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에도 말했듯, 아이돌은 음악만큼이나 팬을 어떻게 유입시키고 유지할지가 중요한 산업이다.
(이는 아이돌 산업이 열등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사업이 겨냥하는 팬층이 애당초 인디 음악 사업과 다른 것이다.
인디 음악에서 팬층은 음악성이 높은 것을 원한다 - 그렇기에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음악을 공급하려 노력한다.
반면 아이돌 산업에서 음악성에 대한 평가는 부차적이다.)
(2)
여하튼 서태지와 아이들, HOT 같은 선조들부터 빅뱅과 소녀시대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내가 자료를 찾아본 바가 없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다만 워너원을 기점으로 아이즈원 등등부터 아이돌 팬층을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서바이벌'이었다.
이 서바이벌은 꽤 흥미로운 방식인데, (i) 우선 아직 티비의 영향력이 남아있었던 만큼 아직 '실력적으로 미숙한' 아이돌을 순식간에 대중들에게 노출시킬 수 있었고 [경쟁이라는 포맷만큼 짜릿한게 어디있을끼?] (ii) 그 다음 이 아이돌을 육성시키며 참여하는 경험 - 이 자체가 내러티브요 콘텐츠이자 팬층의 기반이 되었다.
(3)
그렇지만 이런 아이돌 서바이벌 자체의 인기는 이제 사그라든 듯하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나온 아이돌 중에서 최소한의 하입을 받고 있는 그룹은 아일릿, 제로베이스원 정도가 전부다. (위로 올라가면, 케플러 정도가 마지막 인듯?)
여기 사람들 중에서 클라씨, 유니스를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이 있을까...?
(4)
아이돌 서바이벌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것은 내가 볼 때, (i) 티비의 영향력이 전보다 낮아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중파를 보지 않는다 - 그렇다면 애당초 인지도가 없는 이 아이돌에게 관심을 집중시킬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성공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돌이 빅히트라는 거대한 네임 벨류를 업은 아일릿과 프듀 시리즈라는 프로그램의 네임벨류를 업은 제로베이스원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5)
그렇기에 아이돌 소속사는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한다.
(a) 소속사가 네임 벨류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 벨류의 힘으로 팬을 끌어온다.
(b) 소속사가 벨류가 없는가? 그렇다면 어떻게든 팬을 끌고 올 컨텐츠를 만든다 - 바로 자컨이다.
지금은 사실상 자컨이야 말로 아이돌 사업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생각이 든다.
(듣자하니 코로나 때 세븐틴이 했던 고잉 세븐틴이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네임벨류가 있는 소속사의 아이돌이든 아무것도 없는 아이돌이든 소속사는 음악만큼이나 자컨을 만들어서 공급한다 - 하다 못해 버블 같은 소통 어플로 팬층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트리플에스야 말로 이런 사업 모델의 성공 사례일 것이다 - 24명이라는 인원수를 최대한 활용한 어마어마한 양방향 소통 전략, 매일매일 만들어냈던 자컨들 등등등)
(6)
그렇지만 최근 경향은 꽤 다른 느낌이 든다.
시네마틱 - 뮤비나 티저 영상 자체를 영화처럼 만들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게 주된 전략이 된 듯한 느낌이다.
https://youtu.be/FUN9ME61L3o?si=iB9MwkpBQt0-j4F8

(음악은 정말 구렸지만, 뮤비랑 트레일러만큼은 역대급이었던 이번 있지)
https://youtu.be/TwfOTaEVt_w?si=CJ2W34Q5OMmx7zAM

(이번 테디네 레이블에서 나오는 올데이프로젝트도 티저부터 무시무시하다)
https://youtu.be/D-w2HwG18vg?si=81QXPsZ7DOR9GgiX

(이런 시도에서 가장 변태적이고 완성도가 높았던 것은 정병기가 손 댄 아르테미스.
곡 자체도 언제나처럼 좋고, 안무도 현대 무용인데다 편집도 강박적이고 섬세하다.)
https://youtu.be/phuiiNCxRMg?si=EkDNCnGrEePZyscD

(그리고 이 모든 시도의 선두였을 에스파 - 아마게돈도 인상적이지만, 개인적으로 B급 병맛 컨셉에 노래가 좀 더 내 맘에 드는 슈퍼노바를 골랐다)
(7)
번외 ; 요즘 한국 아이돌 컨셉은 세 개의 교차로다 - 일본 서브컬처, 미국발 인터넷 밈들 그리고 이걸 어떻게든 한국적 정서로 로컬화하려는 시도.
https://youtu.be/hl4cnkEst-c?si=Z-eH91ZdRb-sWGcN

(이번 에스파 신곡 티저는 아무리 봐도 Brat과 진퉁 브레인 랏 밈 느낌이 있다)
https://youtu.be/UAdxlj4Cgjw?si=GmLoPPRRb05ivOU3

(한편 키키도 브레인 랏을 시도했는데, 항상 보면 애네는 한국 90-00년대를 소환하는 무언가가 있다 - 폰트라던가 그런 것들)
(그러고보니 그라운드 웍고 한국 시골하면 생각나는 비닐 하우스를 무슨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꾸며서 뮤비를 찍었다 - 난 좀 싸구려 티가 나서 싫었다)
https://youtu.be/xRU1XXHIpIc?si=EytdgtYmzhVFKHcR

