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6504&m=view&s=feature
***아래에 요약 존재
힙합과 저항 정신 사이의 오해에 관하여 (작성자: 강일권 리드머 편집장)
힙합이 쿨 허크(Kool Herc)와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 등에 의해
주도된 '놀기'위한 파티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저항 정신과 힙합의 탄생을 직결시키는 것 또한 큰 오류라는 점을 방증한다.
쿨 허크가 두 턴테이블과 믹서를 가지고 알앤비와 펑크(Funk) 음악의 간주(Break) 부분을
무한 반복시키는 기술을 통해 힙합의 탄생을 알리며 파티 씬을 장악.
허크를 비롯한 많은 DJ들은 사람들의 흥을 더욱 돋우기 위한 방편이 필요했다.
그래서 도입한 게 바로 반복적인 즉흥 멘트였다.
쿨 허크는 자메이카 DJ들이 주로 시전하던 전통적인 즉흥 보컬 기술인
토스팅(Toasting)에 기반을 두고 브레이크 중간마다
라임(Rhyme)과 리듬감을 갖춘 즉흥 멘트
(필자 주: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다같이 손뼉 쳐, 손뼉 쳐, 모두 같이 손뼉을 쳐~'
같은 일종의 조흥구와 비슷한 개념이다.)를 곁들였는데,
점점 이 파트만을 맡아서 할 인물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 역할을 맡은 이를 엠씨(MC)라 불렀고,
허크와 호흡을 맞췄던 뉴욕 태생의 코크 라 록(Coke La Rock)은 최초의 엠씨로 기록된다.
쿨 허크와 코크 라 록의 콤비 플레이를 시초로
정식 프로덕션을 갖추고 만들어진 역사적인 랩/힙합 싱글들,
대표적인 예로 슈거힐 갱(Sugarhill Gang)의 "Rapper's Delight"이라든지
커티스 블로우(Kurtis Blow)의 "The Breaks" 등이
현재 우리가 듣는 랩의 틀을 갖춘 초창기 곡들이다.
그리고 이는 모두 파티 트랙이었으며, 슈거힐 갱과 커티스 블로우는
저항이나 비판 정신과 거리가 먼 랩퍼들이었다.
이후 이어진 흐름도 마찬가지다.
본격적으로 상업 랩퍼의 서막을 연 두 거장들,
엘엘 쿨 제이(LL Cool J)와 런 디엠씨(Run DMC)
역시 당시 발표한 데뷔작의 초점은 '흥겨움'과 '힙합 문화' 자체였다.
이 사이에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
(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의
"The Message" 같은 사회적인 주제의 곡 역시 존재하지만,
본격적으로 랩/힙합에 저항 정신이 덧씌워지게 된 건 그로부터 약 2년 뒤인 1987년이다.
바로 랩을 '블랙 CNN'이라 정의한 급진적인 힙합 그룹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근데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저항 정신 힙합의 상징적인 존재인 퍼블릭 에너미조차
애초부터 이를 핵심으로 삼았던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또한, 당대의 주요 랩퍼들처럼 처음엔 파티 트랙을 만들었다.
이는 그리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닌데, 팀의 리더이자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척 디(Chuck D)가 흑인 사회에 관심이 많고, 굉장한 입담과 문제의식을 갖췄던 건 맞다.
그러나 추후 프로덕션 팀 밤 스쿼드(The Bomb Squad)를 조직하는
행크 쇼클리(Hank Shocklee)와 그가 함께 만들고 발표한 초기 싱글들은
당시의 흥겨운 힙합 음악의 흐름을 잇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주목받지 못한 채 실패했는데,
그들의 재능을 아까워한 거장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이 끈덕지게 러브콜을 보낸 끝에 다시 뭉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척 디와 행크 쇼클리의 퍼블릭 에너미는
매우 정치적인 색깔 다분한 힙합 그룹으로 거듭난다.
그들의 시작부터 함께한 친구이자 데프 잼(Def Jam) 최초의 정규 스태프였던
빌 스테프니(Bill Stephney)의 제안 덕분이다.
