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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 [디폴트] 리뷰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2024.03.25 14:35조회 수 563추천수 5댓글 1

불완전함의 미학, 본디 불완전함에서 시작한 작품이 [디폴트]라는 의아한 제목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애초에 불완전함은 무엇이고, 디폴트는 무엇이길래? 결국에 그녀가 말하는 불완전함이 기본 설정값에 수렴할 이유이려나? 앨범을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듣기 시작할 때까지 제목에 가진 의문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 김사월이란 개성의 존재는 기본값에 수렴되니 족한 작품이려나 싶다. 오히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간단한 작품일지도 모를 일이다. 모름지기 디폴트라는 말에 많은 의미가 담기길 의도했으니, 그녀의 바람대로 앨범을 듣고서 우리만의 디폴트 값을 설정하면 될 일이다. 그녀의 기본 설정값, 디폴트가 작동하는 방식은 앨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을 테니까. 잠깐은 그녀가 제시한 디폴트 공식을 따라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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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과 비관을 내려놓은 상태. 사랑 속에서도 상처가 있음을 인정하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기다릴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이 우리의 디폴트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이 앨범에 담았습니다. 듣는 이들이 저와 함께 사랑을 다시 배우며 슬프지 않은 혼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작가 노트 中

 

그녀가 말하는 디폴트 값에는 순수한 소망이 담기었다. 사랑을 겪고 아픔을 느끼곤 후회하지만, 다시금 그것을 바라는 모순적인 형태를 김사월은 그리고 싶어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사랑의 불안정함을 마주하고서 포기가 아닌 인정으로 나아간 태도부터가 눈에 익는다. 이제껏 김사월의 디스코그래피를 이루어 보았을 때, 그녀는 파괴적이고 직설적인 아픔만을 표현해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전의 상처투성이로 가득하던 본인의 영혼은 어디 가고, [디폴트]의 화자는 한층 수용적인 자세로 나타난다. 감정에 솔직한 점은 이전 디스코그래피에서도 견지한 변함없는 모습이지만, 본작은 솔직함이 본인의 아픔을 들추기에 급급한 식은 아니다. [디폴트]에서의 김사월은 아픔을 인지하고 수용하는 자세로 나아갔기에 한층 다른 감상을 자아낸다.

그에 부응하듯, 당장에 인트로를 담당한 로큰롤 넘버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버려요"는 앨범의 정체성이자 대주제에 맞닿은 트랙이다. 김사월에게 불나방처럼 쉽게 타오르고 쉽게 지는 사랑은 어째선지 행복과 슬픔의 일환으로 느껴지기에 모순적이고 부조화적인 감상을 남긴다. 아니, 애초에 사랑해달라는 말과 버려달라는 말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아리송한 가사말에 대한 의문이 생겨남에도, 그것조차 김사월이 초기(이전 작품들)에 가지고 있던 파괴적 사랑이라면 납득이 간다. 그녀의 예전 가사들에는 직설적인 서늘함이 느껴지곤 했기 때문에, 사랑을 마주하는 감정이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달라진 태도에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는 이전 트랙의 분위기를 따라간다. 달라진 점은 주제에 있어서 결핍적인 사랑에 근거함이 아닌, 외로움에 대한 인지 상태가 주된 내용으로 보인다. '외로워 보이는 건 죄가 아니지만 외로워 보이면 더 외로워질 거야'라는 가사는 누군가에게 충고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면서도, 부메랑처럼 돌아와 본인의 정곡을 찌르니 씁쓸한 감상만을 남긴다. 사실 사랑하거나 사랑받지도 못한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처사라면, 김사월은 음악을 통해 사랑과 외로움의 간극을 좁혀보자 한 것이다. 1번 트랙의 사랑과 2번 트랙의 외로움이 각각 곡 내의 후반부 클라이맥스로 합치되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디폴트]의 이야기는 사랑과 외로움으로 이뤄진 뫼비우스의 띠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한 이야기였을까? 사실 자유로움이라는 단어는 어색하며, 수용이라는 말이 더욱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사랑에 대한 수용의 과정을 천천히 따라가면 되겠다.

