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검색

[앨범] Isaiah Rashad - The Sun’s Tirade

Pepnorth2016.10.02 09:27추천수 8댓글 12

123.jpg

[앨범] Isaiah Rashad - The Sun’s Tirade

01. where u at?
02. 4r da Squaw
03. Free Lunch
04. Rope // rosefuld (Feat. SiR)
05. Wat’s Wrong (Feat. Zacari, Kendrick Lamar)
06. Park
07. Bday (Feat. Deacon Blues, Kari Faux)
08. Sikk da Shocka (Feat. Syd tha Kyd)
09. Tity and Dolla (Feat. Hugh Augustine, Jay Rock)
10. Stuck in the Mud (Feat. SZA)
11. A lot
12. AA
13. Dressed Like Rappers
14. Don’t Matter
15. Brenda
16. by geroge (outro)
17. Find a Topic (homies begged)


감상적이고도 먹먹한 비트, 그 위로 펼쳐지는 빼어난 랩 스킬과 센스 넘치는 라인들. 게다가 비트의 성향과 꽤 반대로 흐르는 우울한 내용까지. 아이재아 라샤드(Isaiah Rashad, 이하 라샤드)의 첫 EP [Cilvia Demo]는 실력과 개성 뿐만 아니라, 래퍼를 넘어 인간 라샤드의 정체성이 한가득 끈끈히 응축된 작품이었다. 발매 직후 평단의 호평도 잇따랐다. 탑 독 엔터테인먼트(Top Dawg Entertainment, 이하 TDE)에 블랙 히피(Black Hippy) 이외의 또 다른 주전급 래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라샤드가 2년만에 발표한 첫 번째 정규 앨범 [The Sun’s Tirade]는 먹먹한 프로듀싱이나 앨범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 등 전작 [Cilvia Demo] EP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하지만 구석 구석에 변화의 흔적이 적잖이 숨어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랩 외적인 스타일의 변화다. 그의 장기라고도 할 수 있는 거칠고도 타이트한 랩의 비중은 다소 줄었고, 그 빈자리에는 비교적 흐물거리고, 때로는 축축 쳐지는 듯한 랩이 적당히 꽈리를 틀었다.


♬ Isaiah Rashad - Park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과 비슷한 구석이 많지만, 그렇다고 마냥 같은 것은 아니다. 스타일을 단순히 따라한 게 아닌, 잘 체화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개성있게 구사해낸 덕이다. 이를테면, 시종일관 다양한 플로우를 대입하되, 그 속에 은은하게 랩스킬을 드러내고, 한편으로는 각 곡의 구성을 다채롭게 짜고 지속적으로 변주하며 작중 흐름을 깔끔하게 다잡는 식이다. 이렇게 외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삼은 후, 라샤드는 가사에 특유의 우울함이나 비참함 같은 특징적인 감성을 넘쳐 흐를 정도로 꾹꾹 눌러 담는다. 그 시작은 앨범 초중반에 자리한 “Park”와 “Bday”이다. 그 뒤 시드(Syd)와 함께한 “Sikka Da Shocka”를 거치며 감정적인 분위기는 한차례 고조되고, “Stuck in the Mud”의 전반부를 지나 후반부에 이를 때는 마치 가슴을 짓누르듯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 분위기는 후반부에 위치한 “Dressed Like Rapper”까지 한동안 계속된다. 전체적으로 전작보다 많이 압축되고, 차분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건 이 부분의 흐름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우울함’이 핵심인 것 같지만, 사실 앨범은 우울함에서의 ‘회복’에 조금 더 방점이 찍혀있다. 두 아버지 아래에서 성장하며 우울함과 약물 중독에 빠지는 바람에 TDE에서 쫓겨날 뻔했던 '문제아 라샤드'가 아닌,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삶을 감내하고 돈을 벌며 성장해야하는 '아버지 라샤드'가 됐기 때문이다. 탈선한 삶에서 현실의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번 음반의 전체적인 흐름은 그 성장의 궤적을 닮았다. 급작스레 분위기가 전환되는 “Don’t Matter” 직전까지의 이야기는 그 과정을 잘 표현하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그게 철저한 계산에 의거했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 Isaiah Rashad - 4r da Sqraw


