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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컴바인드(Mind Combined, 피제이 X 진보)

title: [회원구입불가]snobbi2021.03.12 20:20추천수 6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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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제이(PEEJAY)와 진보(JINBO)는 이른바, “아티스트의 아티스트”라 불리는 존재들이다. 둘은 빈지노(Beenzino), 이센스(E SENS), 자이언티(Zion.T), 크러쉬(Crush)를 비롯해 BTS, 빅뱅(BIGBANG), 보아(BOA) 등의 앨범에 참여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큰 흐름을 이룩했다. 그런데 사실, 두 음악가는 2010년대를 시작하며 하나의 팀을 결성한 바 있다. 바로 마인드 컴바인드(Mind Combined)다. 이들의 1집 [The Combination]은 수많은 음악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2010년대 한국 알앤비/소울 씬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지금, 마인드 컴바인드가 새 앨범 [CIRCLE]을 들고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왔다. 이에 힙합엘이가 마인드 컴바인드의 지난 11년과 [The Combination], 그리고 [CIRCLE]에 담긴 영혼과 이야기를 하나의 글로 기록해 두기 위해 두 음악가를 직접 만나고 왔다.






LE: 우선 간단하게 힙합엘이 회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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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제이(이하 P): 안녕하세요. 피제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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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이하 J): 안녕하세요. 저희는 마인드 컴바인드입니다.

 

 




LE: 앨범 준비 때문에 한창 정신이 없으셨을 것 같은데, 두 분의 근황은 어떤가요?

 

J: 저는 한창 휴식을 취하고 있었어요. 음악 활동은 컨버스(CONVERSE) 주관 송캠프 행사에 디렉팅으로 참여했고요. 삼성동에 위치한 파크하얏트 호텔에 있는 더팀버하우스(The Timber House)에서 음악을 틀고 있습니다.

 

P: 저는 요즘 다른 아티스트들이랑 곡 작업을 하고 있어요. 나올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인터뷰가 공개될 즈음이면 작업에 참여한 서동현 군의 앨범과 릴보이(lIlBOI), 원슈타인의 더블 싱글에 수록된 "LASER"라는 곡이 나와 있을 거예요. 그리고 ‘국힙원탑’, 아이유(IU)의 앨범에 참여했습니다.






LE: 말씀하셨듯이, 진보 님은 더팀버하우스에서 주기적으로 음악을 트시는 거로 알고 있어요. 혹시 디제잉이 음악 작업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도 있을까요?

 

J: 영감을 많이 받아요. 다양한 장르를 듣는 게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팀버하우스가 재즈를 주로 트는 엘피 바인데, 덕분에 자연스럽게 재즈를 많이 듣게 되면서 음악적인 재미를 느껴요.

 




 

LE: 진보 님은 DJ를 맡으실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시나요?

 

J: 저는 디제잉이 하나의 방법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수준도 하나여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정말 제 마음대로 틀고 있어요. 에리카 바두(Erykah Badu)가 레드불뮤직아카데미(Red Bull Music Academy)에서 디제잉을 하는 영상을 봤는데, DJ를 할 때도 진짜 에리카 바두스럽게 하는 모습에 영감을 받았어요. 매드립(Madlib)도 그렇고요. (둘 다) 기존 DJ처럼 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디제잉을 하거든요.

 

 




LE: 진보 님처럼 피제이 님의 근황을 짚어보자면요. YG의 자회사 겸 레이블인 더블랙레이블(THE BLACK LABEL)에서 독립하셔서 다시 1인 레이블인 워킨 레코즈(Walkin’ Records)을 차리셨어요. 기존의 회사를 나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P: 더블랙레이블과 계약하기 전부터 워킨 레코즈를 설립해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요. 여러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많이 들어 왔었어요. 그 중 더블랙레이블을 택했어요. 평소 YG회사와 작업도 하고 친분도 있어서 거부감이 없었고 저도 좀 더 새롭고 넓은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거든요. 2019년도에 계약 기간이 끝날 즈음 재계약에 대한 여부를 회사랑 이야기하다가 결국엔 독립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그 이유는 워킨 레코즈가 레이블이 되었든, 크루가 되었든, 집단으로 계속 가고 싶은 생각이 있거든요. 그런데 더 늦으면 안 될 거 같고, 지금부터 조금씩 만들어 나가보자 해서 다시 워킨 레코즈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LE: 그렇다면, 앞으로 워킨 레코즈를 점점 더 레이블다운 레이블로 만들어나갈 계획도 있으신 건가요?

 

P: 네. 그렇죠. 아직은 1인 레이블이지만요. 어떻게 보면, 마인드 컴바인드 앨범이 제 음악을 제외하고 레이블로서의 첫 시작인 셈이죠. 마인드 컴바인드 앨범이 11년 전에는 수퍼프릭 레코드(SuperFreak Records)에서 나왔고, 올해는 워킨 레코즈(Walkin' Records)에서 나오게 되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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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두 분과 함께 본격적으로 마인드 컴바인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두 분이 기억하는 첫 만남과 첫인상이 궁금해요. 혹시 기억나시나요?


J: 피제이 형의 머리 스타일이 기억에 남네요. 라임버스(Rhymebus) 시절에 형이 하셨던 스타일이예요. 아프로에 가까운 핀펌 머리였는데, 불가사리같이 생긴 모양이 기억에 남아요.

 

P: 제가 기억하는 진보와의 첫 만남은 인천에 있는 아파트, 아라비안나이트 건물이었을 거예요. 작업실이 아라비안나이트 건물에 있었거든요. 저는 디씨트라이브(DCTribe) 시절부터 진보가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는데, 현배(45RPM) 형이 진보를 컨택했나 그랬을 거예요. 그러다가 호텔에서 하는 밀러 행사 대기실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는데요. 제가 그걸 연주하고 있었는데, 진보가 옆에 와서 “같이 치자!” 해서 같이 연주를 했어요. 그 계기로 서로 음악적인 취향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 게 기억에 남네요.

 

J: 피아노 코드 연주에 보이싱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똑같은 C 메이저 트라이애드 (도-미-솔)도 어떤 모양으로 치는지에 따라 소리와 느낌이 다르거든요. (도 미 솔, 미 솔 도, 솔 도 미) 그런데 제가 즐겨 치는 보이싱을 피제이 형도 똑같이 치는 걸 보면서 ‘어? 나랑 똑같은 손 모양이잖아?’라고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웬만한 작곡가나 건반 치는 사람을 만나봐도 보이싱이 제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나랑 똑같은 보이싱을 하는 피제이 형을 만난 데다, 심지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거예요. 피제이 형이 내가 모르는 코드를 치는 걸 보면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치는지 물어보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그러면서 피제이 형에 향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 사람은 나의 음악적인 형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느끼게 되었죠.


 

 



LE: 마인드 컴바인드를 결성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을까요?

 

P: 이 이야기를 하려면, 그때 수퍼프릭 레코드를 같이 했던 A&R 친구 이야기를 해야 해요. 그 친구가 저와 진보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을 했거든요. 사실 그전까지는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각자 살기 바빴어요. 진보는 CJ를 다니면서 [Afterwork] 작업을 하고 있었고요. 저는 라임버스 앨범을 내고, 여러 아티스트와 이런저런 작업을 하기 바빴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A&R 친구가 저의 습작 비트를 들고 진보한테 갔던 거죠. 그 친구가 진보의 차에서 둘이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저의 비트를 틀어 주면서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래서 진보가 한 번 작업실에 와서 작업까지 이어지게 되었죠. 

 

J: 음악의 흐름하고 관련이 있는데요. 한 2006년에서부터 2009년까지가 마크 드 클라이브 로우(Mark de Clive-Lowe, MdCL), 포린 익스체인지(The Foreign Exchange), 니콜레이(Nicolay)와 같은 비트메이커들이 씬에서 하나둘씩 올라오면서 그런 사운드들이 유행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제이 딜라(J Dilla), 매드립, BBE 레코드(Barely Breaking Even Records)의 [Beat Generation] 시리즈 역시 저에게 엄청난 영향을 줬어요. 당시에는 제이 딜라의 [Think Twice]가 나올 때였고, 포 텟(Four Tet)을 위시한 브로큰비트(Brokenbeat)도 엄청나게 잘 나갈 때였었거든요. 2006년 전까지는 힙합/알앤비만 듣고 만들었지만, 2006년에서 2009년 사이에는 그런 움직임이 주변에 많이 생기면서 비트 뮤직을 좋아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A&R 친구가 피제이 형도 이런 음악을 좋아한다는 소식을 전해줬던 거죠. 제가 꼬맹이 시절에 인천을 오가면서 음악적으로 좋아하고 따르던 피제이 형이 역시나 그런 걸 좋아하는구나 싶었죠. 그때부터 A&R 친구를 통해서 피제이 형과 조금씩 교류를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그 친구가 아예 피제이 형 비트에다 노래하면 어떻겠냐고 해서, CD로 10트랙 정도를 구워 와서 저에게 전해줬어요. 차에서 피제이 형의 비트들을 들어봤는데요. 진짜 내가 만들고 싶고, 내가 추구하는 사운드가 들어 있는 거예요. 제가 이런 비트를 10개 만들려면 1년 동안 맨날 죽어라 만들어야 하는데, 이미 CD에 10곡이 들어 있으니까 나는 바로 가사 쓰고 노래만 부르면 되니 당장 하겠다고 했죠. 2주 만에 끝냈어요.






