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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4일, 백악관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블루스는 왕을 잃었고, 미국은 전설을 잃었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블루스 뮤지션 비비 킹(B.B. King)의 죽음에 대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의 애도였다. 백악관에서 비비 킹과 버락 오바마가 마이크를 주고 받으며 "Sweet Home Chicago"를 부른 게 불과 3년 전 일이었다. 평소 흑인 음악가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여 온 버락 오바마였지만, 비비 킹과의 인연, 음악가로서의 비비 킹의 위치를 떠올린다면 그의 애도는 단순한 형식, 그 이상이었음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40년대에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비비 킹은 50년대의 시작과 함께 빛을 봤다. “3 O'Clock Blues"가 알앤비 차트 넘버원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대부분 싱글이 탑텐에 안착했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60년대가 되자 블루스는 대중음악의 두 갈래로 뻗어 나갔다. 리듬앤블루스를 거쳐 탄생한 소울과 로큰롤을 거쳐 탄생한 록으로 양분됐다. 록과 소울의 시대를 맞이하자 블루스는 대중음악계 뒤편으로 밀려났다.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같은 대중적인 록 뮤지션들의 음악적 뿌리가 블루스에 있단 걸 알아챈 많은 백인들이 블루스를 찾아듣는 현상이 생기기도 했으나, 블루스는 옛 스타일이자 비주류 음악이 된 지 오래였다. 그렇게 록, 소울 음악가들이 앨범이라는 하나의 완성된 형식으로 승부를 보고 있던 60년대에 비비 킹은 여전히 싱글 하나하나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의 LP 판매량은 저조했고, 싱글들의 성적도 50년대만 못했다.
 
히피 문화가 미국을 휩쓸었던 60년대 말에 음악계는 다시 한번 변화를 겪고 있었다. 사이키델릭 음악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록은 사이키델릭 록으로, 소울은 사이키델릭 소울로 변하고 있었다. 블루스 뮤지션들도 이러한 흐름을 수용했다. 블루스 뮤지션 머디 워터스(Muddy Waters)는 사이키델릭 록을 차용한 블루스 음악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런 사운드로 더 큰 재미를 본 건 비비 킹이었다. 그가 발표한 "So Excited"는 블루스의 전통적인 사운드와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오갔다. 대중음악 애호가들도 거부감 없이 그 음악을 수용할 수 있었고, 오히려 블루스적인 사운드가 등장하는 순간엔 소리의 급격한 전환에 쾌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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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비비 킹이 유행하는 사운드를 그대로 차용한 것만은 아니었다. 머디 워터스가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내세운 앨범을 발표하며 노골적인 전략을 사용한 반면, 비비 킹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조미료 정도로만 사용했다. 그의 1969년작 [Completely Well]의 첫 곡 "So Excited"을 제외하면 나머지 공간은 전형적인 블루스곡으로 채워졌다. 바로 이어지는 "No Good"만 보더라도 블루스의 전통적인 AAB 구조와 걸걸한 음성이 전면에 드러난다. 도입부에서 하드 록의 느낌을 한껏 내보는 “Confessin' The Blues”에서도 그의 음성이나 곡 진행에서 블루스 필을 숨길 수 없다.

이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Cryin' Won't Help You Now”다. ‘울어봐야 이제는 소용없어 / 그동안 내게 못되게 굴었으니까 말야’라는 식의 내용이 핵심이다. 남성들은 여성의 눈물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기 마련인데, 비비 킹은 그런 것도 안 통하는 나쁜 남자였나 보다. 이어지는 곡은 "You're Mean"이다. 제목 그대로 ‘넌 못돼’ 정도가 될 텐데, 눈치챘듯 앞의 곡과 이어진다. 내용이나 주제뿐 아니라, 두 곡이 사실상 하나의 곡이다. 이 두 곡을 합치면 재생 시간만 17분에 이르는데, 비비 킹의 리드미컬한 코러스와 짜릿한 솔로 연주 덕분에 지겨울 새가 없다. 특히, 60년대 말과 70년대 흑인음악, 훵크의 특징인 전면에 돌출되는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는 이 곡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리듬 섹션의 강화는 곡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 B.B. King - Crying Won't Help You Now / You're Mean 


그런데 아마도 많은 이가 “Cryin' Won't Help You Now”를 최고의 곡으로 선택한 데 이견을 표할 듯하다. [Completely Well]의 마지막 곡인 "The Thrill Is Gone"이 비비 킹을 상징하는 곡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도입부의 드럼 소리와 비비 킹의 기타 첫 음만으로 알아챌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로이 호킨스(Roy Hawkins)와 릭 다넬(Rick Darnell)이 1951년에 발표한 버전이 원곡이지만, 비비 킹의 버전이 대형 히트를 기록하면서 비비 킹의 곡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알앤비 차트 3위, 팝 차트 15위에 올랐고, 제13회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에서 최우수 남성 알앤비 보컬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했다. 원곡처럼 비비 킹의 버전에도 클래식 현악기를 사용했는데,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고 두 번째 절부터 서서히 등장해 곡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는 블루스 전통의 비중을 가장 크게 가져가면서도 대중들이 공감대를 끌어낼 줄 알았다.
 
히트 싱글과 수준급 수록곡으로 채워진 이 앨범이 히트한 것은 당연했다. 팝 앨범 차트 38위와 알앤비 앨범 차트 5위에 올랐다. 앨범 차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는 게 낯설었던 그로서는 놀라운 성과였다.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블루스를 느릿하고 야릇한 춤곡으로 여기는 블루스 문외한도 비비 킹이란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그는 이후로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음악가가 된다. 최고의 블루스맨이자 최고의 음악가로, 열다섯 개의 그래미 어워드 트로피를 비롯해 수백 개의 상을 휩쓸었다. 수많은 뮤지션의 우상이었다. 평생을 두고 비비 킹이 자신이 우상임을 피력했던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2000년, 그와의 합작 앨범 [Riding With The King]을 발표했다. 에릭 클랩튼이 비비 킹을 ‘모시는’ 듯한 느낌의 앨범인데, 앨범 커버에는 비비 킹을 승용차 상석에 태우고 운전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렇게 비비 킹에 각별한 마음을 지녔던 에릭 클랩튼은 비비 킹의 사망일에 페이스북 라이브을 통해 복받치는 심정을 토로했다.
 
 
♬ B.B. King - Thie Thrill Is Gone


비비 킹은 ‘블루스의 왕’으로 칭송된다. 대중음악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았던 블루스. 그걸 대중들의 가시권까지 끌어올린 게 비비 킹이었다. 그의 죽음은 블루스의 전성기 이후, 또 하나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의미했다. 


글 |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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