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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fjan Stevens - Carrie & Lowell을 듣고

TomBoy2020.09.20 15:16조회 수 890추천수 12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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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rie & Lowell>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이들은 앨범 타이틀의 유래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계부모에 대한 우리의 흔한 편견과는 달리 로웰 브람스는 Asthmatic Kitty의 공동 설립자이자 수프얀의 말에 따르면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였다. (둘은 함께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대한 우리의 흔한 고정관념과는 달리 캐리는 수프얀이 1살이 될 무렵 집을 나갔고, 그의 양육은 계모인 팻의 몫이었으며, 그는 아들로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켰지만 수프얀과 캐리의 시간은 모자지간의 유대가 피어나기에는 너무나도 짧았다. 있으나 마나했던 생모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계부 그리고 그에 대해 노래하는 아들이라니, 오이디푸스조차 이런 극적인 관계 속에 속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각각의 표제들이 암시하듯이 <Carrie & Lowell>의 콘셉트는 수프얀의 개인사에서 착상했다. 하지만 앨범에 내포된 슬픔, 죄책감, 분노, 신앙심, 충동, 상실감 등의 표상들은 우리 삶의 궤도를 윤회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주는 감정들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나는 이 앨범에 '문화적 공황상태를 맞이한 현대인들의 해방구'라는 평을 남겼다. 나는 어찌해서 현대인들이 문화적 공황상태를 맞이했는가에 관해 설명할 재간은 없지만, <Carrie & Lowell>이 어떻게 우리를 해방시키는가에 대해 이해시킬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시작한다.

 

  <Carrie & Lowell>에서는 이중 구조의 어쿠스틱 기타, 마디의 단락에서야 은은하게 들려오는 신스, 속삭임에 가까운 수프얀의 목소리 등이 두드러지며, 2004년 발매됐던 <Seven Swans> 이래 가장 절제되고 담백한 음악들이 수록돼 있다. 그러나 정말로 눈여겨봐야 할 항목은 개인사의 비율이다. 수프얀은 늘 앨범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망설임이 없었지만, 만인 앞에서 알몸이 된 것은 난생처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자위하는 동안 당신을 문자를 확인했죠." 이런 한 배에서 나온 자식들에게 일일이 개성을 부여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담담하게 조명하는 수프얀의 노랫말이다. (유사성은 포크음악의 본질적인 문제점이지만 시대와 군상들의 초상을 포착하는 진솔한 가사가 항상 그것을 상쇄한다) 거기에는 비디오 가게에서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유년시절의 기억(Should have known better)처럼 사실적인 일화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전 비극이나 종교적인 메타포를 통해 다소 허무맹랑하게 그려진다. 자신을 페르세우스로 그리고 어머니의 환영을 메두사로 표현한다거나(The Only Thing), 아이네이아스가 떠나자 절망감에 휩싸여 불타는 장작더미에 몸을 던진 디도의 삶을 인용한(Carrie & Lowell) 것이 그 예다. 수프얀이 설명했듯이, 이것은 예술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다. 그런데 그는 왜 그 어떤 것보다 진솔하게 다스려야 할 자신의 삶을 허황된 판타지로 둔갑시키는 걸까.

 

  <Carrie & Lowell>에는 마침내 친밀함을 회복하고, 원망의 대물림이 끊어지고, 감동적인 해후를 맞이하는 가족영화의 간절한 순간이 없다. 이 레코드는 괴로움, 고독함, 방치, 학대, 죽음에 대한 복잡한 심경으로 점철돼 있다. 그중에서도 수프얀이 몰두한 것은 죽음에 대한 태도로서, Carrie & Lowell의 캐리부터가 정신분열증의 숙주, 심각한 단계의 마약 중독자, 자살 시도 등 죽음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죽음은 변함없이 미지의 영역이고 그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다소 거북한 앨범의 가사가 판타지처럼 다가오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소박한 기타 선율과 죽음의 세계가 조우하는 광경에서 자연스럽게 싱어송라이터 엘리엇 스미스가 떠오를 수도 있다. 특히 Drawn to the Blood의 감미로운 기타 연주와 보컬을 듣고 있노라면 엘리엇과 수프얀 사이에 오간 영감의 잔영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두 예술가를 이어준 죽음에 대한 태도가 둘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생각한다. 엘리엇의 음악은 불안정하고, 자기혐오적이고, 마약 남용의 기록이며, 마침내 엘리엇 자신마저 끝없는 우울함 속으로 침잠시켰다. 반면에 수프얀의 음악은 크나큰 아픔을 겪었던 이가 내미는 구원의 손길이다. 그의 비극은 비통하지만 그 속에는 연유를 알 수 없는 평화가 있고 그의 노래는 우울증의 원인이 아니라 그에 대한 처방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모두 죽을 거야."라는 후렴으로 되풀이되는 Fourth of July의 아웃트로에서 선명한 희망을 느낀다면 그것은 창작자의 의도를 묵살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마는 않은 것 같다.