LE: [The Combination]의 작업을 2주 만에 끝내셔야 했던 특별한 사정이 있으셨나요?

 

P: 왜냐하면 이 친구가 미국을 가야 하는 일정이 있었거든요. 원래 마인드 컴바인드는 계획에 없던 거였지만, 하다 보니 프로젝트가 되었죠. 브라운 바나나(BROWN BANANA)라는 파티도 했어요.

 

J: 맞아요. 그때 DJ는 써드 코스트(3rd Coast)의 지호와 피제이 형이 맡았고, 마인드 컴바인드가 라이브도 했고요. 윤협(Yoonhyup)이가 라이브 페인팅과 포스터를 맡아 줬어요.

 

P: 사실, 우리끼리의 파티였어요. 시기적으로 보면 [Afterwork]가 나온 이후에 마인드 컴바인드 앨범이 나온 건데요. [Afterwork]가 반응이 좋은 상태에서 마인드 컴바인드 앨범이 나오니까 오히려 뭔가 마인드 컴바인드에 대한 관심이 좀 덜 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도 이 앨범을 만드는 작업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J: 거의 프로모션이 없었죠.

 

 




LE: 피제이 님은 당시에 누군가와 팀을 같이 하고 싶어서 10곡의 CD를 A&R 분에게 넘기게 된 건가요?

 

P: 그렇다기보다는, 한 번 들어보라는 마음으로 넘기게 되었던?

 

J: 생각해보니, 그때는 형들이나 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어서 뭔가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다 결정하고 싶다는 마음에 수퍼프릭 레코드라는 레이블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때 뜻이 맞아서 앨범으로 내버린 것만으로 그냥 만족했죠. 파티도 사람 많이 오는 거 다 필요 없고, 파티에서 이런 음악을 틀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컸죠.


 

https://youtu.be/YOk3dHOPHSQ


 

LE: 그렇게 아무도 관심 없을 거로 생각했던 [The Combination]의 수록곡인 “Body Groove”가 국내 흑인음악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어요. 혹시 기억에 남는 앨범 작업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P: [The Combination]은 진짜 남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앨범이에요. 앨범 일정이 빠듯한 걸 알면서도, 서로 작업실에서 만나면 너무 재미있고 즐겁게 잼하고 놀았어요. 그렇게 앨범을 그냥 후다닥 만들었어요. CD로 전해준 기존 10곡 중에, 어떤 게 앨범에 수록되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럴 만큼 앨범의 수록곡들을 다시 새롭게 작업했어요. 당시에는 그냥 작업하는 게 재미있었죠.

 

J: 오늘 아침에 애플(Apple)의 공동 창립자였던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의 인터뷰가 있어서 들어봤는데요. “스스로 꽂혀서 맨날 밤새 작업하는 사람의 열정은, 돈을 많이 줘서 만들 수 있는 열정이 아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스티브 워즈니악도 당시에는 자기가 원하는 컴퓨터를 만들고 싶어서 미친 듯이 매달려서 애플 컴퓨터를 만들었겠죠. 마인드 컴바인드의 앨범을 만들 때 저희 둘도 그저 ‘이런 사운드의 음반을 진짜로 내는구나’라는 사실 자체에 흥분했던 것 같아요.

 

P: 그리고, 당시의 한국 사회에서 이런 사운드의 음반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 때문에 우리가 듣고 싶은 걸 우리가 만든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었어요. 그래서 가사도 다 영어로 해 버리자. 조금 더 국제적으로 생각하자. 그리고 우리가 이 앨범을 내서 돈을 벌자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요. 우리가 실험적인 걸 했다는 것 자체에 스스로 박수를 쳤던 앨범이었죠.

 

J: 이 이야기는 여러 번 했던 거지만요. [The Combination]은 스피커를 켜 놓은 상태에서 다이나믹 마이크로 녹음한 것을 그대로 사용한 앨범이에요. 녹음을 전문적으로 한 게 아니었어요.

 

P: 그것도 작업실에서 헤드폰을 낀 채로 녹음한 게 아니에요. 스피커를 크게 틀어 놓은 상태에서 보컬을 SM58로 녹음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보컬 트랙에 노이즈가 다 들어가 있었지만, 그 보컬 트랙으로 믹스하고 앨범으로 만들었어요. 당시에는 “뭐 어때? 상관있나?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지!” 하면서 그렇게 만들었던 앨범이에요. (웃음) 무지하니까 용감할 수 있었던. 그런 실험 정신으로 밀어붙였던 앨범인 거죠.



https://youtu.be/n6hsywp6vj4



LE: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군요. 이후에는 마인드 컴바인드 셋으로 <EBS 스페이스 공감>을 비롯해 여러 라이브 무대를 서기도 하셨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는지, 또 이런 라이브 무대를 통해 무엇을 배우셨는지도 궁금해요.

 

J: 저희가 홍대에 있는 지하 공연장에서 공연했었어요. 정확히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요. (*숲의 큐브릭) 그 공연장에서 마이크 앤 잭슨(Mic n Jackson) 밴드로 공연을 했고, 그러던 게 지금의 저의 막(MAK) 밴드로 진화했어요. 그다음에 마인드 컴바인드 레퍼토리로 제가 LA에서 공연했어요. 국제적으로 조금이라도 써먹을 수 있었죠.






LE: 비록 두 분은 앨범 발매 당시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회고하셨지만, 자이언티, 기리보이 님을 비롯한 여러 음악가분이 [The Combination]을 너무 잘 들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잖아요. 그럴 때마다 두 분은 어떠셨나요?

 

P: 저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사실 아직까지도 마인드 컴바인드를 아는 친구들을 별로 못 봤거든요. 자이언티 같은 경우에는 저희랑 감성이 비슷한 뮤지션이다 보니 ‘그래, 자이언티는 이런거를 좋아하지.’라고 생각하고 같이 공연 다닌 추억도 있죠. 그리고 음반 추천할 때 꼭 마인드 컴바인드를 추천해줘서 너무 고맙죠.

 

J: 별다른 관심이 없다가도 ‘마인드 컴바인드 좋아했어요.’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신뢰도가 올라가고 호감도가 올라갔어요. 너 음악 좀 듣는구나. 이런 느낌.


 




LE: 당시에는 한국에서 [The Combination]과 비슷한 류의 앨범을 찾아보기 힘들어서, 더욱더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J: 그래도 그때 즈음에 시모 앤 무드슐라(Simo & Mood Schula)도 EP를 냈어요. 저는 그 EP가 나오기 전부터 시모 앤 무드슐라가 활동하는 모습을 찾아가서 직접 봤어요. 또, 저는 시모의 마이스페이스(MySpace)는 물론이고, 심지어 시모의 싸이월드(Cyworld)에도 들어갔어요. 시모가 오늘 컴프레서를 샀다는 게시물을 보면, 사진을 내려받아 확대해서 보기도 하고요.


새로운 음악적 움직임이 시모 앤 무드슐라 쪽에서도 있었는데, 한번은 분당에서 시모 앤 무드슐라가 공연을 하는데 비록 관객은 많지 않았어도 지금, 이 순간이 매우 특별한 순간이라 느꼈어요. 이건 우리나라에서 없었던 움직임이고, 이걸 분당에서 공연한다는 것도 엄청난 용기고, 이걸 뒤에서 누가 기획하는 걸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했죠.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친구들이 시모 앤 무드슐라의 엄청난 서포터였는데. 그게 또 그림이 좋았죠. 암튼 그런 걸 지켜보면서 마인드 컴바인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고민을 했죠. 그런 모멘텀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어요. 좋은 시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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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맞아요. 말씀을 들어 보니, 당시 마인드 컴바인드와 시모 앤 무드슐라 두 작품이 서브컬처 씬에서 인기가 많았던 기억이 나네요.

