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심야에 대한 생각

김심야가 Dog를 발매한지 벌써 5년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간간히 피쳐링이나 짧은 ep/싱글 단위의 작업물은 발매했지만 이렇다할 활동은 없었고, 나는 김심야의 굉장한 팬이기에 그의 앨범을 굉장히 기다리고 있다. 다만 김심야를 좋아하는것과는 별개로 다음 앨범이 좋을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김심야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랩 차력사 비슷한 취급을 하는것 같지만 김심야의 가장 큰 장점은 가사라고 생각한다. 다만 김심야의 가사가 빛나는 부분은 뛰어난 라임배치라던가 펀치라인, 혹은 스토리성에 있지 않다. 김심야의 가사의 가장 큰 강점은 김심야 본인의 가치관과 사색에서 나온다. 

한국 힙합씬에 대한 염증, 창작자로써의 고민, 추구하는 이상과 그것이 이뤄질수 없음에 대한 분노와 자기성찰. 문샤인과 랭귀지는 창작자, 혹은 창작자들의 팬이라면 공감하거나, 적어도 깊게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가사들이 넘친다. 거기다가 김심야는 실제로도 상당한 랩 차력사이고(좋은 의미에서), 프랭크와 디샌더스의 비트들은 김심야의 랩을 빛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김심야는 비트빨이라는 오명까지도 만드는 수준이었다.

교미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심야의 가치관과 분위기는 상당히 바뀌었다. 작업시기를 기준으로 잡는다면

교미(패기) -> 문샤인(분노) -> 랭귀지(허탈) -> Dog(허무) -> 평화(?)

이런 순서로 김심야의 가사의 온도나 내용이 바뀌었다는것을 알수있다. 좆되는걸 만들면 성공할수 있다는 패기로 만든 교미, 교미에 대한 씬의 미적지근한 반응과 좆되지 않는 래퍼들이 돈과 명예를 챙겨가는 씬에 대한 분노를 마구 표출한 문샤인, 분노가 사그라들쯤 그 빈자리는 채워가는 허탈함과 곱씹어볼수록 빡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랭귀지, 분노를 비우려 노력한끝에 얻어낸 공백과 그 자리에 어쩔수 없이 존재하는 허무함을 이야기하는 Dog,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심야의 삶과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나는 김심야가 랭귀지 이후로 조금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시기가 프랭크와 작업을 안하기 시작한것과 겹쳐서 누군가는 프랭크빨이 없으니 폼이 죽었다 라고 평가할수도 있지만, 그 문제만은 아니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김심야의 사색은 본인의 내부에서 나오는것이 아닌, 외부적인 상황에 대한 반응이 그 근본이었다. 김심야는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불우한 가정사를 이야기하지 않고, 약에 빠져 사는 라이프스타일이나 여자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조금 더 자극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김심야의 리릭시즘은 어떠한 대상에 대한 분노가 그 연료였다. 그 분노는 김심야에게 있어서는 창작의 원천인 동시에 가장 증오하는 대상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랭귀지에서 Dog에 이르기까지 김심야는 그 분노를 해소하려고 노력했고, 일정부분 성공했다고 느낀다.

다만 그 분노가 사라졌을때, 그 분노를 대체할 창작의 원천은? 김심야는 이제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하는가?

그 문제에서 김심야는 이야기하기를 포기해버린듯 보인다. 가장 최근작인 w18c는 힙합앨범이라고는 볼수 없을정도로 랩의 비중이 적다. 보컬 샘플을 쓴 느낌으로 랩을 하고, 장르적으로도 드럼위주의 전자음악에 더 가깝다고 봐야할것이다. 추상적으로 던지는 단어의 나열에서 김심야가 어떠한 심정인지 유추해볼수는 있지만,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흘러넘친다는 인상이 있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여기서 필자가 느끼는 문제점이 나타나는데, 김심야는 본인이 래퍼로 남고싶은지, 전자음악가로 전향하고 싶은지에서 갈피를 못잡고 있는것 같다. 그걸 뭘 구분을 하냐, 둘다 하면 되는거 아니냐, 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그 노선을 간다는것은 래퍼로 남는 선택지를 택했다는것이고, 어쨌든 힙합음악을 만들겠다 라는 결정을 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창모가 비트를 스스로 만든다고 전자음악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 않는가? 창모는 프로덕션도 하는 래퍼 인거다. 그렇지만 김심야가 이런 노선을 갈것이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는다. 바로 옆에 프랭크가 있고 주위에 수많은 뛰어난 프로듀서들이 있을텐데 굳이 비트를 만들어쓸 필요가 있을까? 김심야는 이제 랩을 할 비트를 찾는 래퍼이기보다는, 새로운 사운드와 경험을 선사하는 아티스트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김심야가 사운드적으로 최전선에 있는 전자음악가들과 비교했을때 놀라운 결과물을 보여줄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것이다. 김심야의 프로덕션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김심야의 가장 큰 강점의 가사였는데 본인이 가진 가장 큰 무기를 버리고 가는것과 마찬가지이니. 큰 키를 내새워서 농구씬을 씹어먹던 선수가 갑자기 탁구를 하겠다고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김심야의 오랜팬으로써, 그의 다음앨범이 너무 기다려짐과 동시에 마냥 기대할수는 없는것이다. 

물론 김심야 본인도 이런생각은 수십번 해봤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김심야는 이상을 찾아서 떠나야하는 사람인거다. 그게 김심야의 매력이고, 내가 김심야를 너무나 좋아하는 이유다. 

이상을 향해서 나아가고, 그 앞이 절벽일지라도 발을 내딛겠다는것이 김심야가 줄곧 보여준 스탠스였다. 그 마음을 대하는 온도가 변할지언정 마음 자체는 한번도 져버린적이 없고, 많은것을 포기하면서도 그 마음을 지켜왔다. 앨범이 나오는게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혹은 뭐 3-4년후가 될지.. 전혀 모르겠지만 그 앨범이 굉장한 작품이기를 기대해본다. 노선을 못정한 그 애매함마저 그의 순수한 이상과 창작욕에서 비롯된것이라고 믿으며.. 

김심야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