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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ft Punk - Random Access Memories를 듣고

TomBoy2021.03.01 18:27조회 수 1037추천수 25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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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L 광고 영상에서 Get Lucky의 기타 리프가 흘러나왔을 때, 나는 그것이 제2의 <Discovery>가 될 거라고 직감했다. 그래. 아이디어와 유머, 재능의 음악적 집합체이자, 새 천년을 역사상 가장 우아한 팝의 시대로 재정의했으며, 댄스 음악의 궤도를 2번째로 바꾼 그 앨범 말이다. 하지만 나의 직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Discovery>가 다프트 하우스의 침실과 거실에서 제작됐던 것과는 달리 이 2기의 로봇들은 <Random Access Memories>를 위해 대서양을 횡단했다. 게다가 이 앨범은 완전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됐거나ㅡ메인 엔지니어였던 피터 프랑코에 따르면ㅡ그렇게 들리도록 연출됐다. 은빛 헬멧을 착용한 토마스 방갈테르는 컬럼비아 레코드와의 계약은 배급 계약이 전부였기 때문에 100만 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손수 감당해야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경제적 엄살의 이면에는 컬럼비아는 앨범 제작에 일체 개입할 수 없고 녹음 과정의 통제와 파이널 컷에 대한 권리는 전적으로 다프트 펑크에게 있다, 라는 함의가 내포돼 있다. 앨범이 처음으로 공개된 8년 전부터 사막 한복판에서 토마스가 폭발함으로써 다프트 펑크의 해체가 확정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는 늘 궁금했다. 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대서양을 횡단하게 하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펼쳐지는 마법을 단념케 하고, 자그마한 권능을 위해 10억이라는 금액을 부담하게 했을까. 추측건대 그 무엇은 바로 Memories, 즉 추억들이리라.

 

  오랫동안 다프트 펑크는 기술력의 상징으로 간주돼 왔다. 이들의 테크닉을 분석하기 위해 게재된 수많은 유튜브 영상들을 보라. 요는 시기다. 토마스와 마누엘은 샘플러가 창작 방식을 바꿔버리는 것을 목전에서 경험한 세대였지만 인터넷이 우리의 소비 방식을 개혁하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비트 메이커와 DJ들의 전유물이던 샘플링이 인터넷에 의해 공공재가 된 것이다. 애플 뮤직에 음원이 올라오면 수만 명의 아마추어들과 지망생들이 아카이브를 뒤적거리며 샘플을 색출한다. 심지어 무보수다. 위키피디아에는 앨범 속지에도 없는 샘플 크레디트가 있고, 이제 멜로디의 선명함이나 중독성보다 얼마나 샘플을 교묘하게 가공했는가 같은 기술적 요인들이 평가의 기준이 된다. 그러니까 <Random Access Memories>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되고, 토마스와 마누엘이 함께할 세션을 모집하기 위해 대서양을 횡단한 것은 그것이 이 시대에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아웃트로 Contact는 앨범에서 샘플을 사용한 유일한 곡이지만, 정신없이 펼쳐지는 신시사이저와 드럼의 혼선이나 한계를 초월한 듯한 속도감이 주는 쾌감에 잠겨,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디스코 방주의 첫 번째 탑승객으로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가 낙점됐다. 오프닝인 Give Life Back to Music에서부터 첫 싱글인 Get Lucky에 이르기까지, 산뜻하면서 호쾌한 펑키 리듬이 시종 넘실댄다. 70년대 디스코 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싶은 이들에게 Chic의 기타리스트만 한 적임자가 또 있었을까. 물론 현대의 쿨한 음악팬들은 조지오 모로더의 신시사이저 예찬과 그를 향한 다프트 펑크의 뻔뻔한 숭배에 심드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둔탁한 베이스와 브레이크 비트, 호화로운 기타 솔로와 바이닐 스크래치로 그득한 전기 펑크 오케스트라는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청각적 보상이다. (우리가 알던 형태는 아닐지라도) 이것은 명백한 샘플링이다. Chic과 시스터 슬레지를 샘플링하는 대신 로저스에게 전화해 연주를 요청한다.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를 샘플링하는 대신 <Thriller>의 기타리스트 폴 잭슨과 <Off the Wall>의 드러머 J.R. 로빈슨을 스튜디오로 초청한다. 잭슨의 재킷과 폰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브라이언 드 팔마의 <천국의 유령Phantom of the Paradise>을 얼마나 감명 깊게 봤던지 주연배우와 콘셉트를 그대로 차용했다. (타이트한 가죽 재킷과 풍자화된 로봇 헬멧, 신시사이저로 가득 찬 스튜디오와 팬텀의 가슴에 부착된 토크박스 등 '천국의 유령'은 다프트 펑크의 미학을 이해하는 열쇠다.)

