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Salon] 마이노스 (Minos)
수많은 팀을 거쳐오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꾸준히 쌓아온 MC, 마이노스(Minos). 그는 소울컴퍼니(Soul Company)에 잠시 몸담아온 시절을 빼면 항상 인디펜던트로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10장에 가까운 스튜디오의 앨범을 성실히 발매하고, 자신의 랩의 퀄리티도 매년 한단계 한단계 올려놓는 행보를 보였다. 랩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밀리고 싶지 않아하고, 자기 자신을 랩 인간형이라 부르는 그는 아마 내가 만나본 아티스트 중에 '랩'에 대한 열망이 가장 강한 사람으로 판단된다. 그는 10여 년전 처음 랩을 시작했던 그때와 다르지 않게 지금도 여전히 랩을 '존나' 잘하고 싶은 사람이다. 화끈하고 쌈박한 053 대구 MC, 마이노스를 만나고 왔다.
* 본 인터뷰는 노이즈맙(Noise Mob)의 또 다른 멤버인 라임어택(RHYME-A-) 님이 자리에 동석하였음을 사전에 공지합니다.
LE: 반갑습니다. 먼저 힙합엘이 회원 분들께 인사 부탁 드릴게요.
Minos: 안녕하세요. 마이노스 입니다. 최근에 스탠다트(Standart)의
노이즈맙으로 활동하고 있고, 또한 이루펀트(Eluphant)로 활동하고 있고, 혹은 소울맨 앤 마이노스(Soulman & Minos), 마이노스 인 뉴올(Minos In
Nuol), 그리고 내년에 10주년을 맞이하는 바이러스(Virus)로
활동하게 될 지도 모를 (웃음) 재미있는(?) 캐릭터죠. 마이노스입니다. 반갑습니다.
LE: 올해 노이즈맙으로 앨범을 내셨는데, 앨범 발매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근황에 대해서 얘기해주세요.
계속 작업하고 있고요. 노이즈맙 앨범이 발매된 후로는 저희가 계획했던 대로 노이즈맙으로서의 공연 활동을 꽤나 많이 했어요. 그 이외의 시간에는 라임어택이 본인의 솔로 싱글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처럼 저도 개인적으로 부탁이 들어와있던 피쳐링 작업을 해가면서, 솔로 앨범에 관한 계획과 함께 라임어택과 다음 노이즈맙 앨범에 관한 계획도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LE: 전체적으로 다음 작품 작업을 많이 해오신 거네요?
그렇죠. 스탠다트를 만들 때부터 모든 아티스트들이 작업 그 자체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런대서 행복을 얻자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말 그대로 (스탠다트의) 모든 아티스트들이 되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서로에게 자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저도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중입니다.
LE: 요즘 스탠다트는 경영이나 운영적인 측면에서 잘되고 있나요?
아직은 시작 단계에요. 스탠다트 이전에 소울컴퍼니라는 굉장한 단체가 있었고, 저희 커리어가 10년 이상 혹은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현재 스탠다트가 생긴지 얼마 안된 레이블이다 보니까 여전히 시작이라고 봐야죠. 그래서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주변 아티스트 중에서도 우리와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없을까 하면서 저희끼리 회의를 해보기도 하고, 아니면 저희 안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작품들을 더 많이 알릴 수 있을까 아이디어를 내보기도 하고요. (레이블의 주축인) 세 명이 각자 이뤄내 온 부분들이 있는 아티스트들이니까 여러 부분에 있어서 같이 머리를 맞대고 방향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LE: 며칠 전에 노이즈맙 단독 콘서트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옴니버스 공연이 아닌 단독 콘서트는 꽤 오랜만이셨을 것 같은데…
그렇죠. (웃음) 이루펀트의 앨범, [Man On The Earth]의 쇼케이스 이후로는 팀으로서도 솔로로서도 단독 콘서트를 가지는 건 되게 오랜만이었던 것 같아요. 노이즈맙도 쇼케이스를 따로 하진 않았었거든요. 최근, 허클베리피(Huckleberry P)와 수다쟁이의 유닛 그룹인 겟 백커스(Get Backers)와 함께 ‘Real Recognize Real’이라는 제목의 더블 콘서트 투어를 한 적은 있었는데, 단독으로 하는 건 되게 오랜만이에요.
LE: 간단하게 최근 이야기를 조금 해보았고요.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볼게요. 노이즈맙에 관한 얘기가 아니고 마이노스 씨 개인에 대한 이야기니까 계속 데뷔 초부터 커리어대로 쭉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런 인터뷰 되게 오랜만이네요. 색다르고 재미있을 꺼 같네요.
LE: 뮤직살롱이 정통 인터뷰죠. (웃음) 일단 힙합음악을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고등학생 때였고요. 고등학교 이전에도 들어오던 것들은 분명히 있었는데, 어떤 큰 관심을 가지고 힙합이라는 이름에 매료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쯤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PC통신에 (힙합) 동호회라는 게 있다는 걸 친구들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그때는 지금만큼 힙합에 관심 있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특히나 저는 대구라 더 적은 편이었어요. 학교의 아주 소수의 친구들과 정보를 공유했던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을 통해서 ‘블렉스(Blex)’나 ‘SNP(Show N Prove)’, 그리고 제가 친구들과 제일 많이 활동했던 에듀넷의 ‘힙합정신’같은 동호회를 알게 됐는데, 그냥 호기심에 그런 곳에 가입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형들도 계시지만 지금 활동하고 있지 않은 뮤지션들까지, 그 분들이 자기가 가사를 쓰고 자기 랩을 녹음해서 동호회에 올린다는 것이 되게 신기했어요. 가사에도 예전에 쓴 적이 있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되게 장난스러웠어요. 아버지가 컴퓨터 노래방 프로그램을 한번 해보고 싶어하셔서 친구한테 마이크를 빌리러 갔었어요. 마침 친구가 사용 안 하는 게 있다고 마이크를 꺼내줬었어요. 그리고 사용되는 건지 한번 해보자 해서 몇 초만 녹음되는 녹음기라는 프로그램을 켜두고 거기다 친구들이랑 같이 프리스타일을 했었어요. 그때는 프리스타일이 뭔지도 모르고 한 거죠. 근데 그게 첫 녹음이었던 것 같아요. 녹음하고 나니까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시작은 했지만 그렇다고 거창하게 ‘난 MC가 될 거야. 무대에 설 거야.’같은 생각을 하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재미있어서 한 거죠. 근데 지금 (랩을) 시작하는 분들도 느끼겠지만, 랩을 하고 녹음을 하는 게 굉장한 마력이 있잖아요. 제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하는 부분인데, 재미있으니까 더 알고 싶어지고, 더 알고 나니까 나도 하고 싶어지고, 하고 나니까 잘하고 싶어지고.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자연스럽게.
LE: PC 통신을 얘기하셨는데, 그와는 별개로 대구의 클럽인 HEAVY에서 있었던 공연 브랜드인 ‘힙합 트레인’은 나중에 참가하게 되신 건가요?
굉장히 나중은 아니고요. 비슷한 때였던 것 같아요. 한 몇 달 차이? PC 통신에서 몇몇 형들을 알게 되고, 어떤 노래들을 작업하고 있을 때쯤에 저희끼리 신나는 마음에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로 벌었던 돈을 좀 모아서 클럽을 대관해서 공연을 했었어요. 대구에서 알게 된 또 다른 팀이 있어서 그 팀과 함께 했었어요. 곡을 한 팀 당 두 세곡 정도 했었죠. 친구들을 관객으로 엄청 모았죠. 근데 한 팀 당 두 세곡을 한다 치면 두 팀이면 총 6곡 정도밖에 안되잖아요. 근데 앵콜이 터져 나오는 거예요. 근데 저희는 (더 준비한 게 없으니까) 공연했던 곡들을 똑같이 또 했죠. (웃음)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그 즈음해서 대구에도 라이브클럽이 있고 그 클럽에서도 힙합공연이 있다는 걸 소문으로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일단 구경을 한번 가봤었어요. 그때 저를 포함한 제 친구들이 3명이었는데,총 관객이 4명이었어요. (웃음) 몇 팀 안 되는 공연이었지만 서울의 클럽 MP(Master Plan)에서 그러했듯 공연이 끝나고는 프리스타일 무대가 있었어요. 자유롭게 공연진과 관객이 함께 랩을 나누는 시간이죠. 그런데 관객이라고 해 봤자 저희가 다였는데 눈치볼 게 있었겠어요? 나가서 함께 랩하고 놀았죠. 그 모습을 보신 클럽의 사장 누나가 저희한테 혹시 HEAVY에서 이 무대가 있는 날 함께 공연할 생각이 없냐고 하시는 거예요. 저희는 너무 신났죠. 힙합트레인이라는 공연은 그렇게 시작하게 됐었어요.
LE: PC 통신도 그렇고, 힙합트레인도 그렇고, 대구에서 모든 걸 시작하신 거잖아요. 근데 가사에 보면 'Since 99'이라는 대목이 자주 나오는데, 1999년도부터 시작을 하셨다면 그땐 대한민국 어디든 힙합 불모지였던 시절이지만 아무래도 서울보다는 대구가 더 불모지였을 것 같아요.
그렇죠. 완전 불모지였죠. 불모지라는 단어 자체가 대구였어요. 옆에 있는 라임어택도 공감하겠지만, 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힙합 공연은 내가 내 돈을 내고 서울에 올라와서, 모르는 지하철을 어떻게 어떻게 타고, 디지(Deegie) 형 가사를 힌트 삼아 신촌역 8번 출구가 어디 있나 찾으면서 길 따라 길 따라 묻고 가야지 볼 수 있는 거였어요. 그냥 없었죠. 힙합 앨범을 산다는 것도 너무 희귀한 일이었고… 그랬던 것 같아요.
LE: 최근엔 ADV도 있고 다이나마이크(Dyna'MIC)나 래퍼레이드(Rapperade)도 있는데, 대구가 나름대로의 씬을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그쪽 씬의 플레이어들이 관계자들이 조언을 구하기도 하나요?
조언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제가 뭐라도 된 거 같고요. 전 로컬 씬이라는 건 항상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왔어요. 처음에는 그런 게 자존심이기도 했어요. 제가 시작한 곳에도 분명히 힙합은 있었고, 거기서 제가 시작을 했으니깐요. 그래서 제가 저의 도시를 외침으로서 그 도시에서 꿈을 키우는 친구들에게 작은 길이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대구에 정기적인 무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어요. 근데 (로컬 씬이라는 건) 나름대로의 흐름이 있어서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이지, 제가 주축이 되어서 뭔가를 이끌어서 내 스타일대로 가자라고 이야기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힙합 트레인은 힙합 트레인 그대로 가고 있는 것이죠. 제가 응원이나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거지, 그 친구들에게 제가 답안을 제시해준다거나 날 믿고 따라오라고 이야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오다가다 술자리에서 만나는 친구들한테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는 경우야 있긴 하죠. 그 친구들이 궁금해하는 부분들이나 대구의 로컬 씬을 더 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 거 같냐고 얘기하면 제 의견을 말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게 맞으니까 이렇게 하자.’라고 하진 않아요. 로컬 씬이라는 건 누구 하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그 지역에 있는 여러 아티스트들이 같이 만들어서 나중에 색깔이 생기게 되는 거니까요.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LE: 대구를 레프리젠트하는 MC시니까 최근 방사능(현 리듬파워), 제이통(J-Tong) 등의 로컬 MC들의 등장에 자극을 받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뭔가를 더 해야겠다는…
그렇지는 않아요. 그냥 재미있다는 생각? 예전에 형들이랑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있었어요. 이를테면 ‘각자의 지역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나오면 씬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같은 얘기인 거죠. MC 메타(MC Meta) 형도 그런 점에서 사투리를 이용한 “무까끼하이”라는 곡을 보여주시는 거라 생각해요. 아직은 모두가 시도의 단계지만 분명히 자기가 살아온 곳의 느낌이나 향기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온다라는 건 환영해야 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관심 있게 보고 있고 재미있어요. 근데 분명한 건 대구는 짱이에요. 슈퍼 개짱. (웃음)
LE: 개인적으로 힙합 쪽으로는 서울을 제외한 지역 중에서 대구가 유독 활발하다고 느껴지는 데요. 특별한 이유 같은 게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바로 생각해봐도 부산 출신의 뮤지션들도 굉장히 많잖아요. 인천도 라임어택, 리듬파워..,. 굳이 그렇게 생각이 드는 이유를 들자면, 대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금 더 있었던 편이라 그렇게 보시는 거 아닐까요.
