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힙합엘이가 선정한 한국힙합 앨범 50선 (1990 ~ 2009)
힙합엘이는 지난해 1월부터 음원 사이트 멜론(Melon)의 뮤직 스토리 란에서 꾸준히 연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벅스(Bugs)다. 힙합엘이가 벅스에서 첫 번째로 진행한 프로젝트는 바로 1990년부터 2009년까지 발매된 한국힙합 앨범 중 여러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다고 판단한 앨범 50장에 대한 소개다. 이런 형식의 기획은 항상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이 앨범은 왜 선정하지 않았고, 이 앨범은 왜 선정하지 않았느냐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해 평가하기보다는 좋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되는 음악을 큐레이팅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그렇기에 단순히 선정에 불만을 품기보다는 몰랐던 앨범이 있다면 알아가고, 또 알고 있던 앨범이라도 몰랐던 감상 지점을 발견해 간다는 점에 의의를 두며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순서는 발매연도와 발매월 순이며, 음원 서비스가 원활치 않은 앨범의 경우에는 후보에서 제외되었음을 미리 알리는 바이다.
* 본 글은 벅스 뮤직 포커스 란에 <힙합엘이 선정, 한국 힙합 명반 50선 (1990 ~ 2009)>(링크)라는 제목의 글로 게재되었습니다.
김진표 - 열외(列外) (1997.06)
지금은 <탑기어 코리아> 등의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며 ‘연예인 카레이서’ 같은 이미지를 주지만, 김진표의 시작은 랩이었다. 이적과 함께한 그룹 패닉(Panic)에서 랩을 담당하며 꽤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후에는 솔로 앨범을 제작하며 래퍼로서의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김진표는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파고드는 라임, 뚜렷한 발음으로 꾸린 높은 가사전달력이 돋보이는 랩을 구사했다. 이는 김진표의 첫 솔로 앨범 [열외(列外)]에서도 엿볼 수 있는 특징이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프로덕션은 힙합 고유의 멋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사회의 규칙에 반기를 드는 가사는 반항이라는 힙합의 한 키워드에 잘 부합했다. 앨범이 발매됐던 1990년대 후반은 힙합이라는 개념이 아직 완벽하게 자리 잡지 않았던 시절이다. 김진표가 구사한 랩은 단조로운 면이 있지만, 라임이나 플로우 등 랩에 대한 개념이 모호하던 청자들에게 실질적인 형태를 제공하고, 수준급의 곡을 들려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 Pepnorth
조PD - In Stardom (1999.01)
조PD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정식적인 루트가 아닌, 미국에서 작업하고 PC 통신에 올린 곡 "Break Free"가 욕설 가득한 가사에도 인기를 끌며 신문에도 거론되는 등 큰 유명세를 얻은 것이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후 조PD는 1999년, 첫 정규 앨범 [In Stardom]을 발표한다. 미국에 거주하던 젊은 조PD가 구현한 힙합은 큰 틀에서 봐도, 디테일을 들여다봐도 기존의 힙합과는 결이 달랐다. 이 전에도 사회 비판을 무기로 삼은 곡은 많았지만, 조PD처럼 정치, 미디어 등 수많은 분야를 거침 없이 비판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PD Rules"에서는 래퍼 조PD로서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기도 했고, "2U Playa Hataz"에서는 힙합의 멋에 대한 자부심을 뽐내기도 했다. 빠르고 유연한 플로우와 귀에 잘 들어오는 라임으로 구성한 랩은 청각적인 매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청소년 유해 매체 지정에 전곡 19세 딱지까지 먹었음에도 50만 장의 판매량을 올렸다는 사실은 당시 본 작이 가졌던 사회적인 영향력을 반증한다. 공전의 히트곡 "친구여"만으로 조PD를 기억하기에는 이 시절의 조PD가 너무 강렬하다. - Pepnorth
윤희중 - 3534 (1999.10)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윤희중은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을 건 앨범 [3534]를 1999년에 일찍 발표했다. 알이에프(R.ef)를 비롯한 몇 가요 앨범에 랩 작사 및 디렉팅을 봐왔던 그는 자신의 정규 앨범을 통해 래퍼가 지녀야 할 자존심을 세운 것은 물론, 다른 래퍼들도 그를 칭찬할 만큼의 뛰어난 랩 실력을 자랑했다. 특히 세련된 플로우나 라임 배치는 그의 수식어가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가사 역시 막연하거나 추상적인 단어들의 나열이 아닌, 하고 싶은 말이 뚜렷하게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여기에 렉시(Lexy), 조원선, 김범수, 션이슬로우(Sean2slow, 앨범에서는 Truthon)라는 다소 독특한 라인업의 피처링진은 윤희중이라는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훌륭한 조연이다. 이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Enlightment]는 씬에 대한 자조적인 이야기와 자신감이 동시에 드러나며 더욱 세련된 모습을 선보였지만, 윤희중이 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높게 평가받았는지 확인하기에는 [3534]가 더 좋은 앨범이 아닐까 싶다. - bluc
이현도 - 완전(完全) Hiphop (2000.02)
이현도(D.O)는 그 누구보다도 가요계에서 잔뼈가 굵은 뮤지션이다. 현진영과 와와에서는 춤을 췄고, 듀스(DEUX)를 통해서는 주류의 정상에 우뚝 섰었다. 김성재 사후 솔로 활동을 시작한 후에도 대중가요 작곡과 힙합이라는 영역에서 무척 영민한 움직임을 보였다. 2000년에 발매된 [완전(完全) Hiphop]은 그 당시 이현도가 보고 듣고 느끼던 힙합이 종합적으로 구현된 앨범이다. 힙합 고유의 멋에 집중한 곡부터 빠르고 트렌디한 곡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힙합이 담겨있고, 타샤니(Tashannie)나 김진표, 라이머(Rhymer) 등이 참여한 라인업은 기대 이상으로 화려하다. 디제잉과 비트박스 공연 실황이 담긴 스킷으로 트랙 사이를 채우는 부분은 이현도가 앨범의 구성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 대중가요와 힙합의 묘한 경계를 달리는 "Party!",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를 가지고 노래하는 "힙합",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단체곡 성격의 "흑열가" 등이 한 앨범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건 철저히 이현도라는 뮤지션의 역량에 기인한다. 프로듀싱과 랩을 모두 소화하는 이현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앨범이기도 하다. - Pepnorth
곤충스님윤키 - 관광수월래 (2000.03)
곤충스님윤키는 현재 김윤기란 이름으로 활동 중이며, <그리다 갤러리>에서 전시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첫 앨범 [관광수월래]는 구성부터 맥락까지 서울이란 도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서울에서 만들어진 앨범이란 뜻이 아니다. 당시 많은 프로듀서가 훵크, 소울, 외국힙합에서 소스를 찾던 반면, 곤충스님윤키는 서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리를 주된 요소로 사용했다. 여기에는 길거리나 주차장의 소음, TV, 영화 속 대사나 스님의 염불, 심지어 동요까지도 포함되며, 민요를 샘플링한 곡 역시 찾아볼 수 있다. 맥락이 거세된 채 나열된 수록곡의 제목 역시 서울의 일상에서 사용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앨범은 이런 요소들을 자르고, 이어 붙인 익스페리멘탈 힙합에 가깝지만, DJ 용(DJ Yong)이 앨범 전체의 스크레칭을 담당한 만큼, 턴테이블리즘적인 색을 띠기도 한다. 앨범을 통해 '김윤기'라는 개인을 제외한 어떠한 맥락을 찾기는 어렵지만, 작법이나 사운드, 혹은 신선한 측면에서 이 앨범의 완성도는 여타 앨범에 비해 결코 부족하지 않다. - GDB
DJ DOC – The Life… DOC Blues (2000.05)