2005년에 발간된 책 [Can't Stop Won't Stop: A History of the Hip-Hop Generation]
에 의하면,
당시 스테프니는 두 멤버에게 "모든 곡이 정치적이었으면 한다."라고 말하며
그룹과 음악의 컨셉트를 밀어부쳤다고 한다.
엔터테인먼트적으로 차별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코어 팬들을 잃을까봐 우려하던 척 디와 행크는
진중한 고민 끝에 스테프니의 의견에 따랐고,
이들의 음악은 상업적 히트는 물론,
미국 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러니까 퍼블릭 에너미가 위대한 저항의 힙합 음악을 쏟아낸 건 명백하지만,
시작부터 그랬던 건 아니며, 그 이면엔 엔터테인먼트적인 고려도 있었다는 얘기다.
비슷한 시대를 풍미하며 또 다른 측면에서 저항 정신을 대표했던
갱스터 랩 그룹 N.W.A의 경우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들의 초창기 작업물들, 그러니까 적어도 "Fuck Tha Police"를 제외한 곡들은
인종차별을 비롯한 사회적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곡들이 아니었다.
최근 개봉한 그룹의 전기 영화 [Straight Outta Compton]에서도 어느 정도 묘사되듯이
N.W.A 멤버들은 이전의 랩에서 접할 수 없었던 이른바 '핫!'한 가사의 랩송을 고민했고,
단지 그 방편으로써 자신들이 직간접적으로 보고 겪은 일들을 담은 것이었다.
그중 공권력의 투입까지 부른 문제의 싱글 "Fuck Tha Police"를 기점으로
이들의 존재감이 폭발하고 매체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레 저항과 비판 정신의 이미지가 그룹에 투영된 것이다.
부디 곡해는 마시라. 지금 이들의 저항 정신이 다 계산되고
얻어 걸린 것이었다고 말하거나 업적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핵심은 힙합에 저항 정신이 입혀진 건 랩퍼들의 노골적인 의지가 아니라
마케팅적인 측면의 고려에 의해, 혹은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길 담은 음악이
반향을 일으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거라는 사실이다.
하물며 앞서 밝혔듯이 힙합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저항 정신과 거리는 더 멀어지고 말이다.
힙합이 대중음악의 중심부에 자리잡게 되고,
더 나아가 문화적 현상으로 거론된 데에는
분명 '저항'과 '비판' 정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힙합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을 '저항 정신'이라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지금 한국에서처럼 저항 정신을 마치 힙합의 뿌리,
혹은 전부인 걸로 인식하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
가난했던 탓에 음악적 자구책으로 초기의 힙합 프로덕션 작법이 나온 게 아니라,
넉넉한 환경 속에서 창조된 작법을 보니 돈을 별로 들이지 않고도 곡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파악되어 이후, 돈 없는 이들도 쉽게 힙합 음악을 하게 된 것이듯이
사회를 비판하고 저항 정신을 담기 위해 랩/힙합이 나온 게 아니라
여러 주제 중에 그러한 곡들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장르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일컬어지게 된 거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어떤 분야든지 그 순서와 과정을 적확하게 아는 건 중요하다.
힙합처럼 전혀 다른 사회 환경에서 태어난 분야라면 더더욱 말이다.
***요약
-파티에서 흥을 더 돋우기 위해 즉흥멘트를 씨부리던 게 힙합의 시작.
-저항정신 힙합의 상징으로 불리는 Public Enemy 역시 처음엔 놀기 위한 트랙을 만들다가
그게 안 먹히자 마케팅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저항 음악을 만들기 시작.
-또 저항정신의 대표주자 N.W.A의 초창기 작업물들도 저항 정신과 관계 X
그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가사를 써보고자 직간접적으로 보고 겪은 일 쓰기 시작.
그 중에서 'Fuck Tha Police'라는 곡이 터지고 저항과 비판이 힙합에 달라붙게 됨.
-힙합에서 저항 정신은 랩퍼들의 노골적인 의지가 X
마케팅적인 측면의 고려에 의해, 혹은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길 담은 음악이 반향을 일으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
-힙합이 인기를 얻는 데에 '저항'과 '비판' 정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건 맞음
힙합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을 '저항 정신'이라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님.
