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형식은 역설을 머금고 있다. 새로운 것을 의미하지만 과거에서 영감을 수확한다.
세련됨과 촌스러움의 경계는 희미해졌다. 시간의 흐름에 구애되지 않는다.
고전의 관용구를 해석하고 현대의 신조어를 탐구한다.
다양한 어프로치는 장르의 신분증이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생동감은 시간의 존재를 초월하여
공산품으로 격하된 대중음악에 단비 같은 인간미를 불어넣는다.
이는 마치 '초밥'처럼 느껴진다.
극상의 신선함을 자랑하며 날것의 상태로 제공되지만 한껏 숙성된 전통의 가치가 담겨있다."
이보다 훌륭한 피비
알앤비(얼터너티브 알앤비)의 정의가 또 있을까? 그러나 한 음악 블로거가 작성한 이 글은 피비 알앤비에 대한 정의가 아니다.
사실 위 글은 '네오 솔'에 대한 단상이지만 피비 알앤비가 또 다른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현대에 와서 보수주의는
동력을 잃었고 새 시대의 실험성은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어제의 촌스러움은 오늘의 세련미가 되었다. 장르의 벽이 허물어진다. 음악
속에 담긴 심오한 철학은 경박한 농담과 공존한다. 그렇다면 현대의 피비 알앤비는 단지 과거 네오 솔 무브먼트의 새로운 명함인
것일까. 그렇다고 문화적 시류와 음악적 방법론만이 피비 알앤비의 탄생에 일조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좀 더 본질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들이 관여한다.
두어 시간의 최저 임금만 있어도 하이파이 품질의 음반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자 대중음악의 잠재력이 폭발했다. 하물며
요즘은 어떠한가.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는 당신 손바닥의 기계 속에 세상을 선물해주었다. '어떻게 들을까?'라는 고민거리는 '무엇을
들을까?'라는 문제로 대체되었다. 미국에서 수출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 상품 중에 하나가 바로 대중음악이다. 래그타임, 재즈,
록, 블루스, 리듬앤블루스, 소울, 랩은 모두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적 소산이며, 그 기원은 아프리카의 리듬과 창법에 있다.
하지만 변화된 세상에서 아프리카를 비롯한 월드 뮤직은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가진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전 세계에서 동시간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지리상의 기준과 시차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문화비평가 쿠엔틴 벨이 지적했듯이, 한 장르의 가능성이 모두
소진되면 사람들은 다른 규범을 이용한다. 재즈, 록, 리듬앤블루스, 힙합, 포크, 컨트리는 더 이상 새로움의 표상이 아니다. 대량
생산 경제와 풍요로운 중산층이라는 새롭게 등장한 계층이 맞물려 예술은 더욱 절박하게 새로운 것을 찾았다. 보통 사람들이 음반을 한
트럭씩 구입하면서 그 예술적 가치를 이해하고 향유하게 되자,
아티스트의 등용문이 넓어지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반대로 작품 자체의 희소성이나 우수함은 특권을 잃어가고, 대신 작품을 이해하는
능력의 희소성이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 예리한 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 성공한 뮤지션만큼이나 어려워졌다. 나는 이 모든
사안들이 복합적으로 피비 알앤비의 출산에 산파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문화비평가 로버트 브루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음악에서는 18세기와 19세기의 거장들과 비교할 만한 작곡가를 발견하기 어렵다. 현대에 와서 음악은 일종의 권위를 잃었고, 살짝 황폐해졌다." 아예 없는 말은 아니지만 너무 어두운 면만 부각한 점이 아쉽다. 현대 음악의 밝은 면을 들춰보자면, 재즈, 뮤지컬, 컨트리, 블루스, 포크, 록, 소울, 삼바, 레게, 월드 뮤직 등 현대적 작곡법이 만개했다. 스튜디오의 세션에는 풍성한 어쿠스틱 악기만큼이나 네모반듯한 전자 장비들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각 장르는 어느 시대보다 재능 있는 예술가를 다양하게 배출했고, 우리의 음악적 경험에 새롭고 복잡한 리듬, 다채로운 기악 편성, 효율적인 발성법, 기능적인 스튜디오 제작법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피비 알앤비(얼터너티브 음악)를 덧붙이고자 한다.

▲ 칸예 웨스트(좌), 드레이크(우), 피비 알앤비는 두 사람의 비전으로 인해 잉태될 수 있었다.