LE: 힙합 트레인과 대구에서의 이야기를 넘어가서, 마이노스 씨가 처음으로 몸 담았던 팀인 바이러스의 앨범이 신의의지라는 레이블에서 나왔었잖아요. 어떻게 신의의지에서 바이러스의 앨범이 나오게 된 건가요?
신의의지는 2DR이라는 그룹의 멤버 형들이 대표였던 레이블이에요. 2DR 앨범도 신의의지에서 나왔었고… 그 이후에 바이러스라는 팀을 2DR 형들이 아껴주시고 관심 있게 봐주셨었죠. 근데 그때 (바이러스에게) 앨범을 내볼 생각이 없냐는 얘기를 한 분들이 2DR 형들 이외에도 있었어요. 저희가 그때 꽤 잘하는 팀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그때 몇몇 회사들에서 컨택들이 있었는데, 저희 딴에는 뭔가 좀 부족한 것 같았어요. 지금보다 더 좋은 곡들을 더 많이 준비해서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거절하기도 하고 생각을 해보겠다고 하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 갑자기 제가 군대를 가버리게 된 거예요. 피할 수 없는 난제에 봉착한 거죠. ‘멘붕’ 상태였어요.. 바이러스의 멤버였던 메카(Mecca)도 ‘끝났네. 어떻게 할거야.’라는 반응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바이러스) 앨범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분들에게 그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했더니, 그 많던 컨택들이 약간 정리가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활동을 할 수가 없다 보니까… 회사 입장에서는 (앨범 발매가) 투자잖아요. 그래서 저도 군대를 갔다 와서 다시 생각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고 있을 때쯤이었는데, 2DR 형들이 우리는 회사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바이러스라는 팀의 팬으로서 바이러스의 앨범이 꼭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활동이 없더라도 앨범을 제작하자고 해주셔서 2DR 형들의 앨범 이후에 처음으로 신의의지에서 발매한 앨범이 될 수 있었어요. 그 이후에는 라임어택, 팔로알토(Paloalto), 엘큐(Elcue), 알이에스티(R-est)같은 뮤지션들의 앨범이 신의의지에서 나왔었죠. 물론 지금은 다들 대단한 뮤지션들이지만 그때는 모두들 열정과 패기만 있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였기 때문에 너무 고마운 곳이었죠. ‘신의’와 ‘의지’가 뭉친 곳이었습니다. 신의의지는…
LE: 앨범의 타이틀곡인 “Take Me There”에는 DJ 스킵(DJ Skip), 더 지(The Z), 그리고 MC 메타 씨가 참여를 하셨는데요. 그 당시에도 모두 왕성하게 활동을 해오셨던 분들이라 이 세 분을 섭외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땠나요?
DJ 스킵 형은 그 전부터 알고는 있었어요. 왜냐하면 아까 전에 말씀 드렸던 어떤 컨택을 준 곳 중에 한 군데가 DJ 스킵 형과 마초(Macho) 형이 함께 만드셨던 AT431이라는 레이블이었거든요. 한량사의 전신이었죠. 그랬기 때문에 DJ 스킵 형과는 이미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요. 사랑합니다, 스킵 형. (웃음) 그리고 MC 메타 형은 제가 워낙 리스펙하던 MC기 때문에, 블렉스, 검은 소리 앨범 때부터 너무나 함께 해보길 바라던 목소리였죠. 그래서 그 형이 명절 때 대구에 내려오시기만 하면 제가 어렵게 어렵게 연락해서 막창에 소주도 한잔씩 하고 그랬었어요. 그러면서 형이 취하셨던 틈을 타서 부탁을 드려놨었어요. ‘형 바이러스 앨범이 언제 나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오게 된다면 꼭 한번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꼭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습니다.’ 형은 기억을 못하셨어요. ‘어, 좋지.’라고 이야기하셨지만. 저는 그걸 잊지 않았죠. 그리고 “Take Me There”이란 트랙은 꼭 그 형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그 곳으로 데려가 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데려가 줄 수 있는 사람과 해야 하지 않냐 싶었거든요. 그래서 부탁을 드렸었고… 작업에 있어서 굉장히 꼼꼼하신 형이라 곡을 들어보고, 저희들의 가사도 보고, 어떤 내용을 품고 있으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나의 목소리가 필요한 것이며, 그런 것들을 모두 깊게 대화를 나눈 후에 바야흐로 함께 할 수 있었어요.
LE: 여담이지만 저희 힙합엘이에서 5월 달에 MC 메타 씨를 모시고 1회 토크 콘서트를 진행할 때, MC 메타는 자꾸 때려서 싫어요.(M: MC 메타 형 사랑합니다.) 이런 답변을 해주셨는데 이야기 거리로 정말 재미있었어요. 어떤 에피소드인지 궁금해요.
MC 메타 형이랑 제가 어떤 동향의 뜨끈뜨끈한 지연이 있어요. (웃음) 다른 형들도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MC 메타 형이 다른 동생들한테는 안 그러는데 민호 너한테만 유독 정을 두시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술자리에서도 자주 찾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또 그런 MC 메타 형에게 말장난을 던지기도 하고 해서 아마 저를 엄청 좋아하실 거예요. (웃음) 그러다 보니 한번씩 빡센 사투리로 옆으로 부르셔서는 장난 삼아 때리고 그러세요. 자꾸 때려서 싫다고 얘기했던 건 농담이고요. 저는 그런 MC 메타 형을 너무 좋아합니다.
LE: 그래도 이제는 커리어가 어느 정도 있고, 나이도 찼는데 ‘어, 형 이제는 좀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시나요?
그런 건 없어요. 그들은 저에게 여전히 가리온이고, 여전히 너무 멋지고 좋은 형들이에요. 그렇잖아요. 제가 커리어를 쌓는 동안 형들은 저만큼 더 걸어가고 계셨잖아요. 여전히 가리온이고, 여전히 피타입(P-TYPE)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건 MC 메타 형이 키비(Kebee)에게는 약해요. 이상하게 키비는 안 때리시더라고요. 키비가 뭔가 아우라가 있나 봐요. 소울컴퍼니 CEO여서 그랬나? 뭔가 함부로 하지 않아요. 그렇지 않나? (웃음)
R: 키비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라… MC 메타 형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데, 형한테만 그러는 거야. (웃음)
날 너무 사랑해. 날 너무 사랑해. 하여튼 이 인터뷰를 MC 메타 형이 읽으신다면 저에게 사랑한다고 문자 한 통만 쏴주세요. (웃음)
LE: MC 메타 씨와 정말 각별한 사이시네요. (웃음) 이제 다시 신의의지와 바이러스의 얘기로 넘어가보면, 당시에 바이러스의 앨범을 내고 바로 군대를 가게 되신 건가요?
앨범만 내고 1주일 후에 입대를 했어요. 그래서 그 1주일 안에 쇼케이스를 했었나?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런 건 없었던 것 같고 그냥 후다닥 대구 내려가서 주변 사람들이랑 술 좀 마시고… 그때 개봉했던 영화가 ‘살인의추억’? 그런 거 몇 편 보고 그러다가 입대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죄송했어요. 제가 책임지지도 못할 일들을 형들에게 부탁해놓고 들어와버린 것 같아서… 또, 메카에게도 미안했고… 메카는 저보다 몇 개월 뒤에 입대를 했었거든요. 입대를 하고 나서 제가 자대를 배치 받고 처음으로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돼서 그때 메카와 통화를 했나? 아무튼 누구랑 통화를 했는데 예상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반응이 좋았어요. 이미 클래식이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려나? 거의 일매틱(Illmatic) 급의… (전원 웃음) 죄송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앨범 길이나 어렸을 때의 사진이 담겨있는 그런 걸 봤을 때 일매틱과… 아닙니다. 농담입니다. 잘못했어요. 하여튼 되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그래서 기분 좋았어요. 너무 궁금했어요. 나가고 싶어서 미치겠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LE: 이쯤에서 그 당시에 바이러스로 같이 활동했던 메카(Mecca) 씨에 대한 얘기도 빼놓으면 안될 것 같아요. “Gentleman’s Quality : 건배”라는 트랙을 들어보면 진짜 불알친구라는 게 확 느껴지는 데요. 근데 메카 씨가 바이러스 이후로는 음악활동을 그만두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 그만두게 되신 건가요?
불알친구라는 말도 사용해도 되는 인터뷰군요? (웃음) 바이러스의 다음 작품이 없었지만 메카가 그만 둔 적은 없어요. 이건 분명하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메카는 그만두지 않았어요. 그냥 띄엄띄엄 하고 있을 뿐이에요. 여전히 그 친구는 생각도 많고, 술 마시면서 ‘야 내년에 바이러스 앨범 10주년인데 어떻게 할래?’이러면 ‘같이 한번 해볼까?’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래요. 근데 생활이 바쁠 뿐이죠. 생활이 바쁘다 뿐이지, “Gentleman’s Quality : 건배”를 들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전히 탤런트를 가지고 있는 친구에요. 저는 메카를 MC로서 굉장히 리스펙해요. 가사도 너무 잘 쓰고요. 지금은 바쁜 인생의 전선에서 뛰고 있지만 분명 그의 솔로 곡이든, 바이러스의 곡이든 나올 거예요. 기대해주세요
LE: 그런 메카 씨와는 언제부터 어떻게 알게 되고, 또 어떻게 같이 팀을 이루게 된 건가요?
이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한 적이 없는데, 중학교 때에요. 둘 다 글 쓰는 거, 문장력에 있어서는 두각을 드러내고 있던 친구들이었어요. (웃음) 전국 백일장 대회를 나가게 됐는데, 거기서 만났어요. 근데 저는 인상이 좋아 보이는 친구가 있으면, 먼저 친해져야 되거든요. 그 친구는 분명히 저에게 적개심이 있었을 거예요. 어디 조그만 애가 와서 깝치고 있으니까. 저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데, 가서 ‘야 너 몇 반이냐.’ 물어봤죠. (메카가) ‘나 몇 반이다.’. 제가 다시 ‘나 이름 최민혼데, 친구하자.’라고 했는데 걔는 그게 신기했대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었다는데 어쨌든 그렇게 친구가 됐어요. 근데 그 다음에는 보통 소풍이나 어디 가서 잠깐 만나게 됐을 때 예전에 친구하자고 했던 말 때문에 ‘같은 학교구나.’, 혹은 ‘같은 도시 사람이구나.’하면서 친하게 인사를 나눌 수는 있어도 따로 연락을 하거나 다시 자주 보게 되지는 않잖아요. 근데 학교에서도 제가 복도 지나가다가 ‘야!’하면서 크게 인사하니까 메카가 되게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생각을 했대요. 그리고는 고등학교를 같은 학교를 가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그 어떤 ‘짝’이 됐죠. 학교에서 짝꿍이 됐다는 게 아니라 단짝으로 너무 친하게 지내게 됐죠. 원래 바이러스가 앨범을 내기 전에는 3인조였어요. “Take Me There” 가사에도 나오는 ‘Good MC. 줄여서 그냥 GMC.’ 그 친구와 바이러스 앨범에 수록된 “Sunshine - Remix”이라는 곡의 가사에 나오는 친구들이 있어요. 쭉 읊어요. 그 친구들까지도 지금까지도 여전히 보고 지내는 친구들이에요. 다 그 시절에 힙합 좋아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이에요. 보고 싶다. 친구들아!
