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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LE's Essay: 버티고 있는 자의 끄적임


<LE’s Essay>는 힙합엘이(HIPHOPLE) 내 에디터들 각자의 사연을 음악과 함께 풀어내는 연재물입니다. 회차마다 다른 사연, 다른 음악으로 꾸밀 것이며, 에디터라기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소박한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Alright” 뮤직비디오를 맨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난다흑백 화면 속에서 그가 랩을 하는 모습과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가 부르는 후렴 “We gon’ be alright”에 맞춰 하늘을 날아다니던 모습이 유난히 인상 깊었다사실 더욱 인상 깊었던 건 이후 <밀리언 맨 마치(Million Man March)>에서 많은 사람이 행진을 하며 "We gon' be alright"을 외치는 모습이었다. 괜찮을 거라 말하는 구절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그 상황이 경이로우면서도 묘한 느낌이었다. 버티고 있는 주체로서 그들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간 나의 삶 속 '버팀'의 경험이 하나둘 떠오르기도 했다.


♬ Kendrick Lamar - Al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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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 있었으면 이겼을 텐데.

서로 다른 두 개의 버팀


어렸을 적 친구와 무작정 내기를 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 나는 유난히 팔심이 없었다. 친구들과 팔씨름을 하면 매번 지기 일쑤였고, 그 때문인지 팔심을 요할 때면 늘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은 수업이 모두 끝나고 놀이터에 있었는데, 한 녀석이 갑자기 철봉 오래 버티기 내기를 제안했다. 녀석들과 나는 자주 다니던 문방구에서 파는 100원짜리 소시지 내기를 시작했다. 당연히 하기 싫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괜한 오기 때문이었을까? 한 명씩 차례로 철봉에 매달리며 버텼고, 우리는 초시계가 없어서 그냥 아무나 한 명이 무식하게 입으로 초를 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례가 다가왔다. 몇 초나 버텼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나에게는 매우 길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꼭 몇 분은 버틴 것만 같은 힘듦이었다. 버티고 버티다 철봉에서 떨어졌을 때는 팔이 아프면서도 너무나 저렸다. 결국, 나는 졌다. 질 걸 알면서도 왜 그렇게 버텼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슨 특별한 목적이나 이유도 없었으면서.

 

많은 시간이 지나 군대에서의 버팀은 사뭇 느낌이 달랐다. 어떻게든 사회로 다시 나가기 위해 버티자는 생각이 확고하게 있었다. 그 유일한 이유는 곧 원만한 생활을 위한 적응으로 이어졌다. 시쳇말로 짬이 차니 그때부터는 적당해 보일 수 있는 요령을 완벽히 깨우치기까지 했었다. 선·후임, 동기 가릴 것 없이 함께 지내는 이들과의 생활도 나름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사는 게 썩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바보가 또 없지만. 자연스레 어떻게든 이 구렁텅이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목적은 흐려졌다. 마음속의 불씨는 사그라져 전역을 100일 남겼을 때부터는 날짜를 세면서도 도인마냥 모든 것에 무던해진 채로 버텼었다. 마치 <어린 왕자> 속 왜 그래야 하는지는 잊은 채로 끊임없이 버티던 술주정뱅이 아저씨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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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무언의 'Alright'이다.


Alright, 우리 모두의 주문


소시민들은 안 그래도 줄곧 그래왔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더 열렬히 버티고 있다. 매주 토요일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광장에 나오진 못하더라도 고된 일상 속에서도 연이은 기운 빠지는 소식에 꾸준히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도 저기 저 파란 기와집에 머물고 있는 대통령까지. 다만, 대통령이 오기나 자존심 같은 유치하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철봉 매달리기를 하는 어린아이 같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쨌든 뚜렷한 목적과 이유가 있는 갓 입대한 한 청년과도 같다. 누구의 버팀이 더 강인할 것이며, 또 누구의 버팀이 더 빠르게 희미해질 것 같은가? 모르긴 몰라도 지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은 쉽사리 꺾이지 않을 것이다.


'Alright'은 그런 대통령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망각의 말이다. 놀랍게도 사태의 심각성을 지금도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표면적인 사과만을 반복하며 불리한 부분을 면피하는 태도를 보고 있으면, 여전히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주문을 걸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하루빨리 이제는 괜찮지 않다는 걸 인지했으면 한다. 반면, 시민들에게 'Alright'은 서로를 다독이는 응원의 말이다. 그 말을 이 힘든 시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외쳐줬으면 좋겠다. 시간이 흘러 왜 버티는지를 잊지 않게끔, 잠시 잊는다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말이다. 열심히 "We gon’ be Alright"이란 말을 마음속에서 되새기며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다 보면, 어쩌면 지금 우리가 버텨내고 있는 비리로 얼룩진 시대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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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들고 외쳐보자, We gon' be Alright!



글 | Loner



?Who's Lo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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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엘이 매거진팀 에디터. 

#Meerkat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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