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시리즈]

느지막이 하고팠던 말의 변주곡(4월 넷째주)

title: 2Pac - Me Against the WorldMigh-D-98brucedemon2017.04.23 23:29조회 수 749추천수 2댓글 1

다운로드.png

1. 러블리즈 - R U Ready?

발매 : 2017.02.26.


- 러블리즈의 태초에 팝적인 덕이 있었다. 이 팝적인 덕이란 상태를 묘사하자면 귀여움이란 감성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물론 그것만이 러블리즈의 매력은 아니었다. 걸 그룹이 표현할 수 있는 보편적인(동시에 예민한) 감수성들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재기를 부려온 덕분에, 러블리즈는 시장성과 더불어 진정성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정규작 [R U Ready?]에서도 그와 같은 색채적인 전략은 유효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특별한 상태가 공존하고 있다. 그것은 정의내릴 수 없는 차원의 헛헛함(타이틀 'WoW'의 가사와 새벽별로 대변되는)과 애정의 표면을 파고드는 마이너(Minor)한 감성의 발랄함('Emotion'으로 대표할 수 있는)이다. 완숙미를 강조했던 'Destiny'의 가사적 예술성을 잇는 타이틀 'WoW'는 원피스(1Piece)의 사운드 디자인은 물론, 전간디와 김이나 작사가의 공동 작사가 매력을 부가시키고 있다. 한편, 눌러앉은 사운드의 평형으로만 볼 때 [Lovelyz8]의 수록곡인 작별하나의 하위 호환으로 다가오는 첫눈의 어쿠스틱(Acoustic)한 감성도 외면할 수 없다. 발음을 부드럽게 끊음으로써 여전히 애정 전선에서 분투하는 절실성을 한껏 피력하는 똑똑은 흐뭇한 기대감을 안긴다.

그런가 하면, 타자와 맞춰지지 않는 발걸음을 못내 아쉬워하고 화자 스스로를 카메오로 여기는 영화적 느낌의 'Cameo', 화자가 타자에게 더 다가오기를 촉박한 시선에서 전하고 있는 'The'가 대조되는 성질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본작에서 특기할 만한 점이다. 전자는 한없이 긁적대며 여린 마음을 품고 있다. 후자는 끝간 데 없이 당당하며, 오히려 제대로 닿지 않는 타자에게 답답한 감정을 고스란히 내비친다. 여러 지점에서 비교할 수 있을 만한 사운드스케이프를 풀어놓은 채 진행되는 본작의 질적 측면을 미루어볼 때, 본작은 러블리즈의 작품들 중 가장 헤졌으면서도, 활기가 다분한 작품이다. 그리고 끄트머리에서 안정되고 미니멀한 나의 연인으로 수렴된다. 이와 같은 마무리는 여덟 소녀들의 또 다른 막이 매우 살가운 여운을 안기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본작에서는 명료하면서도 깊이 있는 프로덕션이 희끄무리한 감수성으로 종결되어 가는 흐름이 보인다. 작금의 가요계에서 쉬이 마주칠 수 없었던 매끄러운 팝적 미덕을 러블리즈는 본작을 통해 성취하였다. 그것이 설령 주류 사이에서의 외줄타기를 지속하고 있는 원인이라 해도, 언젠가 이같은 러블리즈의 미덕이 더 많은 이해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5177990006140965_-1773151634.jpg

2. 여자친구 - The Awakening

발매 : 2017.03.06.


