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해석: https://hiphople.com/kboard/27170041
오랜만이군요. 이번에는 일주일 무료 제공 및 넷플릭스 드라마 제작 기념 웹툰 [광장] 해석입니다. 모든 해석은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며 정답이 아니니 가볍게 봐주세요.
※ [광장]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출
20화. 기준이가 포장마차에 찾아간다. 두 대표가 거듭 술을 따라주려 하지만 기준은 꿋꿋이 손수 따른다. 대표들은 이제 그만 분을 풀고 자신들에게 맡기라는 뜻으로 잔을 대신 채워주려는 것이고 기준은 이를 거절하여 몸소 되갚겠다는 의지를 비언어적으로 드러낸다. 이때 잔이 흘러넘치는 것으로 기준이의 분노를 느낄 수 있다.
6화에서 기준이 식탁보를 끌어당기는 모습과 15화 조남겸이 주전자를 따르는 구도가 정확히 일치한다. 조남겸이 기준이한테 제압당하고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광장 전투 이후 기준이를 구하러 와 나중에야 동지 관계가 밝혀진다. 둘이 겹쳐 보이는 연출을 초반에 배치하여 같은 편이 될 것을 암시한다.
58화. 조남겸이 구석동을 협박한다. 구석동은 코너에 몰린 듯이 좌측 끝에 정말 숨 막히게 조금만 나오는 반면, 조남겸은 프레임의 반을 차지해 서로 간의 위계를 알려준다.
60화. 춘식이와 성철이 기준이를 보러 병원에 간다. 분명히 같은 공간에 있지만 한참 기준이를 직접 보여주지 않다가 마지막에 내주어 임팩트를 준다.
61화. 심 대표가 구준의 팔다리 자르려 할 때 구준의 목 위로만 프레임에 걸쳐 마치 참수당한 것 같이 보이도록 응징한다.
더하는 것만큼 빼는 것도 중요하다. [광장]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장르물에서 으레 그렇듯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거나 구출의 대상이 되는 객체적인 캐릭터로 상정할 바에 아예 배제하는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다. 마치 [덩케르크]에서 적군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남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아트폼의 고유한 특성을 활용하는 미학을 높이 평가한다. 이를테면 영화는 촬영의 예술이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프레임에 담는지가 중요하며 게임은 상호작용의 예술이기에 영화 같은 게임보다는 정말 게임이라서 가능한 감흥을 선사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웹툰은 스크롤 하며 감상하는 만화라는 점에서 통상적인 만화와 구분된다. [광장]은 웹툰의 이러한 특성을 근사하게 활용하여 연출한다. (넘겨서 보는 폼팩터에서는 [광장]의 연출을 온전히 구현할 수 없는 것이 단행본이 나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수도).
20화. 기준이 두 대표와 술을 마시며 셋이 다 같이 앉아 있는 컷이 나온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식사장면처럼 보이지만, 더 아래로 스크롤 하면 빨갛게 회를 뜬 생선과 생선 머리가 드러나 섬뜩한 느낌을 주는 웹툰의 미학을 잘 활용한 빼어난 연출이다. 마치 영화에서 식사 장면을 롱테이크로 촬영해 셋이 앉아 있는 것을 보여주다가 서서히 줌아웃해 배경에 있는 시뻘건 생선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연출은 51화에서 두 회장님이 고기를 먹을 때도 반복된다.
59화. 조남겸이 전화하면서 담뱃불을 끄는 컷이 압권이다. 일견 그냥 전화하는 장면 같지만 밑으로 내리면 재떨이에 놓인 수많은 짓이겨진 담배가 남겸의 으스러뜨리고 싶은 분노를 전달한다.
마지막 화. 남기준의 영정사진이 등장하는 컷에서 기준의 영정사진 위아래로 활짝 만개한 국화꽃이 한참이나 이어져 너무 슬프다. 컷이 밝은 톤으로 시작해 어둡게 마무리되는 대비도 가슴 아프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
기준
광장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느와르 복수극이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생각보다 많은 함의들이 녹아들어 있다. 광장의 액션은 비교적 평이하며 오히려 연출과 텍스트가 훌륭하다고 생각해 ‘기준’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작중 시대가 바뀌고, 업계가 변했다는 얘기가 자주 나오고 기준이는 사람이 바뀌지 않았기에 그대로라는 말을 반복한다.
여기서 기준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준’은 변하지 않는 성질을 지닌다. 그렇기에 기준이는 바닥의 생리가 달라지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어린 시절 ‘기준’에 맞추어 오와 열을 정렬한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다. 그렇게 대형을 갖출 때 역시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 그 주위가 변할 뿐. 목에 잔뜩 힘주고 다니는 검사가 기준이 주위에서는 비굴하게 살려달라고 빌고, 고자세로 나오거나 깡패 티를 벗은 인물들도 기준이와 맞닥뜨리면 굽신하는 이유다.
깡패들은 순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준이 중요하면 자연스레 순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참으로 인물들에게 진지한 필생의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다리다. 기준이의 다리가 정상 아니냐는 의구심은 십수 번도 더 제기된다. 이제 업계가 이전 같지 않다는 말은 기준이가 다리를 내주고 전과 같이 위압적인 존재감으로 이 바닥을 평정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에 가닿지 못한 의문이다. 기준이가 절름발이든 아니든 이는 중요치 않다. 사람이 그대로라 변하지 않는다는 기준이의 말마따나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기준의 불변성이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기준이가 싸울 때는 거의 항상 춘식이가 플래시백으로 과거에 비슷한 상황에서 기준이가 어떻게 무력으로 압도했는지 진술하고 기준이는 이를 현재에서 그대로 재현한다.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기준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다. 불변하는 세상에서는 봉산과 주운의 횡포가 영속할 테니 말이다. 그리하여 기준이 택한 길은 공멸이다. 하나를 내어주고 더 큰 것을 가져오는 그의 싸움방식처럼, 기준은 자신을 바치고 두 회장의 몸통을 날려 기어이 변화를 이룩한다. 그의 치열한 투쟁 그 자체가 독자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기준이 없는 세상은 얼마간 혼란스럽겠지만, 나는 세상이 더 나아졌을 거라고 상상하여야 한다.
8/10
https://blog.naver.com/culturephile/223701879336
명작이죠.. 간만에 정말 재밌게 본 느와르 웹툰이었음
평소에 꼬마비나 최규석 작가님 작품 같은 사회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저도 정말 드물게 재밌게 본 느와르 물이었어요.
정말 잘 만들어진 웹툰
개인적으로 오세형 같은 사람이 돈방석에 앉아야 뭔가가 달라진다 생각함
연출과 텍스트가 둘 다 훌륭해 두분이서 다시 협업하셨으면 하네요.
갠적으로 캐슬이랑 국내 느와르 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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