다만, 지금 한국에서처럼 저항 정신을 마치 힙합의 뿌리, 혹은
전부인 걸로 인식하는 것은 분명 잘못됨.
-저항과 비판을 위해 힙합이 탄생? -> X
놀기 위해 음악을 만들다 보니 우연히 장르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자리잡음? -> O
1. 힙합의 태생은 파티 음악
2. 힙합은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음악
각각 세 번씩 읽고 암기하시길.
자매품: 이제 그만 힙합을 가난에서 놓아주세요
(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5969&m=view&s=feature&f=subject&q=%EA%B0%80%EB%82%9C)
흥과 치유 힐링이죠
그 외것은 위에 것들을 표현하는 방식일뿐
이젠 그러려니 해야하는데 참 한심해보이는건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더 나아가 문화적 현상으로 거론된 데에는
분명 '저항'과 '비판' 정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힙합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을 '저항 정신'이라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지금 한국에서처럼 저항 정신을 마치 힙합의 뿌리,
혹은 전부인 걸로 인식하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
이 부분이 포인트인 것 같네요
저항이 아니라는 말은 심각하게 무리가 있다고 봐요
무슨 뜻이냐면 예를 들어서 애국자라 불리는 국내 다산 부부들이 섹스를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할리도 없고
섹스하기전에 태극기 걸어두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시작할리도 역시 없으며
섹스할때 애국가를 틀어놓고 리듬에 맞춰서 바운스를 탈리도 없는데(산모분께서 출산하시고 신랑분께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낳고있다고..."라고 할리도 만무하고요 ㅡㅡ)
그럼에도 다산 부부가 애국자라 불리는 이유는 애국을 할 의도와 목적이 없더라도 그분들의 다산이 저출산 시대라는 시기와 맞물렸기에 그분들이 애국자라 불리는것 아니겠습니까?
정리하자면!
당시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시기와 급진적으로 팽창하던 흑인문화가 맞물린 상황이었기에 저항할 목적과 저항할 의도가 없었더라도
어떤 근거를 갖다댄다 할지리도 초기 힙합이 저항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심하게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인과관계를 똑바로 하자는 거에요.
저항과 비판을 위해 태어난 음악이 아니고,
더 재밌게 놀기 위한 용도로 탄생한 음악이
마케팅적인 접근을 하면서 혹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으면서
시대의 특성과 맞물려 저항 정신이 유독 부각된 거죠.
그러나 분명한 건 비판, 저항은 힙합의 한 요소일 뿐이지
그게 힙합의 시초이고 전부는 아니라는 거죠.
리드머의 글을 퍼와서 여기에 올린 이유도
다른 커뮤에서 색안경 끼고 힙합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평소에는 잔뜩 빡쳐있으면서 이럴 땐 래퍼들 뭐ㅋ하ㅋ죠ㅋ,
라는 식으로 해대는 조롱이 짜증나서에요.
힙합을 좋아하는 우리라도 저항과 힙합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개소리 씨부라는 사람들한테 반박하라구요.
힙합이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특성 중 하나에 불과한 저항과 비판을
그 장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들이밀면서
힙합은! 저항인데! 너희는! 지금 뭐하냐!,
라고 씨부려대는 건 다분히 폭력적이라는 거죠.
그런 식으로 따지면 소울 음악도, 락도, 만화도, 영화도, 미술도 전부 저항이라는 건데..
하나 확실한 건 이 논쟁에서 스윙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실로 엄청나다는 거ㅋㅋㅋㅋㅋ
걔도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방금도 힙합 잘 모르지만 거의다 남 깎아내리기랑 쎈척하는 노래잖아 이런 글 봤는데
잘 모르지만 거의다 그런다는 말 자체가 개소리 아닌가
근데 그런 개소리가 한둘이어야지 에휴...
2. 힙합은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음악
결론은 이건데 글을 다 읽어야만 도달할수있는듯.
좋은글 퍼지면 좋겟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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