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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모던한 뱀파이어들

TomBoy2024.03.04 20:06조회 수 1130추천수 9댓글 4

Harmony Hall 듣고 감격에 젖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 전이로군요.

 

뱀파이어 위켄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Only God Was Above Us>

딱 한 달 남았습니다.

 

 

커버는 언제쯤 잘 만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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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대학생들이 결성한 밴드는 두 앨범 연속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인디 아티스트가 된다. "아이들에게는 전혀 기회가 없네."라고 탄식하던 이들은 대도시의 경관을 담은 절충주의로 자신들의 미학을 발전시킨다. 교만에 가까운 기발함과 계급과 특권의식에 대한 도전적인 관점이 사라진다. 같은 인터뷰에서 로스탐 바트망글리는 뱀파이어 위켄드가 밴드라기보다는 스튜디오형 아티스트라고 말했고, 에즈라 코에닉은 전통 록밴드 형식을 구닥다리라고 일축했다. 그들은 더 이상 풋풋한 대학생이 아니었고 오손도손 앉아서 M79을 연주하던 밴드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시대 정서와는 곧잘 맞아떨어졌다. 2013년 인디 문화의 인지도는 절정에 달했지만, 아케이드 파이어와 본 이베어 같은 텐트폴 밴드가 그래미의 밤에서 큰 상을 받던 게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인디펜던트는 더 이상 록 음악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인디 팝, 얼터너티브 알앤비, 프릭 포크, 언더그라운드 힙합 등, 이제 인디의 얼굴 또한 페이브먼트와 빌트 투 스필이 아니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와 프랭크 오션이었다. 뱀파이어 위켄드는 이런 거대한 시류를 인디의 역사가 보증하는 가장 효과 높은 방식으로 헤쳐나갔다. 먼저 장르 음악의 아카이브와 아프리카의 토속 리듬을 결합하는 그들의 전매특허와 하프시코드와 밴조에 대한 애착을 유지하되, 처음으로 외부 프로듀서 아리엘 레흐샤이드를 기용해 미학의 확장을 꾀한 것이다. 그리하여 뱀파이어 위켄드의 놈코어 사운드가 인디와 메인스트림의 교차점에서 제일 핫한 프로듀서를 만나게 된다. 아리엘은 이 축복 같은 만남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사운드를 가장 친밀한 방식으로 전달했습니다."

 

"앨범의 모든 곡에는 특정한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에즈라는 말한다. 20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30대가 돼서 깨달은 사람처럼, 성공을 거뒀지만 성취감이 덧없다고 느끼는 사람처럼, 에즈라 역시 형이상학과 미지의 세계에 매료됐다. "10대 시절 저의 꿈은 밴드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고 앨범을 발매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멋지게 꿈을 이뤘죠. 그런데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40년 동안 음악을 만들다가 죽는 건가요?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Modern Vampires of the City>는 이런 실존에 관한 의구심의 발원지이자 그에 대한 나름의 응답일 것이다. 축제 같은 사운드를 자랑하는 앨범이 이토록 철학적인 사색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어쩌면 이런 모순이야말로 에즈라가 말한 '그 너머'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흔히 사람들은 칸예의 <Dark Fantasy>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운드의 무결함에만 초점을 맞출 때가 많다. 그러나 그 무결하고 환상적인 프로덕션 위에 놓인 거라곤 칸예의 시궁창 같은 가사가 전부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마침내 나의 감각은 '어두운 환상'이라는 타이틀과 동화된다. 에즈라와 칸예는 언뜻 달라 보일지 모르나 본질상 동일한 방식으로 아이러니를 구현한 것이다. 앨범에서 제일 경쾌한 곡의 제목부터가 '무신론자' 아니던가.

 

에즈라는 컬럼비아 시절부터 래퍼처럼 운율감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가사를 썼으며, 클래식한 정서를 가미하고, 교양과 냉소가 함께 깃든 시선으로 세상을 해부해왔다. 그가 자신들의 정점이라고 표현했던 Step은 앨범의 주제를 요악하는 긴 한숨 같은 곡으로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Step은 이들의 많은 명곡들과 마찬가지로 온갖 장르에 대한 인용과 암시 그리고 그 레퍼런스를 초월하는 애틋한 감정으로 찰랑거린다. 동시에 이 모든 개성을 신비함과 쓸쓸함이 함께 감도는 멜로디로 간소화했으며 그들의 커리어에서 가장 통찰력 있고 확신에 찬 가사로 마무리된다. "지혜는 선물이지만 넌 그걸 젊음과 바꿀 테고, 나이는 영광이지만 진실을 말해주진 않지." 반면 로스탐은 수백 가지 레퍼런스를 영리하게 저글링하며 미완으로 남은 괴짜들의 꿈을 실현시킨다. 로커빌리, 덥, 레논 풍 발라드, 가스펠, 켈트 군악, 플릿우드 맥 타입의 세심하게 가공된 멜로디, 필드 리코딩의 현장감까지, 로스탐은 듣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앨범 곳곳 이스터 에그를 숨겨놓았다. 하지만 Hanna Hunt가 끝난 뒤 후반부 곡들은 원석의 아이디어가 스튜디오의 방음벽에 부딪힌 것처럼 맥없이 들릴 때가 많다. 거기는 트롬본과 트럼펫, 박력 넘치는 드럼, 바이올린과 오토튠 등 뱀파이어 위켄드를 상징하는 징표들로 무성하지만,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무언가가 결여된 듯한 인상을 준다.

