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항상 마음 속에 의구심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분명 제 주변에는 민트초코를 돈 주고 사먹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왜 수상할 정도로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은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왜 민트초코 관련 제품들이 계속 속출하는 것일까? 분명 제 사회적 고립이 주된 원인이긴 하겠지만, 그 부분을 고려하더라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가 문득 정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민트초코의 인기가 높아 보이는 이유는, 실제로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소수 민초파들의 광적인 소비 때문이라는 것을요. 그들은 밥을 먹을 때도, 음료를 마실 때도, 양치를 할 때도 항상 민트초코를 입에 달고 사니까요. 이를 깨닫고 나서 저 역시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한 때 저는 각종 음악 커뮤니티에 ‘김태균과 민트초코이념’을 비롯한 글을 쓰면서 사람들을 설득시키고자 했습니다. 허나 결국 민트초코든, 좋아하는 사람은 계속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계속 싫어할 것입니다. 싫다는 사람을 붙잡고 괜히 실랑이하기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는 만큼 저 열심히 소비하는게 진정 아티스트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랜만에 녹색이념과 상업예술을 다시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되었죠. 아, 내가 예전만큼 김태균을 좋아하지는 않는구나. 처음 녹색이념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동은 이제 없구나.
<현재는 국힙에서 키드밀리를 제일 좋아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제가 처음 녹색이념을 듣고, 그의 팬이 되기로 결심한 이후로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도 저는 보다 다양한 장르의 많은 앨범들을 접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 녹색이념만큼, 또는 그 이상의 감동을 준 작품도 많았습니다. 여전히 녹색이념은 좋은 앨범이고, 김태균은 나에게 특별한 래퍼이지만 그와 함께 보냈던 추억과 함께 애정 역시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 와서 저 자신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봅니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녹색이념과 김태균을 좋아했던 걸까?
<외모를 얻고 음악력을 잃은 김태균>
최근 들어 김태균이 변했다는 말이 많이 들립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찌질하게 바뀌었냐고. 다만 저한테는 녹색이념부터 김태균은 일관적으로 찌질한 사람이었습니다.
‘내 사상은 많은 적을 만들었지
그 적들이 나를 만들었지’
<김태균-암전>
빌런이 있어야 히어로가 있다는 말이 있죠. 김태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번 째 과정은 ‘떳떳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상은 부모님이 되기도 하고, 방송국의 PD가 되기도 하고, 헤어진 여자친구, 과거의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듯이 마지막에 비난의 화살을 결국 자신에게 돌아왔죠, 그의 이념은 본인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상처주기만 했습니다. 와중에 김태균은 계속 ‘나는 떳떳하다’고 자기최면을 거듭하며 멋대로 기대와 실망을 계속할 뿐입니다.
이런 부분이 찌질한 저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저와는 다른 점도 있었죠. 진작에 포기한 저와는 달리 김태균은 찌질하게라도 계속 다시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집을 떠나야 할 것 같아
나 꿈을 이뤄야만 집에 올 수 있을 거 같아
나 이번엔 왠지 꿈을 이룰 수 있을 거 같아
나 이번엔 왠지 돌아올 수 있을 거 같아'
<김태균-제자리>
결과는 마냥 좋지 않있지만, 그래도 펀딩까지 받으면서 본인 커리어에 ‘명반’ 하나 남겨보겠다고 아득바득 노력하는 김태균이 좋았습니다. 한심한 남자친구, 실망스러운 아들이지만 그래도 음악에서만큼은 항상 당당한 김태균이 좋았습니다. 한바탕 깨지고 나서 빈털터리로 집에 돌아왔다가도 내일이 되면 ‘이번에야말로 꿈을 이룰 수 있을 거 같다’고 멋쩍게 말하는 김태균이 좋았습니다. 아무리 찌질해져도 찌질한 음악은 하지 않으려던, 저와 닮으면서도 닮지 않은 김태균이 좋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처음에 그의 팬이 된 것은, 그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글로 옮겨 보니 조금 오글거리기는 하지만-새삼스럽게 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다시 상기하게 됩니다.
빡대가리 flow, 1억짜리 funding 사기
뮤비 짜친다고 까이니 웃기려던 척을 하지
엮지 말고 혼자 썩으라 그래, 난 멀리 가 있어'
<화지-V Cypher 2021>
한때는 그를 깎아 내리는 글에 진심으로 기분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소위 ‘텤극기부대’ 활동을 하면서 인터넷에서 싸움을 걸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반박도 못하고 계속 맞고만 있는 김태균이 싫었습니다. 좋아했던 마음이 큰 만큼 원망스러운 마음 역시 컸습니다. 그를 만나게 되면 한바탕 쏟아내고 싶은 말도 많았습니다. 뮤비는 왜 그렇게 찍었어? 단편영화는 언제 나와? 완전판을 꼭 그렇게 냈어야 했을까? 맞디스곡은 안 낼 생각이야? 쇼미더머니에서는 왜 그랬던 거야? 흔히 말하는 과몰입을 지나치게 해버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우스운 일입니다. 제가 그를 처음 좋아했던 이유를 떠올리면 더욱더. 그와의 추억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지금, 제가 김태균에게 하고 싶은 말은 딱 한 가지입니다.