- 여자친구의 여섯 멤버들은 가()의 영역에서는 저마다 슬그머니 강함을 내비치지만(그중 단연 상위에 위치한 이는 메인 보컬인 유주임이 자명하다), ()의 영역에서는 일심동체로서 배가된 화력을 표출한다. 여백이 없을 정도로 꽉 메워넣은 안무와 가사의 마디수가 그 밑바탕일 것이다. 전작들에서 왕왕 찾아볼 수 있는 미생의 감수성도, 그리고 네 번째 미니 앨범인 본작 [The Awakening]에서의 살벌한 애정 표현도 정교한 동작과 발빠른 곡 전개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그간 축적해온 타이틀곡의 면면에 국한시킨다면 더욱 그렇다. 4장의 미니 앨범에서 여자친구가 표현할 수 있는 애심은 비슷하면서도 발전적인 구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오늘부터 우리는으로부터 비롯되는 후반부의 일렉 세션이 본작의 타이틀 'Fingertip'에서는 또렷한 베이스 라인과 함께 이어지지만, 박자는 진화되어 청자의 귀를 겨냥한다. 그리고 봄날의 향기를 담기 위해 여러 악기를 동원한 사운드에 공을 들인 티가 나는 바람의 노래가 인상 깊다. 이 곡이 본작의 개가(開歌)라는 것이 본작의 우수한 지분을 채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여자친구라는 그룹의 음악적 정체성을 만드는 바탕에는 계절이 항상 있었다는 생각이다. 봄바람에 힘차게 재채기를 하고, 기지개를 켤 수 있는 듯한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바람의 노래비행운’, ‘과 같은 곡들이 그런 생각을 자극한다. 그 와중에 본작의 프로덕션적인 매끄러움을 일면 반감시키는 봄비의 진부한 기청감은 아쉽다. 본작의 기조를 이루는 계절적 테마는 그 유속이 느리지 않아 매우 부드럽다. 그런데 그 사이에 들어차 있는 봄비가 옥에 흠집 하나라는 느낌이다. 제복을 착용한 전사의 이미지는 타이틀에 유효한 장치였겠지만, 그 부분을 떼어놓고 본작에 집중한다면 본작은 충분히 부담스럽지 않은 미니 앨범으로서의 가치를 지켰다고 볼 수 있다. 화자의 손에 있는 타자를 향해 화살도 아닌, 총구를 겨누겠다니.. 돌이켜 생각해봐도 여자친구의 파격적 원숙함의 발로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여전히 타이틀의 굴레 바깥에서 그녀들은 타자에게 다가와 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푸른 순수함을 견지한다.(‘나의 지구를 지켜줘’) 여자친구가 봄에 이르러, 본작을 통해 다시 깨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82493.jpg

3. 엠 제로(M-Zero) - 101

발매 : 2017.02.17.


- 농염한 보이스 컬러로 하여금 플로우의 밋밋함을 매끄럽게 만드는 엠 제로(M-Zero)의 작은 소품집 같은 앨범이다. 그녀의 어감과 전달력은 어떤 주제를 담은 랩에서라도 섹시함을 표방하고 있다. 이것이 그녀의 랩이 가진 흡인력이다. 그리고 그것이 비교적 빠른 템포를 탈 때는, 어느덧 엠 제로의 랩이 확장된 오르가즘(Orgasm)을 이루고 있다. 한쪽에서 전달되는 낮은 톤의 발음이 이면에서 진입하는 엠 제로의 비교적 높은 톤의 보컬과 섞이기도 한다.(‘101’) 이어지는 'How U Doin'에서는 꽤 깊은 표현력과 함께 그녀의 랩과 보컬이 갖는, 이른바 따로 또 같은 상반성을 만끽할 수 있다. 트랩과 함께 재지(Jazzy)한 울림을 품고 있는 그루브(Groove)함이 담백한 것은 물론이다. 그녀의 보컬은 목소리에 있어 그 색깔을 미묘하게 달리 한다. ‘진심을 노래해에서 들리는 훅(Hook)이 단적인 예다. 엠 제로 본인이 직접 프로듀싱에 한 몫을 하였기 때문인지 4곡의 소품집임에도 완성도는 깔끔하다. 쫄깃한 보이스가 만드는 매혹적인 전달력이 그녀가 노래하겠다던 진심을 지탱하는 밑받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marvel-j-graduation.jpg

4. 마블 제이 - Graduation

발매 : 2017.02.08.


