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몽의 두 번째 장면입니다. 시계의 초침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한 자정("시계바늘 움직이기 시작하는 새벽 열두시에")에 갑자기 핸드폰 진동소리에 베리가 짖으며 고요는 깨지고 긴장이 발생합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러나 그건 조용한 밤의 개 짖는 소리가 아니라 핸드폰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전 여자친구의 익숙한 숨소리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귀뚜라미 소리에만 귀 기울이"며 고요한 밤 한 가운데로 빠져듭니다.
그는 모르고 받았으니 전화를 끊었으면 좋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미 '자각몽'에서 특별한 줄 알았던 그녀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두 다 돈 때문이었잖아 다시 되풀이하진 말자고" 딱 잘라 말합니다. ('자각몽'에서 "똑같은 장면이라면 난 테잎을 뒤로 감지 않을래"라는 가스펠 보컬은 이 '되풀이'를 염두에 둔 그의 내면의 소리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 여자친구는 다급하게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그저 한번 만나서 얘기하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자기가 다 망쳤다고, 함께 했던 그 때의 시간들이 다 행복이었음을 몰랐다고, 그래서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고, 서울살이에 지치고 널 뭐든 받아주는 아빠처럼 생각해 일방적으로 짜증만 냈다고, 널 잃고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고, 내 곁을 지켜줄 네가 필요하다고,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고, 너는 정말 내가 보고 싶지 않았냐고, 네가 쓰던 책상도 다시 들여놨으니 돌아와 달라고,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건 절대 돈 때문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그는 떠올립니다. 그녀가 돈이 없을 때의 표정과 그가 그녀에게 돈을 들고 갈 때의 표정을, 그리고 그녀가 그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할 때의 표정을. 그는 그동안의 행복이 자기가 그토록 증오해 마지 않았던 '지폐'의 댓가로 얻은 '침대'에서 왔음을 깨닫습니다. 진실을 마주한 이상 자기기만적인 위선 속 행복은 더이상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는 애초에 그녀와의 첫 만남도 돈이 없었으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날도 그저 침대 위에서 너를 안는 것으로 내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이 모든 것이 스스로를 속이는 연기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철저히 그녀를 돈을 받고 몸은 팔지만 거래관계로서 재화를 주고 받을 뿐, 마음은 주지 않는 '창녀'로 취급합니다. 그리고 그 스스로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을 속이는 연극을 펼친, 돈과 몸을 교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외면한 '배우'에 지나지 않았노라고 자조합니다. 그러나 한편 세상의 모든 여자에게서 '창녀'의 면모만을 확인하지 못하는, 온전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그가 정상인지도 의심해봐야 합니다. 세상 전체가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세상은 흑과 백이 그럭저럭 뒤섞인 곳인데 그의 사랑이 불구적이기에 불가능 했던 것인지를 말이죠.
후렴을 통해 그는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은 "지폐가 가득 쌓인 침대 위"였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언젠가 행복할 때 다시 "지폐가 가득 쌓인 침대 위"에서 마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왜 행복할 때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은건지, 그리고 왜 부정적인 기억으로 가득찬 "지폐가 가득 쌓인 침대 위"에서 만나야 하는건지 정확히 와닿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는 그의 부정적인 상황 때문에 누군가를 욕망했고, 돈으로 그 욕망을 실현시키려 했던 자기 자신의 불구적인 사랑을 은연중에 자책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행복할 때 만났더라면 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주는 것이죠. 돈이 사랑을 망치는지, 망치지 않는지 '시험'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일단 침대 위에 지폐가 가득 쌓여있어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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