 

J: 두 작품은 진짜 앨범 커버 색처럼 (음악적으로도) 차이가 있었어요. 시모 앤 무드슐라는 딱 흑백 같은 사운드였고, 마인드 컴바인드는 컬러풀한 색이에요. (스튜디오에 있는 원본 그림을 가리키며) 저게 마인드 컴바인드 1집 커버의 원본 그림이예요.

 

P: 제가 직접 원본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사진작가 다함이가 저의 그림을 사진으로 찍고, 커버 아트 디자인 패키지로 만들어줬어요. 그런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저희를 서포트해 줬어요. 이런 걸 보면, 진짜 앨범은 혼자 만들 수 없는 거 같아요.


 



 

LE: 돌이켜 봤을 때, 두 분에게 마인드 컴바인드의 [The Combination]은 어떤 의미가 있고, 이후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준 것 같나요?

 

J: 매사가 그렇지만요. 음악도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거랑 진짜 해보는 거랑 차이가 있어요. 머릿속으로는 매드립, 제이 딜라 사운드를 이렇게 해보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다르거든요. 또, 당시에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잘 발달하지 않아서 튜토리얼도 없고, 정보도 없었어요. 그래서 이런 프로듀서들이 컴프레서를 어떻게 사용했을지, 최대한 비슷하게 직접 손으로 만져보면서 했어요. 그때 쌓인 경험이 많이 도움 되었죠.

 

P: 저에게 마인드 컴바인드의 의미는 하고 싶었던 걸 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우리가 실험적인 걸 멋도 모르고 하면서 경험치를 쌓아가다 보니까 나름대로 발전을 한 느낌이 들었어요. 나의 음악적 방향이나 색깔 같은 걸 조금 더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후 저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된 프로젝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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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10년 동안 두 분에게 있었던 여러 변화를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피제이님에게 질문을 드릴게요. 피제이님은 부다사운드(Buda Sound) 시절부터 연을 맺었던 DJ 머프님으로 인해 YG 소속 뮤지션들의 곡을 작업하게 되는데요. 이런 작업이 마인드 컴바인드 프로젝트와는 달랐을 거 같은데, 실제로 어떠셨나요?


P: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요. YG 가수들과의 작업은 세일즈를 위해서, 계산하고 분석하며 곡을 만들었던 거 같아요. 이렇게 하면 좋아할 거 같다. 이렇게 하면 빅뱅이랑 어울릴 거 같고, 멋있을 거 같다는 걸 생각하면 만든 트랙인 거죠. 특히 “WHAT IS RIGHT” 같은 경우는 그 당시 유행하는 팝 사운드를 섞어 빅뱅이 하면 멋있겠다고 생각해서 만들었던 거였어요. “Cafe”도 마찬가지였고요. 누군가를 구상해서 만들었던 음악이란 게 이전과는 다른 점이에요.


반면에 태양의 “Intro(RISE)” 같은 경우에는요. 제가 태양을 생각하고 만든 트랙은 아니었지만, 태양이 제 데모를 듣고 앨범의 구상을 그렸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리고 제 트랙에 태양이 부른 가이드 데모를 들었을 때 정말 멋지다고 느꼈습니다.






LE: 또, 이후에는 마인드 컴바인드 공연에 코러스로 참여했던 자이언티 님과 작업을 하게 되셨고, 또 자이언티 님과의 작업을 계기로 빈지노 님과의 작업까지 이어진 거로 알고 있어요.


P: 자이언티는 마이크 앤 잭슨 밴드를 같이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고요. 아메바 컬처(Amoeba Culture) 스튜디오가 집 근처에 있어서 스튜디오와 집을 오가면서 작업하게 되었어요. 스튜디오에서 제가 만든 걸 이것저것 들려주면서 작업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Red Light]에 네 곡 정도 참여하게 되었어요. 자이언티 같은 경우에는 너무 좋은 아이디어가 많아요. 그런 자이언티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멋진 작업을 함께 하게 되었고, 여러 면에서 자이언티랑 저랑 호흡이 잘 맞았던 거 같아요.


빈지노 같은 경우에는 먼저 제 노래에 피처링 부탁을 하려고 연락을 했었는데, 당시에는 스케줄 상 성사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다 빈지노가 자이언티의 “SHE”라는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요. 녹음할 때 두 테이크 정도 하고 끝내버리는 모습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을 했고, 그 이후에 빈지노가 직접 같이 작업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서 작업까지 이어지게 되었어요. 






LE: 그렇다면 빈지노 님과의 작업은 자이언티 님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나요?


P: 자이언티와 작업할 땐 자이언티가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했다면, 빈지노는 서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서로 뭘 추구하고자 하는 건지, 음악적 방향이 무엇인지. 예술적인 이야기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빈지노가 힙합 안에만 갇혀 있을 만한 친구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우리 같이 팝적인 것도 해 보고, 장르를 뛰어 넘어 여러가지 실험적인 시도들을 많이 해보자” 같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 과정 중에서 빈지노한테 자극도 받고 새로운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자이언티도 1집 이후로는 빈지노처럼 함께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음악적인 시도를 많이 하며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자이언티가 워낙 노래를 잘하는 친구이고, 유니크한 그루브를 가지고 있는 친구라 저도 많이 배운 거 같아요.






LE: 피제이 님은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아티스트와 작업을 하실 때 서로 만나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다음 작업을 하는 타입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서동현 님의 이번 EP도 같은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된 건가요?


P: 서동현이라는 친구한테 DM이 왔었는데요. 사실, DM이 오기 이전까지 서동현이라는 친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어요. <쇼미더머니>에서 나온 싱글이랑 피처링 몇 개밖에 없어서 노래를 들어보니까, 목소리가 되게 유니크하더라고요. 그리고 DM이 어떻게 왔냐면요. 자기가 아직 고등학생이고 앨범을 준비 중인데 앨범 제목이 [BUCKET LIST]라는 거에요. 저도 아직 버킷리스트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고등학교 2학년 친구가 버킷리스트를 생각해본 거 자체가 귀여우면서 대견하고 기특했어요. 그래서 만나보고 싶어서, 동현이에게 작업실에 한 번 오라고 했어요. 


그러고 나서 동현이와 작업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니. 동현이가 옛날 노래들을 좋아하고 많이 알고 있었는데, 서태지와 패닉(Panic)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그때 저는 동현이에게 서태지, 패닉의 당시 시대성을 이야기했어요. 그 때는 학생, 학교, 선생님의 체벌 문제나 교육에 대한 문제점이 있었던 시대이고, 이걸 음악으로 표현한 게 서태지이고, 진표 형이 했던 패닉의 “벌레”였던 거죠. 그래서 '과거와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겪고 있는 고충과 억압은 존재할 거 같다. 그러니 이 시대의 학생들이나 동현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작업하게 된 게 “멋진 신세계”였죠. “커피가게 아가씨”는 나중에 작업하게 된 곡이고요.


J: 올더슨 헉슬리(Aldous Huxley)의 책 제목을 오마주 한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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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 밖에도 피제이 님은 [WALKIN']이라는 이름의 솔로 앨범들을 발표하셨어요. 흑인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 사운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솔로 앨범을 만들면서 스스로 느꼈던 변화들이 있을까요?


P: 처음 [WALKIN' Vol.1]은 제가 지향하는 음악,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남들 신경 안 쓰고 하고 싶은 대로 앨범을 내는데 큰 의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WALKIN' Vol.2]가 나올 때쯤에는 이 음악들을 많은 사람이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서 그런 쪽으로 의미가 바뀐 거 같아요. 제가 이런저런 좋은 의도를 가지고 음반을 냈어도, 빛을 발하지 못하면 그 의도나 의미가 저한테만 있는 거잖아요. 이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좋고 재미있는 음악들을 조금은 여러 사람한테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거 같아요. 


J: 사실, 그동안 피제이 형한테 변화가 있다고 하기보단 음악계에 변화가 있었죠. 패션으로 치자면, 그동안 파스텔 톤의 색은 아무도 쓰지 않고 있었던 셈이죠. 그런데 피제이 형이 파스텔 톤이란 걸 쓸 수 있는 룰을 추가한 셈이고요. 우리나라 음악 업계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색깔 톤들의 음악이 나오기 시작한 거고, 피제이 형과 함께한 아티스트들도 이전까지 미국 음악 비슷한 걸 가져와서 미국 음악 비슷하게 랩을 했다면, 오리지널리티 있는 색다른 배합과 색깔이 있는 피제이 형의 노래에 작업하게 된 거고요. 그러면서 우리나라 음악 씬에 변화가 있었죠.