DJ DOC는 데뷔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적 댄스 그룹으로 자리매김하였던 그룹이다. 그러나 이들은 4집 앨범에 수록된 곡 "삐걱삐걱"을 통해 기존과는 다른 자신들의 음악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들은 5집 앨범 [The Life… DOC Blues 5%]를 통해 힙합 그룹으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멤버 김창렬의 개인사로 인해 이하늘과 정재용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낸 본 작은 기존 DJ DOC의 댄스곡에 해당하는 "Run To You", "Boogie Night"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들은 "와신상담", "DOC Blues", "Alive"와 같은 트랙들을 통해 지난 3년의 공백기 동안 그들이 겪었던 일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 일들로 인해 생기게 된 사회에 대한 분노는 "L.I.E", "포조리", "부익부 빈익빈", "알쏭달쏭"을 통해 드러난다. 힙합의 문법에 충실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당시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맞물려 이야기의 당위성과 진실성을 획득하게 되었고, 그 결과 본 작은 발매 일주일 만에 10만 장이 팔리며 오래오래 회자하는 명반으로 남게 된다. - Geda
Mp Hip-Hop Project 2000 초(超) (2000.06)
2000년 전후로 한국에서 유행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거의 유일하다시피 자리했던 힙합 클럽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은 자체적으로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했고, 그 시작이 [Mp Hip-Hop Project 2000 초(超)]다. 앨범은 마스터 플랜 래퍼들 여럿이 함께 참여한 "Get Down"과 "주사위", 그리고 "초"까지 컴필레이션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을 담고 있으면서도 DJ 렉스(DJ Wreckx)와 재유(J-U)의 턴테이블리즘 트랙 "태어나서 처음", "옹알이 1(Don’t Stop Scratchin’)" 등 의미 있는 트랙을 담아내기도 한다. 당시 그렇게 풍성하지 않았던 라인업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각 래퍼 간의 화학적 조합이나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나서 매력이 있다. 이후 마스터 플랜의 컴필레이션 앨범은 라인업도 두꺼워지고 판이 커지면서 보다 더욱 풍성해졌지만, 이 앨범이 가진 매력은 이후의 것들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뚜렷하다. - bluc
DJ 소울스케이프 - 180g Beats (2000.10)
세기가 바뀐 후 국내에서는 수많은 DJ가 나고 사라졌다. 그중 DJ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은 최고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2000년 발매된 [180g Beats]는 그를 대표하는 작품인 동시에, 한국힙합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반이다. DJ 소울스케이프는 스크래치, 컷팅과 같은 디제잉 스킬, 그리고 넓은 바운더리를 활용한 샘플링 등 DJ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기를 통해 [180g Beats]를 만든다. 각 트랙으로 시선을 좁히면 이러한 특성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Candy Funk"에서 그는 부드러운 분위기의 전자 피아노와 보이스 샘플을 여러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달콤한 훵크 기운을 녹인다. "Piano Suite/Loop Of Love"에서는 피아노 루프와 소울풀한 베이스로 트랙을 완성한다. 인스트루멘탈 트랙의 배치, 랩이 있는 트랙과 그렇지 않은 트랙의 균형과 같은 앨범 구성에서도 훌륭함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180g Beats]는 단순히 DJ가 만든 앨범이라고 하기에는 DJ 소울스케이프가 갖춘 여러 능력이 빛나는 앨범이다. [180g Beats]가 명반이라 추앙받는 이유다. - HRBL
주석 - Only The Strong Survive (2000.11)
주석은 마스터플랜 시절에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었고,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메인스트림 래퍼에 가까워졌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대중음악 시장에 접근해갔다. 이 EP는 그러한 활동 이전에 선보였던 유일한 앨범 단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석은 일찍이 일본, 홍콩, 미국 등지에 있는 해외 음악가들과 지속해서 교류해왔다. 그 결과 [Only The Strong Survive]에서는 DJ 히데(DJ Hide), 미스타 시니스타(Mista Sinista)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 앨범은 "Lastman Standing" 이후로는 찾기 힘든 어둡고 비장한 분위기가 서려 있는데, 이는 그가 EP 전에 선보였던 곡들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후 주석의 행보와는 별개의 것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EP 단위임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며 발매 시기를 고려하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 bluc
다 크루 - City Of Soul (2000.12)
세븐(Seven)과 사탄(Saatan)으로 구성된, 마스터플랜의 여러 듀오 중 하나였던 다 크루(Da Crew)는 붐뱁 스타일의 음악을 구사하며 진지한 가사를 담아냈다. [City Of Soul]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표된 정규 앨범이며, 라이브 무대 등을 통해 발표한 곡들과 여러 신곡이 수록된 작품이다. 2000년 전후, 사람들이 어떻게 랩을 했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하다면 이 앨범은 꼭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세련된 각종 방법론이 등장하고 라임에 대한 관념이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합의가 된 상태이지만, 한국어 라임에 관한 다양한 이해가 존재할 때 그것이 나름의 재미와 감동이 있다는 걸 기록해놓은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앨범을 통해 이때 이미 컨셉과 스토리텔링이 담긴 랩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다 크루는 사이드비(Side-B)와 함께 한국어 랩이 주는 쾌감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팀이라고 느낀다. - bluc
지누션 - The Reign (2001.02)
인터넷 시대가 열린 지금은 ‘한류’라는 단어와 함께 외국과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꽤 자연스러워졌다. 싸이(PSY)는 스눕 독(Snoop Dogg)의 피처링을 받고, 키스 에이프(Keith Ape)는 와카 플라카(Waka Flocka), 에이셉 퍼그(A$AP Ferg)와 함께 곡을 했다. 하지만 이 앨범이 나온 시기는 2001년 2월이다. 이때 맙 딥(Mobb Deep)의 프로디지(Prodigy), 사이프레스 힐(Cypress Hill)의 비-리얼(B-Real), 치노 엑셀(Chino XL), 엠플로(M-Flo)의 버벌(Verbal)과 같은, 외국의 뛰어난 래퍼들의 랩을 앨범에 수록했다는 것은 굉장히 대단한 일이다. 여기에 지누션(Jinusean)은 “A-Yo”라는 대중적인 곡을 통해 상업적인 성공도 함께 가져갔으며, "Ooh Boy"라는 대중적인 넘버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메인스트림에서 발표된 힙합 앨범이라는 수식만 붙이기에는 뛰어난 퀄리티를 가진 앨범이며, 피처링에만 관심을 두기에는 뚜렷한 톤과 한결 자연스러워진 라이밍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bluc
천리안 - 2001 대한민국 (2001.04)