‘If you know an artist there's only one thing you can give say or ask them when you see them.
There are two words. Thank you.’
<대-예, 미국 대통령 후보, (전)나치당>
한때는 칸예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그 다음은 타일러였고, 최근에는 힙합보다는 락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많이 듣고 있고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라디오헤드입니다. 어쩌면 김태균과 녹색이념은 순위에서 한참 밀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수험생 시절, 밤마다 녹색이념을 들으면서 마음을 다잡던 기억만은 생생합니다. 이제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음악은 많을지언정 그래도 대체할 수 없는 추억을 준 김태균이 그저 고맙습니다.
이제 더는 그에게 집착할 필요가 없기에, 그를 믿고 묵묵히 기다려주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음악이 너무 많습니다. 몇 십 년 전에 나왔던 고전부터 막 나온 따끈따끈한 신보까지 앞으로도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음반도 계속해서 바뀌겠죠. 다행입니다. 김태균을 기다리는 과정이 절대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누군가는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는 그가 ‘개화’에서 팬들에게 한 약속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햇빛 떨어지고 내 잎도 떨어지고
차가운 눈이 쌓이고 위를 즈려 밟히고
말라 비틀어지고 결국엔 시들더라도
걱정하지마 난 돌아와 다시’
<김태균-개화>
결국 베일에 싸인 3집이 나오기 전까지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겁니다. 물론 3집 역시 상황을 뒤엎는데 실패할 수도 있죠. 그럼 다음에 나올 4집을 기다리면 되는 것 뿐입니다. 계속해서 무너지고, 더 떨어질 수 있는 곳이 없을 만큼 떨어지더라도, 딥플로우한테 개껌 취급을 받더라도 다 찌질하게 일어서는게 바로 ‘녹색이념’의 김태균, 내가 좋아했던 김태균이니까요. 이제는 더 이상 그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10년, 20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저는 이제 그가 없는 시간동안 곁에 있어줄 훌륭한 아티스트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나오지 않을 그의 ‘명반’을 기다리며. 언젠가 악독한 화지 일당을 메타버스로 밀어내고 리얼 월드에서 승리를 거둘 그 날을 기다리며.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과 평화.
테이크원 본인이 본다면 화지의 디스라인 한줄보다 더 마음이 아플 글이네요 이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념은 개뿔 결핍이였던게 느껴지네에ㅔㅔㅔㅔ
불완전판 보유자로서 매우 불쾌했던
감동적이네요,,
이념은 개뿔 결핍이였던게 느껴지네에ㅔㅔㅔㅔ
크루셜스타한테 얻어맞은건 테이크원 팬 아니여도 아프게 느껴지긴 하더라구요
꽤 많은 마디를 잡아먹는 디스임에도 옛 테이크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곡 같이 했던 사이기도 하고..)
무작정 디스라기보단 약간의 그리움이 깔려있는거 같아서 짠하긴 하네요
고마운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 계속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했던 만큼 지금 상황이 너무 안타깝지 정말..
테이크원 본인이 본다면 화지의 디스라인 한줄보다 더 마음이 아플 글이네요 이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엘이문학 퍄퍄..
어떻게 저랑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죠
불완전판 보유자로서 매우 불쾌했던
저도 이 시점부터 테이크원이 싫어졌음
많이 공감되네요ㅠ
마이크스웨거 부스 콘서트도 가고 상업엘범 펀딩도 참여할 정도로 좋아했는데ㅠㅠ
그래도 글쓴이님 말처럼 한가닥 희망을 가지며 기다려봅니다..!
꿋꿋해 보이는 신념, 그러나 때때로 그렇지 못한 행동들까지 많은 부분에서 '저', 또는 '일반 사람들' 의 군상을 보여주는것 같아 특히 좋았어요. 이 글도 분명 저와 같은 팬 입장에선 너무나도 공감가는 훌륭한 글인데.. 이분의 현재 모습들이 지금은 좀 설득력을 잃은 상태로 느껴져서 여러모로 비판받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저희 입장에선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지만, 그건 지극히 '팬'만의 관점일 것이고요.
근데 윗 이유도 좋아하는 이유지만 또한
Fine 으로 처음 알았을 때의 신선함과 충격(전주 + 첫마디 뱉을때부터 전율이 ㄷㄷ)
리컨트롤, 컴백홈, 박재범 피쳐링(who the fuxxx..) 등에서의 패기넘침
두메인2020 에서의 화려한 랩스킬
등도 좋아하게된 충분한 이유인지라 이 모든것들에 대한 향수는 결코 없어지지가 않네요. 그저 기다릴 뿐
악독한 화지 일당 개웃기네요ㅋㅋㅋ
글이 너무 좋네요.. 저도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관해 글을 쓰고 싶은데, 글솜씨가 부족해서요.. ㅎㅎ 형식을 조금 따라해도 괜찮을까요?
답글을 잘 안 다시는 것 같군요..! 차용했다고 남겨놓겠습니다. 혹시 불편하시면 내리라고 말씀해주세요 ㅎㅎ :)
마음대로 하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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