LE: 맞아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피제이 님의 비트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색채감 있는 음악들을 들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최근에는 지난 1월에 신인 뮤지션인 태오(TAEO) 님과 함께한 싱글 “COZY”에서도 피제이 님 특유의 색채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태오 님과의 작업은 어떻게 이뤄진 건가요?


P: 태오는 블랙 레이블에 있을 때 같이 있었던 친구예요. 목소리가 되게 ‘영(Young)’한 친구였어요. 이 친구도 힙합 범주 내에 있기보다, 팝 성향도 있는 친구라서 좋았어요. 무엇보다도 자기가 지닌 목소리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친구라 생각해서 태오랑 함께 작업했어요. 사실 “COZY”는 제 싱글이 아닌 그 친구의 앨범 수록곡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저의 이름을 달고 싱글로 나오게 됐어요. 저는 그 친구를 서포트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잘하는 친구니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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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진보 님의 커리어도 짚어볼게요. 이후 진보 님은 [KRNB]를 계기로 SM 엔터테인먼트의 그룹들부터 BTS까지 다양한 K팝 가수들과 작업을 해 오셨어요. 일련의 K팝 작업 과정에서 진보 님이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J: 사실 K팝 노래를 만드는 게 어려워요. 왜냐하면 소위 말하는 ‘야마’ 있게 만드는 것, 그리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구조를 짜는 게 중요하거든요. 아이돌이나 댄스 음악을 듣다 보면 1절 후렴 지나고 2절 들어가기 전에 한두 마디 브레이크가 나오고 화려한 편곡이 나오거든요.


저는 그런 걸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고, 제 음악은 야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반평생을 들어왔는데. 막상 K팝 작업을 해보면서, ‘내가 이런 걸 아예 못하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게 음악적으로 큰 변화에요. 

 

또, 음악산업 전반을 알게 되었어요. 단순히 곡만 쓰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를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는지, A&R은 무슨 일을 하는지, 다른 레이블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 다양한 입장을 공부할 수 있던 시기였어요. 운이 좋게도 SM과 일하면서 국제적인 아티스트, 프로듀서와 협업을 하는 등의 경험도 많이 쌓았고요.


(*야마는 일본말로 산을 뜻하며, 보통 음악계에서는 높낮이가 큰 곡 구성을 의미한다.)






LE: 그 덕분인지, 2016년에 발표하신 싱글 “봄이 오는 소리”의 소개 글을 보면요.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Teddy Riley)를 직접 보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셨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영감을 받으신 건가요?

 

J: 테디 라일리의 영향이 큰데요. 사실 제가 SM을 통해서 만난 음악적 형제가 오비 클라인(Obi Klein)이라는 분이에요. 그분이 이센스도 프로듀싱하고, SM 곡도 많이 만들었어요. 오비를 만났을 때 처음부터 뉴잭스윙(New Jack Swing)으로 통했어요. 둘 다 테디 라일리/뉴잭스윙의 팬이라서 ‘뉴잭스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현대에 뉴잭스윙을 만든다면 어때야 하는가?’ 같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나왔던 결론이, 드럼은 센데 코드는 재즈 화성이 좀 들어가서 세련된 코드인 것이 뉴잭스윙이다. 지금 시대의 센 드럼하고 지금 시대의 세련된 코드를 섞으면 새로운 뉴잭스윙이 아닐까 하는 마인드로 “봄이 오는 소리”를 만들게 된 거죠. 


노래 내용은 아름답지만, 드럼은 일부러 세게 했어요. 그때는 현대판 뉴잭스윙을 개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신경을 많이 썼던 때라서, 전형적인 뉴잭스윙 비트를 느리게 늘리는 식으로 시도를 해봤던 게 “봄이 오는 소리” 였죠. 그리고 SM에서 테디 라일리 송캠프가 열렸는데, 저와 오비가 함께 참여했어요. 오비는 가이(Guy) 앨범에다가 사인을 받고, 저는 테디 라일리에게 과자 선물을 했어요. 테디에게 “과자 맛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등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어요. 많이 배웠고. 또, 그런데 가까이에서 테디 라일리를 보니깐 좋은 것만 있던 건 아니고, 수많은 가십 거리도 생겨났어요. 그래도 너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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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후 [KRNB]의 규모를 한층 키우며 한국의 흑인음악을 재해석한 [KRNB2] 프로젝트를 발표하시게 되는데요. 당시 어떤 목표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출범하게 되셨고, 돌이켜봤을 때 진보 님에게 [KRNB2]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J: 한국의 알앤비 뮤지션들과 대동단결해서 하나의 강한 씬을 만들어야겠다는 큰 포부와 사명감이 있었죠. 그런데 솔직한 버전으로 말씀을 드리자면요. 투자자가 있는 상황이다 보니 결정권 면에서 100% 자유가 없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한 적은 없었는데요. 저에게 결정권을 줘야 하는데, 저를 못 믿고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타협하란 이야기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뒤에 가서는 태업을 좀 하게 되었죠.

 

P: 그게 서로 잘되기 위해서 그런 거죠. 진보를 위한 거기도 하고, 투자자를 위한 거기도 하고요. 같이 이상적인 그림을 그리다 보면 일이 그렇게 되기도 하는 거 같아요. 그래도, [KRNB2] 자체는 의미를 봤을 때 그런 시도 면에서 큰 점수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는 아쉽긴 하지만, 시도 측면에서는 박수 쳐야 마땅하지 않나 싶어요.






LE: 맞아요. 원래 [KRNB2]가 앨범으로 나올 계획이라고 해서, 많은 분이 앨범 단위의 결과물을 기대했던 거로 기억하거든요.

 

J: 사실, 파트 1, 2로 나오는 거까지는 이해했는데요. 그걸 더 쪼개서 싱글로 내는 건 동의할 수 없었고요. 사실, 이 앨범을 외국에 수출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어요. 원래는 10곡짜리 앨범이 나오면 북클릿에 윤상, 015B와 같은 형님들의 원곡자 인터뷰, 피처링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인터뷰를 한국어, 영어로 다 수록해서 LP로 만들고, 외국의 음반 가게에 유통하는 게 목표였어요. 미국의 저널리스트들이 이런 음악과 인터뷰를 접하면 여러 기사도 쓰고, 한국 음악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마케팅부터 여러 가지 일을 다 해야 하다 보니까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인력도 부족했고요.






LE: 가슴 아픈 이야기네요.

 

J: 가슴 아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죠. 그래도 제주도를 같이 가서 영상을 찍은 게 너무 좋았어요. 음악 다큐멘터리를 보면, 보통 아티스트나 메인 플레이어들만 주목을 받곤 하잖아요. 그런데 제 다큐멘터리에서는 연주자들도 거의 같은 비중으로 나와요. 메인 아티스트 못지않게 연주자나 다른 스태프도 함께 조명을 받게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어요.

 

P: 맞아요. 어느 나라나 다 똑같겠지만, 어쩔 수 없이 플레이어 위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잖아요. 그런데 아티스트가 음반을 만들 때 함께 그 그림을 그리는 스텝들도 존재하잖아요. 영화도 보면 촬영 감독, 조명 감독, 작가, 배우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지만, 이 모든 걸 감독이 책임지고 평가를 받잖아요. 음악은 너무 아티스트만이 주목받는 거 같아서 안타깝죠. 물론, 아티스트의 재능과 능력을 절대 폄하하고 무시하려는 얘기는 아니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음악 또는 음반을 위해 여러 사람이 노력을 하고 있다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왜 했지? (전원 웃음)

 

J: 축구팀으로 치자면 득점왕이랑 공격수만 보는 셈이죠. 축구 마니아들은 수비수들도 보고, 포지션별로 누가 들어가야 할지를 알고, 감독이나 스태프, 패스 성공률 같은 것도 다 보잖아요. 그런데 음악 쪽에는 그런 게 부족했어요. 이제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음악 시장이 되었고, LP를 사는 사람들도 부쩍 눈에 띄는 등 점점 좋아질 거로 생각해요. 사람들이 득점뿐만 아니라 어시스트도 보고, 수비 성공도 봤으면 좋겠어요. 


P: 그러면 열리는 세상이 많아지지.