 

  슬기롭게도 토마스와 마누엘은 과거의 유산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Lose Yourself to Dance와 Get Lucky에 목소리를 더한 퍼렐 윌리엄스는 앨범에서 가장 이색적인 게스트 중 한 명일 것이다. 로저스의 야생적인 기타 연주를 동력으로 삼은 두 곡 위에서 퍼렐의 보컬은 잠시나마 <Off The Wall>의 마이클 잭슨을 생각나게 할 만큼 빈틈없이 조율돼 있다. 한편에서는 칠리 곤살레스의 서정적인 독주와 보코더로 왜곡된 다프트 펑크의 보컬이 조화를 이루고, 반대편에서는 사이키델릭 브라이언 윌슨인 판다 베어가 등장해 인간과 로봇의 몽환적인 듀엣을 선보인다. 빅 밴드의 흥겨운 관현악 합주, 기품이 느껴지는 폴 윌리엄스의 퍼포먼스, 고무적이고 희망찬 분위기 등 이 시대에 Touch 같은 짜임새의 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배짱 이상의 것들이 요구된다. 이 기이하고 감상적인 서사시는 결국 다프트 펑크가 <천국의 유령>에게 보내는, 그리고 창창했던 시절에 부치는 러브레터다. 이런 시도는 진의가 궁금할 정도로 평면적이고 진심 어린 나머지 엉겁결 실소를 터뜨린다. 다프트 펑크의 음악은 늘 유쾌한 활력(One More Time)과 아련한 감성주의(Digital Love)로 귀결돼 왔다. 발매로부터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런 진솔하고 노골적인 레트로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쯤 되면 당신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나 인터넷 음악 친구 혹은 당신이 기르는 개나 고양이로부터 <Random Access Memories>에 관한 많은 의견들을 접했을 것이다. 맹신에 가까운 찬양에서부터 그저 냉소적인 힐난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입장이 어찌 됐든 간에, 음악이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만은 명확하지 않은가. 그리고 마침내 "이 앨범이 다프트 펑크의 마지막 앨범이 될 거야." 당시에는 허무맹랑하게 여겨졌던 예언들이 현실이 됐다. <Human After All>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1년이 걸렸지만, <Random Access Memories>가 백조의 노래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까지는 8년이 소비됐다. 이것은 잔인한 처사지만 토마스와 마누엘은 다프트 펑크로서의 콘셉트를 마지막까지 견지했다. 팬들을 위한 배려인가, 속 편한 독단인가. 섣불리 판가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앨범이 아이튠즈가 거의 소멸시켜버릴뻔한 앨범 포맷의 가치를 소생시킨 것이나, 미니멀리즘 세계관에서 수록곡들의 러닝타임이 대개 5분 이상인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밥 딜런과 비틀즈의 나라에서 레트로 디스코가 1위를 차지하고, 컬럼비아는 코첼라 페스티벌에 홍보 영상을 트는 데는 성공했으나 앨범 속 코드 하나 바꾸지 못했다. 스튜디오에서는 밤새도록 테이크가 돌아가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영감이 난무하며, 타협은 없다. 파리 드골 국제공항, 다양한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비전을 실험하기 위해, 부푼 기대를 품고 2기의 로봇들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 어떤 모험의 서두도 이보다 두근거릴 순 없을 것이다.

