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Section.80을 듣고 있습니다. 이 앨범은 실질적으로 켄드릭 라마가 세상에 자기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첫 작품이죠. 이유는 단순했어요. 작년에 나온 GNX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거든요. 근데 돌이켜 보면, GNX가 낯설다고 느낀 제 반응이 오히려 낯설었던 것 같아요. “켄드릭이 왜 이렇게까지 됐지?”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이 사람의 시작점, 그리고 그 안에
이미 담겨 있던 폭발적인 기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돌아가 봤어요. good kid, m.A.A.d city도, To Pimp a Butterfly도 아닌, 가장 원초적인 출발점인 Section.80으로요.
그리고 거기서 깨달았어요. 켄드릭 라마는 달라진 게 없더라고요. 굳이 말하자면, 그냥 흑화했을 뿐이에요. GNX는 갑자기 튀어나온 미친 앨범이 아니에요. 물론, 연출 방식이 훨씬 극단적이고, 비트는 밀도가 더 높아졌으며, 전반적인 톤도 훨씬 피로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에요. 근데 그 안에
깃든 정서, 랩핑에서 묻어나는 분노의 결 같은 건 전혀 새롭지 않아요. “Keisha’s Song”이나 "Rigamortis"을 들으면서 느꼈어요. 켄드릭은 그때부터 이미 현실을 직시하는 방식이 남들과 달랐어요. 그는 고발자도, 설교자도 아니었고, 그냥 '이해하려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그 이해는 세상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자기 안의 본능—어쩌면 자신도 무서워하는 감정들을 향한 응시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HiiiPower”에서 거창한 메시지를 외치긴 했지만, 그건 뭔가를 구원하려는 선지자의 외침이라기보다는, 뭔가에 눌린 젊은 흑인의 단말마였던 것처럼 들려요.
많은 분들이 GNX에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그 앨범이 ‘켄드릭답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일 거예요. 너무 날이 서 있고, 너무 거칠고, 너무 대놓고 정치적이라는 이유로요. 심지어 어떤 분들은 GNX가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나르시시즘적이라고까지 말하시더라고요. 근데 사실 그 모든 요소들은 예전 앨범들에서도 꾸준히 존재했어요. 단지 우리가 그걸 ‘의미 있는 포장’으로 감싸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To Pimp a Butterfly에서는 재즈와 펑크가 분노를 감싸줬고, DAMN.에서는 묵직한 신앙적 서사나 내면의 무게감이 공격성을 중화해줬어요. 그런데 GNX는 그런 포장이 사라졌어요. 켄드릭은 더 이상 설명하려 하지 않아요. 그냥 지르죠. “이제 내 말 안 들으면 나도 모르겠어” 하는 식이에요. 사람들은 그걸 무너짐이라고 보지만, 저는 오히려 그게 켄드릭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래퍼가 언젠가는 자기 자신을 해체하게 되잖아요. 켄드릭은 그걸 GNX에서 한 거예요. 변한 게 아니라요.
Section.80을 들으면 들을수록, GNX와 겹쳐 보여요. 켄드릭은 애초부터 이 세계를 온전히 믿지 않았고, 자기 안에 있는 분노나 모순된 감정들을 숨기지 않았어요. 다만 그걸 어떻게 가공해서 세상에 보여줄지 고민했던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가공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낀 것 같아요. 조지 플로이드 사건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월드 투어 중에 겪은 피로감과 환멸 때문이었을 수도 있어요. 아니면 애초부터 그는 언젠가 GNX 같은 앨범을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런 면에서 보면 GNX는 돌발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된 썩음 같은 거예요.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변화죠. ‘흑화’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어두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빛을 가장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보기 때문이예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켄드릭은 변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그를 오해했던 거죠. GNX는 그 오해를 깨부수는 앨범이고, 동시에 그 오해를 만든 사람이 결국 자신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앨범이에요. 저는 켄드릭이 이 모든 걸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항상 리스너보다 두 걸음은 앞서 있었잖아요. 그래서 그걸 견디지 못하고, 흑화한 거예요. 세상이 그를 바꿔놨고, 그는 그 변화에 응답했어요. 조금 웃기게 들릴 수도 있지만, 켄드릭 라마는 달라진 게 아니에요.
심심해서 한 번 끄적여 봅니다.
학생 분들 모두 중간고사 잘 치르시고
직장인 분들 모두 안녕히 사십쇼!
켄드릭은 그대로였는데 세상이 켄드릭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뀜
켄드릭은 그대로였는데 세상이 켄드릭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뀜
ㄹㅇ 그런 거 같더라고요, 특히 드레이크랑 디스전 벌인 후부터 확 바뀐 게 느껴지네요. 사실 Like That 벌스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Control 벌스 2탄 정도로만 여겼는데 직접 들어보고 나서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었습니다.
대중성까지 챙긴 후 이상한 욕은 다 먹는 중
글 잘 읽었습니다 ♡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