J: 그러면 그럴수록 경기를 재미있게 볼 수 있으니깐요. 결국은 보는 사람들을 위한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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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이런 논의가 씬에서 많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그렇다면 이제 마인드 컴바인드의 2집인 [CIRCLE]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하는데요. 우선 마인드 컴바인드 프로젝트를 다시 결성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P: 웰컴 레코즈(Welcome Records)에 DJ 썸원(SOMEONE)이라는 친구가 있는데요. 예전부터 DJ 썸원이 마인드 컴바인드의 [The Combination]을 리이슈 바이닐로 제작하고 싶다면서 저에게 컨택을 했었어요. 제가 하는 일이 많아서 다음에 하자고 미뤘었는데, 작년이 마인드 컴바인드 10주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바이닐 한 번 만들어 볼까? 만드는 김에 싱글이라도 하나 내 볼까?”라고 가볍게 이야기를 했다가. 진보랑 저랑 각자 하고 있는 일이 있다 보니 흐지부지되었어요. 


마인드 컴바인드 프로젝트를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원더월(Wonderwall) 클래스 강의를 준비하면서였어요. 강의보다는 저의 작업 과정을 원더월 강의에 담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진보를 섭외하게 되었어요. 진보를 섭외하는 김에 마인드 컴바인드 음악을 만들고 음원까지 내면 재미있겠다 싶었죠. 원더월 측도 좋아할 거 같았고, 강의를 보는 사람들도 음반을 듣고 난 뒤 원더월 작업기를 보면 흥미로울 거 같았고요. 그렇게 한 곡을 시작으로 지금의 앨범이 나오게 되었죠.  






LE: 그런데 피제이 님의 솔로 앨범 발표 당시 인터뷰를 보면, 서로에게 영감을 못 받고 있어서 마인드 컴바인드 작업을 하지 못한다고 하셨던 내용이 있거든요. 

 

P: 제가 봤을 땐 진보한테 영감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라기보다 제 스스로 영감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마인드 컴바인드 프로젝트에서 ‘무엇을 해야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안 떠올라서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원더월 클래스 강의를 준비하다가 각자 10년 동안 음악을 하면서 상황도 바뀌고, 음악도 변화된 마인드 컴바인드가 어떨까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진보한테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서 무언가를 해보자고 했죠. 10년 전에는 제 작업실에서 진보와 2주 동안 합숙해서 앨범을 만들었다면, 이번 앨범의 경우에는 만나면 뭐가 되었든 음악 하나를 만들자. 이렇게 시작을 해서 매주 하나씩 음악을 만들어서 나온 앨범이에요.

 

J: 재미있는 게, 원더월을 위한 노래를 작업했을 때 오랜만에 같이 작업을 하게 된 건데요. 옛날 느낌이 하나씩 되살아나는 거예요. 서로 작업할 때 말이 없는 편인데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뭔가를 해도, 원격통신하는 것처럼 조금씩 잘 되어가더라고요. ‘이 느낌, 되게 오랜만이지만 익숙한데?’ 라고 생각하다가 “우리 다른 노래도 만들어볼까?” 하면서 작업을 진행했어요.


제가 아이디어가 없을 때 피제이 형이 그 자리를 채워주고, 피제이 형이 지치면 제가 뭔가를 하다 보니깐 힘이 덜 들고. 결과물은 하나씩 쌓여 나가다 보니 점점 재미있어졌죠. 저에게는 마인드 컴바인드 작업이 멘탈적으로도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쌓여있는 답답함과 부담감이 많이 없어지는 느낌이었죠. 첫 앨범도 그런데, 이번 앨범도 가사가 너무 잘 써졌어요.

 

P: 네가 가사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아.

 

J: 그게 피제이 형의 비트가 주는 힘인 것 같고, 다른 뮤지션들도 비슷하게 느꼈을 거예요. 피제이 형의 비트를 가지고 제 작업실에서 메모장을 키고 가사를 쓰면, 그 자리에서 그냥 다 써졌어요. 거의 모든 곡이. 그래서 너무 신기했죠.


 




LE: 피제이님의 경우에는 진보 님과의 이번 작업에서 또 다른 시너지 효과를 느낀 점이 있을까요?

 

P: 사실, 굳이 서로 이야기를 안 해도 음악적인 성향이나 좋아하는 취향이 너무 잘 맞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진보가 좋아할 거고, 진보가 좋아하는 노래를 내가 좋아할 거란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오히려 작업할 때 우리가 예전이랑 다른 환경에서 작업한 게 재미있었죠.

 

J: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팀버하우스에서 DJ를 하기 위해 음악을 찾아 듣게 되다 보니 음악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아까 서로에게서 영감을 못 받는다는 말이, 음악 이야기를 하기보다 서로의 삶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요. 음악적으로 주고받은 게 별로 없다는 이야기인데, 제가 음악을 틀려고 디깅을 하다 보니 오랜만에 다시 음악 이야기를 하게 된 거죠.


드디어 우리가 제일 잘 통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게 많아졌던 거죠. 제가 피제이 형이 몰랐던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피제이 형이 제가 못 봤던 영상을 보여주거나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요. 오래간만에 서로의 바이브를 많이 충전해주면서 이걸 음악에 녹여봐야겠다는 아이디어가 생겼죠.

 

P: 그리고 결국 첫 앨범과 다른 점이 있다면요. 1집은 메시지도 당연히 있지만, 사운드에 더 중점을 뒀다면요. 이번 앨범은 음악적인 이야기도 했지만, 서로 가지고 있는 관심사를 이야기하면서 작업을 했어요. 예를 들면, 첫 번째 트랙인 “Singularity”는 “미래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과학이나 미래, 기술적 이야기를 나눈 뒤 작업을 해서 나온 곡이거든요. 그걸 진보가 작업실에 가서 스케치한 가사를 보거나 비트를 들어보면서 그런 대화 내용이 스며들어 빠르게 작업을 한 거 같아요.


“Multiverse”도 서로에 대한 관심사를 이야기하면서 작업했어요. 또, 어떤 날은 “요즘 뭐 들어?” 그러면 “나 이런 거 들어!” 이러면 “그거 좋다, 그럼 작업을 해 볼까?” 하고 곡을 만들고요. “요즘 무슨 생각 해? 나 이런 생각 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런 작업 과정이 재미있는 포인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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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당시 앨범 소개 글을 보면 [The Combination]은 네오 소울을 기반으로 제이 딜라, 매드립의 오버 컴프레스 사운드를 구현하고 싶었다고 쓰여 있었는데요. 이번 앨범의 경우에는 특정 사운드보다 서로 취향과 생각을 공유해 만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P: 그렇죠. 조금 더 ‘마인드 컴바인드’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죠.

 

J: ‘외국에 있는 어떤 장르를 우리도 해보자’, 이런 생각으로 만든 건 아니었고요. 장르에 관해서는 완전히 자신이 있었기에, ‘각자 가지고 있는 재료를 어떻게 버무려 볼까?’에 집중했어요.

 

P: 하지만, 이게 단순히 과거의 것으로 비치는 걸 원하진 않았고요. 과거의 생각이나 악기와 같은 도구를 이용해서 미래지향적인 뭔가를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했어요. 그래서 [CIRCLE]이란 앨범 제목도, 돌고 도는 원을 머릿속에 생각해서 짓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음악도 사실 결국 돌고 도는 유행처럼 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악기들이나 음악적인 것도 옛날 거고, VSTI도 옛날 것을 복각해서 존재하는 거잖아요. 이미 다른 이들이 한 과거를 재현하는 사운드적인 시도를 하기보다도, 오히려 우리가 하는 생각들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J: 그만큼 자신감으로 만든 앨범이에요.




 


LE: 흥미롭네요. 그리고 이번 앨범의 크레딧을 보니 트럼펫에 큐 더 트럼펫(Q the Trumpet), 기타에 션(Shyun), 베이스로 누기(Noogi), 드럼에 신드럼(SHINDRUM), 색소폰에 백관우 씨가 세션으로 참여했어요. 세션의 기여도가 이번 앨범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혹시 이전 앨범에도 세션 분들이 참여하셨었나요?