밝은 템포의 분위기는 "너의 친구"에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물론 가사는 자기모순적인 면을 공고히 하는데 여념 없다. 외로움의 인식은 인간관계를 왜곡해 보여주는 힘을 가져다주는 양, 화자는 자신의 모습조차 곡해하여 해석할 뿐이다. 자신의 인간관계를 부정함에 있어서 확실치 않는 자신의 모습은 "너의 친구"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되며, 결론적으로는 불확실하다. 자신의 불확실함이 자신을 타자화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 아닐까. 외로움의 결과물은 "독약"으로도 이어진다. '강인해진다는 건 입속에 독약을 머금고 삼키지 않도록 하는 거', 밴드 원테이크로 녹음된 “독약”의 아련한 감성은 강인함의 정의를 새로이 내리는 것에 기인한다. 즉, 아픔을 넘어서는 사람이 강한 것이 아닌 참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며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다. "나쁜 사람", 사랑과 이별에 있어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사람은 없지 않을까. 트랙 내에 등장하는 나쁜 사람의 주체가 묘연한 점이 재밌다. 예컨대, 이별을 알리는 사람과 이별을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싫은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 누가 나쁜 사람인지 정확하지 않다. 김사월은 여기에서 누군가의 도덕적인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단순하게도 외로운 감정이 우선이니, 외로운 사람이 상대도 자신도 나쁘게 만든다는 상황 자체의 인식 과정을 설명한다. 외로움의 이야기는 그런 식이다. 인식을 왜곡하고("너의 친구"), 아픔에 대한 내성이 생기며("독약"), 타인과 자신에게까지도 책임감을 묻게 되곤("나쁜 사람")하는 것이다. 간결한 기타 리프와 담담하게 전달하는 김사월의 보컬은 감미로우면서도 불안한 심상에 톡톡히 자리 잡게 되었다. 결핍된 사랑으로 인한 외로움이란 앞선 주제를 담담히 전하는 앨범의 진행은 이윽고 "디폴트"라는 절정을 맞이하게 된다.

"디폴트(기본 설정값)"이란 김사월의 묘한 단어 선택은 결핍된 사랑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그녀가 의도한 대로 "디폴트"는 앨범 전개에 있어서 절정과 해체를 시의적절하게 담당한 트랙이 되었다. 절정과 해체라는 극적인 전환도 디폴트를 통해 이뤄진다. 적어도 결핍된 사랑이자 사랑 없는 세상을 디폴트라고 외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사랑을 갈망하는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한 가지의 방법이라면 말이다. 1절의 어쿠스틱 기타와 잔잔한 피아노 위로 담담하게 '사랑받고 싶어'라는 가사가 지나간다. 그리고 간주가 한 차례 지나가고, 2절에 들어서면 밴드셋으로 전환되며 '사랑받고 싶어'라는 가사말의 국면도 전환된다. 사실 김사월이 줄곧 말해온 '사랑하고 싶어'라는 '사랑받고 싶어'라는 말로 대체가 되니, 결국에는 이것이 디폴트인 것이다. 디폴트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더하거나 빼는 게 아닌, 오로지 그 자리에 존재함으로 대신하므로 감정의 격정도 절정과 해체가 함께하는 법이다. 마치 사랑 안에도 양가적 마음이 존재하는 것처럼, 디폴트만의 마법은 하나의 고백이자 자신에 대한 일선이겠다.

세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단 한 번의 디폴트로 전환되었다. 이제 그녀가 올곧이 마주한 새로운 무기를 쥐고서 베어야 할 거리를 찾는다. 그리고, "칼"이 바로 당신을 힘들게 하는 세상을 베어 내리는 무기다. “디폴트”의 격정이 지나감과 함께 로큰롤에서 포크로 전환된 것은 분명 탁월한 선택이었다. "칼"은 애정으로 벼린 무기니, 그에 따라 휘두를 곳이 마땅히 존재할 테다. "못 우는데", 마음속에 피어난 사랑은 궂은일도 서로 울게 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내가 울지 못하니 상대방이 대신 울어주는 듯한 광경의 연출, 자장가 같은 신스와 덤덤한 보컬이 합세하며 포근한 감성을 조성한다. 내가 못 우니 상대방이 울어주며 내가 토닥여주는 장면은 사랑하지 않고서 그릴 수 없는 장면이 아닌가. 게다가 이어지는 비유로 가득 찬 트랙 "호수"마저도 사랑을 그린다. 호수는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적실 수는 있으니, 괴로움과 기쁜 감정마저도 커다란 파도로 덮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신스, 일렉트릭 기타와 성가대 같은 코러스는 서로 어울리며 호수를 그대로 형상화한다. 호수는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함에도 나를 널리 품고 있으니, 파도처럼 덮쳐오게 된다. 그 호수 곁에 피어난 "가을장미"는 매해 피어날 뿐이니 아쉬울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가을장미의 생명력은 시들기에 유한한 것이지만, 날 때에 머금은 햇살로 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김사월이 바라본 "가을장미"는 찰나에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디작은 존재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버려짐이 아니라 피고 짐에 대한 수용이니, 김사월의 성숙한 면모가 돋보인다.