- 몇 년 전, 한국 언더그라운드 씬의 전선에서 저마다의 멋과 트렌디함을 뽐냈던 대남협크루가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른바 빡센 톤으로 청자에게 결투를 거는 듯한 플로우를 선보이는 마블 제이(Marvel J)가 선두를 지키는 이로 자리잡고 있었다. 루키(Rookie) 중 하나인 그는, 그 이전의 루키였었던 베이식(Basick)이 세운 RBW(해당 아티스트들의 소속사) 산하 힙합 레이블인 올 라잇 뮤직(All Right Music)의 일원으로 거듭났다. 우람한 체격만큼이나 힘찬 플로우를 자랑하는 그의 실력이 가감없이 드러나 있는 본작 [Graduation]은 그의 첫 정식 EP 작품이다. 상징적인 출사표 역할을 하는 플래쉬비츠(FLASHBEATS) 프로덕션의 'Jay World'는 그가 뱉는 톤의 중심이자 정수이다. 마블 제이의 밀어붙이는 랩만큼이나 본작의 전반을 수놓는 트랩 사운드 역시 화력을 지니고 있다. 연신 비속어를 통해 타자와 구분되는 자기 존재를 외치는 그의 랩에서는 물리적인 폭력이 전달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느껴진다. 본작에 참여한 몇몇의 게스트들 역시 그런 마블 제이의 호전성에 동화된 듯하다. 딥플로우(Deepflow)는 사운드를 장악하는 듯한 묵직한 랩을 보여주고 있으며('So Wut'), 창모는 세련된 스웩을 날카롭게 전달하며 던 밀스(Don Mills) 역시 능청스러운 톤으로 그만의 칼날을 다듬는다.('돈 벌러 왔어(Remastering Ver.)' & 'Forgive Me') 본작은 날카로움을 시종일관 거듭하다가, 역시 날 선 태도로 작품을 맺는 일관성을 유지한다. 술탄(Sultan)의 록(Rock)적 사운드 위로 마블 제이 나름의 문화적 애정을 풀어놓는 'Nothing Like Hiphop'이 일리닛(Illinit)이라는 일당백의 관록을 얻어 본작이 일방적인 분노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춘다. 그 이상의 매료되는 지점을 느낄 수 없지만, 많은 래퍼들이 표방하는 첫 작품의 은유인 출사표로 본다면 꽤 주목할 만한 첫 발이 아닌가 싶다


3ecf04db78aa46fd7e1c2622708d33bc.jpg

5. 도끼 - Reborn

발매 : 2017.03.28.


- 랩 음악과 힙합 문화에 대한 편협한 시선 아래 만들어진 힙부심이라는 조어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조어는 편협한 시각 아래 문화를 공유하는 구성원들의 시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힙부심이라는 말을 진정으로 써야 하는 때가 있다면, 그것은 이 문화의 음악적 부문에 종사하고 있는 래퍼가 진정으로 힙합 문화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음을 목도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절반의 시기 이상을 힙합 문화 속에 몸 담아온 일리 있는 부호도끼(DOK2), 위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힙부심이라는 표현을 재정의하였다. 그가 태어난 328일을 빌어, 그는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온 28년 인생의 과거, 현재를 반추하였다. 또한 그는 힙합 문화로 살아온 래퍼로서의 면모를 본작 [Reborn]을 통해 다시금 탄생시켰다. 도끼를 키운 것은 9할이 힙합이었으며, 1할은 힙합에 대한 도끼의 진심 어린 태도였음을 보여주는 작품이 본작인 것이다.