LE: 그렇게 메카 씨와 함께한 바이러스라는 팀도 있었지만 밀림에서 활동할 시절에 119모그졸이라는 집단(?)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라임어택 씨도 그 당시 같은 집단이었던 걸로 아는데, 119모그졸의 멤버들도 되게 각별할 거 같아요.
태풍의 눈이었죠. 119모그졸이 태풍의 눈이었다면, 그 눈 중의 눈이 라임어택이었어요. 밀림의 왕자.
R: 저희는 그때 약간 바르샤. 바르샤 축구 정도 생각하면 될 거 같아요.
굉장했어요. 멤버 중에 키비도 있었고, 더콰이엇(The Quiett), 엘큐, 팔로알토, 알이에스티, 메카, 9815, 영길… 더 있었던 것 같은데…
LE: 거의 크루 수준의 규모네요?
그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하게 된 게 [People & Places] 앨범이에요. 전신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크루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뻘쭘했죠. 그냥 저희끼리 누구 집에 모여서 놀다가 ‘야 (녹음) 한번 할까?’하는 거였으니깐요. 그냥 항상 같이 놀던 친구들이었어요.
LE: 그럼 거기서 지금 이루펀트를 같이 하고 있는 키비 씨를 처음 만나게 되셨던 건가요?
아뇨. 그 이전부터죠. 아까
전에 이야기했었던 에듀넷의 ‘힙합정신’, 블렉스 같은 동호회들이
있었잖아요. 거기에 제가 “삼류시인의 시”라는 노래를 녹음해서 올린 적이 있었어요. (R: Classic!) 이
곡을 알고 계신 분들이 지금도 몇몇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마이노스는 왜 그 곡을 앨범에 수록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클래식이에요. (웃음) 하여튼
그때 그냥 메카 집에서 노래방 마이크 같은 걸로 녹음을 하고 동호회에 올렸는데, 그 곡을 올린 날이랑
거의 하루 이틀 차이? 혹은 같은 날이었을 거예요. “미운
오리의 새끼”라는 곡이 올라와있었어요. Kebee라고 적혀서. 그래서 저는 ‘어떤 좆밥인가?’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들어보니까 잘하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대단하다. (R: Another Classic!) 그래서 (키비에게) 관심을 확 가졌었죠. 여담이지만
그때 저에게 잘 들었다고 말씀해주셨던 분들 중에 2DR형들이나 4WD
형, 피타입 형, 비솝(B-Soap) 형, 래파홀릭(Rappaholik)이라는 형도 있었어요. 근데 그런 형들이 다들 “미운 오리의 새끼”의 키비와 “3류시인의
시”의 마이노스가 동일인물인 줄 아시는 거예요. 그랬었대요. 웃기죠? 전혀 다른 스타일인데.
LE: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비슷할 때
나왔고, 비슷한 덜 영글은 목소리에 가사적인 부분에서나 좀 비슷했었나 봐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하기엔 제가 훨씬 더 깊이 있었는데…(웃음) 아무튼 그때 PC통신에서 /M을 치면 로그인해 있는 멤버를 확인할 수가 있었어요. 언제 한번 /M을 쳤는데 키비, 배이삭이 로그인해 있다고 뜨는 거예요. 너무 반가운 마음에 제가 쪽지를 보냈었어요. ‘너무 잘 들었습니다. “미운 오리의 새끼” 너무 좋네요.’라고
보냈는데, 저는 마치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를
만난 줄 알았어요. 되게 짧은 답장 하나 찍 보내고 로그아웃을 했더라고요. 제가 분노에 찼었어요. 이 버릇없는 놈을 죽여버릴 것이다. 어쨌든 그 뒤로 저는 (키비에게)
관심이 생겼고, 그 친구의 홈페이지 같은 데도 찾아가기도 했고… 들어가니까 나름 많은 곡들이 있더라고요. “시작의 시작”이라는 곡도 있었던 거 같고. 그때 당시에 앤썸 피플(Anthem People)이라고 더콰이엇이 있었던 광명패거리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 친구들끼리 같이 한 곡들도 있었어요. 들으면서 되게 깜짝깜짝 놀랐었어요. 라임도 너무 잘 쓰고, 발음이나 발성, 모든 부분에서 ‘아, 이래서
서울을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들 잘했었어요. 그런
이후에 키비와 라임어택이나 혹은 다른 친구들과 커넥션이 생길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때 엘큐와 알이에스티가 연결고리가 되어줘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연락을 취하면서 ‘잘 들었다.
얼굴이라도 한번 볼래?’, ‘작업 한번 같이 해볼래?’같은
이야기들을 해줬던 친구들이에요. 그러면서 그렇게 키비를 또 만나게 된 거예요. 근데 그 PC 통신에서 있었던 그 일이 예전에 있었던 일인데도, 그걸 기억하고 주변의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키비와 저의 공통점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근데 키비랑 저는 서로 아니었거든요. 비슷한 지 몰랐어요. 그래서 그럼 재미있으니까라는 이유 반, 증명이라는 이유 반으로 둘이서
‘작업해볼까?’한 거예요.
바이러스 앨범이나 [People & Places]가 나오기도 전에 둘이서 몇 개
같이 작업하기도 했었어요. 발표를 안 했을 뿐이죠. 그러다가
제가 전역하고 ‘멘붕’인 상태고, 키비도 소울컴퍼니를 회사로서 만들기 위해서 비즈니스 선에서 바쁘다 보니까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멘붕’이 오고… 그러면서
둘이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야 그럼 우리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예전에 같이 하려고 했던 것들 몇 곡
해볼까?’라고 말을 꺼내면서 이루펀트가 시작이 됐었어요.
LE: 이루펀트의 1집을 들어보면 그 당시 20대 초반의 감성을 꺼내 쓴 트랙들도 많았지만 청소년 시절, 어렸을 때의 감성을 살려서 쓴 트랙도 많았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루펀트의 앨범이 제가 이 씬에서 활동하면서 이 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겪으면서 생각하게 된 것들을 담은 앨범이 아니라 그 이전까지의 20여 년의 삶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이 녹아 있던 가사들이다 보니까 그렇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더 풋풋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이야기할 거리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LE: 사실 이루펀트와 이루펀트의 앨범이 컨셉이 확고하잖아요. 상큼하거나 아득하고 따뜻한 분위기까지 여러 분위기를 품고 있는데,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컨셉을 확고하게 하려고 공을 많이 들이셨을 것 같아요.
그런 건 없었어요. 그렇게 판단하는 몫은 다 리스너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때는 그냥 우리 둘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하자는 모토를 가지고 했었어요. 우리 둘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이야기를 풀어내는 거다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각자의 자존심이 있다 보니까 경쟁 아닌 경쟁도 있었던 거 같아요. 대화의 형식을 취할 때도 있었고, 혹은 어떤 장면을 글 쓰듯이 이어가는 부분도 있었고요. 재미있었어요. 가사를 쓴다? 혹은 좋은 이야기를 써본다? 저는 바이러스로 활동하던 때의 마음으로, 키비는 키비 솔로 1집 때의 마음으로 (가사들을) 썼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서로 리스펙하는 마음에 서로가 서로의 가사를 마음에 들 때까지 쓰기도 했었고, 둘이 만족하는 정도가 나왔으니까 딱히 반응은 중요하진 않았어요. 그냥 우리가 키비와 마이노스로서 좋은 가사를 쓰는 사람으로 다시금 보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 정도였었어요.
LE: 바이러스는 마이노스 씨에게 20대 초반의 추억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루펀트는 마이노스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바이러스만큼이나 의미 있는 팀일 것 같아요.
이루펀트? 의미라기보다는 그냥 이제는 키비와 제가 닮은 부분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LE: 2007년에는 소울맨(Soulman) 씨와 함께한 프로젝트 앨범인 [Coffee Calls For A Cigarette]이 내셨었어요. 사실 보컬과의 공동작업을 앨범 단위로 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잖아요. 어떻게 같이 하시게 된 건가요?
이루펀트 앨범을 통해서 소울맨 형을 만났었고요. “꿈의 터널”을 작업하면서… 너무
놀랐었어요. 너무 잘하고, 너무 키 크고, 그리고 너무 술을 잘 마시고. 거기다 술을 마시면 너무 세게 때려서… (웃음) 놀랐었어요. 근데
저는 그냥 원래 그런 앨범을 하고 싶었거든요. 1MC 1Vocal 앨범을 해보고 싶었어요. 옛날부터 그런 거에 관심이 있었어요. okayplayer에서 나온
구루(Guru)의 [Jazzmatazz] 시리즈를 비롯한
여러 앨범을 들으면서 ‘와, 나도 보컬들과 1대1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냥 그렇게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소울맨 형하고 술을 마시다가 그냥 그런 앨범을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별 생각 없이 했어요. 그랬더니
소울맨 형도 ‘나도 지금 앨범 작업을 해야 될 때인데, 누군가와
함께 팀으로서 작업해보고 싶다.’라고 하셔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럼
저랑 같이 하면 되겠네요.’라고 했죠. 그렇게 하게 됐죠. 역시 모든 역사는 술자리에서… (웃음) 원나잇스탠드처럼 시작되죠.
LE: 사실 1MC 1보컬은 아무래도 앨범 안에서 두 명의 위치가 애매해질 가능성이 다분한 구조에요. 일반적으로 MC와 보컬이 공동작업을 하면 MC가 벌스를 맡고 보컬이 훅을 맡는다든가, 혹은 보컬이 메인으로 자리 잡고 MC가 브릿지에서 짤막하게 랩을 하는 형식이 많아서 어떤 것이든 프로젝트를 하는 둘 중 한 명에게 역할이 쏠리기가 쉽잖아요. 그래서 앨범을 만드실 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부담을 가지지는 않았는데, 그런 걸 깨려고 생각은 많이 했죠. 이를 테면, 벌스 하나는 소울맨 형이, 벌스 하나는 제가 이렇게 하는 구성도 생각했었고요. 혹은 벌스 하나 안에서도 반 정도는 소울맨 형이 하고, 반 정도는 제가 이렇게 하는 구성도 생각했었어요. ‘이것도 할 수 있겠는데?’, ‘저런 것도 괜찮겠는데?’하면서 그냥 재미있는 것들을 하려고 했었어요. 실제로 재미있었고요.
LE: 앨범 자체가 힙합보다는 어반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템포 있는 R&B, 소울에 가까운 편인데, MC 입장에서는 소화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양보한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양보는 아니었고요. 양보라는 단어를 쓸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그냥 원래부터 이 앨범은 힙합 앨범으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블랙뮤직이었어요. 그래서 최초에 이 앨범이 발매가 되면서, 힙합플레이야나 여러 사이트들을 통해서 힙합/랩이란 장르로 앨범이 공개가 되면 저도 소울맨 형도 좀 아쉬웠어요. 그렇다고 블랙뮤직이라고 장르를 두기는 또 애매했지만… 이 앨범을 힙합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뭔가 다른 느낌적인 느낌(?)이 있는데… 좀 그랬어요.
LE: 이 당시에 소울맨&마이노스 앨범이 꽤나 인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이지하게 듣기 쉬우면서도 어반함에 약간의 시니컬(?)함까지 있어서 힙합을 넘어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땠나요?