PC 통신 천리안에서 활동하던 힙합 뮤지션들이 모여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 [대한민국] 시리즈는 1999년 시작을 알리며 한국힙합에 컴필레이션 유행을 일으켰었다. 그 시리즈 중 하나인 [2001 대한민국]은 당시에도 그 유행이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준 앨범이다. 본 앨범은 [2000 대한민국]의 형식에 따라 각 팀의 곡이 하나씩 실려있는데, 참여진들의 이름이 심상치 않다. 우선, 크루 V.I.P로 활동하였던 조PD와 윤희중을 비롯하여 스컬(Skull)이 활동하였던 대거즈(Daggaz)와 사이드비가 눈에 띈다. 이 밖에도 주석, 부가 킹즈(Buga Kingz), 미쓰라진이 활동했던 그룹 케이라이더스(K-Ryders)와 개코와 최자의 씨비매스(CB Mass) 이전 소속 그룹 케이오디(K.O.D), 45RPM 등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한국힙합의 명곡으로 손꼽히는 션이슬로우의 "Moment Of Truth"와 일스킬즈(Ill Skillz)와 DJ 소울스케이프의 "알아들어"가 수록돼 있기도 하다. 트랙간 편차가 크긴 하지만, 본 작은 언급한 두 곡을 비롯한 명곡들로 시리즈 최고의 작품에 등극하게 된다. - Geda
데프콘 - Straight From The Streetz EP (2001.09)
예능으로 주목받은 데프콘(Defconn)이지만, 사실 그는 꽤 긴 시간 힙합계에 몸담은 베테랑 뮤지션이다. 한국에서 힙합이 태동하던 때, PC 통신을 기반으로 한 동호회 SNP의 주축이었고, 오프라인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군사 용어인 데프콘(Defcon)을 응용해 예명을 만들었던 것에서 엿볼 수 있듯, 초창기 그의 음악은 무겁고도 거칠었으며, 가사의 수위 또한 당시로서는 굉장히 하드한 편이었다. 힙합의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겠다는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2001년에 발매된 [Straight From The Streetz EP]는 그때의 데프콘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넘치는 비장미가 일품인 "십자군"은 지금도 데프콘을 대표하는 트랙 중 하나이며, "No Joke"에서는 비공식적인 팀 소울라이프(Soul Life)의 동료 버벌진트(Verbal Jint)와의 훌륭한 호흡도 엿볼 수 있다. 랩과 가사, 비트가 합을 맞추며 이룬 본작의 ‘하드코어’ 컨셉은 보기 힘들 정도로 뚜렷하고 완성도가 높다. 이후 데프콘은 약 10년간 대중적인 노선을 타며 변화를 꾀했지만, 2001년의 하드코어처럼 그에게 잘 맞는 옷은 많지 않았다. - bluc
원타임 - One Time Fo Yo’ Mind (2001.12)
2000년 전후 YG 엔터테인먼트(YG Entertainment, 이하 YG)가 택한 전략은 미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을 빠르게 수입하여 한국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리로 재단하는 것이었다. 이는 YG에서 메인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미국인 프로듀서 페리(Perry)의 터치를 통해 구현될 수 있었다. YG가 킵긱스(Keep Six)와 지누션에 이어 공개한 원타임(1TYM) 역시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90년대 말 힙합 사운드를 차용한 "Nasty"와 "Hip-Hop Kids"가 수록된 [Third Time Fo Yo’ Mind]는 거칠고 탄탄한 힙합 앨범이다. 한국어 랩과 플로우가 완벽하게 자리 잡지 않았던 시기에 원타임 멤버들은 지금 들어도 대단히 안정감 있는 랩 스타일을 구사했다. 주류 힙합 스타일 외에도 훵크(funk) 사운드의 "우와", 펑크(Punk) 록을 접목한 "어젯밤 이야기" 덕분에 앨범은 한층 더 다채롭다. - greenplaty
크루시픽스 크릭- Kandid Collection Vol.1 (2002.09)
SNP(Show & Prove)는 한국힙합 초창기를 대표하는 커뮤니티다. 그런 만큼, 당시 등장한 아티스트들 중에는 SNP에서 활동하던 사람이 많았다. 오버클래스(Overclass) 소속 프로듀서인 크루시픽스 크릭(Krucifix Kricc, 이하 크릭)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굳이 그의 소속을 밝힌 이유는 그가 2002년 발매한 [Kandid Collection Vol. 1]의 참여 아티스트 대부분이 SNP와 오버클래스를 거쳐 갔기 때문이다. 재즈 음반을 샘플링하여 만든 만큼, 앨범은 누자베스(Nujabes)로 대표되는 감성을 어느 정도 포함한다. 하지만 각 곡들은 감성에 기대기보다는 크릭의 주도하에 나름의 서사를 가진다. 이는 랩 트랙과 인스트루멘탈 트랙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피처링한 래퍼의 목소리로 구현되기도 하고, "A Light Step"의 리듬처럼 크릭의 비트 그 자체로 구현되기도 한다. 한국힙합이 초창기에 어떤 시도를 했고, 어떤 분위기를 갖고 있었는지 궁금할 때, [Kandid Collection Vol. 1]로 그 갈래 중 하나를 확인할 수 있다. - GDB
드렁큰타이거 - 뿌리 (2003. 02)
한국힙합에서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지금이야 MFBTY가 되었지만, 1999년 2월 첫 앨범 [Year Of The Tiger]부터 타이거 JK(Tiger JK) 홀로 앨범을 발표할 때까지 대중적인 인기는 물론 힙합에 관한 인식과 멋을 한국에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 큰 공을 세웠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난 널 원해" 등의 곡이 인기를 끌었고, 이후 "Good Life"를 통해 더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발표한 앨범 [뿌리]는 두 사람으로 구성된 드렁큰 타이거의 정점이자 작품성 측면에서 커리어 하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스러운 한글 사용을 뛰어넘어 뚜렷한 정서와 표현을 구사하는 가사, 잘 짜인 트랙을 탄탄하게 채우는 랩 등 앨범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슬픈 기타줄"에서 산울림의 "개구장이"를 샘플링하는 것은 물론 "굽혀진 9자로", "엄지손가락", "아라디호" 등 한국적인 정서를 진하게 구현한 트랙이 다수 배치되어 있으며, 상당 부분을 타이거 JK가 작업한 만큼 그의 음악적 색채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 ‘한국힙합’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이따금 꺼내 듣는 작품. - bluc
신의의지 - People & Places Vol.1 (2003. 07)
한국힙합 역사에서 [People & Places Vol.1]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린 앨범이다. 세기말과 2000년대 초반을 수놓은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둔탁한 사운드, 무거운 주제 의식으로 채워져 있었다. 반면 팔로알토(Paloalto), 더콰이엇(The Quiett), 키비(Kebee), 바이러스(Virus) 등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신인 아티스트가 대거 참여한 [People & Places Vol.1]은 이전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주로 일상적인 소재를 문학적인 표현하려 했던 이들의 문법은 강한 이미지만을 추구하는 성향이 팽배하던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에 변화를 가져왔다. 크리티컬 피(Critical P)가 중심이 되어 앨범 속 이야기들과 어우러지는 재지한 분위기의 비트 또한 기존에 스타일과는 달랐다. 또한, [People & Places Vol.1]는 신의의지 레코드의 이름을 걸고 나온 작품이지만, 결과적으로 참여 라인업 등 여러 면에서 이듬해 탄생하는 소울 컴퍼니(Soul Company)의 색깔이 많이 묻어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 HRBL
가리온 - Garion (2004.01)
한국힙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 가리온의 첫 정규 앨범이다. [Garion]은 가리온이 활동을 시작하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발매됐다. 그래서 나이를 꽤 먹은 곡들이 앨범에 다수 담겼고, 스타일도 발매 당시 힙합의 흐름과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편이지만, 높은 완성도 자체만으로도 이런 점들은 무리없이 상쇄된다. 재유가 담당했던 프로덕션은 동시대 앨범 가운데서도 가장 독특하고 단단한 소리를 담고 있으며, MC 메타(MC Meta)와 나찰이 던진 가사에는 단순한 랩의 방법론을 넘어 힙합이라는 장르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다. 영어 단어의 유무가 좋은 한국힙합의 척도가 되지는 않지만, 한글로 앨범 대부분을 소화했다는 점도 분명 의미 있는 대목이다. 재유의 탈퇴로 가리온은 큰 틀에서 음악의 스타일을 바꿨지만, "옛이야기"에서 MC 메타가 말한 ‘홍대에서 신촌까지 깔아 놓은 힙합 리듬’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 Pepnorth