(아일릿 신곡 - 여기는 마법소녀인데, 뭔가 좀 크리피한 지점이 있다 - 저 얼빡샷 ; 이래저래 말은 많지만, 확실히 하이브가 카피캣이라면 1급 카피캣이긴 하다.)
(8)
번외 2 - 그럼에도 요즘 가장 자주 듣는 노래는 키오프의 신곡이다.
https://youtu.be/52IyDIMyejQ?si=t44M9wkc3TGlY-jY

엔믹스 노래처럼 번뜩이는 지점은 없지만, 곡 자체랑 멤버들의 보컬 퍼포먼스가 두고두고 들을만한 곡이다.
(이프아이의 너디 같은 계열이랄까?)
(근데 곡이랑 뮤비를 보면서 아무리 봐도 엔믹스의 이번 노래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저 사이버네틱한 공간에 있는 화려한 여자 - 거기에 절제된 디자인과 곡들)
(+추가)
https://youtu.be/WxNNGLlKeNQ?si=_70E2_cBas-kHYqZ

키라스라는 그룹인데, Saay라는 분이 총괄 프로듀서라고 한다.
컨트리 기타를 메인 루프로 삼은 다음에, 힙합과 알앤비를 섞고 - 케이팝 특유의 기승전결을 섞은 곡인데....우연치 않게 들었는데 참 좋다.
(어떤 의미에서 이 락킹한 기타 리프 위주의 곡인데다 보컬이 묘하게 락처럼 지른다는 점에서, 요근래 있는 한국 락의 부흥과 엮여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든다 - QWER 말이다.)
(9)
다음 번에 시간이 나면 월드 와이드 뽕짝이나 요즘 외힙 리뷰 (Jerk/Hyperpop 계통/New Jazz 계통/언더그라운드 Trap 류들)에 대해 쓰볼까 합니다.
아니면 영미권 사이키델릭 포크 비교나 엄,,,,최근 들은 한국 인디 음악 리뷰?
월드와이드 뽕짝, 한국 인디 음악 리뷰 대기중..
그렇다면 한국 인디 음악 추천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에.. 올해 국내 신보중에 가장 좋았던건 백현진 신보 두 장이랑 정태춘 선생님 신보 좋았고
박지하 신보, baan 신보, honk-dot, 김유신 신보 좋았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디깅하시는군요.
여튼 시간날 때마다 들어보고 끄적끄적 써보다 뭔가 할 말이 생기면 글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월드와이드 뽕짝은....심심하고 일하기 싫으면 쓰겠습니다 하항..
제가 다른사람과는 다르게 케이팝을 꽤 고평가하고 더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청각과 시각의 융합성질이 있다는점 이죠 ㅎ
다른 장르도 이런 성질이 없다는건 아닌데 케이팝이 이렇게 시각적인것도 신경쓰면 컨셉의 씹덕스러운 감성이 잘 느껴지는거 같아요
작년에 나온 아르테미스 virtual angel 뮤비 보고 매혹걸렷던 기억이..
확실히 요즘 케이팝 뮤비/컨셉의 퀄리티가 올라가고 있다는 걸 여길히 느낍니다.
정말...에프엑스가 데뷔하고 시네마틱 티저를 냈던 것이 어제 같은데, 이제 그런 게 케이팝 시장의 기본이니 말입니다.
앞으로 한동안은 (음악은 잘 모르겠지만) 컨셉/이미지 면에서 케이팝은 꽤 핫할 것 같습니다.
일단 개추!!!!!!!
개인적으로 자컨에 속하나 싶긴 한데 챌린지, 숏폼의 영향력이 특히 케이팝 씬내에서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 제가 그걸 까먹었네요;
확실히 신비주의 노선에 가까운 길을 걷는 미야오나 키키조차 숏폼을 찍는거보면, 알고리즘 신이야 말로 미래에는 저희를 지배할 것 같습니다 ㅎ
개추
아르테미스가 트리플에스랑 총괄이 동일 인물이구나… 확실히 감각이 있다…
현재의 케이팝이 가장 과도기 상태인 듯 해요. 속은 텅 비어있는데 껍데기를 누구보다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 노력하는...
다들 몰개성하고 티저/사운드에만 집착하는 걸로 보여서 저는 이 흐름이 안좋게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자본이 되는 탑 플레이어들의 노래가 구려지는 감은 있습니다.
(가장 최근만 보더라도 있지, 아이들, 슬기 앤 아이린)
그래도 뭐 전 비관적이진 않습니다.
시장이 커진만큼 꽤 흥미로운 시도들이 이곳저곳에서 보이더군요.
(위에 올린 키라스랑 이프아이 - 따지고보면 중형도 아닌 소형 소속사일텐데 곡 퀄리티가 좋습니다.
찾아보니 케이팝 사업 안쪽에서 활동하신 분들이 프로듀서를 맡으셨던데 이런 시도들이 계속되는 한 꽤 재미있는 결과물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더욱 다양한 시도가 나와서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대기업 아이돌들이 노래를 이런 식으로 내는 데도 인기가 유지된다라,,, 슬프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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