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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so2000의 90년대 순례 #1

title: Kanye West (Vultures)Alonso20002024.03.18 23:20조회 수 174추천수 4댓글 5

https://blog.naver.com/alonso2000/223387677005

 

 

한국 대중가요에 있어 1990년대는 큰 변혁의 시대였다. 민주화와 자유화는 아티스트들에게 있어 표현의 폭을 더더욱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며, IMF 구제금융 전까지 하늘 높이 치솟던 대한민국의 경제는 이 거대한 자유 위에서 창작의 불꽃을 부채질했다. 힙합, 컨템퍼러리 알앤비 등의 새 시도들이 세계의 트렌드와 대중가요 사이의 간극을 좁혀나갔으며, 그 사이로 '케이팝'이라는, 세상을 뒤덮을 거목의 씨앗이 움트고 있었다. 필자는 이 자리를 빌려, 씨앗에서 자라난 열매 중 제일 제 입맛에 잘 맞던 일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순서에도 딱히 기준은 없으며,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한 시대의 단편들을 이 순례길에 아로새기고자 한다.

 

1. 밑 - 패닉 (1996. 09. 08.)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높아지던 9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 중에서도 패닉은 특별했다. 이적의 음악적*문학적 창의성, 그리고 김진표의 반항기와 다양한 퍼포먼스가 결합된 순간, 이들의 음악은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이 중, 이들의 두 번째 앨범인 <밑>은 그 완성도가 남달랐다. 이적은 자신의 모든 창의성을 쏟아부어 즉흥 라이브 만으로 10분을 끌어가는 대곡("불면증"), 클래식과 월드 뮤직적 요소마저 담긴 아방가르드함("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훵크 락에 가해진 5/4박자라는 기괴한 변주("혀") 등의 광기 어린 실험을 전개했고, 김동률, 김세황, 남궁연, 삐삐밴드 등의 동료들이 이를 보좌했다. 때마침 가사 심의 제도가 폐지되자, 이적과 김진표는 유례없을 정도로 과격하고 전투적인 가사들을 이 기괴한 사운드에 담아냈다. 그 결과, 이 앨범은 90년대의 여러 명작 중에서도 불멸의 문제작으로 남게 되었다.

 

2. Force Deux - 듀스 (1995. 04. 13)

 

한국 가요계에 있어 90년대는 힙합, 알앤비와 같은 흑인 음악이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며 판도를 갈아엎던 시기였다. 듀스는 이러한 변화의 맨 앞에서 한국 흑인 음악의 씨를 뿌린 이들이었다. 이 두 사람의 퍼포밍 역량도 역량이었지만, 김성재의 세련된 감각과 이현도의 프로듀싱은 이들에게는 게임 체인저라는 타이틀조차 차고 넘치는 것이었다. 〈Force DUEX〉에 이르러 듀스의 음악은 최고의 수준에 다다라있었다. 이들의 주전공인 뉴 잭 스윙은 "굴레를 벗어나 (Tuff Puff ver.)"의 압도적 카리스마와 "상처"의 섬세한 악기 운용을 통해 당대 최고 수준의 세련미를 갖추게 되었다. 나아가 레게("Nothing But A Party"), 웨스트 코스트 힙합("意識魂亂"), 재즈 랩("反芻") 등 다른 서브 장르까지 성공적으로 구현한 결과, 〈Force DUEX〉는 이들의 음악적 커리어 하이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다. 힙합 이외에도 "너에게만", "In The Mood"로 대표되는 알앤비 넘버 또한 이들이 지닌 음악적 세련미를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렬함과 세련미, 섬세함의 미덕까지 두루 갖춘, 90년대 한국 블랙 뮤직의 총 집합체와도 같은 명작이다.

 

3. The Magic of 8 Ball - 솔리드 (1995. 03. 01)

 