 

P: 1집은 세션의 참여 없이 만들었던 앨범이에요. 이번 앨범의 경우에는 제가 “1집처럼 우리끼리 만들어도 되지만, 이제는 각자 쌓아온 경험치가 있고, 생각하고 있는 퀄리티가 있으면, 우리가 그 퀄리티를 클래스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연주자하고 함께 작업한 경험도 있으니 할 수 있는 걸 연주자를 통해 더 표현해보자.”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마침 진보가 막이란 이름의 밴드를 같이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랑 함께하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죠. 친구들이 앨범에 함께 해줘서 너무 재미있게 작업을 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재미있는 포인트는요. 연주자한테 연주를 좀 해 달라고 부탁을 해놓고, 이미 만들어 놓은 곡을 친구들한테 일부러 안 들려줬어요. 그리고 만나기로 한 날에 녹음실에서 작업한 곡을 들려주고, 본인이 느끼는 대로 연주해보라고 주문했어요. 왜냐하면요. 연주자들이 전혀 연습이 안 된 상황에서 어떻게 곡을 받아들이고, 연주로 풀어내는지. 그런 모습에서 영감을 얻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녹음실에서 곡을 들려준 다음에 “들었지? 그럼 녹음해보자!” 하고 바로 녹음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애들이 참 선수인 게, “어? 어떡하지?” 이러지도 않고 늘 그렇게 하듯 “해볼게요” 하고 바로 연주를 했어요. 벌스, 훅 이런 구성에 따라 연주를 하지 않고, 그냥 한 번 틀어 놓고 쭉 가는 세션이 다였어요. 앨범을 만들면서 그런 재미가 있었죠.






LE: 그렇게 즉흥적으로 연주자 분들에게 연주를 부탁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J: 다시 재즈로 돌아가요. 작년 여름에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를 들으면서 관련 책을 읽고 있었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피제이 형 작업실에 갔더니 똑같은 책이 있더라고요. 그 책에 나온 내용 중 하나가, 옛날 재즈 뮤지션들은 앨범을 낼 때 그냥 즉흥 연주를 하고 녹음을 했다는 거예요. 음반 제작자가 그걸 자르고, 편집해서 제목을 붙이고 출시하는 거죠. 연주자들은 그때까지 자기 연주가 어떤 제목으로 나오는지도 몰랐대요. 


그에 비해, 지금 시대는 너무 많은 걸 컨트롤하려 하다 보니 음악에 생명력이 없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가뜩이나 한국 사람들은 주입식 교육을 많이 받고 자라서 답을 찾으려고만 하는데. 그런 것에서 벗어나서 느낌이나 직관, 첫인상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옛날 재즈 뮤지션들이 했던 거고, 같은 인간이 했던 방식인데. 이 사람들은 할 수 있었고, 왜 지금 음악 하는 사람들은 할 수 없나? 왜 지금 음악계에서는 그런 시도를 안 하고 있나? 그런 시도는 왜 재즈에서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가졌어요.


그리고 이런 시도를 하려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수준급 연주자가 필요한데요. 저희가 그런 연주자들을 1집과 2집 사이의 시간 동안에서 만나고 합을 맞추게 된 거죠. 그래서 그들을 이번 앨범에 참여시키는 것이 그간의 성장을 담아내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이건 원더월 클래스에서 말했던 이야기인데요. 저는 피제이 형이 퀸시 존스(Quincy Jones)처럼 되기를 바라고, 저 역시 퀸시 존스처럼 되기를 바라거든요. 만약에 각자 자기 힘으로 퀸시 존스가 될 수 없다면 힘을 합쳐서라도 퀸시 존스처럼 되고 싶어요. 


무슨 의미냐면요. 음악적으로 고퀄리티를 내는 사단을 만들고 싶어요. 또한, 음악을 넘어서서 더 큰 프로덕션으로 진화해 나가고 싶다는 의미에서 퀸시 존스처럼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한 첫걸음으로 연주자들을 앨범에 참여시켜서 가족처럼 계속 함께 갈 수 있게 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어요.

 

P: 그리고 친구들이 흔쾌히, 오히려 좋아해 주는 걸 보면서 정말 고마웠어요. 서로에 대한 리스펙도 있는 것 같아서 작업하는 내내 너무 좋았죠.

 

J: 막 밴드 친구들이랑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명반은 혼자서 만들 수 없다는 걸 깨달아요. 너무 좋은 건, 이 친구들은 명반을 만들 꿈을 가지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각자 자기 나름대로 연구하고 있어요.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서 달려들어야 한다는 게 명반의 공통점이고, 저희 모두가 이 점에 공감하고 있죠.



https://www.youtube.com/watch?v=61Apj5cPjmY


 

LE: 너무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네요. 그렇다면 이제 앨범의 트랙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앨범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Singularity”는 제목대로 특이점을 소재로 한 트랙이에요. 앞서서 살짝 이야기하셨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노래를 쓰게 된 계기 같은 걸 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J: 특이점이 온다는 개념은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의 책 <특이점이 온다>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기술 발전이 너무나 가파르게 올라가서, 천지개벽에 가까운 혁신이 벌어지는 지점을 특이점이라 하는데요. 지금 특이점이 오고 있죠. 우리는 4차 산업 혁명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저는 이게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봐요. 팀버하우스에서 디제잉을 하고 퇴근하던 중에 무역센터 옆의 삼성대로를 보면서, 이 도로 위의 자동차가 전부 전기차로 바뀌는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가사를 썼어요.





 

LE: 그런 가사 중에서 딱 한 가지 지점을 짚어보자면요. 가사 중간에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가 언급되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J: 노래에서 살바도르 달리가 나오기 전에, “가능성을 꿈꾼다”라는 가사가 있거든요. 현실의 바깥에 있는 것들을 상상하는 일. “상상 이상의 것”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잖아요. 그런 현실 밖 상상력의 아이콘이 살바도르 달리라서 쓴 가사예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진짜 좋아했던 화가가 살바도르 달리였어요. 그래서 (빈지노의) “Dali, Van, Picasso”가 나왔을 때 ‘아 씨… 내가 먼저 썼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다가 이번에 드디어 쓰게 되었어요. 






LE: 뒤를 이어 나오는 “Multiverse”의 경우에는 진보 님의 한층 발전된 보컬 표현력을 느낄 수 있어 인상적이었어요. 전반적으로 앨범 전체에서 이를 체감할 수 있는데, 특별히 보컬 면에서 신경 쓴 부분이 있으신가요?

 

J: 아무래도 나이를 좀 더 먹다 보니깐 저도 성숙해지고 있거든요. 마침 <컨버스> 행사에서 한 주제가 나이였어요. 저는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경험의 겹이 쌓이면서 좋아지는 게 있거든요. 저의 보컬 표현력이 높아졌다는 것은 어떤 연습을 했다기보단, 저라는 사람이 입체적으로 풍부해져서 그런 거 같아요.


P: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때문이네.





 

LE: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때문에 그러셨던 거로 정리해두겠습니다. (전원 웃음) 이번 앨범에 수록 된 “Waterfalls”는 제목 때문에 TLC를 떠올린 분도 있지만, 사실 리듬 파트가 심상치 않았던 트랙인데요. 어떤 음악가에게 영감을 얻어 만들었는지도 소개해 주세요.

 

P: 유럽이나 영국에서 유행했던 투 스텝 장르에서 영향을 받은 거 같아요. 하우스(House)적인 요소도 있고, 댄서블하면서도, 소울풀한 측면도 있고요. 사실 영감은 이곳저곳에서 받은 거라서 하나를 짚긴 힘들 것 같은데, 곡의 재미있는 포인트는 뒷부분의 변주예요. 제가 한 앞부분을 토대로 진보가 변주시킨 부분이 재미있는 거 같아요.

 

J: 전반부와 후반부가 다르죠. 그런데 재미있던 건 다른 사람들이 후반부를 들으면 “진보, 네가 했네.” 이러거든요. 사실 저는 ‘이건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도 믿겠다’라고 생각했거든요. 조금 디테일하게 들어가면요. 코드 진행을 그대로 가져온 거 같지만, 미세하게 한두 음을 바꿔서 다른 코드로 가거든요. 그런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고요. 이 곡은 혼 소리로 시작을 하는데요. 저는 자기가 응원하는 축구팀이 비 오는 날 감격의 우승을 거둬서 부둥켜안고 소리치는 느낌이 떠오르더라고요. 영국 훌리건 느낌. 뒤쪽에 아카펠라가 나오는 부분은 퀸(Queen)에게 영감을 받았어요. 퀸 노래 들으면 보컬 화음이 많이 나오거든요. 또, 이 곡을 만들 당시 디스클로저(Disclosure)가 운영하는 트위치 방송을 즐겨 봤는데. 그런 면에서 영국, 유럽적인 요소들이 곡에 묻어나게 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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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뒤를 이어 나오는 “Can You Understand”의 감상 포인트도 짚어 주세요.