그리고, 다시 로큰롤로 돌아온다. "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밤""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은 1~2번 트랙과 대비되며 나름의 엔딩 크레딧을 나누어 가져간 트랙이다. 열아홉을 넘어서 시간이 꽤나 지난 그녀는 큰 변화를 마주하지 않았음에도, 진눈깨비가 내리는 밤에도 사랑에 대한 마주함이 다름없음을 자각한다. '세상 모두가 나를 사랑해 준다 해도 네가 사랑해 주지 않으면 소용없어'라는 가사는 사랑에 대한 정경이 어릴 적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일편단심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 태어남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살아가며, 마치 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것처럼 서로가 어울려 살게 되는 풍경과도 같은 이야기 말이다. 그 속에서 애정이 피어오르고 천천히 움직이게 되는 것은 꼭 우연만이 아닌 이야기일 테다.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은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전하는 편지와도 같은 내용을 선보인다. 혹은 팬들에게 전하는 팬 레터일지도 모를 일이다. 헤어짐에도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사랑하겠다는 이야기는 이전 트랙의 감수성을 이어가며 초월적인 사랑의 정경을 마무리하게 된다.

사실 사랑에는 디폴트 버튼이 있을 지도 모른다. 무릇 마주하는 사랑의 파고에는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과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교차되어 존재하니, 김사월의 [디폴트]는 그 지점을 노렸을 테다. 셀프 타이틀 트랙 "디폴트"가 중요한 이유 역시도 앨범 내의 중앙부를 차지해 외로움과 사랑의 순환 고리의 연결지점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뚜렷한 주제를 제시하고, 외로움의 이야기, 디폴트, 사랑의 이야기, 엔딩 크레딧까지 [디폴트]는 화자가 이제껏의 여정을 정리하며 성장한 이야기이자 본인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김사월의 여정은 하나의 회고록처럼 진행되니, 김사월의 파괴적인 면모가 누그러들고 사랑에 대해 성숙해진 모습이 번듯하게 드러난다.

김사월의 장점은 가사말과 보컬의 전달력에 있다. 분명 추상적인 가사말을 즐겨 씀에도 난해하지 아니하고 직설적으로 느껴지는 포인트는 김사월의 보컬 전달력에 있었을 테다. 60~70년대의 로큰롤, 지속적으로 자랑해 온 포크 사이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보컬이 악기 위에 들어서는 순간이다. 사랑에 목매는 태도가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점도 위와 마찬가지인 이야기다. 김사월은 음악에 쓰인 다양한 장치를 불협화음의 독특한 이질감으로 활용하여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닌, 음악에 동화되어 안정감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나아간 점이 놀랍다. 차분한 신스, 빈티지 질감의 코러스, 과하지 않은 로큰롤 포크록 풍의 기타들까지 김사월의 보컬에 백분 힘을 실어주기에 포크라는 장르적 쾌감은 빛을 발한다. 이제껏 느껴왔던 애처로움의 원인은 난해하고도 불안정한 노랫말에 있었는데, 그 감투는 어디 가고 불안함의 화법을 새로이 전환한 김사월의 또 다른 본모습만이 앨범에 녹아있다.

김사월의 [디폴트]는 성장 일기에 가까운 작품이다. 마침내 소멸의 작법이 아닌 자신을 인정하는 태도로서 미래를 비춰보는 모습은 어쩌면 청자도 김사월도 이전 작품들의 파괴적인 면모로부터 바라와 마지않던 가장 정답에 근접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사실 ‘사랑하고 싶어’라는 대사가 ‘사랑받고 싶어’였다는 솔직한 고백이나,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이 삶을 수용하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은 그녀에게 있어서 삶을 대하는 태도의 큰 변환점이겠다. 불완전함의 끄트머리에서 얻은 결실은 자기 수용이었으니 그 대답은 음악을 통해 충분히 만족스럽다. 불완전함의 미학 역시도 파괴적인 대답이 아닌, 그 자체를 포용하는 대답을 내놓았으니 어떤가. 이윽고 김사월은 최저의 천국에서 사랑과 고독을 모두 경험한 인간의 삶, 디폴트로 돌아왔다.


https://youtu.be/pTWhvPn-UoI?si=W1Pd2ohc5yc8H28w

 

어쩌면 올해 봄의 흥취를 충만히 담고 있는 앨범이 나왔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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