피타입 – Heavy Bass (2004.05)
한국힙합 커뮤니티의 시작부터 가장 뜨거운 논쟁이라면 단연 한국어 라임 방법론이었다. 끝 없을 것 같았던 논쟁은 나우누리 흑인음악 동호회 SNP 출신 뮤지션들의 방법론이 담긴 앨범들이 발매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그리고 2004년, 피타입(P-Type)은 데뷔 앨범 [Heavy Bass]로 결정타를 날리며 라임 방법론에 대한 패러다임을 확립한다. 샘플링 기법을 통해 구현해낸 무겁고 둔탁한 비트와 ‘랩은 또 다른 드럼’이라는 자신의 방법론이 담긴 랩의 조합은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에 가까웠다. 이처럼 피타입은 자신이 새로운 한국힙합의 선구자임을 "서시"와 "돈키호테"를 통해 세상에 천명한다. 이어지는 "Heavy Bass", "P-type The Big Cat", "힙합다운 힙합", "독종", "So U Wanna Be Hardcore"와 같은 트랙으로는 기존의 힙합 씬을 비판하며, 과도기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자신이 만들어 나갈 것을 분명히 한다. 이로써 본 작은 기존의 라임 방법론을 뛰어넘어 치밀한 라임 배치로 스킬과 메시지 모두 구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증명한 한국힙합의 교과서적 작품으로 역사에 남았다. - Geda
디기리 - 리듬의 마법사 (2004.06)
디기리는 허니패밀리(Honeyfamily), 리쌍의 전신인 리쌈 트리오의 멤버였던 1세대 래퍼다. 하지만 그는 어딘가의 멤버로 언급되기보다 자신의 솔로 앨범 [리듬의 마법사]로 상기되어야 마땅하다. 타이틀이 '리듬의 마법사'인 만큼 앨범의 중심축이 되어주는 건 단연 디기리 특유의 리듬감과 플로우 디자인이다. 템포가 어떻든 간에 매 순간 유려하게 흘러가는 그의 플로우는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을 정도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디기리가 주도한 투박한 프로덕션은 앨범의 또 다른 큰 축이 되어 소울풀함을 풍기며 균형을 맞춘다. 그가 "가내수공업 프로덕션"에서 이야기했듯 [리듬의 마법사]에는 뽕짝을 갖다 써도 촌스럽기보다는 '먼지 쌓인' 과거의 멋이 가득하다. 그 위에서 디기리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 상황, 그 둘로부터 느끼는 감정들을 환기하며 작품의 전반적인 무드와 합치되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물론, 올드스쿨 힙합과 90년대 동부 힙합을 오가는 타이트한 스타일의 "촌스럽게 (Back In The Days)", "This Is Diss", "Zero 영역의 Battle"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시대와 상관없이 디기리만의 멋이 가득 담긴 앨범. - Melo
DJ 손 - The Abstruse Theory (2004.12)
DJ 손(DJ Son)의 [The Abstruse Theory]는 발매된 지 12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국내 앱스트랙 힙합을 대표하는 음반이다. 한량사에서 발매된 앨범은 전반적으로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 전개된다. DJ가 만든 앨범답게 [The Abstruse Theory]의 프로덕션은 멜로디와 같은 여타 음악적 요소보다는 DJ 손의 디제잉 스킬과 이펙터 활용 등 턴테이블리스트가 선보일 수 있는 요소에 무게감이 쏠려 있다. 그는 앨범을 통해 고집스럽게 어두운 분위기를 이어가고, 게스트 래퍼를 통해 앨범 전반에 깔린 관념적인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킨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앨범 속에 존재하는 추상성을 [The Abstruse Theory]만의 명확한 색깔로 완성한다. 그는 앨범을 통해 DJ로서의 기술을 비트메이킹으로, 그리고 이를 앨범 제작으로 연결하는 능력까지 한 번에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게스트 래퍼의 랩 자체는 지금과 비교했을 때 세련되지 않을지는 모르나, 앨범에서 만날 수 있는 DJ 손의 비트메이킹 자체는 여러 면에서 여전히 놀라움을 선사한다. - HRBL
UMC – XSLP (2005.03)
UMC는 한국힙합의 주류 라임 방법론에 대척되는 대표적인 존재다. 그는 "Shubidubidubdub", "XS Denied"와 같은 자신만의 방법론과 독설적인 가사가 담긴 작업물들을 공개하며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논란에 휩싸였었다. 그렇기에 그의 데뷔 앨범은 자연스럽게 큰 기대를 받았었고, 6년의 기다림 끝에서야 발매된다. 하지만 [XSLP]는 UMC 자신의 방법론을 주창하기만 하는 앨범이 아니다. 앨범에는 무력한 삶을 살아가는 가방끈 긴 청춘의 시선이 담겨 있다("91학번", "H2"). 또한, 청춘들의 사랑을 노래한 "가난한 사랑 노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서도 세태에 대한 UMC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선들은 가사 속 단어가 그려내는 장면을 통해 호소력을 얻으며, 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밖에도 그는 "Media Doll Part.2", "Naga", "음악하지마"로 특유의 해학적인 표현을 통해 음악 씬과 사회 문제들을 이야기 해 나간다. [XSLP]가 발매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며, 이로써 본 작은 현재성까지 획득한다. - Geda
더 지 - Funk Without Score (2005.09)
2000년대 초, 중반 한국힙합은 대체로 컷앤페이스트, 프레이즈 샘플링 방식으로 어둡고 둔탁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스트 코스트 힙합의 스타일을 표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속에서 한량사의 프로듀서 더 지(The Z)는 거의 유일하게 훵크를 주된 재료로 사용하여 샘플링 비트를 만드는 프로듀서였다.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 앨범 [Funk Without Score]의 타이틀에도 훵크가 들어갈 정도로 실제로 그는 앨범을 통해 훵크 특유의 흥겨운 무드를 많이 살린 바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춤을 출 정도로 신나는 건 아니었다. 이는 웻(Wet)한 드럼 라인이 무게 중심을 아래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확실한 건 드럼을 세게 내리치고, 웅장한 류의 샘플을 쓰는 터프한 스타일의 힙합과는 다르게 칠한 분위기를 머금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더 지는 테이크(T-ache), MC 메타, 팔로알토, 대팔, 윔피(Wimpy)와 같은 유수의 래퍼들이 참여한 트랙과 연주곡을 교차하며 앨범을 구성한다. 절제된 톤과 안정된 구조로 유도해낸 적당한 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Melo
팔로알토 - Resoundin' (2005.06)
팔로알토는 현재 하이라이트 레코즈(Hi-Lite Records)를 이끌며 베테랑 래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발자국]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2000년대 초•중반 당시에는 신의의지 레코드의 신인이자 유망주였다. 그런 그의 첫 번째 정규 앨범 [Resoundin']은 지금 들으면 촌스럽다고 느낄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촌스러움이 주는 편안함이 있는 앨범이다. 그는 작품 안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투박하지만 진솔하게 표현해냈으며, 그 때문에 많은 팬의 공감을 얻었다. 또한, 플로우를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가사 전달이 확실한 팔로알토 특유의 느낌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한다. 프로덕션은 프로듀서로서의 행보를 조금씩 다지던 더콰이엇, 프라이머리(Primary) 등이 참여했고, 피처링으로는 각나그네, 넋업샨, 개화산 등이 목소리를 더했다. 특히, "I Feel Love", "Family", "못다한 고백", "순간의 실수" 네 트랙에 참여한 그의 오랜 친구인 소울원(Soul One)과의 호흡이 돋보인다. 자극적인 이야기 없이, 종교적 신념과 자기성찰, 고독이 주를 이루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귀를 기울이게 되는 작품이다. - Heebyhee
다이나믹 듀오 - Double Dynamite (2005.10)