 

P: 사실 제가 노래를 했다는 게 감상 포인트예요. (웃음) 사실 저도 자이언티의 “영화관”을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코러스로 참여한 곡들이 있어요. 저는 그걸 '브라질 코러스'라고 해요. 브라질 노래를 들으면 “우~” 내지는 “아~” 하는 코러스를 들을 수 있어요. 저는 그런 브라질 코러스에 맞는 보이스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거든요. 그런 브라질 코러스 같은 걸 하나 하면 좋겠다 싶어서, 트랙에 코러스를 불렀어요. 


그랬더니 진보가 “형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 형 목소리는 코러스용이 아니고, 노래하기 좋은 보이스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자신감을 주는 거예요. 그런데 진보가 진심으로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후에 제가 “그래? 뭐 어때. 해보자!” 해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어요. 심지어 튠도 안 했어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저 때 튠 좀 할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원 웃음)

 

J: 그러면 내가 튠한 게 걸리는 거네…? 그런데 여러분, 피제이 형은 원래 아티스트로 시작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라임버스 메인 보컬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어쨌든 피제이 형은 좋은 보이스를 가지고 있고, 공연할 때 피제이 형이 드럼머신 옆에 그냥 서 있는 걸 원하지 않아요. 1집이랑 이번 앨범이 다른 게 있다면, 듀스(DEUX)처럼 듀오로 각인되도록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에요. 누구는 노래하고, 누구는 연주하고 이렇게 역할을 나눌 필요가 없는 거죠. 노래는 깔려서 나오고, 저희 둘이 춤을 춰도 되는 거고요.

 

P: 그림적으로 봤을 때, 같은 팀이지만, 한 명이 노래를 부르고, 한 명이 프로듀서라고 했을 때. 보통 프로듀서들은 뒤에 있고 그러잖아요. 반면에 N.E.R.D.를 보면 한 팀처럼 보이거든요. 왜 그런 게 많이 없을까 고민하면서 “우리는 팀처럼 보이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죠.

 

J: 그리고 피제이 형은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청춘의 목소리가 있어요. 형이 SUV를 타고 다니니깐 더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원래 노래 제목을 “SUV”로 하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제목을 지금처럼 바꾸게 되었지만요.


P: 왜냐면, 내가 나중에 차를 세단으로 바꿀 수 있거든.


J: 저는 피제이 형에게 SUV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형이 SUV 광고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SUV 광고주분들. 이 인터뷰를 보면 피제이 형한테 연락하세요.

 

P: SUV 광고에 나오기 위해서는 저도 프로듀서가 아니라 프론트맨이 되어야 하거든요. (전원 웃음)

 

J: 그리고 그런 설득의 과정 중에서, 사실 저희가 좋아하는 아지무스(Azymuth)의 “Vôo sobre o Horizonte”라는 곡이 있는데요. 그 곡은 브라질 코러스밖에 없거든요. 이런 것만 봐도 가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노래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득해서 그렇게 노래를 만들게 되었죠.

 

P: 그렇게 제가 노래를 했고요. 뒤에는 진보가 조금 다른 분위기로 곡을 만들었어요. 저는 “Can You Understand”가 1집의 “SpaceX”랑 좀 비슷한 구조인 곡 같아요. 한 분위기로 가다가, 전환되면서 두 곡이 합쳐지는 느낌 같은 걸 말하는 거예요. 그런 게 없으면 좀 섭섭할 것 같더라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MwkWO17n9qQ



LE: 이후에는 “Interlude” 트랙이 흘러나오는데요.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여 보자면요. “Interlude”에 이어 나오는 “Show Me”가 앨범의 중심을 잡아준다고 느껴졌어요. 트랙 배치에서 의도한 부분이 있을까요?

 

P: 사실 “Interlude”는 “Show Me”를 만들고 나서 만들었던 트랙이에요. 우리가 이번 앨범에는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미래 지향적인 걸 담고자 했지만, 우리가 현실로 돌아가서 지금 좋아하고, 유행하고 그런 것들은 뭐가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아까 뉴잭스윙을 이야기했듯이, 우리도 레트로한 걸 해보자고 생각해서 만든 트랙이 “Show Me”였어요. 이야기한 내용과 비슷한 바이브로 멜로디와 가사를 썼어요. 


하지만, 너무 90년대 바이브 그 자체로 담기에는 앨범의 전체적인 색이랑 잘 안 맞았어요. 그래서 조금 로파이(Lo-Fi)한 사운드와 함께 앨범의 색에 걸맞게 미래 지향적인 신스 사운드를 넣어 표현한 곡이에요. 그리고 노래가 인트로 없이 바로 시작하니깐, 앞부분에 뭔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예를 들면 비디오도 앞부분에 인터루드가 있으면 내용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J: 피제이 형이나 저도 영화 음악 같은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래서 “Interlude”는 테스트 성격도 있는 트랙이에요. 대중음악 장르를 떠나서, 소리로 많은 걸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보니까 “Interlude”를 기회 삼아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또, 당시에 저희가 영감을 되게 받았던 아티스트가 있었는데요. 바니시 라 피시네(Varnish La Piscine)라는 이름의 스위스 아티스트에요. 이 친구가 자기 앨범을 영화 겸 뮤직비디오로 50분 정도 되는 영상을 만들었는데요. 엄청나게 퀄리티가 좋고, 음악이 너무 좋고, 저희에게 너무 많은 영감을 줬어요. 그 느낌도 이 곡에 담겨 있을 거예요. 영화 같은 분위기를 앨범에 셋업하고 싶어서 “Interlude”를 삽입하게 되었어요.





 

LE: 그렇다면 [CIRCLE]의 핵심 트랙이라 할 수 있는 “Show Me”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부탁드릴게요.

 

J: 저희가 노래를 일곱 개쯤 작업하고 나서 든 생각이. 동생들은 이 형들 멋있다고 할 거 같은데, 여자 팬이 좋아할 만한 노래가 없는 거예요. 미래적인 이야기도 좋고, 기술 이야기하고, 음악 장르 여러 가지 다 섞은 것도 좋은데. 듣고 한 방에 좋아할 만한 노래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제가 형한테 “우리, 대놓고 여자분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만들자”라고 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다른 사람들이 대놓고 좋아하려면 90년대 알엔비나 데빈 모리슨(Devin Morrison) 같은 류의 트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조건 먹힐 만한 코드 진행의 트랙 말이죠. 피제이 형이 형 버전으로 저한테 편곡해서 보내줬는데요. 저는 처음에 90년대 스타일을 생각했는데, 형이 보내준 버전을 들으니 사운드 면에서 훨씬 현대화되어 있어서 이게 훨씬 좋다고 생각해서 완성이 되었죠. 이 노래는 여러분이 듣자마자 좋아할 게 확실하고요. 주변의 여성분들에게 테스트를 마친 상황입니다. 

 

P: 그나마 이지 리스닝으로 들을만한 노래가 필요할 거 같다고 해서 만들게 되었던 곡이 “Show Me” 였던 거죠.

 

J: 힘을 빼고 만든 편안한 노래. 앨범에 단맛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만든 노래에요. 저희가 그동안 작업에서 미래나 새로운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현실에서 붕 떠 있고 철학적인 이야기만 하다 보니깐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별, 사랑, 연애, 달콤하면서도 귀여운 이야기가 하나 있어야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사랑받으려고 작정하고 만든 노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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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Swiss Gold”는 힙합에서 흔히 쓰이는 자기 자랑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교훈을 주는 가사를 확인할 수 있던 트랙이에요. 왜 금괴라는 소재를 썼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 지도 이야기 해주세요.

 

J: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는 저의 예측이 빗나갔어요. 전 세계적으로 돈을 많이 풀어서 인플레이션이 올 거고, 그러면 돈은 가치가 내려가고 금은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데. 지금 금값이 안 오르고 있어요. 그 자리를 비트코인이 차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목을 다시 지으라고 하면 “비트코인”으로 짓고 싶은… 아무튼 그런 해프닝이 있고요. 


이 노래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힙합에서 너무 돈 이야기, 여자 이야기, 남 약 올리기? 같은 노래 주제까지도 외국 유행을 가져와야 하나 싶었어요. 그것에 도전하는 느낌으로, 경제를 주제로 삼았죠. 힙합 음악도 지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요. 경제를 주제/소재로 삼고 있지만, 진짜 메시지는 동생들한테 전하는 말인데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겁먹지 말고 이 새로운 파도를 이해하고, 파도에 올라타라!’는 거에요. “해일이 오니깐 거인보다 높이 뛰어”라는 가사가 있어요.