대중적으로? 그건 또 잘 모르겠네요. 대중적인 인기가 어떤 선까지인지를 잘 모르겠어요. 근데 이지하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하고 싶은 걸 했기 때문에… 재미있는 시도들이 있었던 앨범이라… Classic이었던 거 같아요. (웃음)
LE: 오늘 Classic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네요. (웃음)
모든 뮤지션들이 그렇겠지만 저는 제 과거의 작품들이 0.1g도 부끄럽지 않거든요. 모든 ‘그때그때의 최민호들’에게 축배를! 모든 앨범들이 Classic!
LE: 이렇게 소울맨 & 마이노스 앨범 얘기까지 해봤고요.
짧네요. 소울맨 형이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섭섭해할 수도 있어요. 소울맨은 은혜입니다.
R: 소울맨은 사랑입니다.
LE: 이어서 이후에 2008년에는 본인의 1집 앨범인 [Ugly Talkin’]을 발표하시게 됩니다. 데뷔한 지 약 5,6년 여 만에 정규 앨범을 내셔서 다른 앨범보다도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감회가 남달랐죠. 솔로앨범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는 있었어요. 그전까지 솔로로 앨범을 내는 게 부담스러워서 안 했던 건 아니었고, 나만이 풀 수 있는 이야기나 팀으로서가 아니라 나 혼자 했을 때 더 잘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모이는 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Ugly Talkin’]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는 이미 [Ugly Talkin’]이라는 앨범 제목이라든가, 앨범에 들어갈 주제들이라든가, 전체적인 구성이나 아트웤을 어떻게 가야 하나라든가 그런 것들을 이미 다 생각해둔 상태에서 시작했었죠.
LE: 앨범 당시의 소속사가 마스터 플랜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 2008년, 이 시기의 마스터플랜이 옛날의 명성에 비해 많이 쇠퇴한 상태였던 걸로 아는데.. 근데 마이노스 씨의 앨범이 마스터플랜에서 나온 게 특이했었어요. 다시 마스터플랜이 이 앨범으로서 도약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힙합의 명가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그랬죠. 근데 마스터플랜의 문은 제가 두드렸었어요. 저에게 있어서 마스터플랜은 한국힙합의 역사 안에서 한 시대의 대명사였으니깐요. 저는 그 시절을 기억하고 바라보며 랩을 시작한 힙합키즈로서 마스터플랜에서 앨범을 꼭 한 장 내야 됐었어요. 말하자면 꿈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해냈죠.
LE: 그럼 예전부터 ‘솔로 앨범은 마스터플랜에서 내야겠다.’라는 생각을 해오셨던 건가요?
솔로 앨범은 마스터플랜에서 해야겠다는 건 아니고, ‘언젠가는 마스터플랜에서 해야겠다.’였는데 타이밍이 잘 맞았었죠.
LE: [Ugly Talkin’]이 자신의 이야기와 세상의 일그러진 이야기들을 많이 한 앨범이었는데, 마이노스 씨 본인 스스로는 [Ugly Talkin’]을 어떤 작품으로 평가하시나요?
[Ugly Talkin’]이 저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건, 첫 번째 솔로 앨범이라서가 아니라 제가 제 스스로를 ‘나는 MC다.’, ‘나는 힙합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내 직업은 MC다.’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줬던 지점이었기 때문이에요. 그 이전까지의 앨범을 부끄러워하는 그런 게 아니라 제 스스로가 전역 후에 랩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이를 테면 군대를 가기 이전보다 내가 랩을 못하고 있다는 느낌? 혹은 그 이전보다 발성이 약해졌다는 느낌? 그런 여러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존재했거든요. 아이디어가 이만큼 있어도 그걸 풀어내는 능력이 부족하다 싶었는데, [Ugly Talkin’]을 작업하면서 중반 정도 쯤이었던 거 같아요. 그쯤에 ‘군대를 가기 전의 마이노스보다 잘한다.’라고 스스로 판단이 섰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정말 중요한 지점에 있는 앨범이에요.
LE: 이 앨범 쯤에 스피킨 트럼펫(Speakin Trumpet)이라는 크루가 결성되기도 했었는데, 크루의 멤버인 넋업샨 씨와 지토(Zito) 씨, 그리고 디테오(D.Theo) 씨는 소울 다이브(Soul Dive)가 됐어요. 요즘은 좀 유명무실한 크루같기도 한데… 요즘은 어떤가요?
근데 저는 크루라는 게… 최근에도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힙합 안에서 크루, 패거리 문화가 가장 대표적으로 보이잖아요. 근데 어떻게 보면 힙합이랑 가장 안 어울리는 문화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왜냐하면 힙합음악 안에서는 협연이란 게 없잖아요. 각자의 가사와 스킬로서 어우러지는 곡들이 있을 수는 있어도 협연을 한다, 잼을 한다 이런 느낌은 전혀 아니잖아요. 그런 개개인들이 빛나야 하는 대표적인 문화 안에서 패거리 문화가 있다는 게 어떻게 보면 되게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면서 진짜 크루와 패거리라는 건, 같이 음악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친구 같은 거잖아요. 똑같은 걸 좋아하고, 똑같은 걸 공유하는. 이를 테면 커피 마시면서 담배 피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매일같이 본다면 그게 크루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크루를 메이커화시켜야겠다거나 혹은 우리가 대단한 걸 해 보이겠다는 걸 캠페인으로 내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크게 없어요. 그냥 잔잔하게 ‘우린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다.’라고만 얘기하는 정도. 리스너 분들은 스피킨 트럼펫의 마크가 달려 있는 앨범을 ‘스피킨 트럼펫은 이런 느낌이니까 이 앨범도 멋지겠구나.’라는 정도로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정리하면, 스피킨 트럼펫은 최초부터 스피킨 트럼펫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 데다가 단 한번도 ‘무실’ 한 적도 없었어요.
LE: 이루펀트로 ‘1집 가수’ 이미지가 깨지긴 했지만 어쨌든 솔로 앨범으로 치면 아직도(?) 1집입니다. 솔로 2집 앨범은 현재 계획 중이신지?
저는 아마 기네스북에 등재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웃음) 계속 작업하고 있죠. 솔로 앨범은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제가 저 혼자 했을 때 좋을 수 있는 것, 내가 해야 하는 이야기들이 쌓이면 하는 거지, ‘이제 솔로 앨범을 해야 될 때지.’, ‘내 커리어를 위해서 이쯤에서 한번 해야지.’같은 생각을 하진 않아요. 제 커리어는 이미 많은 Classic 앨범들이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LE: 다음 앨범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제 개인적으로 2008년에서 2009년으로 넘어가기 전에 발표된 마이노스 씨의 작품 중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트랙 중 하나가 진취(Jin醉) 씨의 앨범에 참여하신 “U See What I See / Noise Mob”라고 생각해요. 이 트랙 전까지의 작품에서는 약간은 조용하고 비교적 얌전한 보이스톤을 유지하셨다면, 이 트랙 이후로의 작품들에서는 과격한 맛이 더 세졌다고 할까요. 뭔가 마이노스 씨 음악에서 전환점이 된 트랙인 것 같아요.
“U See What I See / Noise Mob”가 원래는 제 솔로앨범에 들어갈 가사였어요. 아까 전에 이야기 했다시피, [Ugly Talkin’]의 작업 중반부 정도쯤이 저에게 있어선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때부터 제 톤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어떤 플로우로 풀어갈 지에 대해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고 자유스러워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U See What I See / Noise Mob” 도 원래는 두 곡이었지만, 한 곡으로 붙여서 ‘이런 재미있는 걸 해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작업하게 됐어요. 진취는 제가 워낙 아끼는 친구라 그 친구가 만드는 앨범에 ‘내가 힘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도중에 좋은 가사밖에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정말로 아끼는 가사로 작업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 작업하게 된 트랙이에요.
LE: “U See What I See / Noise Mob” 이라는 트랙에서 꼬집는 문제점들을 보면, 그 당시에 플레이어를 하겠다는 사람이 많았고, 플레이어만 존재하는 씬을 꼬집는 가사가 쓰셨는데, 마이노스 씨가 바라보는 최근 씬은 어떤가요? 여전히 래퍼 지망생들도 많고, 랩 레슨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똑같은 것 같아요. 근데 우리도 언제나 그것에 대해선 생각을 해야 한다, 과연 우리가 어떤 식으로 해나가야 할까, 진심으로 아티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어떤 생각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까라고 인지하는 게 중요한 거지, 늘어나고 있는 래퍼 지망생들에 대해서 꼬집고 있는 건 아니었어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야기 했었지만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가졌으면 해요. 모두가 플레이어면서 동시에 리스너이기도 하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저는 플레이어가 되고 나면 자신이 리스너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태도들이 꼴 보기 싫어요. 꿀밤을 때리고 싶어요.
LE: 랩 레슨에서 그런 태도적인 걸 많이 강조하시는 편이신가요?
네. 제가 해줄 수 있는 조언들 중 제일 중요한 조언인 것 같아요. 스킬적인 부분이 아니고요. 태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단어들. 예를 들자면 ‘스웩 가사 쓰기’라는 말이 저는 가장 싫어요. 스웩 가사 쓰기라는 게 어디 있어요? 엄마한테 땡깡 부려서 용돈 좀 더 받아보려고 노력하는 ‘안여돼’가 집에서 자위하며 ‘난 클럽에 들어서는 순간 여자들이 줄을 서. 내 주머니는 항상 빵빵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거짓말이지, 멋이 아니잖아요. 스웩은 태도에요. 아우라!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거예요. 여전하죠. 지금도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자칭 MC들, 저는 자작게시판이나 랩 컴피티션들에 올라오는 곡들도 귀 기울여 듣는 편이에요. 거기서 빛나는 보석들도 많이 보여요. 하지만 그런 곳에서 얼토당토않게 어슬렁거리는… 이런 말로 해도 될 진 모르겠지만 ‘좆밥’들이 싫어요. 왜 굳이 랩을 하려는 지도 모르겠어요. 실제로 얘기를 나눠보면 크게 (힙합을) 좋아하지도 않고 여자 아이돌 그룹 앨범보다 (힙합 앨범을) 더 듣지도 않는데… 엄마 말 잘 듣고 공부나 하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 시간에 알바를 하는 게 자신과 가정에 더 도움이 될 텐데...
LE: “RE/E”같은 경우엔 ‘감성힙합’이라는 말 안에 뮤지션들을 가두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야기인데, 다시 얘기한다면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건가요?
제목에서 말하는 그대로, 저는 혁명이나 진화라는 말을 갖다 붙이면서 변명 식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싫어요. 혁명이나 진화는 두려워해서도, 변명으로 사용해서도 안 되는 것 아닌가요. 그걸 변명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걸로 인해 생겨나는 새로운 구린 단어들, 그런 것들이 싫어요. 감성힙합? 저는 모르겠어요. 힙합은 그냥 힙합이죠. R&B 힙합, 발라드 힙합, 이런 것들 Fuck that shit… 힙합!
LE: 요즘 전체적인 힙합 씬은 어떻게 보시나요? 신예들이 많이 등장하고 판의 이목이 조금씩 더 어린 사람들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가 보이는데...
너무 재미있고 자극되고 좋아요. MP에서 공연을 하던 형들이 [People & Places] 앨범에 참여한 저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여전히 플레이어로서 활동 중이고, 언제까지나 플레이어로 남고 싶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열심히 하고 더 고민하는 입장으로서 더 자극 받을 수 있는 새로운 흐름들이 나온다는 건 너무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LE: 눈여겨보시는 신예로는 어떤 아티스트가 있으신가요?