2008년 11월 24일, 래퍼 칸예 웨스트의 네 번째
정규 앨범 <808s & Heartbreak>가 발매됐다. 이 앨범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오토 튠을 통한 보컬
왜곡, 롤랜드 사의 TR-808 드럼머신, 기존의 힙합 사운드가 아닌 미니멀한 전자 음악 등을 들 수 있다. 타고난 목소리는 대중음악이 성행한 이래 뮤지션이 가진 최고의
미덕 중 한 가지였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왜곡시켜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노래 속에 배치하는 시도들은 음악사에 꾸준하게
등장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 티패인과 칸예 웨스트가 그 흐름을 주도했다(칸예는 앨범을 작업하면서 티패인에게 오토튠에 대한
코칭을 받았다). 현대에 와서 보컬은 또 하나의 훌륭한 악기가 됐다. 808 드럼머신은 1980년대 신스팝과 일렉트로 팝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그 시대의 향수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겐 부족적이고 원초적인 리듬을 선사했다. 오늘날 어쿠스틱 드럼을 쓰지 않는
뮤지션은 꽤 많지만 808을 쓰지 않는 뮤지션은 찾아보기 힘들다. 애플과 아이폰의 부흥과 함께 미니멀리즘을ㅡ"최소한으로 하지만
기능적인"ㅡ향한 칸예의 집착이 시작됐던 것도 이 시기였다. 이 집착으로 인해 쉴 새 없이 귓가를 울려대는 빽빽한 샘플과 드럼 대신
실험적인 신스로 뒤덮인 일렉트로 팝 앨범이 태어났고, 이제 미니멀리즘은 기조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칸예가 <808s & Heartbreak>를 '팝'으로 만들었든지 혹은 '힙합'으로 만들었든지 간에 이 앨범은 힙합과 하위문화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 앨범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오직 토론토에 사는 한 청년만이 이 앨범의 잠재력을 올바르게 평가했는데, 그 청년이 바로 드레이크다.
2009년 한 인터뷰에서 드레이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칸예 웨스트와 <808s & Heartbreak>가 저의 사운드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저는 이 앨범이 만들어낸 물결의 일부죠." 피비 알앤비를 의인화해서 이
발언을 살짝 각색한다면 이런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드레이크와 <Take Care>(이 칸에는 드레이크의
초기작이라면 어떤 앨범도 들어갈 수 있다)가 저의 사운드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저는 이 앨범이 만들어낸
물결의 일부죠." 그만큼 드레이크는 칸예의 야심을 집대성하는데 성공했고, 한 매체의 표현대로 '피비 알앤비의 아버지'가 됐다. 특히 드레이크는 <808s & Heartbreak>의 멜랑꼴리한 면에 집중했는데, 전체적인 다운 템포, 웅장한 신디사이저, 어두운 내면에 대한 조명 등은 드레이크뿐만이 아니라 현대음악의 상징이 되었다. 반면에 R&B, 모던 팝, 일렉트로닉, 덥스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생활밀착형 주제에 대해 노래하고, 랩과 보컬을 적절하게 혼용했다는 점은 칸예의
비전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키워드들이 현재 피비 알앤비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드레이크가 끼친
막대한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드레이크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가장 좋았던 평으로 잡지 빌리지 보이스의 앤디 허친스가
남긴 평을 꼽았다. "칸예 웨스트 못지않을 정도로 강렬하게 자아를 탐구하는 혼란스러운 래퍼의 모순된 감정들이 담긴 정교한
심리극."

