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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타블로 (Tablo)

Melo2013.11.15 19:04추천수 89댓글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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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alon] 타블로(Tablo)

많은 사람들의 추억에 자리한 팀이자 지금도 여전한 에픽하이(Epik High)가 10주년을 맞이하였다. 수많은 젊은 세대의 아티스트들은 에픽하이의 음악을 들으며 랩을 하는 것을 꿈꿨고, 비단 그런 아티스트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가사, 그들의 행보로부터 영감을 얻고는 하였다. 그리고 그런 에픽하이에서도 가장 왕성한 개인 활동을 하며 개인의 역량과 성향을 마음껏 드러냈던 멤버라면 역시 타블로(Tablo)일 것이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두 명의 인터뷰어들도 그와 함께 10년을 고스란히 보내왔고,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꽤나 긴장되고 기대가 됐다. 사실 그냥 인터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만큼 읽는 이들에게도 또 한 번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을 것만 느낌이 강하게 든다. 타블로를 만나고 왔다.


LE: 반갑습니다. 먼저 힙합엘이 회원분들께 인사 부탁 드릴게요.

T: 안녕하세요, 여러분. 타블로입니다. 오래간만입니다.





LE: 최근에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재활 치료받고 있어요. 어쩌다 저답지 않게 조용히 살고 있네요.





LE: 어깨는 어쩌다 다치신 건가요?

까불다가 다쳤습니다. (웃음)





LE: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TV에 다시 나오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전편들을 몇 번 본 적 있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지금 팔을 하나밖에 못 쓰고 있고, 첫 몇 번 촬영했을 때는 (다친 게) 더 심했기 때문에 많이 어려웠어요. 애기를 키울 때는 손이 네 개 있어도 부족하거든요. 한쪽 팔로 하기는 매우 어려웠죠. 하지만 카메라가 있든 없든 어차피 제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혜정이가 없는 게 조금 힘들긴 하죠. 엄마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LE: 보도자료를 살펴보다 보니까 담당 PD가 수월하게 섭외하였다고 들었는데, 많은 것을 공개 당한 입장에서 또 공개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제 삶의 전부가 사람들의 가십거리, 흥밋거리가 된 지 오래됐기 때문에 저 하나에 있어서는… 사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하루를 이렇게 공유하게 된 건 꾸준히 고민돼요. 하루와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고 기록해 놓을 수 있음에 행복하고, 제 눈에 너무나 아름다운 하루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미안함이 있고, 두려움이 있어요. 근데… 저의 어머니와 혜정이의 부모님이 너무 좋아해요. 일요일마다 ‘슈돌’ 때문에 가족이 하나가 되는 게 느껴져서 기뻐요.





LE: 따님, 하루 양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혹시 하루 양이 힙합, 혹은 음악을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로린힐(Lauryn Hill)의 [Miseducation] 앨범을 선물해 줄 겁니다.





LE: 최근에 에픽하이 데뷔 10주년 영상 및 공개곡을 공개하셨고, 기념 앨범도 곧 나온다고 들었는데요. 

아니요. 10주년을 특별히 기념할 이유가 있나 싶어요. 숫자로 따졌을 때는 의미 있는 숫자일 수도 있고, 그걸 의미 깊게 여겨주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고마운데요. 다른 날과 다를 게 없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에요. 회사와 기념 영상에 대해서 의논할 때도 ‘10주년 영상을 찍을만한 게 있나.’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평상시에 작업하는 걸 찍어서 올리자고 했죠. 물론, 조금은 더 있어 보이게 찍었지만… (웃음) 작업하고 있는 모습이 10주년인 우리의 현 주소인 것 같아요.




LE: 그럼 공개곡은 어떤 의미에서 나오게 된 건가요?

10주년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420”은 DJ 투컷(DJ Tukutz – 이하 ‘투컷’)의 MPC에 있었던 트랙 중 하나에요. 영상을 찍다가 뭐냐고 물었더니 옛날에 쓰던 zip 디스크에서 찾은 트랙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10주년인데, 우릴 응원해준 팬들과 사람들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이런 옛 비트에 지난 10년을 함께 했던 친구들, 형들, 동생들이랑 어렸을 때 좋아했던 ‘떼곡’ 하나 하자고… (웃음) 공개 며칠 전에 급하게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진행했어요. 모여서 녹음한 사람들도 있고, 바빠서 벌스를 보낸 사람들도 있고… 말 그대로 번개송.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와 슈프림팀(Supreme Team)이 참여를 못 하게 된 게 많이 아쉬워요.





LE: 이제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들어가 볼게요. 일단 가장 기본적인 질문으로 힙합음악은 언제, 어떤 계기로 듣게 되고 시작하시게 됐나요?