정규 앨범의 수적 기본 옵션에 충실하고 있음은 본작을 깔끔하게 음미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다. 그리고 본작의 프로덕션을 유기적으로 꾸린 그루비룸(GroovyRoom) 프로덕션의 탁월함은 본작을 깊게 만끽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다. 비트에만 중점을 두지 않은, 멜로딕한 그루비룸의 감각적 선율은, 도끼의 본작을 만나면서 그 영혼 어린(소울풀한) 다채로움을 더한다. 이제는 일리네어 사단이라 일컬을 수 있을 만한 게스트들(김효은, 창모, 해쉬 스완(Hash Swan) 등의 신성들을 위시한)의 두드러지는 활약은 물론이고, 롤러코스터의 보컬 조원선의 다소 탁한 목소리로 만들어진 'Rollercoaster'의 코러스 역시 일종의 결을 형성한다. 도끼는 'Rollercoaster'를 더블 타이틀로 정해놓고, 이 곡에서의 가사를 통해 힙합퍼로서의 재출발선을 설정한다. 오르막의 선상에서는 멈추지 않는 야망을 늘어놓지만, 그런 와중에서서 힙합퍼로서의 근원을 그 나름의 문장으로 성찰하는 지점도 놓치지 않는다.('Hiphop Lover') 이같은 힙합퍼로서의 진정성이 본작의 전반부를 이루는 굴레가 되는 것은 본작의 탁월성의 근거가 된다. 비기(Notorious B.I.G, Biggie)의 한 마디로 인해 랩 음악의 어록 중 하나가 된 돈이 따를수록 문제는 심화된다는 표현을 성공의 가장자리에서 곱씹는 후반부의 'On & On'도 주목할 수 있다. 어느덧 실력파 아티스트로 거듭나고 있는 이하이의 보컬이 곡을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놓고 있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본작은 서른을 앞둔 도끼의 회고적 성격이 짙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꾸준함으로 말미암은 그의 무기복적 랩이 녹아 있는 탱탱한 작품이기도 하다. 힙합퍼로 살아온 도끼는, 힙합으로 인해 삶의 균형을 성취했고, 힙합으로 인해 다시 새로운 힙합퍼로 스스로를 낳은 것이다.  


c006a492a598c0b918bc89f5ea966d7c.jpg

6. 아이삭 스쿼브 - Dilentante

발매 : 2016.11.23.


- 20년 가까이 래퍼로 살아오며, 마침내 지난 2016년 겨울 본인만의 번듯한 솔로 작품을 발표한 아이삭 스쿼브(Issac Squab)의 첫 작품은 '딜레탕트(Dilettante)'로 칭해졌다. 사담이지만, 늘 특정한 표현에 함의를 담은 작품을 말할 때는, 그 표현의 사전적 정의를 톺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딜레탕트는 이태리어로 즐기다라는 뜻을 가진 딜레타레(Dilettare)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간단히 말해 애호가로서 예술을 만드는 이로 정의될 수 있는 이 표현이 본작의 여러 부분을 관통하는 핵심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본작은 그 자체로 아이삭 스쿼브의 예술(여기서는 힙합과 아티스트 개인, 그리고 사회를 모두 통용하는 표현) 일기인 셈이다. 전반적으로 투박한 톤에서 매끄러운 운율을 거쳐 이야기를 이어가는 아이삭 스쿼브의 전달력이 본작에 매료될 수 있는 기본 전제이다. 그는 본작의 타이틀 그대로 그가 하는 예술을 전문적인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힙합을 말할 때는 자칫 전문성으로 인해 빛바랠 수 있는 문화적 존중과 애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Street Romance'), 사회와 개인을 능청스레 비판할 때는 직설과 은유를 적절하게 버무린 채 시민논객의 입장에서 쓰여진 생각들을 풀어놓는다.(‘빽스텝’, ‘불합격’, ‘Issac's Mind’) 어디로 들으나 전문가의 고정적, 보편적 견해는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힙합 문화에 몸담고 있는 이로서, 또 고름이라는 병증을 단 시국을 사는 이로서 아이삭 스쿼브는 비전문적 순수주의자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비단 위에서 주지한 바와 같은 부분만 그러한 사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차선수 프로듀싱의 나른한 무드가 귀에 띄는 그 날 이후에서는 개인을 둘러싼 아픔과 푸념을 터놓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본작의 종반부에 이르러 그는 노동 시인 위재량 선생의 시를 토대로 만든 그대는 결코를 통해 결국 세상은 홀로 사는 이를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불특정의 이들의 뒷모습을 보듬는다. 어떤 이는 본작을 통해 때묻은 열정을 느꼈다고 말하며 그 표현과는 반대되는 낮은 평점을 남겼지만, 필자만큼은 딜레탕트로서의 아이삭 스쿼브가 본작에 새겨 놓은 깊은 아우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dj-juice-beatful-life-2017-album.jpg

7. DJ Juice - Beatful Life

발매 : 2017.03.25.


