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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베르디와 바스키아의 고스트 힙합왕

title: [회원구입불가]snobbi2021.07.31 19:44추천수 2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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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 오직 거리 놈들(?)의 삶만을 대변하던 때가 지났다는 건 벌써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기 전의 이야기가 됐다. 이제는 거리에서 겪었던 일들을 묘사하며 자신의 고달팠던 삶을 열변하는 멋 이외에도, 온갖 미술 작품과 화가, 영화 감독 등에 자신의 멋을 빗대며 자신의 예술성과 고급스러움을 자랑한다는 선택지가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덕인지, 한 래퍼의 예술혼과 한 미술가의 예술혼을 마치 평행이론처럼 짝지어보는 건 꽤 재밌는 놀이다. 편견을 지우고 바라본다면 통쾌하게 맞아떨어질 때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당장 커버 아트부터 특정한 미술가를 겨냥한 채 만들어진 세 장의 프로젝트가 있다. 몇 달 전부터 줄줄이 등장한 이 세 앨범은 각각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이하 고흐)와 베르디(Verdy), 그리고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이하 바스키아) 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각 미술가들의 예술을 대하는 자세나 정체성을 꼭 빼닮은 내용물을 품고 있다. 세 미술가의 혼을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뱉으며 마치 힙합 씬에 그대로 소환해내는 데 성공한 듯한 세 뮤지션의 신보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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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looperZ [Van Gogh’s Left Ear]

 

제루퍼즈(ZelooperZ)는 대니 브라운(Danny Brown)이 결성한 디트로이트 기반 크루 브루이저 브리게이드(Bruiser Brigade)의 핵심 멤버이자, 지난 2014년부터 꾸준히 작업물을 발매해온 디트로이트 랩 씬의 숨은 보석 중 하나다. 그런 그의 2021년 신보 [Van Gogh’s Left Ear]는 고흐의 그 유명한 ‘왼쪽 귀’를 테마로 만들어진 프로젝트이며, 커버 아트부터 고흐의 유명한 두 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과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을 뒤섞어냈다.

 

1888년 고흐는 폴 고갱(Paul Gauguin)과 함께 지내며 공동생활을 시작했고, 서로 다른 화풍과 작업 방식 등을 이유로 고작 2개월 만에 둘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그러던 중 정신적인 이상을 앓게 되며, 급기야 자신의 왼쪽 귓불을 잘라낸 뒤 알고 지내던 창녀에게 선물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고흐의 예술적 감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정신이 가장 불안정했을 이즈음 정점에 달했으며, [Van Gogh's Left Ear]에 차용된 두 작품 역시 이 사건이 있던 지 얼마 되지 않아 탄생한 역작들이다.

 

https://youtu.be/lCqdqpBwwhY

 

제루퍼즈의 [Van Gogh's Left Ear]는 이 고흐의 잘라낸 왼쪽 귀를 ‘불안정하지만 정점에 달한 예술성’의 상징으로 삼은 채 펼쳐진다. 대니 브라운과 붙어먹는(?) 아티스트 답게 그는 이전부터 과감한 사운드 소스를 즐겨 사용했지만, 본작이 품은 사운드는 제루퍼즈의 전작들보다도, 혹은 여타 뮤지션들의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고 투박하다. 말 그대로,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모든 트랙이 각자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독립적인 사운드를 품고 있다는 인상이다.

 

대니 브라운 스타일의 익스페리멘탈 힙합, 영 떡(Young Thug) 스타일의 애틀랜타 랩 스타일부터 디트로이트 랩 특유의 날것 냄새까지 동시에 풍기는 가운데, 제루퍼즈는 작정하고 고흐의 예술혼을 끌어안은 듯 자신의 한계를 시험한다. 고흐의 시대에 빙의한 듯 문학적인 가사를 적어 내린 트랙이나 <별이 빛나는 밤>처럼 후대의 모든 예술가에게 영향을 끼칠 기념비적인 트랙은 없지만, 불안정함을 받아들이며 더욱 활짝 피어난 예술성이 담긴 본작은 감히 고흐의 왼쪽 귀를 타이틀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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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g Kayo [work in progress - EP]

 

영 카요(Yung Kayo)는 영 떡(Young Thug)과 거너(Gunna)를 필두로 한 현세대 힙합 씬 대표 레이블 YSL 레코즈(YSL Records)가 선택한 차세대 주자 중 하나로, 2021년 발표된 YSL 레코즈의 컴필레이션 앨범 [Slime Language 2]에 목소리를 보태며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 17세의 뜨거운 신예다. 이 젊고 날카로운 신예의 첫 프로젝트를 위해 판을 그려낸 미술가가 있었으니, 바로 현 스트리트 패션 씬에서 마찬가지로 가장 뜨거운 주역 중 하나인 베르디(Verdy)다.