제 기억으로, 제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힙합곡 중 하나는 “Nuthin’ But A ‘G’ Thang”이었고요. 제가 처음으로 구매했던 힙합 앨범 중엔 스눕 독(Snoop Dogg)의 [Doggystyle]과 나스(Nas)의 [Illmatic]이 있었어요. 나스의 앨범은 나오는 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표지에 ‘Explicit Lyrics’가 붙어있는 걸 보고 ‘아, 이거 욕 나온다.’ 하고 샀어요. (전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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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런 앨범들이 나온 것이 90년대 초반인데 정말 어릴 때부터 접하셨네요.

네. 그때는 듣기만 했고 제가 언젠가 랩퍼가 될 거라는 상상은… 할 이유가 없었죠.





LE: 인터넷을 찾아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 김건모 씨의 5집 앨범에 수록된 “Rainy Christmas”의 작사가로 참여했다고 나오더라고요. 사실만 놓고 보면 뜬금없다는 느낌이 강한데요. 어떤 인연으로 하시게 된 건가요?

어떻게 보면 가요계 데뷔인데, 그때 저는 고등학생… 제가 쓴 시가 어떻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달되고 전달되다가 가수 김건모에게까지 간 거죠. 선배님이 저에게 작사를 맡기고 싶다고 하셔서 어린 마음에 ‘와, 내가 김건모와 함께 작업할 수 있다니…’라는 생각에 마냥 신 났었죠. 많은 곡을 작업했는데 그 한 노래만 나왔던 거예요. 워낙 어렸기에, 지금의 저는 랩퍼이기에, 뜬금없는 시작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언제나 리릭시스트(Lyricist)였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제가 시와 소설을 썼을 때도 알게 모르게 리릭시스트의 마음으로 썼던 것 같아요. 정서나 표현의 방식들을 보면요. 지금도 그래요. 제가 작곡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서 멜로디를 전할 때도, 저는 제가 반드시 표현해야만 하는 가사가 머물 곳을 마련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힙합을 시작한 것 같고요. 제가 쓰고 싶은, 하고 싶은 얘기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장르가 랩이었던 거죠. 건모 선배님과의 작업은 그 기쁨을 처음으로 알려준 중요한 추억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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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2001년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음악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활동을 이어가셨나요? 2002년에 The Konexion 컴필레이션 앨범의 “Wow Who”에 참여하신 걸 보면 그전부터 함께 음악하는 동료들을 만나오셨던 걸로 보이는데요.

시작을 얘기하려면… 그전을 얘기해야 하는데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들이 많아요. 대학생 시절 뉴욕에서 영화 지망생으로 조감독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만 해도 졸업하면 영화판으로 들어갈 거라는 꿈을 꾸고 있었죠. 뉴욕에서 만들고 있던 영화의 투자자가 그 당시 크림 레코즈(CREAM Records)라고, 씨비매스(CB Mass)가 있던 회사의 오너였어요. 그때 그 오너 분이 뉴욕에 방문하셨었는데, 제가 맨날 귀에 헤드폰 꽂고 있으니까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셔서 취미로 음악 한다고 했었죠. 제가 만든 음악을 들려 달라고 하셔서 데모를 들려 드렸더니 가수 하고 싶은 생각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땐 그저 흥미로운 일로 넘겼어요. 근데 그때의 그 데모 앨범이 주변 친구들과 그분으로 인해 생각보다 많이 퍼지면서 그 후로도 비슷한 제안들은 있었어요. 보통 여름방학 땐 한국에 와서 알바를 했었는데, JYP에서도 가수 할 생각 있느냐고 갑자기 전화가 왔었고… 심지어 얼떨결에 오디션까지 보게 된 해프닝도 있었죠. (웃음) 설레기도 하는 가능성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만 해도 진지하게 도전해 볼 생각은 없었어요.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은 씨비매스 2집을 들은 순간이었어요. 나오자마자 듣고 ‘와, 이거 너무 좋다.’, ‘나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그해 겨울 방학 때 그 크림 레코즈의 오너를 찾아가서 씨비매스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고, 씨비매스를 만나게 되었고, 씨비매스도 저에게 관심을 가지는 걸 보고 ‘한 번 도전해 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 후 제이윈 A.K.A 다이노소울(J-Win A.K.A Dynosoul – 이하 ‘재유’)이라는 형을 만나고, 미쓰라진 (이하 ‘미쓰라’)도 만났죠. 그때는 재유 형이랑 미쓰라, 두 명이 같은 팀이었어요. 케이라이더스(K-Ryders). 그때만 해도 제가 미쓰라와 팀을 하게 될 줄은 몰랐고, 씨비매스 쪽에서도 저에게 솔로를 권했어요. 마음을 먹고 다시 학교에 가서 졸업을 위한 마무리 공부를 하고 있었을 때, 재유 형에게 전화가 왔어요. 컴필레이션 앨범에 타이거 JK(Tiger JK) 형이 만든 곡이 있는데 제가 참여하길 원한다고… 아직은 국내힙합 씬에서 한 게 아예 없는 상태였기에 많이 놀랐고 기뻤죠. 학업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녹음했어요. “Wow Who”라는 노래를요. 그 자리에서 가사를 쓰고 뭐가 뭔지도 모르며 ‘와, 정말 시작하네?’, ‘와, 타이거 JK다.’ 이러면서 후다닥 했어요. (웃음) 개인적으로 제가 만족해하는 데뷔작은 아니에요. 사실 사람들이 물어보면 제 데뷔작은 TBNY의 “유서”, 혹은 씨비매스의 “동네 한 바퀴 Remix”라고 얘기해요. (전원 웃음) 이렇게 파헤쳐서 오실 줄은… 창피해요. (웃음)