가장 대중적인 힙합 가수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툭 튀어나오는 이름들 중 하나인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팬들을 기다리게 하는 그룹이다. ‘셋보다 나은 둘, 최자와 개코’라는 것을 보여준 첫 앨범 [Taxi Driver] 이후, 1년 뒤에 발표한 [Double Dynamite]는 앨범 제목처럼 인간 다이너마이트의 위력을 보여준다. 전작에서 샘플링을 적극 활용한 프로덕션 구성을 선보였다면, 두 멤버는 본 작에서 세션을 활용하거나 미디 시퀀싱에 기반을 두기도 한다. 그 사이에 거시적 비유나 신나는 분위기, 따뜻한 내용 등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특유의 문법이 자리한다. 특히, "고백(Go Back)", "너나 잘하세요(F*** You)", "Love Is", "파도(I Know)"는 많은 힙합 팬이 지금까지도 언급하는 명곡들이다. 또한 피처링 진의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나얼, 전제덕, 이적, 노홍철이 눈길을 끈다. 덧붙여 이 앨범에서는 16살의 도끼(Dok2)와 13살의 마이크로닷(Microdot)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원초적인 다이나믹 듀오의 정체성과 개성이 그립다면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 Heebyhee
마일드비츠 - Loaded (2005.11)
마일드비츠(Mild Beats)라는 이름은 국내힙합 씬 역사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실제로 골든에라 클래식에 대한 짙은 향수와 샘플링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유수한 트랙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알리는 앨범이 [Loaded]다. [Loaded]는 빅딜 레코드(Big Deal Records)로 대표되는 마초적이고 극적인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국내에서 태동할 수 있음을 알린 첫 단초와 같았다. 마일드비츠는 7•80년대 소울과 영화 음악 등지에서 소스를 추출하는 정통적인 접근을 통해 90년대에 대한 찬가를 빚어냈고, 유능한 DJ들을 초청해 각종 세션을 더하며 앨범의 알맹이를 단단하게 채워냈다. 한 명의 프로듀서가 만들어낸 통솔력과 장악력은 물론, 신의의지, 소울 컴퍼니, 빅딜 레코드 등 각 레이블에서 차출된 MC들의 역동적인 랩 역시 준수했다. 프로듀서의 풀렝쓰 앨범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목이 쏠린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퀄리티 면에서도 [Loaded]는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 Beasel
더콰이엇 - Q Train (2006.02)
소울 컴퍼니(Soul Company)의 래퍼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더콰이엇의 2집 앨범이다. 랩과 비트메이킹을 병행했던 1집 [Music]과는 달리 [Q Train]에선 비트메이킹에만 집중했다. 객원 뮤지션을 동원한 몇몇 트랙을 제외하면 모든 수록곡은 인스트루멘탈이다. 더콰이엇은 다양한 소리를 아우르며, 그전까지 집착했던 소울풀한 느낌에서 탈피하는 데에 성공했다. [Music]에 인스트루멘탈 트랙으로 수록됐던 "Take The Q Train"에 래퍼 피타입의 랩을 올려 수록한 점도 눈에 띈다. 말랑말랑한 분위기의 "Sunshine Luv"는 누자베스로 대변되는 일본식 재즈힙합의 질감을 구현한 트랙이다. 샘플을 고르는 능력이나 그 재료들을 조합하는 능력이 탁월하게 발휘된 작품으로 더콰이엇의 첫 번째 전성기 사운드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앨범이다. - greenplaty
이루펀트 - Eluphant Bakery (2006.03)
이루펀트(Eluphant)는 2006년 당시 소울 컴퍼니 소속이었던 키비와 마이노스(Minos)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Eluphant Bakery]는 프로젝트 듀오였던 이루펀트의 첫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0년 전 앨범이지만 지금 들어도 큰 어색함이 없어보인다. 꿈, 사랑, 행복을 주제로 한 가사가 주를 이루는데, 앳되고 조금은 긴장한듯한 그들의 목소리가 트랙들을 더 따뜻하게 한다. 샛별, 소울맨(Soulman), 정기고(Junggigo)의 음색이 사랑스러움을 더하고, 라임어택(RHYME-A-), 팔로알토, 더콰이엇, 인피니트 플로우(Infinite Flow)가 타이트함 등의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또한, "귀 빠진 날: 생일 축하해",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졸업식"은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 흥얼거리게 될 정도로 이 앨범은 개미지옥같은 앨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성힙합'이라는 말이 나오는 요즘, 이 작품을 시작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힙합’을 꾸준히 해주고 있는 유일한 그룹이 이루펀트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 Heebyhee
라임어택 & 마일드비츠 - Message From Underground 2006 (2006.3)
‘밀림의 왕자’였던 라임어택과 빅딜 레코드의 중추였던 마일드비츠의 만남은 검증된 흥행보증수표였다. 둘은 2000년대 중반 최고의 1MC 1Producer 조합으로 각광받았고, 이는 [Message From Underground 2006] 작업으로까지 이어진다. 두 아티스트는 힙합 장르가 으레 담아야 할 라임(Rhyme)과 비트(Beats)라는 기초를 토대로 앨범의 뼈대를 구성한다. 자신을 ‘뢈형사’라는 캐릭터에 빗댄 라임어택의 스토리텔링과 정박의 인토네이션, 각종 스크래치 커팅과 붐뱁 특유의 드럼 라인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마일드비츠의 사운드는 90년대에 대한 오마주라는 큰 틀 안에 묶였다. 여기에 더해진 씬에 대한 자성과 새로운 변화에 대한 촉구의 메시지는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표방한 수많은 작품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졌지만, "MFU", "영광의 나날", "적과의 동침"을 내세운 본 작이 2000년대 중반 언더그라운드의 행보를 대표했음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 Beasel
TBNY – Masquerade (2006.04)
2000년대 중, 후반 무브먼트(Movemnet) 크루를 대표하는 그룹은 에픽하이(Epik High)와 다이나믹 듀오였다. 그들만큼 대중적인 입지를 확보하진 못했지만, 팬들의 만만치 않은 지지를 받은 그룹이 있었으니 바로 TBNY가 되겠다. 톱밥과 얀키(Yankie)로 이루어진 랩 듀오다. 두 멤버 모두 빼어난 랩 실력을 지녔지만, 더 돋보였던 것은 분명 얀키였다. 날카로운 랩 스타일과 거침없는 가사는 청자들에게 통쾌함으로 대표되는 여러 쾌감을 선사했다. 수록곡들은 전반적으로 호전적이다. "L.I.E", "차렷!", "투루먼쇼", "F.U." 등의 트랙들이 대표적인데, 여기에 무브먼트 크루 동료들을 대동하여 그 쾌감을 증폭시켰다. 소심한 연애감정을 풀어낸 "어느날", 종교적 신념을 담은 "기도" 등도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TBNY의 음악적 색깔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인 동시에 무브먼트 크루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 greenplaty
각나그네 - Green Tour (2006.05)
계절 변화에 따른 감정 변화를 소재로 하는 각나그네의 첫 앨범 [Green Tour]는 독특한 흐름과 시적인 가사, 각나그네의 여러 음악적 시도가 돋보이는 앨범이다. [Green Tour]는 초반 밝은 색채의 트랙이 이어지다가, "Green tea break"를 기점으로 분위기 변화를 맞이한다. 차갑고 건조한 계절이 찾아온 듯 앨범 속 화자의 감정은 슬픔과 외로움으로 뒤덮인다. 이 과정에서 각나그네는 섬세한 표현력, 아름다운 비유를 활용하여 각 곡을 완성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각나그네의 근본적인 태도는 바뀌지 않는다. 그는 이별하는 대상을 논할 때도("Sad Romance"), 자기 멋에 취한 대상을 비판할 때도("바보들의 행진") 경박스러움을 경계한다.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 랩을 하든간에 중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아마도 그가 생각하는 알맞은 힙합 정서를 담으려는 모습이 아닌가 한다. 이외에도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서 랩을 하는 방식, 무게를 두는 요소를 바꾼다. 이는 힙합이 단순히 랩 기술만 뛰어나다고 해서 완성되는게 아니라는 점에서 인상적인 지점이다. 여러 주제와 무드 속에서 빛나는 이야기꾼, 각나그네를 만날 수 있는 앨범이다. - HRBL