많죠. 빈지노(Beenzino), 제이통... 이런 친구들은 이젠 신예라고 부르긴 좀 뭣한가요? 벅와일즈(Buckwilds), 두메인(Do’main) 친구들이 잘하는 것 같고... 블랙넛(Black Nut)? 그 분도 재미있는 것 같고… 노창도 재미있는 것 같고… 최근에 추천 받아 들어봤는데, 디택(D.TAEK)이라는 친구도 재미있어요. 눈 여겨 본다기보다는 항상 관심이 있어요. 랩이 역시 제일 재미있는 거 같아요.
LE: 이제는 신예들을 바라보는 베테랑의 입장이 됐는데, 그런 부분에서 오는 부담감 같은 건 없으신가요?
없어요. 아까 말했던 약간의 자극? 그런 건 있지만.. 솔직히 자극이라고 한다면 신예들보다는 저와 비슷한 레인을 함께 달리고 있는 동료들에게 훨씬 큰 자극을 받는 것 같아요. 제가 무대에 서기 전에 라임어택이나 팔로알토가 무대에 서면, 바짝 긴장하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하게 돼요. 최근에는 프라이머리(Primary)와 이센스(E-Sens)의 “독”을 들으면서 ‘존나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큰 자극을 받았어요.
LE: 2009년에 들어서는 아티산 비츠(Artisan Beats) 씨와 프로젝트 앨범을 내셨어요.
아티’슨’비츠라고 말해달래요. 얼마 전에 라디오스타에 나오셔서… 예능계에도 진출하셨거든요. (웃음)
LE: 다크루(Da Crew)와 아티슨 비츠 씨에 대한 리스펙이 특별히 큰 걸로 알려져 있는 데요. 이유가 있나요?
리스펙하기 때문이에요. 어려서부터 많이 듣기도 했고… 너무 멋있었어요. 가리온도 멋있었고… 어렸을 때 제가 어렵게 모은 돈으로 무궁화 열차를 타고 네 시간 걸려서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마스터플랜에 ‘MP Hiphop Allstars’라는 MP의 슈퍼스타들이 전부 나오는 공연을 혼자 구경 갔었어요. ‘가리온을 봤는데’, ‘사이드비(Side-B) 노래 들어봤는데’, ‘다크루가 나온다던데’하던 시절이었어요. 공연 진들이 한 팀씩 나오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너무 멋있었어요. 근데, 다크루가 올라왔어요. 무슨 먹구름이 따라서 올라오는 줄 알았어요. 그 당시 제게 보이는 다크루의 모습은 맙딥(Mobb Deep)이었어요. 그리고 우탱클랜(Wu-Tang Clan)이었어요. 올라오는 순간, ‘존나 멋있다.’, ‘개간지다’ 혹은 요새 말로 하자면 ‘쩐다...’.
R: ‘쩐다.’ 요새 말도 아니야. 요새는 ‘핵 쩐다.’라고 해야 돼. 아니면 ‘쩐드아아앙~’.
‘쩐드아아앙!’ (전원 웃음) 아무튼 그래서 저는 대구에서 조금 조금씩 작업할 당시였는데, 다크루 형들이 [City of Soul] 앨범을 내고 대구의 교보문고 앞에서 케이라이더스(K-Ryderz)랑 같이 공연을 했었어요. 그 무대를 보며 혼자 38인치 짜리 힙합바지를 입고 크게 환호했던 기억이 있어요. 근데 공연이 끝나고 사인회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핫트랙스로 가서 집에 이미 CD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구입해 사인을 받았었어요. 아직 집에 그 CD가 있어요. 근데 그런 형과 제가 같이 하게 된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런 가사를 썼었어요. 제가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는… 제게 나중에 돼서도 기억에 깊이 남아있을 기억 중 하나를 꼽으라면 MP 10주년 공연이었나요? 그때 제가 아티슨 비츠 형과, MC 메타 형, 그리고 저까지 해서 이렇게 셋이 올라가 “용가리”를 불렀을 때... 제 영웅들이니까요. 저는 소녀시대를 만났을 때보다 육각수를 만났을 때가 더 떨렸어요. 횟집에서 육각수를 만났을 때 따라 들어가 덜덜 떨면서 사인 받고 사진도 찍은 적이 있거든요. 그런 느낌? 전 여전히 그런 느낌이에요. 아직도 가끔씩 놀라요. 피타입 형이나 MC 메타 형이랑 술도 마시고, 센 농담도 나누다가도 ‘아, 그래… MC 메타… 피타입이었지? 이 형이 다크루였어…’하면서 놀라게 돼요.
LE: 들리는 얘기 중에는 아티슨 비츠 & 마이노스가 프로젝트 앨범만이 아닌 더 많은 앨범이 나올 그룹으로 활동할 예정이었다가 지금은 무산됐다고 하는데, 실제로 현재 어떤 상태인 건가요?
실제로 무산됐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아티슨비츠 Starring 마이노스는 아티슨비츠 & 마이노스가 아니라 Starring이었어요. 제가 배우로써 섭외된 거죠. 그래서 나중에 아티슨 비츠 Starring ○○○, 이런 식으로 또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런 부분은 기대하셔도 좋을 거 같아요.
LE: 두 분의 이야기를 하면 또 불한당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잖아요. 불한당은 어떻게 들어가시게 된 건가요? 아티슨 비츠 씨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나요?
여러 형님들의 영향이죠.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편하게 술자리를 가지는 동생들이 저희 뒤로 잘 없는 것 같아요. 어느덧 저희도 삼십줄이라니.. 이정도 나이가 됐으니 편히 술을 드시는 건지… 함께하게 된 진짜 이유… 잘 모르겠네요. 실력 아닐까요? (R: Skill.) (전원웃음)
LE: 불한당이라는 집단에 소속된 것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일단 그 형들과 함께 하게 됐다는 건 꿈을 이룬 부분이죠. 또 제가 그 형들에게서 배우는 열정이나 태도 등등 여러 가지 것들이 있고… 반면 저희가 형님들께 자극이 되어드리는 면도 있는 것 같아 이런 좋은 상호관계가 유지되었으면 좋겠어요.
LE: 앞으로 불한당이 여러 가지 기획을 많이 한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몇 가지 이야기를 살짝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절충 앨범.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세 번째 시리즈가 되겠네요. 불한당 멤버 전원이 참여해 작업이 많이 진행된 상태이고요. 불한당의 콘서트도 아마 계속해서 이어질 거에요. 힙합 씬에서 꼭 멋진 순기능을 하게 될 겁니다. 사랑합니다. 불한당!
LE: 이어서 계속 얘기해보면 2010년에는 뉴올(Nuol) 씨와 마이노스 인 뉴올 프로젝트 앨범을 발표하십니다. 뉴올 씨도 그렇고, 마이노스 씨도 그렇고 두분 모두 프로젝트 그룹이나 콜라보 작업이 잦은 분들이라 서로 호흡을 맞추기에 수월하셨을 것 같아요. 근데 뉴올 씨는 저희 힙합엘이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 중 제일 힘드셨다고 하셨었어요. (웃음)
어 그래요? 병맛이네요. (전원 웃음) 힘들었을 수도 있죠. 둘 다 고집이 세서… 근데 그래도 재미있었던 건 뉴올이 정말 ‘프로듀싱’을 하는 친구라 비트만 툭 던져놓고 MC에게 알아서 요리하도록 주문하는 게 아니고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어떤 식으로 플로우 메이킹을 하면 재미있을 지까지 의논을 같이 해요. 확실히 서로 커뮤니케이션하고 합작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좋았어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했었거든요. ‘만약 내가 이 다음에 솔로앨범을 내게 된다면 마이노스 3집으로 낼 거다. 뉴올 너도 솔로앨범을 내게 되면 3집으로 내라. 1집이 [The Mission]이었고 이걸 냈으니 다음 앨범은 [The Mission 3]로 내라’라고 했더니 ‘그럴까?’라고 해놓고 [The Mission 2]로 내더라고요. (웃음) 그 정도로 오랜 시간을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고, 둘이서 양보하는 부분도 있고 잘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어서 좋았어요. 곡이 연결되는 구성도 그렇고, 유기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가지는 것도 그렇고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작업했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그 앨범을 했었어야 할 때였던 것 같아요.
LE: 혹 이 앨범의 모티브가 되고, 영감을 준 다른 앨범이 있나요? 색깔이 확실한 앨범이다 보니 왠지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모티브가 된 앨범은 없고요.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영화가 있어요. 앨범아트도 그걸 모티브로 작업된 것이었고, 제가 지금 근 미래를 살고 있잖아요. 이전부터 근 미래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사이버 펑크 류의 영화나 만화 속에서 기계들이 인간들을 지배하는 모습이라든가, 인성 자체가 보물처럼 묘사되는 것에 영향을 받았다면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중요한 건 인간 그 자체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LE: 어떤 프로듀서 분은 마이노스 인 뉴올처럼 MC와 프로듀서간의 작업에서 같이 커뮤니케이션을 해 나가고 아이디어를 내는 부분에서 제일 잘하는 MC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답으로 마이노스 씨와 라임어택 씨의 이름을 거론했었는 데요. 보통 마이노스 씨는 프로듀서 분들에게 어떤 요구를 많이 하시나요? 또, 어떤걸 이끌어 내보려고 노력하시나요?
저는 뭐… 만약에 프로듀서의 앨범이잖아요? 그렇다면 그 프로듀서가 자신이 그리는 그림이라든가, 이곳에서 이야기 해야 하는 게 뭐라고 얘기해주는 부분없이 그냥 던져주기만 한다면 그 MC의 네임밸류 외에 필요한 것이 더 있나 싶어요. 그 외에 모든 피쳐링 작업에 있어서도 어떤 프로듀서가 제게 작업을 요청했다면, 같이 하는 콜라보, 협연, 합작을 하는 거니까 그 프로듀서가 이미 그리고 있는 그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걸 듣고 느낀 후에 ‘어, 그럼 이렇게 하면 재미있겠는데? 그럼 내가 랩을 이렇게 해볼게.’ 이런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서로가 만족스럽고 누구에게 들려주는 게 부끄럽지 않으면서 ‘이건 작품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 생각해요. 꼭 프로듀서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MC의 곡에 피쳐링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그 곡의 프로듀서와 주인공인 MC가 이야기를 나눴기를 바라고, 그 MC가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 곡에 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은 피쳐링 요청은 제 스스로가 별로 흥미롭지가 않아요. 그리고 그 전에 No respect, No deal. 팔로알토가 이야기 했었잖아요. 무조건 그게 필요해요.
LE: 하나의 앨범으로서 ‘공들였다’는 느낌을 가장 많이 받는 게 또 마이노스 인 뉴올 프로젝트 앨범이에요. 수록 트랙도 다른 앨범보다 조금 더 많고요. 지금 와서 이 앨범을 돌이켜보면 어떤 점이 좋았고 또 어떤 점이 아쉬웠나요?
아쉬웠던 건 이 앨범으로 단독공연을 하지 않았다는 것. 좋았던 건 해야 될 앨범을 해야 될 때 했다는 것.
LE: 다시 또 뉴올 씨와 작업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명확한 계획은 아직 없고요. 하고 싶어는 해요. 저에겐 항상 모든 저의 프로젝트들이 잠재적 팀이거든요. 모두 다 프로젝트죠. 저는 제 솔로 2집이라도 그건 하나의 프로젝트예요. 결국 해야할 때에는 자연스레 모두가 가슴 벅찰 만한 후속작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LE: 2011년에는 단 하나의 소포모어
앨범인 이루펀트 2집, [Man On The Earth]가
나왔었어요. 처음으로 두 번째 앨범을 내시는 거였는데, 두
번째 앨범이니만큼 그 그룹에 있던 이미지라든지 컨셉, 이야기들을 어느 정도 이어와야 되잖아요. 그렇다 보니 그전까지 했던 작업들과는 좀 느낌이 달랐을 것 같아요.