 

‘Girls Don’t Cry’, ‘Wasted Youth’ 등의 캐치프레이즈와 특유의 강아지 캐릭터 등으로 잘 알려진 베르디의 디자인은 여전히 민감한 트렌드세터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영 카요 역시 어린 나이에 벌써 파리 패션 위크의 모델로 등장하고, 현세대 힙합 씬의 트렌드를 이끄는 영 떡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으니 이 둘을 다가오는 세대의 리더로 묶는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서로의 존재감을 알고 있던 것인지, 베르디는 지난 22일 발표된 영 카요의 첫 앨범 단위 프로젝트 [work in progress]의 커버 아트를 직접 디자인하며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냈다.

 

https://youtu.be/uxZUfRiC1OI

 

베르디의 손을 거친 커버 아트 말고도, 영 카요의 [work in progress]는 후대에 박물관에서 ‘2021년의 트랩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걸릴 가능성을 점칠 정도로 트렌드의 정점에 서 있다. 본작에는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의 [Die Lit]과 [Whole Lotta Red]에 참여하며 트랩 사운드의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낸 프로듀서 아트 딜러(Art Dealer)가 주축으로 참여했으며, 영 카요는 그 위에서 미고스(Migos),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 영 떡과 2020년의 플레이보이 카티를 떠오르게 하는 플로우를 구사한다.

 

이렇게 많은 선배 뮤지션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래퍼가 과연 좋은 뮤지션인지에 관한 의문이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이제 막 전성기를 이어나가고 있는 베르디를 미술계 역사상 가장 굵직한 이름들과 비교하는 것도 당연히 말이 안 된다. 단, 리프레시 한 번에 온 세상의 관심사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요즘 시대에서, 영 카요와 베르디는 트렌드의 정점에 있다고 느껴지게 하는 쉬운 듯하지만 어려운 임무를 수행해내고 있다. 2021년 스트리트 씬에서 한 따까리(?)를 하고 있는 두 예술가가 만난 [work in progress]는 단연 지금 음악 시장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젊은 에너지를 품은 프로젝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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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h-Hommy [Pray for Haiti]

 

마흐호미(Mach-Hommy)는 현 뉴욕 힙합 씬 최고의 집단 중 하나가 된 그리셀다 레코즈(Griselda Records)의 초창기를 함께했던 래퍼로, 지난 2010년대 중반 있었던 웨스트사이드 건(Westside Gunn)과의 불화를 종식한 뒤 그리셀다 레코즈에 재합류한 뉴저지 최고의 리릭시스트 중 하나다. 바스키아와 똑같이 아이티의 혈통을 타고났으며, 마찬가지로 뉴욕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둔 그는 지난 5월 발표한 [Pray For Haiti]를 통해 바스키아의 1981년작 <무제>를 약간 비튼 커버 아트를 선보였다.

 

인종 차별로 점칠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바스키아는 자신의 뿌리인 흑인 문화를 기반으로 그래피티 활동을 시작했고, 당시 태동하던 ‘하위문화’의 열풍을 이끌며 인종차별, 흑인영웅 등에 관한 그림으로 자신의 인종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거듭났다. 천한 것들의 문화로 여겨지던 그래피티에서 피어난 바스키아의 예술혼은 회화의 입지가 잔뜩 움츠러들었던 1980년대에 거대한 느낌표를 던졌고, 비슷한 듯 전혀 달랐던 바스키아 특유의 질감에 미술 애호가들은 컬트적인 관심을 쏟아부었다.

 

https://youtu.be/x7jcjW8h230

 

[Pray For Haiti]의 내용물 역시 바스키아의 예술혼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셀다 레코즈는 199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스트 코스트 붐뱁 사운드를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다시 소생시키고 있고, 붐뱁의 시대가 막을 내린 뒤 이제는 떠오른 트랩에 다시 한번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 힙합 팬들에게 아이러니게도 새로운 충격을 안기고 있다. [Pray for Haiti] 또한 웨스트사이드 건의 총괄 프로듀싱과 함께 마흐호미가 발전시켜온 자신만의 이스트 코스트 랩으로 채워져 있으며, 몰랐을 때는 추상적인 맛으로 즐길 수 있되 알았을 때는 전율을 안겨주는 펀치라인들로 무장하고 있다.

 

두 예술가의 뿌리인 아이티는 1791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흑인들의 혁명에 의해 탄생한 최초의 흑인 독립 국가다. 마크호미는 [Pray For Haiti]를 통해 이러한 아이티가 거머쥐게 된 상징성을 돌아보는 한편, 전반적으로는 추상적인 표현들을 통해 큰 그림을 그려낸다. 이러한 점은 어린아이의 낙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무수한 의미를 추상적으로 품은 바스키아의 그림과 닮았다고 볼 수 있다. 길이 남을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작품들이 힙합 음악 안에서도 등장하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서, [Pray For Haiti]는 마치 하나의 진품 그림을 소장하듯 자랑스럽게 전시장 한쪽에 비치해둘 수 있을 법한 높은 가치를 지닌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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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snob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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