 

뱀파이어 위켄드의 뿌리는 언제나 '과장'이었다. 그들은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살색이 벌게질 때까지 손뼉을 쳤고 가장 초연한 감정조차도 초현실에 가까운 극단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한때 적토마의 질주처럼 들렸던 음악이 이제 신중하고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처럼 들린다. <Modern Vampires of the City>에 와서 에즈라와 로스탐은 자신의 지성미와 명민함을 과시하려는 병적인 욕구를 상당 부분 떨쳐버린다. 대신 세속적이며 불안정한 밀레니얼 세대의 처지와 감정을 우리가 흔히 보지 못했던 섬세한 필치로 담아냈다. 프로비던스에서 피닉스까지의 크로스컨트리를 그려낸 Hanna Hunt에서는ㅡ이 곡은 내러티브 면에서 사이먼 앤 가펑클의 America를 연상시킨다ㅡ러닝타임 내내 잔잔하고 멜로디컬한 스토리텔링이 펼쳐지다가 갑작스럽게 햇살이 내리쬐듯 극적인 시퀀스가 시작된다. 마치 벨 앤 세바스찬의 Lazy Line Painter Jane의 코러스를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것처럼, 이 80초가 앨범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1분 남짓 한 시간 동안 환희와 격정이 물밀듯이 밀려든다. 곡의 제목은 함께 불교 수업을 듣던 동급생의 이름으로부터 빌려왔지만, 아마 에즈라는 한 발 더 나아가 그의 세대 전체를 위해 이 곡을 썼을 것이다. "우리는 US 달러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시대감각이 있어."

 

글을 갈무리하기 앞서 잠시 Step의 오프닝으로 돌아가 보자. "뒤로, 뒤로, 아주 뒤로. 나는 앙코르와트처럼 앞장 서곤 했지. 메카닉스버그, 앵커리지, 다르에스살람까지." 세상에서 제일 큰 힌두교 사원과 마차 정비공들이 살던 펜실베이니아의 자치구, 알래스카에 위치한 도시와 평화의 거처를 뜻하는 탄자니아의 수도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걸까. 이 지역들은 모두 연안 '앞'에 자리하는데, 다시 말해 '앞장 서곤Used to front'이라는 표현에 대한 해괴한 말장난으로, 정교한 지리 상식이나 위키피디아에서 30분 정도 시간을 할애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에즈라는 계속해서 뉴욕, LA, 오클랜드, 알라메다, 버클리를 오가고 이는 겨우 첫 소절에 불과하다. 이 구절은 "나는 호더였지만, 그건 그때 일이지."라는 푸념으로 끝나는데 불경스러우면서도 유쾌한 구석이 있다. 잠시 생각해 보자. 이 이국적인 고유명사들이 에즈라의 능글맞은 목소리를 통해 울려 퍼지는 방식을. 리버브 된 드럼의 알맞은 온도감과 유려하게 흘러가는 키보드를. 뱀파이어 위켄드는 어쩌면 요점이 될 수도 있는 내러티브를 생략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알쏭달쏭한 스케치를 선호한다. 딱딱하고 전통적인 운율 체계를 고수하는 대신 랩에서 영감을 받은 방식으로 가사를 써 내려간다. 한나가 뉴욕타임스를 찢어버리는 동안, 파트너는 불쏘시개를 구하기 위해 마을로 걸어간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 공존하고, 영적이면서도 팝적이고, 자의식이 넘치면서도 장난스럽고, 모호하지만 직선적이다.

 

대다수의 음악팬들 그리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서 페스티벌을 찾은 사람들은 신과 종교, 부동산 그리고 도로 여행에서 연인과 나눈 대화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때야말로 멜로디가 밥값을 하는 순간이다. 커버 아트 속 고담 시를 뒤덮은 스모그처럼 모호한 에즈라의 노랫말은 선명한 선율에 의해 설자리를 잃는다. 2년 전 펜타포트 페스티벌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 하나는 뱀파이어 위켄드의 노래에 맞춰 한 어머니와 딸이 즐겁게 박수를 치는 모습이다. 독창성은 무엇이고 그 너머란 무엇일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수만 명이 운집하는 공간에서 어머니와 함께 듣고 싶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수에게는. 늙어간다는 사실에 겁에 질린 앨범에서, 그런 두려움의 모태가 된 이 시대에서, 이보다 더 우아하게 나이 드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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