YDG - 거울 - 28청춘 엿봐라 (2006.07)
YDG의 장점은 기본적으로 본능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타고난 하드웨어, 즉 독보적인 발음 체계에서 나오는 능청스러움과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서 터져 나오는 굴곡진 플로우가 그러했다. 당연히 그의 이름 석 자는 대체 불가능한 시그니처와 같았다. 이는 본 작에서도 마찬가지다. "Widy G"와 "머피의 법칙", "Put Your Hands Up"에서 뿜어내는 동물적인 탄성은 그의 캐릭터를 대변한다. 특히, "Run"에서 반의어를 반복하며 탄력적인 랩을 수놓는 장면은 탁월했다. 그러나 이외에도 [거울 - 28청춘 엿봐라]에서 주목할 점은 YDG의 주제 의식과 가사다. 그는 종교적인 관점과 색채를 트랙 명과 테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영적인 메시지와 위로의 악수를 건넨다. "거울"이 대표적이다. 탁성을 주로 활용하는 그의 담담한 랩은 짙은 감성을 표현했고, 한 남자의 일생을 사실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작사 체계 역시 진솔했다. YDG가 개성 있는 래퍼에서 아티스트로 한 단계 껍질을 벗음에 있어 본 작은 중요 터닝 포인트이자, 후에 발표된 "여러분", "어깨" 등에 대한 첫 포석을 제공한 앨범이기도 하다. - Beasel
P&Q – Supremacy (2006.07)
팔로알토와 더콰이엇이 가장 ‘핫’했던 시기에 듀오로 발표한 앨범이다. 더콰이엇이 같은 해에 앞서 발표한 [Q Train]에서 비트메이킹에만 집중했다면 본 앨범에선 랩에만 집중한다. 그가 작곡한 곡은 "Life Goes On" 하나뿐이다. 대신 페니, 프라이머리, 타블로(Tablo), 도끼, DJ 소울스케이프 등 객원 프로듀서들의 비트가 앨범을 채운다. 더콰이엇의 랩 스타일에 관해서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지만, 본 앨범에서 그가 선보인 랩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어느덧 한국힙합을 대표하는 두 거장이 된 그들이 10년 전에 품었던 이야기와 고민을 엿볼 수 있다. - Heebyhee
이그니토 - Demolish (2006.08)
이그니토(Ignito)는 하드코어적인 빅딜 레코드(Big Deal Record) 안에서도 단연 정체성이 확고한 래퍼였다. 그 시작을 알린 첫 작품 [Demolish]는 특유의 목을 옥죄는 듯한 목소리와 한없이 나열되는 심오한 단어들로 연출된 어두운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랍티미스트(Loptimist) 주도하의 프로덕션은 제다이 마인드 트릭스(Jedi Mind Tricks)가 연상되는 타격감 있는 스타일을 표방하는데, 그 위에서 이그니토는 희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노랫말들을 늘어놓는다. "Ignight"에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엄한 시작을 알리며, "Guillotine"에서는 'Fake MC'들을 처단하는 집행자로 변모한다. 타이틀곡 "Life"로는 절망감으로 휩싸인 삶을 노래하며, 극도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센스(E SENS), 바이러스 역시 이그니토의 문법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장단을 맞춘다. 이를 통해 청자들은 잠시 현실 세계와 차단된 채로 절망으로만 가득 찬 세계에서 아비규환에 빠진다. 그만큼 [Demolish]는 특정한 이미지를 표방하는 완결된 하나의 세계로서 듣는 이를 압도하는 작품이다. - Melo
몬순누이 - Threshold Of Hearing (2006.09)
몬순누이라는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낯설 듯하다. 그들이 '몬순'과 '장누이'로 구성된 힙합 듀오란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은 무려 세 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한 베테랑 아티스트다. 첫 앨범이 나온 2006년부터 2년마다 꾸준히 앨범을 발매했음에도 이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음악이 가볍게 듣기 어려웠단 점이 크다. 첫 앨범 [Threshold Of Hearing] 역시 주류에 가까운 앨범은 아니다. 곡들의 주제의식은 듣는 이의 집중력을 요구하고, 로우파이한 사운드와 어딘가 난해한 음색의 악기는 앨범을 더더욱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반대로 이는 몬순누이가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둘의 랩은 화려하진 않지만, 그들의 가사와 박자 감각은 90년대 힙합이 갖고 있던 특정한 분위기를 제대로 구현해낸다. 변칙적인 리듬과 독특한 진행 역시 계속 귀를 잡아끄는 요소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고,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앨범을 들어보면, '몬순누이'라는 이름과 [Threshold Of Hearing]란 제목이 더는 낯설지 않을 듯하다. - GDB
프라이머리 스쿨 - Step Under The Metro (2006.09)
[Step Under The Metro]에서 프라이머리 스쿨(Primary Skool)은 도시를 테마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다. 그들은, 앨범의 공간적 배경은 프로덕션으로, 그 속의 이야기는 외부 참여진의 가세로 채운다. 본 작은 기본적으로 소울풀한 프로덕션을 지향한다. 하지만 단순히 특정 바이브를 앨범에 녹이는 정도에서 만족하는 건 아니다. 프라이머리 스쿨은 브라스, 플룻, 바이올린, 여러 소리를 내는 전자 피아노 활용 등 당시로써는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던 다양한 악기 운용을 통해 자신들의 가치를 드러낸다. 인스트루멘탈 트랙을 통해 밴드가 가지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기도 한다. 동시에 이를 통해 많은 외부 참여진 가세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한다. 그 위에서 피타입과 안나(Anna)는 "Half-Time Love"에서 이뤄지지 않는 꿈과 사랑을 노래하고, 데드피(Dead’P)는 "날개짓 Pt.2"을 통해 한 래퍼가 가진 희망에 관해 랩을 뱉는다. [Step Under The Metro]가 약 10년이 지난 지금도 세련됨과 영민한 구성을 갖췄다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유다. - HRBL
에픽하이 - Remapping The Human Soul (2007.01)
에픽하이의 최고작을 고르라면 아마 1집 앨범 [Map Of The Human Soul]과 4집 앨범 [Remapping The Human Soul]로 나뉠 것이다. 멤버들이 묵혀놨던 음악적 욕구를 분출한 게 1집이라면, 4집은 상업적, 음악적 안정궤도에 오른 상태에서 자신들의 색을 굳힌 작품이다. 3집 앨범 [Swan Songs]의 히트곡 "Fly"와 "Paris"를 통해 확보한 대중적 입지를 굳힐 수도 있었지만, 에픽하이는 이를 자신들의 색깔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 2CD, 총 27곡으로 이루어진 본 앨범은 우울하고 음침한 분위기로 일관하며,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가사가 주를 이룬다. 앨범의 타이틀곡인 "Fan"은 3집 앨범의 대중적인 행보에 매력을 느꼈던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동시에 앨범 전반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매력적인 트랙이다. 그룹의 색깔을 중심축에 두고 마니아와 대중을 모두 만족시킨 작품이다. - greenplaty
리오 케이코아 - ILL SKILL (2007.02)
음원 유출로 인해 한바탕 홍역을 치른 이후 발표된 [ILL SKILL]은 팬들의 오랜 기다림을 어느 정도 충족시킨 작품이었다. 특히, 앨범의 주인공인 리오 케이코아(Leo Kekoa)의 유연함이 매 순간 돋보였다. 일스킬즈의 한 축이자 도깨비즈(Dokkebeez)의 수장이었던 그의 음악에는 특유의 여유로움과 흥겨움이 가득했다. 이는 하와이에서 성장한 그의 환경적 배경과도 연관이 있는데, 실제로 리오 케이코아 역시 미국에서의 생활을 스토리텔링에 직접 활용하기도 한다. 리오 케이코아는 "One Way (일방통행)", "DJ와 MC", "똑바로 걸어가"로 대표되는 힙합 고유의 작법의 트랙과 "Rhythm Of Life"와 타이틀인 "Like That (황혼에서 새벽까지)" 등의 리드미컬한 트랙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본인의 캐릭터를 다각적으로 표현했고, 각종 방송과 공연을 통해 개성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단순히 본 작에 즐거운 음악만이 수록된 것은 아니다. YDG와 함께 한 "인생 뭐 있어?"와 "Life Story" 등에서 전달하는 서사적인 감흥 역시 귀 기울여 볼 만한 지점이다. - Beasel
