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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KA twigs - CAPRISONGS를 듣고

TomBoy2022.01.23 21:44조회 수 1132추천수 22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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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4

 

 

 

 

2013년에 발표된 <EP2>의 수록곡 Water Me는 FKA twigs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요긴한 단서를 제공한다. 강박적인 미니멀리즘, 습윤한 전자음, 희미하거나 과장된 퍼커션, 건조하면서 절절한 음색, 자기 자신을ㅡ자기가 흘린 눈물이 자신에게 떨어지는 연출을 통해ㅡ곧이곧대로 받아들임으로써 트라우마로부터 치유되는 과정 등, 이 탈선적인 혜성의 출현으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지난 금요일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탈리아 바넷은 자신의 과거와는 거리가 먼 사운드와 철학이 깃든 믹스테이프 <CAPRISONGS>를 발매했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논하기 전에 필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은 저마다 시냅스가 '1조 개'나 되는 뇌를 갖고서 자아실현을 추구하고, 동시에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현실의 사회는 주어진 규칙들 아래에서 일어난 일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어떤 이야기(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 포스트모더니즘)하고도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분명 탈리아와 샤이아 라보프와의 관계는 어떻게든 이 앨범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존 밀턴은 사별과 실명 때문에 '실낙원'을 쓴 것이 아니고, 로만 폴란스키는 홀로코스트와 찰스 맨슨 때문에 '피아니스트'를 연출하거나 아동 성범죄자가 된 것이 아니며, 칸예 웨스트 또한 돈다 웨스트의 죽음 때문에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 아니다. 경험이 본보기가 될 수는 있으나, 그것을 출발선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CAPRISONGS>가 탈리아의 경력에서 제일 뛰어난 프로젝트는 아닐지언정, 가장 활기차고, 호화롭고, 매우 재미있는 앨범임에는 틀림없다.

 

  <EP1>에서부터 <Magdalene>에 이르기까지, '절제'와 '팽팽함'은 늘 트위그스 월드의 엠블럼이었다. <CAPRISONGS>에 와서 그녀는 타이트한 장력을 제 손으로 풀어버린 듯하다. 이제까지 탈리아의 팬들이 불가사의하고 압도적인 기호로 무성한 현대미술관을 거닐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는 트랩 비트, 레게 리듬, 아프로비트 등이 제멋대로 배열된 다소 무질서한 스펙트럼을 마주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탈리아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번번이 비요크의 자태가 떠올랐는데 <CAPRISONGS>에서의 그녀는 마치 멀티버스에서 건너온 미시 엘리엇 같다. Preface, thousand eyes 같은 인트로들이 앨범의 무드를 함축하고 앞으로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가늠자로서 기능했다면, ride the dragon을 가득 메운 것은 왜곡된 속사포 보컬과 탈리아의 장난기다. 그런가 하면 90초 남짓의 UK 개러지 pamplemousse에서는 방정맞은 업 템포 드럼과 탈리아의 래핑이 산란하게 울려 퍼지다가 두아 리파와의 컬래버레이션을 발표해달라는 한 팬의 교태로운 음성으로 끝이 난다. "장난기", 익명의 팬들과 크루 그리고 자신의 "토막 음성", 특히 "만들다 만 듯한", "되다 만 듯한" 짜임새, 이런 키워드들이 바로 이 앨범을 콕 집어 '믹스테이프'라고 부르는 이유다.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는 대형 음반사 근방에 픽업트럭을 세워놓고 '만들다 만 듯한' 자신의 데모 테이프를 파는 전통을 대체했지만, 탈리아는 바로 그 망실된 '현장감'을 재현한 것이다.

 

  위켄드와 조자 스미스 같은 메인스트림 뮤지션부터 샤이걸이나 언노운 티 같은 영국 인디 래퍼들까지, 이것은 꼭 카디 비나 메건 더 스탤리온의 크레디트를 보는 것 같다. lightbeamers는 앨범의 몇 안 되는 피아노 발라드고 바로 다음 곡인 papi bones에서는 댄스홀 리듬이 넘실대며 그다음 곡인 which way는 마치 오래된 그라임스의 데모처럼 느껴진다. 탈리아는 애절한 가성으로 불안에 빠진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바로 다음 곡에서는 오토 튠을 켠 프랭크 오션처럼 랩을 한다. 하나의 앵글 속에 담겨 있긴 하나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기 바쁜 졸업사진처럼, 이것은 기술적으로 노련하진 않지만, 보정적으로 아름답다. 중력에 저항하는 폴 댄스, 좀처럼 리듬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현대무용, 고단한 우슈와 검술 훈련까지, 대체로 우리는 탈리아와 그녀의 동료들을 어벤저스의 구성원으로 취급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기혐오와 나르시시즘의 화신이고 매 순간을 극적으로 감각하며 살아갈 거라고 믿는다.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지만 meta angel 도입부에 흐르는 대화에 귀 기울여 보라. 탈리아가 "나는 더 큰 자신감을 갖고 싶어, 정말로."라고 말하자 그녀의 친구는 놀리듯이 박장대소하다가 "너는 더 자유로워질 것이고, 더 웃게 될 것이고, 더 재밌어질 것."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그녀도 쑥스럽다는 듯이 박장대소한다.