그것도 하고 싶을 때였어요. 사람들이 말이 많은데, 2집을 해야겠다 싶어서 후다닥 작업하게 된
앨범은 아니고요. [Ugly Talkin’]을 비롯해서 제가 마이노스 인 뉴올을 할 때까지 주변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얘기가 넌 요즘에 너무 날 서있지 않냐는 이야기였어요. 그때 제 생활을 비롯해서 모든
게 다 그랬던 것 같아요. 되게 날 서 있었고, 누군가가
덤비면 물어야만 할 것 같았어요. 그랬는데 그 시기쯤의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신기하게 창으로 스며드는 햇빛이 기분이 되게 좋더라고요. ‘기분이 좋다’.라고 하면서 담배를 한 대 피는데 내가 되게 주변한테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주변에 좋은 사람도 많고, 우리 엄마도 참 좋은 사람이고, 내 동생도 고생하고 있는 거 같고, 대구에 내 친구들은 맨날 만나면
서로 잘 지내고 있냐고 내 걱정하고, 음악 하면서 내 주변에 만나는 사람들도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왜 모두에게 건드리지 말라고 했었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때쯤 ‘주변 사람들한테 들려주면 함께 행복해질 만한 걸 작업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을 때인 거죠. 그때 키비도 ‘이제 2집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라면서 이야기를 했었고요. ‘좋은 타이밍이구만?’이라고 하면서 하게 된 거죠.
LE: 날 서있다는 이야기와 연결이
될 수 있는 게 수록된 트랙 중에 마지막 트랙 “분실물”이라는
트랙이 그런 감정을 완전히 담아서 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얘기를 풀었었어요. 원래는 그 트랙이 “거꾸로 걷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가사가 완성이 되었었어요. 근데 너무 추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는 최초에는 되게 마음에 들었었는데 이걸 더 좋게 풀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래서 “거꾸로 걷는 남자”가 이루펀트 2집 작업을 하면서 맨 처음으로 작업했던 트랙이었는데,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앨범작업이 거의 마지막에 왔을 때 (가사를) 다시 한 번 썼어요. 그렇게 탄생한 게 “분실물”이었어요. (“분실물”의 가사는) 키비도 저도 분명히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썼던 가사였어요. 이건 누군가가 듣고 위로를 받거나 힘을 얻을 거라는 생각을 해서 만든 트랙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솔직하게 써서 그런지 더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던 것 같아요.
LE: “분실물”같은 경우엔 20대 후반의 이야기를 풀어낸 트랙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앞으로의 이루펀트 음악은 어떨까요?
그 나이를 담고 있는 가사를
쓰고 담겠죠. 옛날만큼 소년이나 청년의 감성을 동시간에 느끼는 건 아니니까 좀 달라질 것 같아요. 키비나 제 입장에서는 [Man On The Earth]이후에 냈던
앨범인 [APOLLO]에서도 어렴풋이 보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분실물”이 20대 후반에서 서른으로 넘어갈 때의 이야기였다면 [APOLLO] 앨범의 “계란 한판”이라는
트랙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바들이 여러 힙합 뮤지션들과 술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을 담으려고 한 건 아니고요. 오히려
제 주변에 회사를 다니고 있는 제 친구들과의 대화, 혹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택시를 타거나 집에 들어가면서
느끼는 감상을 담은 거죠. 이제는 막 뛰어 놀고 싶고 어릴 때 내 초등학교, 중학교 때 기억이 막 되살아나서 뭉클대고 그렇지는 않으니깐요. 물론
그런 걸 가져와서 가사를 쓸 수야 있겠죠. 근데 그건 소설일 것 같아요. 이제는 지금 나이의 이야기를 담아야 되고, 항상 그래오려고 노력했었고요. 이루펀트만 그런 건 아니고 노이즈맙에서는 노이즈맙이 지금 나이대에서 할 수 있는 이루펀트와는 또 다른 성질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식으로, 그래서 제 솔로 앨범은 더더욱 지금의 제가 하는 이야기들을 담겠죠.
LE: 이루펀트 2집이 나온 2011년이 소울컴퍼니에게는 굉장히 다사다난했던 해인데, 마이노스 씨가 영입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해체를 하게 되었어요. 이루펀트 2집을 발매하고 나서 뭔가를 조금 더 해보기 전에 해체를 해서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은데요.
이루펀트 때문은 아니고 소울컴퍼니가
없어지는 게 한국힙합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도 아쉬웠고, 제가 처음으로 둥지를 튼 가족이자 집인데
더 오래 함께 으쌰으쌰하지 못해서 아쉬웠고, 마지막 무대가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서 또 아쉬웠어요. 하지만 응원합니다. 제가 가만히 보니까 소울컴퍼니가 해체되고 나서
한 해 동안 가장 분주하게 그리고 멋지게 움직인 뮤지션들은 우리 가족들 소울컴퍼니가 가장 많더라고요. 소울컴퍼니!
LE: 이후에 새로 설립한 레이블인
스탠다트에서 노이즈맙 앨범이 발매되었는데, 혹시 노이즈맙을 소울컴퍼니에 몸담고 있을 때부터 어느 정도
기획을 했었던 건가요?
해체 즈음이죠.
LE: 약간 맞물리는 시기였나 보네요.
그렇죠. 해체가 결정되고 나서 모두가 ‘멘붕’ 상태였어요. 몇몇은 이제 음악을 이대로 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하고
있었고, 저 개인적으로는 대구로 내려갈까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음악을
그만두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제일 아쉬울 게 없을 거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저도 제 나름대로의 아쉬움이 있거든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처음으로
내 집을 가진다는 게 되게 큰 결심이었어요. 그래서 ‘멘붕’이 좀 컸어요. 그리고 이제 막 정신 없고, 어떻게 할까 하다가 추스렸죠. 추스르면서 키비와는 회사가 아니더라도
뭔가를 계속 같이 할 생각이었고요. 라임어택같은 경우에는 같이 팀을 한 적이 없었어요. 되게 어렸을 때, [People & Places] 앨범 그쯤부터
음악 이외로도 되게 친한 사이라 같이 추스르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스탠다트라고 이름을 붙이고 재미있게
같이 음악 하고 있는 거죠
LE: 이제 자연스럽게 스탠다트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듣기로는 마이노스 씨가 문서상으로 레이블의 대표라고 들었어요.
문서상. 노비문서 같은 거예요.
LE: 특별히 레이블 대표를 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나이가 가장 많아서? 그 정도인 것 같아요. (R: 베스킨 라빈스!) 그러네요.
LE: 노이즈맙이 스탠다트가 만들어지고
나서 첫 번째 주자가 되었어요. 특별히 첫 주자가 된 이유가 있나요?
어쨌든 추스르면서 같이하게
되었고, 같이 으쌰으쌰하기로 했으니까 ‘라임어택이랑 이제
뭔가를 해야 될 때가 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라임어택도
나라면 같이 팀을 해볼 만하다 생각했었기 때문에… (웃음) 라임어택이
기준이 되게 세거든요. 진짜 대박 잘하는 사람 아니면 같이 안 해요.
LE: 콜라보한 분들 중에 외국 프로듀서
분들이 계세요. 외국 프로듀서 분들과 같이 작업을 해서 그런지 그 동안 한국힙합이 들려줬던 느낌과는
다른 신선한 느낌이 있었어요.
그걸 느껴주셔서 감사합니다.
LE: 외국 프로듀서 분들과 함께
작업하게 된 계기나, 뭔가 새로운 걸 원해서 그런 걸 하게 된 건가요?
네. 새로운 걸 원했고요. 좀 더 재미 있는 걸 하려면 뭘 해야 할까
싶었어요. 그 방법 중에 하나가 말하자면 월드와이드한 콜라보였고, 그런
면에서 스탠다트 저희 스스로에게 굉장히 신선했던 작업이었어요. 그때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외에도 더 재미난 월드와이드한 작업들을 계획하고 있고 더 많이 할 생각이에요.
LE: 앨범뿐만 아니라 노이즈맙 음악
전체적인 느낌이 제가 보기에는 베테랑, 능글맞음, 형의 여유
이런 코드들이 굉장히 많이 묻어나는 것 같은데 의도된 부분인가요?
형의 여유라고 하니까 여유증걸린
형이 생각나네요. (전원 웃음) (R: 여유보다는 거유.) 의도되었다기보다는 저희가 그런 사람이니깐요. 근데 뭐랄까, 그냥 나이 들고 나니깐 생긴 느낌인 것 같아요. 분명히 한 스물
여덟 살? 이랬을 때는 못 가졌던 느낌인 것 같아요. 그냥
자연스레 묻어나고, 그런 게 노이즈맙의 스웩 아닐까 생각합니다.
LE: 노이즈맙이 최근에 두 개의
싱글을 발표했는데, 어떤 느낌과 이야기를 담았나요?
라임어택이라는 친구나 저나
둘 다 계란 한 판을 찍고 나서 그런지 한 면모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때는 개 까져서
미친 듯이 놀고 싶기도 하고, 누가 깝치면 때리고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MC로서 어떤 것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싶어졌다가도 결국에는 혼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여러 감정들이 혼재하잖아요. 그 가운데서 그냥 태도만 그대로인 거죠 그냥. 일부러 ‘내 태도를
지켜야지’ 이런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라는
이야기들이 담긴 싱글들이에요.
LE: 스탠다트가 싱글을 내고 지슬로우(G-Slow) 씨는 얼마 전에 스탠다트로 영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지슬로우
씨가 스탠다트의 색깔과 어울리는, 세련된 느낌이 있어서 영입이 하신 거겠지만, 그런 얘기도 있어요. 결국에는 소울 컴퍼니의 멤버를 그대로 받아
오는 것 아니냐는 얘기죠.
일단 그 얘기에 전적으로 부정할
필요가 없는 건 키비가 지슬로우를 굉장히 아껴요. 크루셜 스타(Crucial
Star)도 마찬가지고. 어떻게 보면 소울 컴퍼니의 막내들이잖아요. 그 친구들 다 키비가, 키비 뿐만이 아니겠죠. 다들 되게 아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스탠다트 영입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는 게 당연하죠. 뭔가 (지슬로우랑) 재미있는
걸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지슬로우랑 라임어택이라는 MC가, 혹은 지슬로우와 마이노스라는 MC가, 이런 조합은 또 다른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지슬로우라는
친구 자체가 음악의 모토, 지향점 자체가 ‘존나 새 거’거든요. ‘존나
새 거’기 때문에 그 존나 새 거를 우리가 존나 빨리 하려고요. (전원 웃음)
LE: 지슬로우 씨가 ‘새 거’를 하는 성향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스탠다트의 어떤 음악적 색깔을 ‘새 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색깔을 만드는 데 있어 스탠다트에
먼저 들어와서 일조를 했던 게 일렉트루(Electrue) 씨인 거 같은 데요. 근데 항간에는 이런 소문이 돌았어요. 지금도 돌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일렉트루가 키비 씨의 다른 이름이 아니냐는 소문이죠. (웃음)
전혀 다른 사람이에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전에도 이미 이런 이야기가 너무 많이 있었잖아요. (R: 끊이지 않는 구만. 얼굴 공개해야겠다.). 저는 일렉트루와 지슬로우의 음악적 지향점이 약간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더 기대돼요. 둘이 성향이 좀 비슷해요. 집구석에 있으면서 작업만 하고 밖에 나가는
거 싫어하고. 프로듀서들이 좀 그런가? (웃음) 모르겠어요. 하여튼…
LE: 이제 앞으로 스탠다트 음악에서
일렉트루 씨와 지슬로우 씨의 곡들을 많이 기대할 수 있겠네요.