 

  Eugene에는 뜻깊은 장면들이 있다. 그곳에는 소매 안에 담배를 숨기는 엄마(캐리)와 아이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해 '스바루'라고 부르는 수영 강사(로웰) 그리고 어머니의 셔츠에 레몬 요구르트를 쏟은 아들(수프얀)이 등장한다. 이것은 수프얀이 과거에서 위안을 찾는 방식이자 이 앨범을 그저 절망의 산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피치포크와의 인터뷰에서 로웰 브람스가 지적했듯이, 이것은 유년 시절에 대한 수프얀의 기억들 중에서 가장 근사한 것이지만 미장센ㅡ엄마와 벽 하나를 두고 자위했는지, 비디오 가게에서 엄마에게 버림받았는지, 엄마의 셔츠에 레몬 요구르트를 쏟았는지ㅡ에 관한 진위 여부는 불분명하다. "제 추억 속에서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모아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것은 정말 서럽고 속상하고 후회되고, 무엇보다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경험이었죠."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어머니에 대한 냉소와 탄식이 함께 서린 이 진술을 통해 그 진위 여부를 헤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 더해 이 음악은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아들, 어머니와 껄그러운 관계에 놓인 아들, 어머니에게 사랑받는 아들, 세상의 어떤 아들이라도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한다는 생물학의 진리를 일깨운다. 그럼에도 이것은 모성의 신화가 아니다. 차라리 이것은 한 명의 아들에게 어머니가 어떤 의미인지를 시사하는 사모곡에 가깝다.   

 

  <Carrie & Lowell> 위에서 수프얀의 속삭임은 꾸준히 층을 이루고, 매끄러운 기타 연주는 하프 소리와 분간할 수 없으며, 꼼꼼하게 수기로 작성된 가사는 낭만주의와 르포를 쉴 새 없이 오간다. 나는 이 앨범이 어떻게 우리를 해방시키는가에 관한 내 가설을 소개하며 글을 끝마친다. 우리는 유년 시절부터 우리의 마음이 텅 빈 서판이라고 믿는 부모들과 선생들에 의해 인생의 섭리 한 가지를 주입받는다. 모든 슬픔은 기쁨으로 대체될 것이고, 모든 어둠은 빛에 의해 설자리를 잃을 것이며, 우리의 문화 체험은 이 섭리가 올바르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시켜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야." 우리는 그 교의를 굳게 신뢰하고 그에 따라 성장하며 그 교의를 혈육에게까지 전승한다. 하지만 모태 신앙의 크리스천이 현대 사회과학을 지배하는 진화론을 처음 마주하듯이, 우리는 핑크 플로이드를 듣게 되고, 허우 샤오시엔의 작품들을 보게 되고, 밀란 쿤데라의 저작들을 읽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던 교리에 허점과 균열이 있음을 깨닫고는 큰 혼란에 빠진다. 이 혼란은 한 사람의 메마른 삶이 어떻게 해서 불특정 다수의 안식이 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는데, 사실 이에 관한 엄밀하고 일관된 설명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수프얀 스티븐스에 따르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불행한 가정사를 가진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감정적 상흔을 아물게 하는 앨범을 만드는 것, 많은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치유해준 앨범이 픽션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요는 참과 거짓인 두 명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두 명제가 공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세계는 유토피아로 향하고 있지만 동시에 역행하는 아이러니로 가득하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자식은 그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우리는 모두 죽을 테지만 그것이 목전에 다가오기 전까지 이 일시성의 묘미를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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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프얀 스티븐스

여덟 번째 정규 앨범

<The Ascension>

D-5!!!  

 

 

승천까지 앞으로 5일 남았습니다.

:p

 

신고
댓글 3
  • 9.20 15:23

    선추 후감상

    항상 잘읽고있습니다

  • 9.20 15:40

    와우, 이 앨범 정말 명반인데 (다 듣고나면 감정적으로 매우 격해지는) 힙합엘이에서 이 앨범을 볼 줄이야 ㅎㅎ 개인적으로는 수프얀의 앨범 중 최고로 깔끔하게 구성된 앨범인 거 같아요..

  • 9.20 17:40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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