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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주의) 서사무엘 - UNITY II 리뷰

title: Pusha Tdaytona2020.10.29 17:34조회 수 943추천수 16댓글 14

UNITY II.jpg

서사무엘이 새로운 앨범 UNITY II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돌아왔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18년의 UNITY, 작년의 The Misfit, 그리고 올해 나온 D I A L까지 돌아왔다고 하기에 서사무엘은 애당초 떠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UNITY II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2년 전 작품의 속편입니다. 반사적인 반가움도 잠시, 곱씹을수록 살짝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속편은 불필요한 기대감을 높이거니와, 지금 걷던 커리어를 비추어 볼 때 맞는 행보 같지도 않았습니다.

 

UNITY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서사무엘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작품입니다.

 

첫째, UNITY는 서사무엘이 기존의 얼터너티브하고 트렌디한 스타일에서 재즈와 소울에 기반한 전통적인 색깔로 전환을 꾀한 앨범입니다. 현재의 음악과 초창기 음악의 분기점 역할을 합니다.

 

둘째, 이 앨범은 서사무엘이 협업을 본격적인 작업 방식으로 채택한 최초의 작품입니다.

 

1집 Frameworks나 2집 Ego Expand (100%)는 몇몇 콜라보레이션을 제외하면 서사무엘이 모든 측면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앨범들입니다. 하지만 UNITY에서는 편곡이나 세션 등등 다방면에서 다른 아티스트들의 의사가 반영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협업은 서사무엘을 한 단계 성장시킨 큰 사건입니다.

 

서사무엘의 개성은 부정할 수 없지만 초창기 작품들은 어색하게 다가왔던 몇몇 단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점들을 이 리뷰에서는 다루지 않겠지만, 결론적으로 UNITY는 이런 단점들을 전부 청산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내공을 더 쌓고 고칠 부분을 고친 서사무엘은 2019년 정규 3집 The Misfit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은 제게 서사무엘이 대한민국 최고의 알앤비 아티스트 중 하나라는 확신을 심어줬습니다. 초창기와 비슷하게 거의 혼자서 주도한 앨범인데도 불구하고 UNITY에서 보여줬던 치밀함을 다시 한번 구현했고 거기에 독자적 주도권에서 비롯된 뚜렷한 방향성까지 챙겼습니다. 말 그대로 배운 것을 완벽히 익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The Misfit을 계기로 서사무엘은 잠재력이 완전히 발현된 아티스트로 거듭났습니다.

 

따라서 UNITY II의 발표 소식을 들었을 때 애매모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왜 굳이 자리잡은 정체성을 흔들만한 행보를 걷는 것이며, 어째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사람이 이런 타이밍에 회귀를 택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왜 자발적 퇴보를 선택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부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UNITY II는 서사무엘에게 있어 또 하나의 훌륭한 예술적 성취입니다. 함부로 넘겨짚은 제 자신을 낮추게 되는 완성도 높은 앨범입니다.

 

UNITY II는 전작 UNITY의 작법을 그대로 물려 받는 것을 넘어 더 과감하게 실행합니다. 크레딧을 보면 작사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다수의 참여진과 함께합니다. 거의 이 앨범을 위해 따로 하나의 밴드를 결성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음악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순전히 프로덕션 측면에서 볼 때 UNITY II는 서사무엘의 앨범 중 가장 알차고 빈틈이 없는 사운드를 보여줍니다. 의도적인 공백을 제외하면 모든 구간이 꽉차있고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악기가 빠지면 다른 악기가 들어오고, 악기가 없으면 서사무엘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서사무엘의 목소리가 세션에 압도된다 싶으면 화음이 절묘하게 들어오면서 균형을 맞춥니다. 소리가 청자를 감싼다고 하는 표현이 바로 이런 곡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구성을 예리한 믹싱이 뒷받침합니다. 생각 없이 들을 때는 거슬리는 부분이 없고 몰입해서 들으면 개별 악기가 모두 구별됩니다.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소리로 이루어진 유기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진 장인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물론 믹싱도 하나의 취향이 된 시대이지만 이런 세심한 면들은 여전히 울림을 줍니다.