랍티미스트 - 22 channels (2007.02)
[Undisputed]에 참여하며 첫 출발을 알렸던 랍티미스트(Loptimist)는 힙합이 으레 갖춰야 할 전형적인 멋을 구현한 프로듀서였다. 원초적인 샘플 컷팅과 적재적소에 맛을 더하는 스크래치 세션의 활용, 드럼의 질감을 강조하는 진행까지, 그의 음악은 DJ 프리미어(DJ Premier), 피트 락(Pete Rock), 벅와일드(Buckwild) 등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초•중반 뉴욕 사운드를 모티브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22 channels]를 통해 앞서 언급한 랍티미스트의 음악성은 더욱 짙어진다. "Black Cancer", "Hard Hittin", "Hidden Agenda"에 깔린 선 굵은 드럼 라인 운용과 타격감 넘치는 소스 활용은 그의 전유물과도 같았고, 상대를 압도하는 남성적인 분위기 연출 또한 격정적이었다. 이와 함께 케이오틱스(K-Otix), 언더클래스맨(UnderClassMen), 브레일(Braille) 등의 해외 뮤지션의 랩은 물론, 당시 촉망받는 루키였던 사이먼 도미닉(Simon Dominic)과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윔피, 사이드-비, 대팔 등의 모습을 추억하는 것도 본 작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 Beasel
키비 - Poetry Syndrome (2007.10)
키비를 해쉬태그로 표현하면 #리릭리스트 #스토리텔링 아닐까? [Evolutional Poems]에서 [Poetry Syndrome]로 이어지는 흐름이 그 이유를 대변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총 15개의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 각 곡들마다 의미하는 바가 뚜렷하고, 피처링으로 참여한 아티스트가 그 의미를 증폭시킨다. 감수성이 짙게 배인 가사와 키비 특유의 읊조리는 랩이 잘 어우러지며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그로써 청자로 하여금 랩이 아니라 이야기같이 느껴지게 하고, 듣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읽는 기분을 들게 한다. 특히, "잃어버린 아이들의 숲", "Constellation"은 동화적이고 신비로운 상상을 자극한다. 때려박고 때려부수는 가사들에 지쳤을 때 찾아듣는, 키비만의 색이 가득한 앨범. - Heebyhee
버스트 디스 - Hello! Bust This (2007.12)
한국힙합 씬에서 랩은 힙합의 여러 요소 중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에 비해 DJ 주도하에 만들어지는, 이른바 턴테이블리즘 앨범은 손에 꼽을 정도로 없는 편이다. 그래서 버스트 디스(Bust This)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인 [Hello! Bust This]는 아쉬움과 동시에 씬 역사상 가장 빛나는 작품 중 하나다. DJ 쥬스(DJ Juice)와 DJ 짱가(DJ Djanga)는 앨범을 통해 DJ 손으로 대표되는 앱스트랙트한 스타일의 턴테이블리즘과 결을 달리하면서도 DJ 중심의 올드스쿨 힙합 음악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슈퍼맨 아이비(Superman Ivy), 로퀜스(Loquence), 팔로알토와 같은 쟁쟁한 래퍼들도 말그대로 찬조만 할 뿐, 파트 및 트랙 구성, 활용된 작법과 샘플 등 포커스는 모두 두 DJ에게 가 있다. 이는 특히 이음새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는 피처링 없이 대체로 러닝 타임이 짧은 트랙들이 외려 순간순간 힘을 발휘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여기에 샛별과 함께하며 사랑스러움을 대방출하는 "LOVE DJ"로 양념까지 치니 그 누구도 멋들어진 랩이 많이 안 나온다고 성을 낼 수가 없다. - Melo
마일드비츠 & 프라이머리 - Back Again (2008.03)
사실 2008년 당시 두 프로듀서의 음악적 색깔은 다소 상이했다. 프라이머리가 프라이머리 스쿨과 프라이머리 스코어(Primary Score) 활동을 통해 밴드 사운드와 재즈 작법에 몰두했음에 비해, 마일드비츠의 음악은 샘플을 주재료로 사용한 정통적인 문법에 더 가까웠다. 약간은 달라진 서로의 방향성을 조합하는 게 그들에게 주어진 숙제였고, 둘은 [Back Again]이라는 해결책을 선보인다. 샘플링을 기반으로 각 곡의 척추를 건축한 마일드비츠와 그 위로 드럼과 건반, 기타 등의 악기로 살을 덧댄 프라이머리의 조합은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특히, 같은 샘플 트랙을 다각적인 해석을 통해 활용하는 노하우는 곳곳에서 돋보였다. 당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던 데드피을 중심으로 "Microphone Solo"로 강한 임팩트를 기록한 도끼, "정열의 방"의 이센스, "죽일놈의 힙합"을 책임진 딥플로우 등 플레이어들의 쌈박한 랩도 수준급이었다. 이미 최전선에 있었던 두 프로듀서의 능력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은 물론, 화제성 면에서도 준수했던 작품. - Beasel
제리케이 - 마왕 (2008.07)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 것이 [마왕]이 발표된 지 8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사회적 메시지를 음악 안에 담아내는 래퍼를 거론하면 사실상 제리케이(Jerry.K)가 유일하다. 그런 그의 첫 정규 앨범 [마왕]은 당시에도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사회적 의식이 투철한 작품이다. 제리케이는 앨범을 통해 인간에게 해가 되는 요소들을 마왕이라는 키워드 아래 둔 채로 주제 의식을 뻗쳐 나간다. 그것들이 살에 와 닿는 정도는 조금씩 편차가 있지만, 핵심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이야기를 거시적으로만 논하며 뜬구름 잡기보다는 철저히 개인의 영역과 시각에 한해서 서술한다는 점이다. 이는 부패한 정치판과 교육 제도를 꼬집은 "베짱이"와 "아이들이 미쳐가", 환경파괴를 논하는 "마왕"만이 아니라 좀 더 실생활에 밀접한 "떠나보내는 사람을 위한", "불안해", "손가락질"도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제리케이는 그 속에서 자유를 외치고("Free Yourself"), 너 자신의 가치를 있다는 걸 잊지 말라며 다른 이들을 응원한다("숨은 보석", "Be Original"). 그로써 [마왕]은 현실과의 괴리감 없는 탄탄한 앨범이 됐다. - Melo
버벌진트 - 누명 (2008.07)
버벌진트의 2집 [누명]은 한국힙합 명반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앨범 중 하나다. 실제로 그는 이 앨범으로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힙합 음반을 수상하기도 했다. [누명]이라는 제목이 버벌진트 자신을 둘러싼 루머를 통해 느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 만큼, 앨범은 그를 향한 '누명'에 대한 항변과도 같다. 이는 큰 틀에서 두 가지의 주제로 나뉜다. 첫째는 본인이 한국힙합을 망치고 있다는 누명이며, 둘째는 자신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음악만 만든다는 누명이다. 버벌진트는 이를 "일 수도 있다는 식으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함"의 전후로 직•간접적으로 반박한다. 이 과정에서 앨범 전체를 탄탄한 랩과 변주로 채우며 음악적인 부분 역시 놓치지 않는다. [누명] 발매 이후 은퇴를 선언했던 만큼, [누명]은 버벌진트가 본인의 역량과 감성을 쏟아부은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대중적인 노선을 선택한 그를 보며, 많은 팬이 [누명]을 언급했던 것엔 이러한 이유가 종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 GDB
페니 - Alive Soul Cuts Vol.1 (2008.08)
2000년대 중반에 에픽하이와 인피닛플로우(Infinite Flow)의 앨범 주요 수록곡들을 작곡하며 유명세를 누렸던 페니의 데뷔 앨범이다. 2007년에는 타블로와의 합작 앨범 [Eternal Morning]으로 평단의 찬사를 끌어냈고, 이듬해에는 본 앨범을 발표했다. 60, 70년대 소울 음악을 재료로 사용한 전통적인 샘플링 작법으로 완성한 앨범이다. 밝고 화사한 트랙들이 전반을 이루는 동시에 힙합 본연의 질감을 지켜낸다. 덕분에 힙합 마니아들의 지지와 대중들의 취향을 모두 공략할 수 있었다. 당시 힙합 씬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뮤지션들의 대거 참여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중음악 가수 메이비(MayBee)가 피쳐링한 보너스트랙 "You!!"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산뜻한 느낌을 담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 greenplaty