 

  언제나 그랬듯, 탈리아의 음악은 '집중해서 듣기'와 '배경음으로의 소비' 같은 대중음악의 취지를 완벽하게 만족시킨다. 이처럼 높은 효율성은 깃털 같은 그녀의 소프라노와 저음역대 베이스의 앙상블에서 기원하는데, tears in the club에서 합을 맞춘 위켄드야말로 그 '앙상블' 덕분에 현재의 위치에 오른 인물이니, 당연스럽게 그럴듯한 아웃풋을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 darjeeling이 있다. 흡사 서커스를 보는 듯한 탈리아의 플로, 풍부한 조자의 음색, 너무나 영국스러운 언노운 티의 래핑, You're Not Alone의 하프 샘플, 런던 찬가 등 이 조합은 품앗이 같은 피처링이 난무하는 시대에 귀감이 될만하다. 비록 어떤 게스트도 <Magdalene>의 퓨처만한 충격을 주진 못하지만, 그때의 고립감과 비교하면 <CAPRISONGS>의 호화로운 동료들은 그 자체로 치유처럼 느껴진다.     

 

  "<CAPRISONGS>는 나의 놀라운 친구들과 협업자들을 통해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여행입니다." 탈리아의 말처럼 앨범의 수록곡들은 스스로를 북돋아주기 위해, 자기 자신을 더 깊숙이 이해하기 위해, 대중음악의 다른 영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쓰였다. 앨범에서 "나와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서 보는 것을 네가 볼 수 있기를 바라." 같은 감성적인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Kicks, cellophane 같은 아웃트로들이 회광반조하며 탈리아의 예술관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수행했다면, thank you song에서는 (말 그대로) 최저점에 있을 때 함께했던 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내가 아는 건 너처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야." 이제까지 FKA twigs는 자립적이고 도전적인 예술가 혹은 이 시대 막달레나들의 대변인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정말 그게 탈리아 바넷의 본모습일까. 제일 뛰어난 앨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CAPRISONGS>가 그녀의 커리어에서 가장 개인적인 작품처럼 생각되는 건 어째서일까. 니체의 따르면, 예술가의 고난은 예술 그 자체에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댄서인 FKA twigs에 의하면 니체는 틀렸다. Love in motion seems to save me now. 행복과 이해야말로 참된 예술의 수원지이며, <CAPRISONGS>는 활기차고, 호화롭고, 매우 재미있는 앨범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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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까

컴백을 환영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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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9
  • 1.23 22:21

    Dawn FM만 2주 째 듣는 중이라 얼 신보와 뿌까 신보가 밀렸네요... 어서 들어봐야겠습니다 ㅎㅎ 좋은 리뷰 감사드려요!

  • TomBoy글쓴이
    1.24 22:09
    @Ragerrrr

    얼른 들으세요 얼른!!

  • 1.23 22:55

    잘 읽었습니다 정말 여러 아티스트들이 떠오르게 만드는 믹테였어요

  • TomBoy글쓴이
    1.24 22:10
    @lilililil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뿌까가 행복하게 음악했으면 좋겠네요

  • 1.23 23:00

    뿌까 앨범을 이렇게 편안하게 들은적은 첨인거같아요ㅋㅋ

  • TomBoy글쓴이
    1.24 22:10
    @zerostone

    이런 느낌도 나쁘지 않죠? ㅎㅎ

  • 1.23 23:04

    쁘까 ❤️❤️❤️❤️ 감사합니다

  • TomBoy글쓴이
    1.24 22:11
    @SJBae

    뿌뿌 💜💜

  • 1.24 00:51

    아직 앨범 안들었는데 빨리 들어봐야겠네요

  • TomBoy글쓴이
    1.24 22:11
    @NorthWest

    서두르세요 (진지)

  • 1.24 08:04

    추천

  • TomBoy글쓴이
    1.24 22:11
    @야티와카티

    🤘🏻

  • 1.24 13:36

    좋은 글이네요 잘읽었습니다!

  • TomBoy글쓴이
    1.24 22:12
    @meh05

    감사합니다! :)

  • 1.24 16:34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TomBoy글쓴이
    1.24 22:12
    @NikesFM

    감사합니다!

  • 1.24 19:46

    이것도 빨리 들어봐야겠다

  • TomBoy글쓴이
    1.24 22:12
    @아몬드페페

    빨리 들어주세요 천국 갑니다

  • 1.27 10:17

    정말 공감하는 글이에요. 뿌까 누나가 가장 즐기고자 만든 어떤 목표 없이 만든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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