 

대표적으로 4번 트랙 ‘다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가 있습니다. 잔잔한 건반과 서사무엘의 차분한 보컬로 시작하는 트랙인데, 휘몰아치는 스네어와 심벌, 묵직한 베이스, 공간감 있는 색소폰과 화음이 어우러지면서 실로 향연이라 할 수 있는 곡이 완성됩니다. 숲을 걸을 때 작은 소리들이 하나 둘씩 모여 거대한 합주가 되는 경험을 3분 남짓한 곡에 응축시켰습니다. 대단합니다.

 

5번 트랙 ‘굴레’도 훌륭했습니다. 편안한 기타와 음비라, 통통 튀는 신스 키보드가 인상적인 시작인데 명상적인 인상을 줍니다. 서사무엘의 살짝 갈라지는 듯한 보컬과 가스펠 화음, 그리고 구슬픈 관악기가 숭고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묘하게 종교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가사와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jJdbTFqqOU

 

1번 트랙 ‘원’은 펑키한 기타와 타격감 있는 둔탁한 드럼, 오르간이 두드러지는데, 간단한 가사 구조가 평소의 서사무엘 답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문장은 2절이 되어서야 보이고 그전까지는 간단한 어구를 반복하는데 그칩니다. 협업이라는 테마에 맞게 강강수월래를 연상시키는데 실소가 나오는 포인트였습니다.

 

그런데 보컬을 운용한 방식이 단순한 가사 구조를 특이한 퍼포먼스로 치환시킵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가성보다도 더 허스키하게 처리하는데, 진성으로 구사하는 부분과 오버랩 되면서 다른 두 사람이 같이 노래하는 것 같은 구성을 보여줍니다. 이걸로 모자라 곳곳에 추임새와 추가적인 화음을 넣어서 더 풍성해집니다.

 

이런 간단한 가사 구조는 마지막 트랙 ‘운’에서는 더 심화됩니다. “Lousy Day/구름 낀 하늘 위/흩어진 맑음”이라는 세 구절을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곡의 프로덕션이 뭉치면서 이 노랫말을 만트라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사운드가 별 것 아닌 것 같은 가사의 의미를 궁금하게 합니다. 김오키의 작렬하는 색소폰, 아프로 비트가 생각나는 웅장한 드럼, 후반부의 화려한 건반 솔로 그리고 열성적인 화음이 어우러지면서 고무적인 감상을 선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gGZco9nQ4Q

 

2번 트랙 ‘이음’은 서사무엘식 네오 소울을 보여줍니다. 끈적함보다는 서정적인 산뜻함이 느껴집니다. 편안한 기타 리크와 가벼운 드럼, 그리고 대조적으로 그루브감이 느껴지는 베이스가 인상적입니다. 판이하게 다른 악기가 추가되지는 않지만 멜로디컬한 보컬과 그루브에 치중한 세션의 불일치에서 나오는 쾌감이 있습니다. 후반부의 흐릿하게 처리된 신스 키보드도 재밌었습니다.

 

가사도 밝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새로운 관계에서 주저하게 되는 은근히 우울한 내용입니다. 하늘의 유성처럼 서로를 지나치자는 내용은 환상적인 이미지지만 그 안에 자리잡은 정서는 마냥 행복한 것 같지 않습니다.

 

3번 트랙 ‘청’은 ‘이음’과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건반의 서정성은 비슷하지만 ‘청’은 좀 더 전통적인 재즈 보컬을 연상시킵니다. 약간의 doo-wop 영향이 보이기도 하는데, 서사무엘은 멜로디보다는 그루브에 더 신경을 쓰는 듯합니다. 이것 저것 작은 차이로 확연히 다른 곡을 만드는데, 역시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가사도 서사무엘의 센스를 잘 보여주는데 첫 벌스는 요즘 같이 거리두기 하는 세태를 잘 담아내 기억에 남습니다. 서글프고 외로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푸른색을 본다는 긍정은 약간의 뭉클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비록 10월에 나왔지만 참으로 절망적이었던 2020년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곡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비슷한 맥락의 6번 트랙 ‘시선’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더 실험적인 곡들이 수록된 앨범 후반부에 앨범 초반에 있었을 법한 곡이 갑자기 튀어나와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다고 앞에 배치한다 생각하자니 자가 복제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시선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이 담긴 가사와 인상적인 건반 솔로도 있어 아쉽습니다. 절대로 나쁜 곡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UNITY II의 계륵 같은 트랙입니다.