일렉트루와 지슬로우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월드와이드한 작업들도 계속 있을 거예요.
LE: 이루펀트는 키비 씨가 공익복무
중이셔서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긴 한데, 혹시 키비 씨가 소집해제 하시자마자 뭔가 하나 터질 수 있을는지
궁금하네요.
바로 그게 포인트죠. (전원 웃음) 키비는 지금 약간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기를 조금씩
나눠 받고 있는 느낌이에요. 원기옥 아시죠? 자세하게 이야기해드리지
않아도 키비라는 아티스트는 그냥 쉽게 옛날의 어떤 기억처럼 소울컴퍼니와 함께 CD장 속에 묻어둘 수
있는 아티스트가 절대 아니에요. 굉장히 대단한 애고 저도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어요. 근데 (만든 걸) 잘
안 들려주더라고요. 그냥 대박일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함께
기대해봅시다.
LE: 양자택일 질문을 하나 하려고
해요.
왜요?
LE: 마지막으로 정리를 좀 해볼까
해서... (웃음) 이루펀트와 노이즈맙 모두 스탠다트에 소속된
유닛인데, 둘 중 하나만 선택을 하라고 하면?
왜 그렇게 골라야 하나요?
LE: 그게 좀 재미있지 않나요?
(웃음) 저는 그냥, 스탠다트 안의 유닛 중에서 제 마음에 드는 건 제 솔로라고
할게요. 제 솔로가 존나 짱일 거예요. 노이즈맙, 이루펀트보다 마이노스 솔로. (웃음)
LE: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신보 수준인가요?
켄드릭 라마의 신보… 저도 좋아하기는 하는데, 켄드릭 라마의 그것과는 좀 다르겠죠. 분명 어떤 저의, 최민호가 담긴 앨범일 거예요. 아... 대단할 것 같네요.
LE: 인터뷰를 준비하고 질문을 만들면서
앨범을 하나하나 살펴봤는데, 정말 많은 앨범을 내셨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특별히 이렇게 매년 앨범을 한 장씩 내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음악을
노동으로 바라보시는 분들 중에서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뮤지션이 하나의 직업이라고 하면
주기적으로 결과물들을 선보여야 그것이 직업이 아니냐 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런 시각에서 하시는 건지…
새로운 시각이네요. 근데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재미있어서. 저는 뭐랄까, 그냥 가사를 안 쓰고 있거나 작업을 안하고 있는 시간이
아깝다를 넘어서서 안하고 있는 시간이 스트레스에요. 직업병일수도 있는 건데, 그냥 제 일상 그 자체에요. 일어나서 하는 게 그런 거 외에 없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저는 그런 게 더 자연스러워요.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이 내고 싶어요. 더콰이엇이나 도끼(Dok2)같은 경우는
어떤 해에는 두 장이고 세 장이고 내잖아요. 다작을 하고 싶다는 맘이 아니라 뭔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뱉고 그게 모두다가 작품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갈고 닦고 싶어요. 모르겠어요. 내가 랩을 해서 이뤄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그냥 랩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사 쓰는 사람으로서 존나 짱이 되고 싶은 게 목표거든요. 그 외의
나머지 돈이라든가, 명예라든가 이런 건 따라오는 거겠죠. (제
결과물들은) 그런 어떤 일련의 과정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탄생하는 나의 자식들이지, 일부러 ‘1년에 한 장씩은 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아요. 일상이니까요. 랩을 더 잘하고
더 많이 하고 싶어요.
LE: 앨범을 많이 내시고 준비하시다
보니 매 앨범을 낼 때마다 겪는 징크스라든지 아니면 스트레스? 그런 부분들이 있을 거 같아요. 혹시 있나요?
발전하더라? (웃음) 모르겠어요. 특별히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재미있게 하죠.
LE: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소울컴퍼니가
첫 둥지라고 하셨는데, 그래도 겪어오신 레이블들을 보면 굉장히 많은 레이블들을 거쳐 오셨어요. 중간 중간에 인디펜던트로 하신 적도 많죠?
마이노스 인 뉴올도 자체적인
거였고, 모든 게 앨범 계약이었어요. 저는 [Ugly Talkin’]도 앨범 계약이었고, 신의 의지에서 냈던 바이러스 EP도 앨범 계약이었고, 이루펀트도 마찬가지고, 소울맨 앤 마이노스도 마찬가지고… 다 그랬죠.
LE: 인디펜던트로 하는 것과 소속사를
가지고 하는 것에 차이점이 있다면?
특별히 없어요. 그냥 뭐랄까… 인디펜던트는 힘들지만 해볼만한 거죠. 재미있지만 힘든 거고요. 그러다 보니까 나도 앨범 작업을 하고 제작을
할 때, 누군가가 같이 파이팅 해주고 머리를 맞대줄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고 케어받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소울컴퍼니에 들어가게 되었던 거예요. 왜냐하면 그래도 인디펜던트와 제가 쌓아 온 커리어를 가장
잘 이해해주면서 서로가 각자 시작 때부터 바라봐왔던 동료들이니까… 그렇게 해서 선택을 했던 거지, 그 이외에? 모르겠어요. 다른
어떤 더 많은 이점이 있냐고 하면 그건 모르겠네요.
LE: 많은 프로젝트를 하시면서 보통
형들이나, 같은 선상에서 달리고 있는 분들과 많은 작업을 하시잖아요.
스탠다트로서도 새로운 프레쉬한 신예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계기도 생기시게 될 거 같은데, 혹시
신예들과 작업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계획은 따로 없어요. 저는 어떤 걸 계획해서 이번에는 누군가와 함께 해야겠다하고 접근을 해서 하게 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거든요. 항상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제가 재미있어야 해요. 재미 있으려고
시작을 했던 거고, 이 재미있는 걸로 돈까지 벌고 내가 무엇보다 잘 하고 있으니까 즐거운 거지, 재미없는데 그냥 하는 일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아요.
LE: 그러면 마이노스 씨에게 흥미를
이끌만한 신예가 나타난다면?
그럼 당연히 같이 해야죠. 다만 그 친구도 하고 싶어 한다면. 그 친구가 하고 싶어하지 않고
별로 흥미 없어 하는데, ‘하자. 좀 하자. 난 너 완전 기다릴 거야.’ 그러지는 않을 거고요.
LE: 레이블 얘기를 좀 하다 말았었는데
예전에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잖아요. MC 스나이퍼(MC Sniper)
씨가 스나이퍼 사운드 입단을 제의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얘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요? (웃음)
LE : 그 일에 관한 전후 이야기들
정도랄까요?
그게 제가 알기로는 아마 배치기가
제 솔로 앨범을 엄청 재미있게 들었었다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MC 스나이퍼 형에게 ‘아, 형
이거 꼭 들어보셔야 한다.’라고 추천을 했다고 알고 있어요. MC 스나이퍼
형이 듣고는 감탄하신 거죠. Classic이니까. 완전 대박이다. 슈퍼 쩐다. 그래서 MC 스나이퍼
형이 그렇게 글을 쓰셨던 거죠. 근데 그렇다고 따로 먼저 연락이 있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저도 그 글을 보고 깜짝 놀랐었어요. ‘띠용~’이었죠. 그러고 나서 며칠 후인가,
몇 주 후인가 그때 리오케이코아(Leo Kekoa) 형이 스나이퍼 사운드에 몸을 담고 계셔서 연락이
왔어요. 리오 형이랑은 한번씩 커피를 마시고 전화를 주고 받으니까요.
리오 형 사랑합니다. 리오 형한테 전화가 와서 ‘같이
한 번 만날래?’ 이렇게 된 거예요. 인사 드리면 좋죠. 예전에 저도 MC 스나이퍼 형 공연보고 그랬으니까. 그래서 스나이퍼 사운드를 (리오케이코아 형이랑) 같이 놀러 갔어요. 처음 뵙고 인사 나누고 그 다음에 술도 한 잔
하고… 몇 번 술도 같이 마시고 그랬었어요. MC 스나이퍼
형이 또 술을 너무 잘 드세요. 정신력으로 드시는 분이라… 그러면서
지금까지도 그런 이야기를 하세요. MC 스나이퍼 형은 꼭 스나이퍼 사운드에서 제가 뭔가를 준비하고 기획해서
함께하게 되지 않더라도 슈퍼 팬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든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주길 바라시고, 도움이
되고 싶어 하세요. 스탠다트를 시작할 때도 그랬어요. 고민이
있을 때마다 다른 형들을 비롯해서 MC 스나이퍼 형한테도 전화를 드리고 상담을 하는 편이에요. 좋은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해주세요
LE: 이제 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랩 자체에 대한 고민을 되게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한 고민이나
연구들이 방법론적인 것들이나 표현에 있어서 얼마나 원하는 대로 실현시키는 편이신가요?
원하는 만큼 하려면 더 열심히
많이 해야죠. 연구한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겠지만, 그냥
많이 듣고, 많이 찾아보고, 그거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게 제일 재미있고. 술 마시고 사람들이랑 이야기 나누고
여자친구랑 데이트하고 너무 재미있는데, 그 이외의 시간들은 찾아서 듣고 비디오 보고 거의 그게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러고는 가사 쓰고 그러는 거죠. 그게
굳이 따지자면 연구라고 할 수도 있고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거고. 그냥 그런 거예요.
LE: 마이노스 씨의 랩에 있어서
본인에게 롤모델이 되거나 굉장히 영향을 많이 주었던 MC로는 누가 있나요?
모두 다인 것 같아요. 영향을 준 사람들은 다. 다인 것 같고, 가장 롤모델로 삼고 싶은 건 스킬 적으로나 연구한 흔적들은 지금 상태이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같은 그런 면에서 군대 가기 전의 마이노스인 것 같아요. 바이러스는 저에게는 노스탤지아거든요.
LE: 가사를 쓰실 때 문학적 표현도 되게 많으시고 구어체랑 문어체를 되게 잘 넘나드시는데, (M:그렇습니까?) 실제로 가사를 봤을 때 문학 책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해요. 글 쪽으로도 관심이 있으신가요?
아주 많죠. 이전부터 항상 이야기해오고 있지만, 언젠가는 키비랑 둘이서 같이
혹은 따로라도 책을 낼 생각이고요. 책을 쓰고 싶어요. 아주
형편없는 문장으로 평가 받을 지 몰라도 쓰고 싶어요. 저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메카와 백일장에서 만났거든요. (웃음) (R: 야설. 야설.) 아냐. 백일장에서 야설 쓰는 새끼가 어디 있니? (전원 웃음)
LE: “MOB맘이야” 가사도 그렇고, 최근에 공개된 “Yallah”의
가사도 그렇고 워드플레이의 비중이 많아서 직설적이기보다는 본 뜻 이상으로 꽉 차있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좋았거든요. 근데 그런 것 안에서도 가볍게 끝나는 게 아니라 묵직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번에 “MOB맘이야”의 'Male, Female'같은 부분도 트윗에서 직접 설명해주시던데... (웃음)
회심의 일격으로 썼는데, 묻혀버려서 그 문장에 생명을 주고 싶었어요. (전원웃음)
LE: 그러한 워드플레이를 시도했을
때 팬들이나 리스너들이 캐치하지 못하면 아쉬움이 있을 것 같아요.
네. 아쉬움이야 당연히 있죠. 내가 가사에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바와는
다르게 이해했을 때의 아쉬움도 있고요. 근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건 전적으로 리스너 분들이 판단 내려주는 부분이니까. 제가 의도한
바가 아닌 다른 부분으로서 받아들이고도 좋아하셨다면 그것 또한 저는 감사한 일이죠.
LE: 앞으로도 이런 걸 자주 들을
수 있겠죠?