URD – URD (2008.08)
URD는 살롱 01(SALON 01)의 수장이자, 그룹 우주선의 멤버, 본(VON)과 팔도보이즈(8C Boyz)의 일원이었던 알디(RD, RealDreamer)가 모여 이룬 팀이다. 당시 몇몇 팬들은 이들이 합작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대를 가졌었다. 프로젝트 싱글 [Raw Deal]을 통해 시작을 알린 URD는 동명의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들이 받는 기대의 당위성을 증명해낸다. "Remember My Name 2.0", "Raw Deal 2.0"와 같은 트랙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의 사운드는 메인스트림의 그것을 넘어 우주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알디의 미래 지향적 사운드는 금속 질감의 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사운드 활용과 적재적소의 이펙트가 조화를 이루며 여전히 세련미를 자랑한다. "Gettin’ Hot! 2.0", "Burn This City"에서의 짐승 같은 본의 가사와 랩 역시 상당히 매력적이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참여진들이 앨범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멤버가 중심을 잃지 않는 점이 가장 고무적이다. 이처럼 '원초적 진보'라는 컨셉과 맞아 떨어지는 [URD]는 2008년 당시에도 가장 인상 깊었던 컨셉츄얼한 앨범이었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 Geda
펜토 – Pentoxic (2008.12)
비록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살롱 01(Salon 01)은 지금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실험적이고, 또 진보적인 음악을 하는 단체였다. 소속 래퍼였던 펜토(Pento) 역시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그런 그의 데뷔 앨범 [Pentoxic]은 'Gun Rap'이라는 또 다른 이름과 걸맞게 속된 말로 로우(Raw)한 플로우와 거침없는 가사 등으로 무장한 쏘는 듯한 랩으로 가득하다. 이는 일반적으로 듣기 편한 랩은 아니다. 단어와 단어를 쪼개고, 리듬 안에서 박자를 심하게 밀고 당기는 방식은 그의 랩이 기계적으로 들린다는 평을 듣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버벌진트, 라임어택, 딥플로우 같은 쟁쟁한 래퍼 사이에서도 펜토의 랩이 주도권을 놓지 않는다는 건 그가 래퍼로서 갖춘 실력을 증명한다. 또한, JA와 에이조쿠(Aeizoku)를 중심으로 본, RD, 더콰이엇, 로보토미(LOBOTOMY) 등, 다양한 프로듀서와 함께하며 본인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러 의미로 [Pentoxic]은 펜토라는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실험적 방향의 시작을 알린 앨범이다. - GDB
화나 - Fanatic (2009.02)
'라임 괴물'이라는 칭호로 2000년대 중, 후반 꽤 큰 인기를 끌었지만, 화나는 그런 가시적 요소로만 바라보기에는 더 많은 것을 가진 래퍼다. 그는 벌스 전체를 연속적으로 배치한 라임들로 꽉 채우며 청각적 쾌감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드러내고자 하는 이야기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담아낼 줄도 안다. 즉, 자칫 형태가 과도하게 부각되어 그 안에 담긴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는 위험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데뷔 EP [Brainstorming]보다 [Fanatic]에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화나는 "가면무도회", "화약고", "투명인간"과 같은 트랙을 통해 자기 자신과 그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에 대한 고뇌를 털어놓는다. "Deadline"에서는 어느 인간에게나 다가오기 마련인 죽음을, "Red Sun"에서는 최면에 걸린 듯 한 곳만을 바라보는 인간군상을 광기 어린 목소리로 논한다. 이 모든 메시지는 결국 전작보다 더 발전한 화나의 섬세하면서도 듣는 이를 쿡쿡 찌르는 촌철살인의 표현 방식과 복잡하면서도 단단한 라이밍을 통해 큰 설득력을 얻는다. 한 번 들으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그야말로 덫 같은 작품이다. - Melo
오버클래스 - Collage 2 (2009.02)
당연한 말이지만, 크루 컴필레이션 앨범은 크루 본연의 색을 띤다. 이 때문에 크루 컴필레이션 앨범의 완성도를 이야기할 때, 얼마나 색을 잘 드러냈느냐를 기준 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버클래스의 [Collage 2]는 잘 만들어진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다양한 색의 아티스트가 모인 크루인만큼, 앨범은 음악적 통일감을 의도하기보다는 각자의 색을 보여주는 식에 가깝다. 그런데도 앨범은 중구난방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감이란 주제가 전체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이 자신감은 "Rap Genius", "겸손은 없다", "I'm Hot"처럼 실력에 기반을 두기도 하고, "Ride", "Eternity", "없어", "빛이 꺼지다"와 같이 뚜렷한 감성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또한, 참여한 프로듀서들 역시 서던 힙합, 전자음악을 빌린 힙합, 앰비언트 등 본인의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만약 누군가가 오버클래스의 음악을 [Collage 2]를 통해 요약해달라 한다면, 앨범을 여는 두 곡("Color Therapy", "OVC Is The Future")의 제목으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 GDB
라임어택 - Hommage (2009.11)
라임어택은 골든에라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임나스'라는 별명뿐만 아니라 소울 컴퍼니의 [Official Bootleg Vol.2]에 수록된 "Words On The 90's"에서도 그것을 드러냈었는데, 존경과 재현의 의미를 담아 정규 앨범 [Hommage]를 발표하기도 했었다. 빅 엘(Big L)의 "Ebonics"를 오마주한 "K-bonics", 나스(Nas)의 "Represent"를 오마주한 "Represent" 등 곳곳에서 골든에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머물지 않고 "Man VS Machine"에서는 두음법 랩을 자유자재로 선보이고, "W.W.W. - World Wide Word"로는 졸리 브이(Jolly V)를 ‘누군지 몰라서 궁금한데 정보가 없는’ 의문의 래퍼로 만들기도 한다. 또한, 소울 컴퍼니 멤버를 기용하지 않고 당시 빅딜 스쿼즈(Bigdeal Squads)의 데드피, 딥플로우, 제이켠(J'Kyun)과 지기펠라즈(Jiggy Fellaz)의 베이식(Basick)과 함께해 색다른 묵직함도 주었다. 앨범 제목도, 라임어택도 이름값을 하는 작품이다. - Heebyhee
글│힙합엘이
생각보다 국힙계에서 크게 회자되는 앨범들이 많이 빠졌네요
예를 들어, 솔컴 뱅어즈나 바이러스 팔든미, 화나 브레인스토밍이나 드타 7집과 더콰 리얼미 등등..
너무 좋은 앨범이 많아서 빠진거 같기도 하네요
이렇게 정리해주셔서 .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 힙합이지만
나름 뿌리 깊은 역사를 가졌네요 .
하지만 몇몇은 50개를 채우려다 보니 억지로 넣은 듯한 앨범이 몇개 보이네요 .
08~09 년도는 믹스테잎 열풍이 한창일 텐데 ..
좋은 믹스테잎도 넣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다음번에 믹스테잎만 선정하는것도 좋을것 같구요 ..
그리고 너무 예전의 클래식한 앨범들은 들을 엄두가 나지 않네요 ..
음악적으로 뛰어 나지만 지금 듣기에는 조금 촌스럽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
좋은 앨범보다도 다양한 앨범을 실으려고 노력하신 것 같은데, 굳이 다양한 앨범을 실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 같지도 않네요. 그냥 베스트 앨범을 꼽아도 50선을 채우기엔 한국 힙합 역사가 좀 짧은 것 같은데, 다양성까지 고려하시면서 만든 리스트라 질적인 면에서 공감이 별로 안 됩니다.
내 중고딩 시절이 여기 다 있네요...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