- ‘거리의 꿈이란 타이틀을 달고, 다채로운 비트를 빚은 DJ 쥬스(DJ Juice)의 두 번째 작품 [BEATFUL LIFE]는 브랜뉴 뮤직(BrandNew Music)을 통해 발매되었다. 그로 인해 본작의 일장일단이 명확해졌다. 전작의 담백한 구성에 다가설 수 있을 정도의 세련된 질감을 띠고 있지만, 그 깨끗한 상태에 육박할 수 있는 신선함이 몇몇 지점에서 부재하다는(혹은 있음에도 퇴색된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을)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타이틀곡 역시 상반된다. 'Beautiful Life'는 산이와 버벌진트의 조합이 그리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고, 외려 베빌론(Babylon)의 보컬이 이를 상쇄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반면에, 미라는 표현을 변형하여 힙합적인 느낌을 더욱 살린 'BEATful Life'는 버벌진트와 넋업샨의 매끈한 랩을 담고 있다. 대조되는 타이틀의 퀄리티도 다소 아쉽지만, 전작과 견줄 수 있을 만한 대단한 매력이 없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청각적 허탈감 속에도 건질만한 볕이 본작에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다시 새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크림빌라 크루(Cream Villa)가 랩 스킬을 펼쳐놓은 'Poppin Bottle Juice'와 더불어, 끊임없이 발전적인 언어 운용을 보여주고 있는 일리닛(Illinit)과 허클베리 피(Huckleberry P)의 콜라보가 돋보이는 ‘King's Way’가 그것일 테다. 그래서 본작은 허울만 화려한 망작이 아닌, 프로덕션이 곡 나름의 느낌을 담고 있는 범작이 될 수 있다는 소견이다. 하지만 본작을 통해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려 했으나, 오히려 어색함만 남긴 피 타입(P-Type)의 트랙 시적허용은 분명 본작의 끝을 흐려놓았다고 생각한다.


cover.jpg

8. 정은지 - 공간

발매 : 2017.04.10.


- 지난 해 4, 정은지는 대중가요에 있어 짙은 감수성의 지분을 적잖이 차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곧 홀로 세워진 그녀의 목소리가 시기적인 부분과 맞물려 많은 이들에게 더욱 따스하게 다가갈 수 있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올해에도 4, 그녀는 봄을 가리키는 숨결로 돌아왔다. 전작이 꿈만 같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자전적인 스토리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면, 본작 [공간]은 이성 간의 애정에 더 가까이 접근하여 그 사이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 5곡 대부분의 프로듀싱을 맡은 이단옆차기의 감각도 그대로 두었다면 생명력이 덜 했겠지만, 또렷하고 탄탄한 정은지의 가창력을 마주한 덕분에 어느 정도의 활력을 띨 수 있었다. 어김없는 것은 본작이 나온 시기 뿐만이 아니라, 타이틀곡에 참여한 하림의 존재이기도 할 터이다. 하모니카에 이어, 아코디언 세션으로 계절의 테마를 자극하는 하림의 참여는 이번에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다. 정은지의 말끔한 고음과 절제된 발음 역시 이상 없다. 덤으로, 이번 작품에서는 푸릇한 감성에 약간의 회칠을 함으로써 연인의 거리감을 잘 표현한 곽진언의 피쳐링도 주목된다. 가벼운 모던 록(Modern Rock) 풍의 음율 위에서 정은지가 작사한 가사가 청춘 드라마의 장면을 만드는 듯한 소녀의 소년’,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오가며 현재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돌아보는 서울의 달까지, 이번에도 앨범 전반은 준수한 음악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작과 다름 없이 피아노 중심으로 편곡하여 타이틀 앵콜을 선보이는 본작의 마무리는 이번에도 계절의 초입에 있는 감성에 가닿는 데 손색이 없는 갈무리가 된다. 1년간 정은지의 목소리는 더 굵어진 느낌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가수로서의 미감이 더 깊게 발원하는 과정 중 하나였던 셈이다


ALBUM-COVER.jpg

9. Various Artists -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Fast & Furious 8) 

The Album

발매 : 2017.04.14.