솔리드라는 그룹이 지닌 제일 큰 의의는 한국에서 컨템퍼러리 알앤비를 내세워 성공을 거둔 거의 첫 번째 사례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베이비페이스와 보이즈 투 멘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알앤비 조류를 깊게 흡수한 이들이었으며, 그 이해도는 김조한의 보컬과 정재윤의 송라이팅, 이준의 랩 메이킹을 통해 당시 기준으로 제일 현대적인 형태로 드러나곤 했다. 두 번째 앨범인 <The Magic Of 8Ball>을 통해 솔리드는 비로소 대중적 성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짙고 농염한 알앤비 사운드를 토대로 하는 정재윤의 사운드는 하우스와 테크노를 위시한 전자음악은 물론 훵키한 힙합으로 까지 가지를 뻗쳤다. “어둠이 잊혀지기 전”의 재지한 분위기나, “슬럼프”의 라틴적 접근, “Hip Hop Nation”의 세련미와 멋을 두루 아우르는 정재윤의 프로덕션은 김조한의 유려한 보컬과 이준의 탄탄하고 화려한 랩을 거쳐 비로소 완성되었다. 이들의 선구적인 시도와 성공은 이후 2000년대에 브라운 아이즈, 엠보트 사단 등의 성공으로 이어지며 한국에 일약 알앤비 붐을 일으키게 된다. 한국에 흑인 음악이 뿌리내리던 90년대의 대중 음악을 논하는 데 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이다.

 

4. Seotaiji And Boys III - 서태지와 아이들 (1994. 08. 13)

 

서태지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힙합과 댄스였지만, 사실 그는 시나위 활동을 거치기도 했던 만큼 락에 대한 애정이 특히나 깊었다. 이에 따라 서태지와 아이들의 3번째 앨범은 상당 부분 락의 영역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만, 락은 락이되 기존의 메탈릭한 부분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안흥찬의 걸쭉한 코러스와 DJ Q-Bert의 스크래칭이 공존하며 멋들어진 랩 락으로 거듭난 "교실 이데아"라거나, 펑크의 공식을 가져온 "내 맘이야", 더 나아가 펑크와 그런지의 공존 하에 극적인 구성을 보여준 "제킬박사와 하이드"의 파격은 메탈헤드였던 서태지의 성공적인 일탈이었다. 이 일탈을 완성하기 위해 상술한 DJ Q-Bert는 물론 해외의 세션 맨들을 대거 동원해 순수한 사운드적인 질을 높이고자 했으며, 앨범 후반에 "발해를 꿈꾸며"의 인스트루멘탈을 넣은 것은 이러한 사운드적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러한 음악적인 시도도 시도지만, 그 시도에 담긴 소프트웨어의 파격은 90년대의 한국에 있어서는 너무도 이른 것이었다. 타이틀곡인 "발해를 꿈꾸며"에서 대놓고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은 오히려 순한 것이었다. 당대 교육 체제를 통렬히 비판한 "교실 이데아"는 이후 사회적인 논쟁으로 까지 이어졌고, "내 맘이야"의 자유분방함이나 "제킬박사와 하이드"의 잔혹한 스토리텔링 역시 대중에게 있어서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대 제일의 팝스타이자 문화 아이콘이었던 서태지의 이러한 과감함은 루머와 안티를 양성하기도 했지만, 그만큼의 파급력과 견고한 지지를 낳기도 했다. 서태지가 단순한 스타를 넘어 '문화대통령'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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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title: Kanye West (Vultures)Alonso2000글쓴이
    3.18 23:21

    https://khlhomofficial.wixsite.com/hausofmatters

     

     

    * 본 리뷰는 HAUS OF MATTERS #2, #4, #7, #9에 각각 수록되어 있습니다.

  • title: Kanye West (Vultures)Alonso2000글쓴이
    3.18 23:22

    HOM에 올렸던 에디터스 픽이 쌓일때 마다 가끔씩 이런 식의 리뷰 모음을 올리게 될듯 싶네요.

  • 3.18 23:30

    밑 진짜 미친 명반...

    개인적으로 과격하고 파격적이고 아방가르드하고 그 와중에 잘 짜여져있는 와중에도 청자가 진짜 강하게 거부하지는 않게끔 적절히 들을 만 하게 균형을 잡는 선타기가 밑의 큰 장점이 아닌가 싶네요

    아니 그나저나 꼼꼼하게 안 읽어서 HOM에 밑 있었는줄도 몰랐네요;;;

  • 3.18 23:31

    밑! 진짜 재밌게 들었어요! 가사 심의 폐지돼서 저런 게 나왔군요 잘 읽었슴니다!!

  • title: Kanye West (Vultures)Alonso2000글쓴이
    1 3.18 23:41
    @hoditeusli

    MaMa나 벌레 같은 곡은 사전심의가 폐지 안됐다면 아예 발매 자체가 어려웠을거에요

     

    그마저도 발매 후 계속 항의가 와서 씨디에서는 가사들을 죄다 도려내야 했고

     

    물론 씨디 재판본에는 원곡 그대로 실려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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