힙합 놀이 안에서는 자기 자랑과 스웩이 있잖아요. 저희도 마인드 컴바인드로서의 스웩을 부렸는데, 티 안 나고 고급스럽게 지적으로 표현한 거죠. 또,“Gold Bar Never 썩어”라는 가사가 있는데요. 금은 썩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게 다 없어지더라도 우리는 계속 빛나고 있을 거야. 우리 안에서부터 나오는 빛이 있으니깐. 그런 생각으로 가사를 썼어요. 유행을 따르는 사람은 유행이 끝났을 때 그 자리에 남아있지 않지만, 자신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빛을 따라가는 사람은 유행이 지나가도 그 자리에 금처럼 안 썩고 남아있을 거라는 그런 자랑, 스웩을 부린 노래에요. 





 

LE: 앨범을 마무리 짓는 트랙 “Purple Sky”는 곡 구성이 재미있었는데요. 곡에서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고, 이렇게 곡을 구성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P: 사실 “Purple Sky”가 원더월을 촬영하면서 처음으로 작업한 트랙이에요. 그냥 즉흥적으로 만들고, 구성적으로 뒷부분은 리듬감 있게 브라질 삼바(Samba) 느낌으로 가면 재미있을 거 같아서 지금의 트랙을 만들게 되었죠. 그리고 진보한테 주제 같은 걸 생각해 오라고 했는데, 진보가 이 주제를 들고 왔더라고요.

 

J: 작업 당시 피제이 형이 원더월을 촬영하고 있었고, 저는 촬영 중간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작업실 밖에 있었어요. 그때 가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다 써버린 거죠. 노래 이야기는 뭐나면요. 제가 보라색을 좋아하거든요. 빨간색과 파란색이 합쳐져서 보라색이 되잖아요. 공교롭게도, 우리나라도 파란색 민족과 빨간색 민족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꼭 그런 민족의 화합뿐만 아니라, 선과 악, 좋은 거 나쁜 거, 기쁨과 슬픔 그런 게 결국 돌고 돌면서 뒤섞여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좋은 것만 찾고, 안 좋은 건 피하려고 하면서 괴로워진다는 걸 최근에 불교 교리를 통해 배우게 되었어요.


이 내용을 노래에 담아서, 어둠이 있으니 빛이 있고, 슬픔이 있으니 기쁨이 있다. 우리는 이 두 개가 다 필요하다. 이 두 개가 뒤섞여 있는 보라색 상태를 즐기면 우리가 인생과 삶을 진정으로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노래 후반부에 삼바로 바뀌는 부분은 어둠도, 빛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같이 뒤섞인 요동치는 삶의 축제를 표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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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렇게 앨범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앞으로 마인드 컴바인드의 활동 계획이나 준비하고 있는 콘텐츠가 있으시다면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P: 일단 3월 11일에 음원을 발매할 예정이고요. 바이닐을 발매하려는 계획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조금 미뤄졌어요. 어떻게 보면 이번 마인드 콤바인드 프로젝트가 작년 12월에 10주년 기념 바이닐을 내려고 해서 진행된 건데, 저희 생각보다 바이닐 제작이 오래 걸린다는 걸 파악 못 했던 거죠. 그러다가 “이렇게 된 거, 10주년 말고 11주년으로 하자!” (전원 웃음) 그렇기 때문에 마인드 컴바인드의 앨범이 바이닐로 같이 나올 거고요. 굿즈도 계획 중에 있고, 뮤직비디오도 두 개 정도 나올 거 같아요. 그다음에 라이브 영상도 몇 개 기획하고 있어요.

 

J: 저희가 듀오라고 이야기했던 만큼, 그룹으로서 방송 활동도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섭외가 들어오면 그것도 하고, <아침마당>에서 부르면 나가고, <6시 내고향>도 그렇고, <가요 톱10>도 부른다면 나갈 예정이고요.


P: <가요 톱10>은 없어졌잖아.


J: 계획은 이렇죠.

 

P: 예를 들어서 <인기가요> 같은 데에 우리 노래가 나온다고 했을 때, 상상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인기가요>에 나가서 진짜 멋있는 무대를 하면 레전드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어요. (웃음) 만약에 섭외가 와서 무대를 한다고 쳤을 때,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마인드 컴바인드의 무대를 보면, 100명 중의 99명은 ‘뭐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머지 한 명은 ‘저거 새롭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가능성을 열어 두고, 우리가 멋있다고 느끼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마인드를 세팅해뒀어요.

 

J: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이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에서 “Rockit”을 연주했을 때, 많은 대중이 신시사이저의 존재를 알게 되고, DJ 스크래치를 처음 본 것처럼 말이죠. 저희같이 생소한 것을 대중 매체에 노출하고 싶어요. 

 

P: 1집 때 미처 하지 못했던 것들을 좀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고요. 아직 섭외가 들어온 건 전혀 없어요. (전원 웃음) 그런 마인드셋이라는 거죠.

 





LE: 인터뷰를 보시는 관계자분들이 꼭 마인드 컴바인드를 섭외하시면 좋겠네요. 그렇다면 마인드 컴바인드 외에도 먼 미래의 일이지만, 각자의 활동 계획을 이야기해 주시면 어떨까요?

 

J: 이번 인터뷰가 마인드 컴바인드 팀 인터뷰기 때문에 이것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P: 저는 마인드 컴바인드 활동도 열심히 할 거고, 여러 아티스트들과 멋있고 재미있는 작업들을 할 생각이고. 그리고 아들의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살아가겠습니다. 이렇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웃음)





 

LE: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마인드 컴바인드의 팬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 모르겠어요. 그래도 열린 마음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이건 이래서 어렵고, 이건 이래서 싫고 이런 것보다도. 전체적인 바이브로 음악을 들으면 더 재미있는 세상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 오픈 마인드, 열린 귀로 앨범을 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J: 저희가 힙합 앨범을 내는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희에게 귀한 시간을 할애해주신 힙합엘이에게 감사합니다. 힙합 팬들에게 다양한 음악과 다양한 색, 아까 전 피제이 형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동안 들어오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다양한 질감과 색을 경험할 수 있는 앨범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앨범을 듣고 마일스 데이비스를 좋아하게 되었다. 또는, 디스클로저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니면 4차 산업 혁명을 알게 되었다.


P: 아니면 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J: 그런 여러 가지 확장을 할 수 있는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LE: 개인적으로 저 역시 대학 시절에 마인드 컴바인드의 앨범을 들으면서 음악 듣는 귀가 넓어졌었거든요.

 

J: 그게 정확히 제 의도예요. 사람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어요. 저희가 그때보다 더 성장한 상황인데, 앨범을 듣고 사고, 마인드가 열리게 하려면 음악만으로는 부족하고. ‘다양한 물음표를 던져줘야겠다.’라고 생각해요. 여성 팬에 대해 강조했지만 저희의 코어 팬은 음악을 하는 남동생 분들인데, 이분들이 뮤지션을 넘어서 큰 비전을 가진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LE: 인터뷰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CREDIT

Editor

INS

Photo

ATO(Bite.), HOBIN(a HOBIN film)

신고
댓글 10
  • 3.13 00:05

    오랜만에 대서사시 같은 인터뷰네요 굿

  • 3.13 09:50

    이 이름을 다시 듣게 될 날이 올 줄이야.

    감사히 읽었습니다.

  • 3.13 18:37

    마인드 컴바인드.. 1집도 아직도 돌려듣는데 뜬금없이 새 앨범이 나와서 놀람과 반가움의 연속이였습니다.

    특히 말씀하신것처럼 다른 장르의 음악들, 브라질음악 좋아서 들어보고 있네요.

    예전 앨범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에도 자리잡게 된 두 아티스트의 연대기를 엿볼수 있었고 가치관을 풀어주셔서 감사한 인터뷰였습니다.

  • 3.13 22:55

    너무너무 좋아하는 두 분의 근황부터해서 맘속에 하고계신 생각 또 퀸시존스이야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LE.. 피제이사랑해!!진보 사랑해!!!

  • 3.13 23:37

    앨범 너무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 3.14 02:35

    KRNB 2가 진보의 뜻대로 발매되지 못한 게 너무너무 아쉬워서 열불이 나네;;; ????????

  • 3.14 02:35

    잘 읽엇습니다...오랜만에 정말 흥미로운 인터뷰였네요 맨날 눈팅만하다가

  • 3.14 19:41

    진짜 아티스트의 아티스트...........

  • 3.15 23:54

    우리나라 흑인음악계의 거성이신 두 분 정말 존경합니다.

    이번 앨범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따로 또 같이 많이 많이 음악 내주세요

  • 3.16 03:35

    힙엘인터뷰 이즈 백!!! 이번앨범과 Varnish La Piscine , Azymuth 음악들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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