- 개봉 열흘 만에 국내 누적 관객 수 200만을 돌파한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위엄은 과연 대단했다. 카 액션의 진수를 매 시리즈마다 실험(?)하고, 초월하는 작품의 질적 도약이 흥행에 큰 몫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적을 초월한 그와 같은 질주의 배경에는 언제나 랩과 클럽 뱅어(Club Banger) 등등의 소리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요소가 아닐까 한다. 이번 시리즈의 사운드트랙 역시 힙합 씬에서 매우 핫한 루키(Rookie)와 트렌드세터(Trendsetter)들이 참여한 덕에 본작의 역동성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 OST에서의 첫 곡이었던 'Ride Out'의 점진적인 아성에는 미치지 못 하지만, 랩 스킬로 본다면 충분히 비교우위에 들 수 있는 첫 곡 'Gang Up'에서 참여 아티스트들의 고른 활약이 들린다. 그 중 스킬을 좀 더 뽐내는 건, 분노의 질주를 감흥으로 이끌었던 위즈 칼리파(Wiz Khalifa)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켈라니(Kehlani)와 쥐-이지(G-Eazy)의 훅(Hook)과 벌스(Verse)의 조합이 완연한 상태에서 만개한 듯 시원시원한 흐름을 만드는 'Good Life'는 이 앨범의 타이틀로 충분했다. 작품의 긴장 고조에 몫을 보태는 미고스(Migos)'Seize The Block'의 오밀조밀하고 발빠른 비트 전개와 얄짤 없는 플로우에도 귀가 트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 앨범에서는, 씬의 작은 거인들로 거듭나는 중인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와 릴 야티(Lil Yachty)의 목소리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랩과 랩-싱잉(Rap-Singing)의 선두 주자들인 제레미(Jeremih), 타이 달라 사인(Ty Dolla $ign), 세이지 더 제미니(Sage The Gemini)가 목소리를 한데 모은 'Don't Get Much Better' 역시 안정된 박자와 비트의 질감이 어우러진 곡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앨범의 후반부에서 주목할 수 있는 핏불(Pitbull)과 콜롬비아의 아티스트 제이 볼빈(J.Balvin)의 클럽 뱅어 'Hey Ma'의 중독성 역시 넘겨짚을 수 없는 곡이다. 미국 본토에만 머무르지 않는 분노의 질주 속 공간의 이동성을 소리로써 가장 잘 드러내주는 트랙이 아닐까 싶다. 전 시리즈의 앨범에서는 프린스 로이스(Prince Royce)'My Angel'이 그런 역할을 했는데 상반된 무드는 물론이요, 'Hey Ma'에서는 중남미권의 향취가 적절히 배합된 듯한 흥이 느껴진다. 다소 급하지만, 그럼에도 매끄럽게 이어지는 장면의 구간마다 들려오는 트랙들이 이처럼 한결같이 절묘하고, 즐길 수 있는 감흥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질주는 항상 신선한 목소리와 함께 이어졌으며,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기를 고대한다


loopy-ice.jpg

10. 루피(Loopy) - ICE Tape A

발매 : 2017.03.04.