 

 

 

 

 

 

---

 

원래 다프트 펑크에 관한 이런저런 글을 쓰고 싶었지만

음악인에 대한 글은 역시 앨범 리뷰만한 것이 없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전에 썼던 글 갱신도 할겸,

나름의 작별 인사도 할겸.

 

쓰기 전 ram을 들으면서

이게 마지막 앨범이구나 라고 생각하니,

처음 들었던 8년 전만큼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이제 가슴 졸이며 고대할 수 있는 일 하나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느낌이네요.

 

 

재밌게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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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2
  • 3.1 18:35

    항상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두 로봇의 가장 사람 냄새나는 시간 여행. 모험의 뉴욕행 비행기

    리뷰를 보면서 또 한 번 벅차오르네요.

  • TomBoy글쓴이
    1 3.1 21:03
    @sk8brdK

    감사합니다! 샘플러가 터져서 로봇이 된 dj들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갔네요

  • 3.1 18:43

    멋져요

  • TomBoy글쓴이
    3.1 21:03
    @trmn

    감사합니다!

  • 3.1 18:48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TomBoy글쓴이
    3.1 21:03
    @앙긴이

    감사합니다!

  • 3.1 19:06
  • TomBoy글쓴이
    3.1 21:08
    @SupremeSlim

    감사합니다!

  • 3.1 19:09
  • TomBoy글쓴이
    3.1 21:08
    @FrankSea

    감사합니다!

  • 와 잘 읽었습니다 항상 느끼지만 글을 참 섬세하게 잘쓰시네요ㅜㅜ

  • TomBoy글쓴이
    3.1 21:04
    @biggiesmallistheillest

    감사합니다! :)

  • 3.1 19:32

    ‘Human After All’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1년이 걸렸지만

    여기서 3집이 재평가 되는 계기가 뭔가요?

    혹시 라이브 앨범인가요?

  • TomBoy글쓴이
    3.1 21:07
    @라멜라보나

    Alive 2007을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그거랑은 별개로 비평지들의 평가처럼 반쪽짜리 앨범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명작은 아니지만 들어보고 판단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 3.1 19:33
  • TomBoy글쓴이
    3.1 21:08
    @Edeth

    감사합니다!

  • 3.1 19:48

    좋은 글 감사합니다

  • TomBoy글쓴이
    3.1 21:07
    @clyde

    감사합니다!

  • 3.1 19:54

    띵반

  • TomBoy글쓴이
    3.1 21:08
    @Big Sean

    10년 뒤에는 어떤 평가를 받을 지 궁금하네요

  • 3.1 20:57
  • TomBoy글쓴이
    1 3.1 21:09
    @RlaRlaRla

    감사합니다!

  • 3.1 21:23

    진짜 좋은 글입니다

  • TomBoy글쓴이
    3.2 07:24
    @서양철학사

    감사합니다!

  • 3.1 22:31

    리뷰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ㅎㅎ

  • TomBoy글쓴이
    3.2 07:24
    @1시42분

    감사합니다!

  • 3.2 02:52

    혹시 아르젠토 영화 음악에 참여했다던 소식 그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 알고 계신 게 있나요? 좀 구질구질하지만 그냥 떠나보내려니 마음이 너무 허하네요

  • TomBoy글쓴이
    3.2 07:29
    @fluffypuppy

    저도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원 출처가 이탈리아 일간지더라구요. 그런데 아르젠토 신작 프로듀서가 이 루머를 부인했습니다. 하려다가 엎어진 건지 애당초 컨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기대할만한 소식은 아닌 듯해요

  • 3.2 11:31
    @TomBoy

    ㅠㅠ감사합니다 아듀 다펑

  • 3.2 08:17

    SWAG

  • 3.2 20:16

    다프트 펑크의 음악을 언젠가는 꼭 들어봐야지 라는 생각으로 듣는걸 미루다가 해체소식을 듣고나서야 처음으로 RAM을 돌려봤습니다. 최근에 처음 돌린 앨범이라 이해가 조금 더 필요했는데 많은 도움이 됐네요 좋은글 정말 감사합니다!

  • 4.12 22:07

    진짜 잘 읽었습니다 이런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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