그렇죠. 옛날에도 생각했던 거긴 하지만 옛날보다 요즘에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게 된 이유는 실제로 힙합엘이의
영향도 있어요. 어떤 외국 가사들의 해석들을 많이 보게 되면서 재미있다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거든요. 근데 저는 그냥 워드플레이로서 재미를 주고 끝나거나 혹은 A와 B를 비교하면서 끝나는 워드플레이 이외의 것들을 많이 하고 싶어요. 저는
모든 MC들이 MC라면 누구나 그런 워드플레이, 말장난에서 시작된 것들에는 당연히 촉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삶과 맞닥뜨려 있는 재미있는 표현들은 누구보다 자기가 가장 먼저 쓰고 싶잖아요. 근데 그게
뭇 MC들에게 쉽사리 소비되고, 낭비하듯 쓰이는 워드플레이가
아니라 좀 더 무거운 표현들을 쓰는 워드플레이를 해보고 싶어요. 계속 고민해서 더 좋은 표현들 많이
들려 드릴께요.
LE: 마이노스 씨의 가사 같은 가사들이
많이 나오면 한국판 랩지니어스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 말이죠. 한국 힙합은 직설적인 부분이 많기도 하고, 한번에 캐치되는 것들도 많아서…
많이 달라질 것 같아요. 많이 달라질 것 같고, 이제는 들었을 때 ‘감정을 남긴다’에서 더 발전해서 ‘재미있으면서
중의적인 표현을 넌지시 던진다.’가 더해지고 그 뒤에는 ‘이
사람이 어떤 그루브를 타고 있다.’, 혹은 ‘이 사람은 요즘
외국의 어떤 트렌디한 힙합들을 듣고 있구나.’라는 느낌까지도 리스너들이 캐치하기 시작했으니까 분명히
그런 것들을 다 소화해내는 수준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플레이어로서의 커리어를 계속해서 이끌어가기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모두가 충분히 고민하고 있으니 좋으면서 재미있는 가사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LE: 예전에는 랩에 멜로디를 섞기도
하시고 사투리 톤을 섞기도 하셨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랩을 좀 더 자연스럽게 무드를 만들어주거나 극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셨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부분들이 좀 줄어든 것 같아요.
스타일이라는 건 내가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내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재미있어서 하다 보면 생기는 거잖아요. 말버릇, 어투, 발음 새는 버릇까지도 다 들어가서 그 사람 스타일이 되는
건데, (이제 시작하는 친구들이) 스타일을 만들겠다는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굳이 그런 고민 없이 더 즐기면 좋겠는데… 하지만
메쏘드들은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메쏘드를 만들어내고 싶어서 고민을 한 결과이지, ‘이렇게 변화했고, 이제 저의 랩은 이런 식으로 갈 겁니다.’는 절대 아니에요. 저의 메쏘드로서 이전에 보여졌던 것들도 당연히
존재하고 있는 거죠. 만약 예전의 메쏘드들이 어떤 곡에 어울린다면 저는 그 메쏘드를 다시 꺼내겠죠.
LE: 더불어 요즘에는 노래 욕심은
좀 줄어드신 것 같은데…
보욕(보컬욕심). (전원 웃음) 줄어들었다기보다는
여전히 가지고 있어요.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건 여전히 좋아하니까요.
제 솔로 앨범에서는 충분히 제 맘대로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다른 앨범에서는 팀원과의
이야기로 퀄리티의 컨트롤을 당연히 해야 하죠. 근데 제가 안 해도 되는 게 주변에 슈퍼 보컬들이 많이
있잖아요. (웃음) 왜 나 안 불렀냐는 형들이 그렇게 있어서
보욕은 잠시 접어도 될 것 같더라고요.
LE: 인터뷰가 막바지입니다. 힙합엘이는 자주 오시는 편인가요?
매일 들어가는 것 같아요. 너무 재미있어요. 저는 인터넷으로 하는 게 몇 개 없어요. 인터넷 쇼핑몰들을 돌아다니지도 않고요. 정해져 있어요 딱. 힙합엘이, DC Tribe, 힙합플레이야, 리드머. 이런 사이트들 외에는 들어가는 데가 없는 것 같아요. 그 정도인 것 같아요. 가끔 가다가 외국 사이트들 들어가고요. 닷피프(Datpiff) 정도? 힙합엘이가
오타쿠가 만들어가는 문화를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오타쿠라는 말이 잘못 전달되어서 그렇지, 진짜 이 문화를 좋아서 미치겠는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거잖아요. 까놓고
얘기해서 지금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다 오타쿠이어야 하고 오타쿠잖아요. 새로 나오는
건 제일 먼저 들어야 되고 막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데인 거 같아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서 너무 재미있어요.
LE: 저희가 외국힙합을 주로 다루는
사이트인데, 마이노스 씨는 최근에 어떤 음악을 즐겨 듣고 계신가요?
저는 요즘에는 조이 배드애즈(Joey BADA$$)를 많이 듣고 있어요. 켄드릭 라마랑. 켄드릭 라마를 진짜 미친듯이 들었고, 조이 배드애즈 믹스테입을 최근
들어서 되게 많이 듣고 있는 것 같아요. 유튜브를 뒤져서 막 영상이랑 라이브를 찾아보고… 조이 배드애즈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LE: 조이 배드애즈의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끼셨나요?
일단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과
다르게 붐뱁(Boop-Bap)을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붐뱁의 멋을 아는 것 같아요. 나이가 어리면서도 가사의 멋이나 표현도 멋지고. 가사에서 쓰는 라이밍의 방법도 특이한 것 같아요. 그래서 되게 좋아요. 가사 해석을 많이는 못 찾아봤는데 몇 개를 보고나니 엄청 궁금해요. 힙합엘이에
가사 해석이 많이 올라와있나요? 힙합엘이에도 아직 영상이 없는 거 같아서 유튜브로 먼저 찾아 들어봤거든요. 엔젤 헤이즈(Angel Haze)도 추천을 많이 받아서 들어봤는데
나쁘지는 않은데 슈퍼 끌리지는 않고. 조이 배드애즈가 좋은 거 같아요.
LE: 앞으로의 계획을 간단하게 말씀해주세요.
올 해 안에 지슬로우의 앨범이
계획이 되어있어요. 그리고 노이즈맙의 다음 앨범도 계속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 이외에 라임어택과 저의 각자 개인 작품들도 준비를 하고 있고요. 공연은
모르겠어요. 이건 아주 개인적인 생각인데, 내년 초 정도
쯤에는 앨범을 내서든 안내서든 솔로 콘서트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가끔씩 해요. 그 정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어서 전셋집으로 옮기고 싶습니다.
LE: 음악을 하시면서 모든 순간들이, 사람들이 다 소중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분이나 평생을 추억할 것 같은 순간들이 있으시다면?
평생을 추억할 것 같은 순간들은
참 많은데요. 제 가사에서도 참 많이 담아냈었는데, 근데
요즘에는 그 마음이 약간 바뀐 것 같아서 좋기도 하고 되게 모호한 상태에요.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바운스라는 잡지. 창간호는 아니에요. 몇 호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요. 그게 무가지였잖아요. 무가지라서 저희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서점에서 나눠줬었어요. 그래서
점심시간 때 몰래 막 빠져나가서 바운스를 받아서 교실로 들어와서 너무 두근대는 마음으로 보고 싶어 미치겠는데 기다리다가 야자 시간 때 감독하시는
선생님들 몰래 책 밑에 숨기고, 서랍에서 꺼내서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감독하시는 선생님이 제 어깨를 이렇게 딱 잡으시더라고요. ‘좆됐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바로 든 생각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그때 미친 듯이 집으로 뛰어가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켰어요. 그게 되게 모호한 감정이 생기더라고요. 가사에도
많이 썼었지만 힙합에 대해서 약간 애증 같은 감정이 있었어요. 힙합이 너무 좋으면서도 대신해서 (아버지를) 뺏긴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감정들로 (그런 내용들의 가사들을) 많이 뱉었던 것 같아요. “God Loves Ugly”도 그렇고, “스톡홀름 신드롬” 도 그런 케이스죠. 여러 가사에서 그런 감정들을 되게 담아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는데 요즘에는 좀 달라졌어요. 내가 대신해서 받았을 수도 있는 이 재능으로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뭔가를 하려면 이 탤런트를 그냥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되고 싶어졌다고 해야 하나. 많이
감사하게 됐어요. 이 힙합이 나를 살려주었고, 살게 했고,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LE: 아까 인터뷰 초반에 아버지 얘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안 했었는데, 아버지께서 혹시 마이노스 씨가 랩하는 걸 본 적이 있으신가요?
없죠. 제가 CD 플레이어로 힙합 CD를
듣고 있는 장면을 보신 적은 있죠. 그랬던 것 같아요. 어머니도
아직까지 제 CD를 들으신 적은 있어도 제 공연을 보신 적은 없을 거예요. TV에서 보신 적은 있겠다. EBS공감 같은 거… 그렇지만 따로 클럽을 찾아오시거나 제가 어머니를 모시거나 한 적은 아직 없어요. 예전에 군 입대 전에, 바이러스
EP [Pardon Me?] 가 나왔을 때 CD를 들고 아버지 묘지에 간 적은 있어요. 살아계셨으면 참 좋아하셨을 거 같아요. 어머니도 한번씩 농담처럼
말씀하세요. 너희 아버지 살아계셨으면 니 매니저 하겠다고 덩실덩실 난리였을 거라고.
LE: MC로서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아마 제가 지금까지 만나본 인터뷰이 중에 가장 랩, 엠씨 이런 타이틀에
애착이 있으신 것 같아요.
아, 애착이 다들 별로 없었나 보죠? (전원 웃음)
LE: 그렇다기보다도 이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시는 분들은 많이 없었죠.
게으르지 않고, 내가 랩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매일이 너무 즐거운 사람. 내가
이걸 하고 있고 선택한 걸로 멋있게 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라는 것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는 사람. 그래서
랩은 무조건 잘해야죠. 궁극적으로는 김광석이나 피천득같은 분이 되고 싶어요. 혹은 윤종신같은 분이 되고 싶어요. 그렇습니다. 랩으로 이야기하는 사람.
LE: 이제 마지막으로 질문에 없어서
하지 못한 말, 하고 싶은 말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혹은
인터뷰 소감이나 홍보를 해주셔도 됩니다.
바스코(Vasco) 형 앨범에 피쳐링하면서
썼던 대목인데 ‘분수 모르는 이기적 순수’라는 말을 요즘
곱씹고 있는 중이거든요. 이 문화 안에서 아직도 ‘Forever
Young’을 외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생각을 해요. 분수를 모르고 이기적으로
고집하는 순수함이라 슬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미안하고 죄송하기도 하지만 분수를 모르기
때문에 멋있는 것 같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멋있는 것 같고, 순수하다고
외칠 수 있어서 멋있는 것 같아요. 이걸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쨌든 간에 ‘분수 모르는 이기적 순수’를 계속 지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스탠다트 뮤직.
LE: 인터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구' 가 스물두 번 나오네요 ^^
역시 뮤직살롱인터뷰는 차원이 다른 딥함이 있네요..ㅋㅋ
이야기꾼 랩인간형 마이노스!
진짜 친근하게 느껴지는 대구출신 마이노스 형 ㅋㅋㅋㅋ
항상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SPECT.
으아ㅏㅏ 정말 잘 읽었습니다!!!
마이크 스웨거 영상 아직두 가끔보는데 인터뷰 다 읽어보니
뿌리가 역시 깊으시군요 ! 잘 읽었습니다 ! 결국 우리 보는 나무보다 뿌리가 더 중요하는 !
진짜 정독했습니다. 잘봤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열심히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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