 

다음 트랙 ‘때’는 최고였습니다. UNITY II에서 상당히 튀는 트랙인데,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로만 이루어진 단촐한 악기 구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어울리지 않아야 할 이질적인 구조인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을 만한 트랙이 훌륭한 화음, 화려한 연주, 뛰어난 보컬 퍼포먼스와 밀도 높은 가사로 기가 막히는 감상을 만들어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타 코드로 곡이 진행되는 듯 싶지만 점진적으로 변주가 추가되고, 브릿지의 흥얼거림과 중첩되는 화음은 UNITY II 최고의 순간 중 하나입니다. 후반부에 성가대 같은 화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코러스의 서사무엘은 커리어 사상 최고로 애절한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변해가는 자신을 보며 도피하는 모습, 내면의 갈등과 따라오는 자기 혐오를 다루는 가사와 정말 잘 어우러집니다. Neil Young이 성가대와 협연한다면 이런 곡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크게 놀랐습니다.

 

UNITY II는 배움의 과정인 듯합니다. 다만 배움의 과정이더라도 이미 이렇게 뛰어난 결과물이 나왔음이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한번 과감하게 변화한 서사무엘이 이제는 조금 속도를 늦춰서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길을 택한 듯합니다. 단순히 변화만을 위한 변화가 아닌, 자신의 색에 자부심을 갖고 차분하게 성장하는 모습에 감명 받습니다.

 

UNITY II는 좋은 소리들이 정성 가득하게 담겨 있는 앨범입니다. 심혈을 기울인 모습이 음악에서 보이고 그만큼 더 감사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서사무엘과 함께할 사람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이번만큼 음악에 정성을 들인 분들과 함께라면 다음에도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8/10

 

Best Tracks: 원, 이음, 청, 다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굴레, 때, 운

Worst Track: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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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1 10.29 17:39

    믹싱과 잘 레코딩된 소리의 굉장한 성취라고 생각 됩니다 이정도로 담백하게 어쿠스틱을 표현 하는 앨범은 쉽게 듣기 어려운것 같습니다 특히 드럼에서 킥과 하이햇의 현장감이 정말 어마어마 하게 느껴지는게 거의 라이브를 눈앞에서 듣는 듣한 기분을 받았던것 같습니다

  • 10.29 17:43
    @CHrisdean

    엔지니어에게 상을!!!

  • 1 10.29 18:41

    진짜 서사무엘은 이것보다 더 잘할수 있을까 싶은데,

    더 잘해지는게 놀랍네요.

    이번 앨범 들으면서 악기 소리를 이렇게 잘 레코딩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 10.29 18:41
    @김치힙합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어요. 앞으로도 너무 기대되는ㅇㅇ

  • 1 10.29 18:51

    요즘 나오는 서사무엘 작업물들 듣고있으면 귀 바로 옆에 밴드셋이 있는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소리가 좋네요

    근데 그게 뻔하지 않은 패턴으로 들어오니까 미친거 같습니다

  • 10.29 18:54
    @Hysteria

    서사무엘이랑 세션맨들의 역량이 대단한 것 같아요. The Misfit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잼 세션의 화려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ㅇㅇ

  • 1 10.29 19:00

    외국인에게 한국 알앤비 아티스트를 한 명 소개해야 한다면 무조건 서사무엘을 알려줘야만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 10.29 19:08
    @Destreza417

    진심 한 번 확 차트인하면 평생할 사람인데... 더더더 유명해져서 돈 쓸어담으셨으면 합니다.

  • 1 10.29 19:26

    정성글 추천 드렸습니다...^^ 시험 끝나면 들어봐야겠네요...

  • 10.29 19:27
    @흑고니

    ㅎㅎ감사합니다!

  • 1 10.29 19:40

    저는 유니티가 서사무엘 앨범 중에서 유일하게 별로 안 좋아하고 안 듣는 앨범이라, 유니티2라는 이름으로 나오길래 큰 기대 안 하고 들었는데 진짜 최고였어요. 올해의 알앤비.

  • 10.29 19:44
    @KWALA

    서사무엘이 워낙 다양한 음악을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첫번째 앨범을 가장 좋아하시는데 저는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아서...ㅋㅋㅋㅋ 확실한 건 이번년도 앨범도 진짜 좋았다는 거

  • 10.30 01:18

    저는 미스핏보다 더 좋았어요. 창법 바뀐거랑 악기 구성이랑 너무 잘 맞아서 너무 좋네요.

  • 10.30 08:27
    @Aloof

    맞아요. 세션도 세션이지만 서사무엘씨도 보컬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신 앨범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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