속해서 Drake를 초라하게 만드는 거인의 증명이자, 현재 최고의 래퍼가 그의 개인사와 문화에 대해 유지하고 있는 기조를 가장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것도 그 외에 그 누구에게서도 경험할 수 없는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랩 스킬을 동반해서 말이다. 여러 증언과 정황을 고려했을 때 <GNX> 이후 다른 음반이 발매될 것이 극명한데, 켄드릭 라마라는 래퍼가 지닌 야망과 창작력의 끝을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는 점이 현재로선 팬의 입장에서 가장 행복하고도 두려운 순간이다. 최고가 될 운명을 타고난 Grand National Experimental이 최고로 기억되지 않을 리 만무할 터이니.
https://youtu.be/D7liwdjvhWc
7.8/10
최애곡: wacced out murals
-luther
-heart pt. 6
블로그: https://blog.naver.com/oras8384/223671067910
Wake up on a Saturday morning, and suddenly Kendrick dropped another one.
아직 미완성입니다.
진짜 이게 하루만에 탄생한 현역 구닌의 글이라니
크으 리뷰 잘 읽었습니다 확실히 켄드릭의 폭력적인 모습이 극대화된 신보인것 같긴 하네요 다음 앨범이 더 기대될 수밖에..
덕분에 그 사이사이에 예전 켄드릭의 편린이 드러나는 곡들이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
잘 읽었습니다
진짜 이게 하루만에 탄생한 현역 구닌의 글이라니
리뷰 맛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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