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떳떳하다’라는 이름의 곡은 총 세 가지 버전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믹스테잎에 수록된 한영혼용 가사에 크루셜 스타가 피쳐링한 버전, 두 번째는 2015년 12월 31일에 믹스테잎 버전에 가사가 한글로 개사되고 기존 피쳐링에 GRAY, Black Gosi, MC메타, Lolly의 목소리가 새롭게 추가된 싱글컷 버전, 마지막으로 2016년 12월 31일, 피쳐링을 전부 제거하고 공개된 [녹색이념] 앨범 수록 버전입니다. 이들 버전 사이의 차이점이라면 한영혼용 이슈와 트랙 배치 순서에 맞추기 위한 시점 상의 디테일이 변화한 정도입니다.
김태균은 인터뷰에서 키스 에이프의 발언이 한영혼용을 하지 않게 된 계기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바 있죠. 그의 논지는 대강 이렇습니다. ‘영어로 적을 때 얻을 수 있는 청각적인 장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앨범 수록곡의 가사들을 전부 한국어로 교체하게 된건 한국어 보다는 영어로 쓸 때 가사 뒤로 숨게 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썅년”과 “Bitch”의 어감 차이만 생각해보더라도 그 차이가 매우 현저하다는 점에서 다소 유난스럽지만 일견 합리적인 문제의식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이 곡에서 한영혼용을 포기하면서 손상된 부분은 딱히 눈에 띄지 않습니다. 오히려 “That’s all I gotta do”를 “계속 걸어가려구”로 개사한 센스가 돋보입니다.) 이렇듯 그가 한영혼용을 포기한 것은 대의적인 무언가에 따른 결과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음악 안에 담으려고 하는 어떤 마음 속 강박에 따랐을 뿐이죠.
이런 강박적인 작업 스타일은 믹스테잎을 발표하기까지의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아래 인용문은 믹스테잎 발표 당시 보도자료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테이크원은 "'TakeOne for the Team'은 내 이름을 걸고 발표하는 첫 번째 믹스테이프인만큼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내놓고 싶었다. 지난 몇 년간 믹스테이프 작업 도중 성에 차지 않아 수차례 갈아엎었다. 가사와 랩메이킹 작업에 있어서만큼은 정규작을 작업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해 완성했다. 이제서야 리스너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작업물이 나온 것 같다."고 이번 믹스테이프 발표 소감을 밝혔다.”
다음 트랙 ‘보여줄 때’가 믹스테잎의 가사를 잘라붙여 구성된 곡이라는 점과 트랙의 배치 순서를 고려했을 때, ‘이제는 떳떳하다’는 2011년 그가 그랜드라인에 입단하고 2012년 3월 믹스테잎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시기를 나타내고 있다고 봐야할 듯 합니다. 즉 이 곡은 위의 보도자료의 마인드가 가사적으로 표현된 것이고, 공연 동영상에서 추출되어 인트로에 삽입된 “다시 해볼게요, 처음부터”라는 멘트가 이를 압축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고 봐야겠죠.
이 곡에서 눈길이 가는 대목이 몇 군데 있습니다. 우선 벌스만 따졌을 때 20, 16, 16, 8마디로 가사량이 점점 줄어들도록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랩 벌스의 호흡이 짧아지면 “일년이면 돼”라는 한 줄의 구호로 구성된 후렴구가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이 단축은 뒤로 갈수록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긴박감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벌스의 구성 차원에서도 20마디 벌스를 4마디 단위로 끊었을 때 ‘5단계 구성(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16마디 벌스는 ‘4단계 구성(발단, 전개, 절정, 결말)’의 형태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라인과 라인을 넘길 때마다 고봉밥처럼 꾹꾹 눌러담은 단어들과, 정확하게 지켜진 구성의 규칙이 커다란 차원에서의 균형감을 주게 됩니다.
앨범 단위에서 메시지적으로 중요한 부분도 살펴보죠. 벌스 1의 “진실되게 행동하라 내게는 이 말 역시 / 음악이 가르쳐준 나만의 삶의 법칙”은 당당하지만 다소 뻣뻣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그의 태도가 드러납니다. 그러나 총 15트랙 중 4번 트랙에서 이미 한편으로 너무 일찍 신난, 그 즐거움이 경직된 태도를 통해 엿보이는 것이 뒤에 이어질 사건들과 어떻게 엮일지를 생각해보면 다소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한편 3번 트랙 ‘입장’에서 “언제나 문을 잠궈놨네”의 라인은 이 트랙의 “이제는 제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됐어 / 두발을 내밀어 두꺼운 이불 안에서”에 이르러 극복됩니다. 하지만 13번 트랙 ‘책상’에서 다시 한번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앉게 될 것이라는 대목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곡에서 가장 미심쩍은 단서는 벌스 1에서 “단지 날 언제나 망설이게 하던 건” 이후의 가사들입니다. 김태균은 자기 자신에게 진실되게 행동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유명해지기 위해 사람이 달라져야 하는 문제, 돈 벌기 위해 대중들 앞에서 연기해야 하는 문제, 즉 자기 자신을 잃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답은 생략된 채로 “이제는 제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됐어”라고 외치죠. 또한 벌스 2를 살펴보면 “잠시 뒤로 돌아가보니 준비가 덜 된 / 과거의 내가 보였지 강 앞에서 망설이는 자신”이 한번 더 등장합니다. 그러나 역시 “절대로 안 변한다고 했지만 어느 틈에 / 가슴에 품은 건 이미 작아져 갔고 / 머리가 커지자마자 현실이 다가왔어”라고 말합니다. 아웃트로의 벌스 하나만 더 살펴봅시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원인으로 ‘입장’의 후반부를 살피며 지적했던, 아버지에 대한 부채감과 대립관계에 대한 강한 의식이 지적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그를 움직인 것이 ‘섬광’의 계시가 준 용기와 부모라는 존재가 만든 그늘이었다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중요한 건 그가 “고작 삼겹살 한 점에 만족하기엔” 모자란, “더 나은 놈이 되어 돌아”오고자 하는 야망으로 들끓는 루키의 마음을 품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아웃트로의 벌스에서 ‘1년 전 집을 나왔던 자신(시점 1)’, ‘1년 만에 180도 바뀐 자신(시점 2)’, ‘1년 후 성공하여 인정받은 자신(시점 3)’을 나열하며 음악으로 떳떳한 자기자신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표출합니다. 이제 그는 “일년이면 돼”라고 외치며 ‘보여줄 때’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P.S) “알지도 못하면서 과소 평가하지 말어”는 자신의 믹스테잎 13번 트랙 ‘너가 뭘 알아’로부터, “밤엔 잠 안자 새벽 안자 / 잠을 충분히 안 자도 꿈꿔 항상”은 자신의 믹스테잎 동명의 19번 트랙의 크루셜 스타의 가사로부터, “금방 더 나은 놈이 되어 돌아와”는 크루셜 스타의 곡 ‘Feel Like I’m Back’으로부터 인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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