- 메킷레인(MKIT RAIN)의 멤버들은 모두가 각자를 대표하는 프론트맨(Frontman)이다. 그 중에서도 맏형인 루피(Loopy)는 급하지 않게 플로우를 사수하는 살쾡이에 비유할 수 있겠다. 나른함과 기민함을 동시에 갖춘 듯한 전달력은 다소 피곤함을 유발하는 요소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루피의 톤이 가진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 된다. 정식 앨범 발매 전, 반반으로 끊어져 발매된 첫 작품 [ICE]6개의 얼음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HDBI, LTTB 등의 프로듀서가 찍은 비트도 비트이지만, 루피를 위시한 래퍼들이 늘어놓는 스웩 역시 차가운 온도에 머물러 있다. 타격감을 비교적 깊게 느낄 수 있는 트랩은 견고하게 얼어있는 상태의 본작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즐기는 중독의 촉매가 된다. 프로덕션은 맛깔 나고, 본작의 스웩은 그보다는 약간 싱겁지만, 대신 시원하다. 루피의 쫙 빠진 발음이 본작의 프로덕션 속에 응고되어 있지 않은 점은 기묘하지만, 그로 인해 루피는 더 간결한 상태로 플로우를 전개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스웩 속에 약간의 비꼼을 보탠, 나플라(Nafla)와의 콜라보가 귀에 띄는 'Blacklist'에서도, ()에게 최적화된 한영혼용은 본작의 차가운 상태를 심화시켜놓을 따름이다.   



신고
댓글 1
  • 4.23 23:59
    도끼의 자격있는 힙부심... 공감합니다 잘 읽었어요

댓글 달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스웩의 전당' 게시판 운영 중지 공지사항 title: [회원구입불가]HiphopLE 2018.05.22
3170 [인증/후기] 깐돌이라마 싸인 기똥차게 해주던 신인시절15 title: MF DOOMJack White 2017.04.26
3169 [가사] Meek Mill-Dreamchaser2 intro5 enter to game 2017.04.25
3168 [음악] (음알못) 도나쓰맨의 짧은 리뷰들: Future- Beast Mode 外12 도넛맨 2017.04.25
3167 [가사] Gone - Kanye West (마지막 벌스)3 피아아 2017.04.25
3166 [패션] 아버지의 이지 인증44 title: [E] The Game (WC Month)onyx 2017.04.24
3165 [리뷰] Joey Bada$$ [All-Amerikkkan Bada$$] 리뷰.5 title: Drake (FATD)RahsaanPatterson 2017.04.24
3164 [인증/후기] Chris Brown 전집18 title: Snoop Dogg준벅 2017.04.24
3163 [리뷰] (뒷북) Run The Jewels - 『Run The Jewels 3』 리뷰2 title: Kendrick Lamar - DAMN.coloringCYAN 2017.04.24
3162 [음악] 곡 주인과 피쳐링 랩퍼가 완전 용호상박이었던 곡은 뭐가 있을까요??31 앤소니존슨 2017.04.24
[시리즈] 느지막이 하고팠던 말의 변주곡(4월 넷째주)1 title: 2Pac - Me Against the WorldMigh-D-98brucedemon 2017.04.23
3160 [가사] Lens - Frank Ocean7 피아아 2017.04.23
3159 [음악] 엘이 여러분 훅이 진짜 끝장나는 곡좀 알려주세요 ㅎㅎ19 title: Dropout Bear슬기 2017.04.23
3158 [음악] (음알못) 도나쓰맨의 짧은 리뷰들: Lil Peep- Teen Romance 外22 도넛맨 2017.04.23
3157 [인증/후기] 급식이 시험기간에 공부하기 싫어서 쓰는 앨범인증42 title: Frank Ocean - channel ORANGE야일 2017.04.22
3156 [가사] Lil Yachty - Harley5 title: Wiz Khalifa닉네임없음 2017.04.22
3155 [인증/후기] LP인증해봅니다14 TYGA=TYGA 2017.04.21
3154 [리뷰] Kendrick Lamar - 『DAMN.』 해석과 리뷰9 title: Kendrick Lamar - DAMN.coloringCYAN 2017.04.21
3153 [리뷰] Joey Bada$$ - 『ALL-AMERIKKKAN BADA$$』 리뷰9 title: Kendrick Lamar - DAMN.coloringCYAN 2017.04.21
3152 [그림/아트웍] 존경하는 rudcef 님께..12 title: Chance Hat (Navy)B4Da$$ 2017.04.20
3151 [리뷰] Drake - More Life '평가할 것이 없어진 평론가의 멸종13 wolfyee 2017.04.19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