논의가
진전될수록 인간의 본성 중 한 가지인 범주화가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피비 알앤비는 대체 어떤 장르라는 말인가?" 피비
알앤비는 명칭대로 알앤비로 볼 수 있다. 흑인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피비 알앤비에 관한 이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세 명의
인물을 떠올렸을 것이다. 피비 알앤비의 대표적인 인물 프랭크 오션은 자신의 커리어를 알앤비 송라이터로 시작했고, 미겔의 데뷔
앨범 <All I Want Is You>는 전형적인 알앤비 앨범이었다. 또 한 명의 인물 위켄드만이 덥스텝과 앰비언트를
적극 활용하여 자신만의 사운드를 구축한 뒤 R&Bass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들의 장르 내 위상과 백그라운드는 피비
알앤비가 알앤비 음악임을 천명하고 있지만 이들의 음악적 특성은 피비 알앤비가 일렉트로닉의 하위 장르라고 말한다. 실제로 상당수의
피비 알앤비 음악들은 일렉트로닉의 하위 장르와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고 거기에만 한정시킬 수 없는 것이, 프랭크 오션은
브릿팝의 정서에 의지했고 미겔은 록 음악의 세션을 빌려왔다. 얼터너티브 음악의 폼은 그 어느 시대보다 자유분방한듯하다. 피비
알앤비는 현대 대중음악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장르다. 갈수록 모호해지는ㅡ그러면서도 분명한ㅡ장르의 경계, 모두 소진되어버린 장르의
가능성,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들의 인식 변화 등 피비 알앤비는 대중음악의 다양한 경향들이 합쳐져 탄생한 필연적인 사건이며,
장구한 알앤비의 역사에 자유롭고 복잡다단한 인디 록과 일렉트로닉의 개성이 결합해 만들어진 하나의 현상이다. 이는 구태의연하게
생각되던 알앤비의 영역을 확대하고 싱어송라이터를 다시 한 번 선망의 대상으로 만들어 주었다.
개인적으로 피비 알앤비의 가장 큰 특징을 꼽는다면, 주저 없이 주제의식(가사)을 선택할 것이다. 그동안의 흑인음악은 너무 섹스, 돈, 게토, 허장성세에 탐닉했고,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컨셔스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엄격히 구분했다. 오늘날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삶에 대한 관찰이 용이하고 관계에서의 상대성이 강조된다.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섹스와 분위기를 판매하는 대신 개인적 경험을 노래한다. 섹스, 약물, 종교, 개인 사상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구체적이며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이들 역시 담합된 방향이 없어 보인다. 과용된 신디사이저, 무성하게 여백을 메우는 808 드럼, 빈티지한 전자음 위로 무수한 각자의 에세이가 펼쳐진다. 음악에는 세 가지 목소리가 있다고 문화 인류학자 로버트 스토리는 말한다. 창작자의 목소리, 소비자의 목소리, 인류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아티스트는 우리에게 모든 예술의 필수 요소인 인류의 목소리를 일깨우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적합한 주제를 던져 준다. 내 생각에 대중음악에서 지금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건 피비 알앤비다. 이는 1990년대의 네오 솔 이후로 대중음악이 마주한 가장 큰 문학적 진화이며, <channel ORANGE>는 우리 시대의 <Songs in the Key of Life>고, <Diamond Life>며, <The Velvet Rope>다. 어쩌면 프랭크 오션의 발언은 현재 피비 알앤비의 종잡을 수 없는 속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는 R&B 뮤지션이 아니에요. 한 장르를 대표할만한 인물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어쩌겠어요. 그게 뭐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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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분량은 지금의 1.5배 정도였습니다. 인용구가 많아서 쳐내다 보니 두서없이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안하고 봐주세요.




드레이크 TC나 다시 한번 돌려봐야겠네요
"음악에서는 18세기와 19세기의 거장들과 비교할 만한 작곡가를 발견하기 어렵다. 현대에 와서 음악은 일종의 권위를 잃었고, 살짝 황폐해졌다."
"칸예 웨스트와 <808s & Heartbreak>가 저의 사운드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저는 이 앨범이 만들어낸 물결의 일부죠."
"저는 R&B 뮤지션이 아니에요. 한 장르를 대표할만한 인물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어쩌겠어요. 그게 뭐 중요한가요."
혹시 이 문장들 원문 알려주실 수 있나요??
2. 2009년 MTV 인터뷰
3. 2011년 콰이어터스, 컴플렉스 인터뷰 합본
입니다.
대중음악을 주욱 보면 지금이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때 인듯하네요
현대음악은 계속 얼터너티브를 지향해 왔는데
그렇게 시도되고 탄생했던 음악들을 듣고 자란 kid들이
이제 새로운 얼터너티브한 음악을 만들고 있는거죠
PBR&B가 받은 주목은 이러한 흐름을 우리가 타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현대의 PBR&B 이전부터 락이나 힙합을 비롯해 모든 장르가 이미 서서히 장르적인 벽을 깨고 있었지만 PBR&B의 태동과 대두는 '이게 현대 대중음악의 흐름이다'라고 확증을 시켜주는 중대한 사건이었네요
전에 한 해의 베스트앨범 이렇게 쓰신 글 진짜 잘봤었는데 이번글도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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