이 흐름은 앨범 초반부에 자리한 “4r da Sqraw”에서부터 조금씩 감지할 수 있다. 아들 야리(Yari)의 웅얼거림을 후렴의 포인트로(By the beer, by ear, by boo)로 쓰며 아들에 대한 걱정과 책임감을 드러내는 한편, ‘집세’나 ‘현실’ 같은 단어를 통해 지금의 상황을 직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아가 뮤직비디오에는 아들과 함께 뛰어 노는 모습을 대놓고 담아내기도 했다. 또한 후반부의 “Don’t Matter”부터 “Find a Topic” 까지는 전과 달라진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며, 그에 앞서 “Bday”에는 그의 어머니가 ‘(어른의 현실을 맞이하기에) 특별한 나이’라고 말했다는 스물 다섯 살이 된 것을 논하기도 한다. 라샤드는 이 모든 이야기를 역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지하고 차분한 톤으로 풀어낸다. 그 내용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말이다. 늘 한 결 같이 유지되는 온도는 라샤드의 음악이 지닌 뚜렷한 장점이자 성향이다. 동시에 다른 블랙 히피 멤버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딱히 꿇리지 않는 이유이다.


♬ Isaiah Rashad - Free Lunch


그렇다고 해서 라샤드가 감각적인 스킬과 플로우라는 랩의 원초적 요소를 생략한 건 아니다. "Free Lunch", "4r Da Squaw"에서는 쫄깃한 훅 메이킹을 선보이고, 그 외 몇몇 트랙에서는 여전한 랩 실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 함께한 “Wat’s Wrong”이다. 이 곡에서 라샤드는 엇박을 타며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고, 반대로 켄드릭 라마는 톤을 살짝 올린 채 중간중간 속사포를 배치하며 랩의 플로우를 살린다. 서로 지닌 개성과 포인트가 다르긴 하지만, 1절과 3절에서 각각 다른 스타일로 비트를 가지고 노는 라샤드의 퍼포먼스는 켄드릭 라마의 포스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실제로 라샤드는 켄드릭 라마가 피처링한 부분을 듣고 "'역시 잘하네’라고 느꼈지만, 나 또한 굉장히 잘 해놨기 때문에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았다.”라며 랩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렇게 앨범에 담긴 이야기의 틀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 구조가 꽤 훌륭한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전곡을 다 듣기 전까지는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구조의 문제는 아니다. 가사 대부분의 내용이 얼핏 보면 다소 두루뭉술한 탓이다. 계속 이 얘기 저 얘기 두서 없이 꺼내는 식이라 주제가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어려운 곡이 많다. 훨씬 눅눅하고 쳐진 랩의 기운까지 더해서 듣다보면 적잖은 피로감을 맛볼 수 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킬링 트랙이 배치되는 앨범의 중후반부에는 기술적인 킬링 트랙이 아닌, 실제로 청자의 감정을 극한으로 몰고가는 트랙만 가득하다. 그래서 전작의 수록곡 “Soliloquy”, “Menthol”, “Shot You Down” 등이 지녔던 에너지를 바라거나, 가사적인 쾌감에 귀를 기울이는 청자는 듣는 맛이 덜하고 재미가 없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 Isaiah Rashad - Tity And Dolla (Live)


이런 단점은 청자의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큰 장점으로 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애매하다는 건 곧 어떤 식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는 걸 의미한다. 라샤드는 한 인터뷰에서 “귀가 열린대로 들어주길 바란다.”라며 앨범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암시한 바 있다. 즉, 아티스트의 창작물 속 맥락이나 메시지의 포인트가 의도적으로 헐겁게 만들어졌다면, 그에 대한 감상은 오롯이 청자의 몫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The Sun's Tirade]는 명확한 메시지보다 삶의 이런 저런 길이 얽힌 커다란 그물을 던지는 것과도 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라샤드가 그려내는 이야기의 외연은 확장됐고, 구사하는 음악의 장르적 폭은 한층 넓어졌다. [Cilvia Demo] EP와 비슷한 트랙 수를 갖췄음에도, 이번 작품이 EP가 아닌 정규 앨범으로 자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아티스트로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글 | Pepnorth


신고
댓글 12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