LE: 지금의 에픽하이의 멤버인 미쓰라 님과 투컷 님을 만난 것도 그쯤이라고 보면 될까요?

미쓰라는 말씀드린 그 겨울 방학 때 만났어요. 투컷은 제가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2002년 봄에 만났고요. 그 전에 이미 투컷의 믹스셋들을 재유 형이 보내주셨었거든요. 그 당시에 제가 다일레이티드 피플스(Dilated Peoples)도 좋아했기 때문에 ‘그래! DJ가 있어야 힙합이지.’라는 생각에 돌아오자마자 만났어요. 원래는 멤버가 아니었어요. 사실 투컷은 1집 계약하기 전까지는 객원 DJ였어요. 씨비매스 DJ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약하기 직전에 투컷이 멤버를 하겠다고… (전원 웃음) 똑똑한 녀석.





LE: 계약이 울림 엔터테인먼트(Woollim Entertainment – 이하 ‘울림’)과의 계약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전에도 계약은 했었죠. 매스미디아(MASSMEDIA)라는 회사와 계약을 했었는데, 그때는 저와 미쓰라 둘이서 했던 거고요. 그 계약은 아시다시피… 결과가 안 좋았죠. 회사와 안 좋게 끝났다기보다는 커빈(Curbin)의 어리석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게 된 일이 생겼던 거죠.





LE: 다일레이티드 피플스 얘기를 잠깐 해주셨는데, 후에 라카(Rakaa)와 함께 작업하셨을 때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저희 음악에 참여하기 전에 라카와 LA에서 자주 놀았어요. 친구가 되었죠. 신기했어요.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팀의 랩퍼가 나와 프리스타일 하며 놀고 있다. 우리의 노래를 함께한다.’라는 생각과 함께… 알 수 없어요,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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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다일레이티드 피플스는 2MC 1DJ 구조이고, 또 에픽하이도 비슷한 구조에요. 오래전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던 팀 중에 2MC 1DJ는 아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도 3인조 구조를 띠고 있는데요. 혹시 특별히 3인조에 대한 애착이 있으신가요? 제일 좋은 조합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DJ DOC도 3인조, 서태지와 아이들도 3인조. 그러네요. 근데 꼭 3인조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고 하기에는 듀스(DEUX)도 미친 듯이 좋아했어요. 어쩌다가 삼인조가 된 거죠, 뭐. (웃음) 생각해보니 제가 존경했던 모든 대선배들과 작업을 했네요. 서태지 선배님과는 15주년 콘서트를 통해 교류했고, 양현석 선배님은 지금 저의 사장님이시고, 이현도 선배님과는 “Paris”를 함께 만들었죠. 복이 많았네요, 저란 사람.





LE: 인제 와서 보면 에픽하이를 정말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했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타블로 님이 생각하시는 두 멤버의 장단점은 어떤 것인가요?

잘 모르겠어요. 착하고 좋은 애들이니까… 근데 나쁜 애들만 아니었으면 딴 사람들이었어도 이 정도는 친해지지 않았을까요? 웬만한 개새끼들만 아니었으면 이 정도는 마음이 맞게 되지 않았을까요? (전원 웃음) 





LE: 사실 에픽하이와 타블로 님의 역사의 시작은 컴필레이션 앨범의 자잘한 참여를 빼고 나면 1집 앨범인 [Map Of The Human Soul]인데요. 음악 자체는 가요계 풍토와 비슷한 편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적극적인 공중파 출연과 뮤직비디오 플레잉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울림의 역할이 컸을 것이라 보는데요. 우선 울림과는 어떻게 함께 하시게 된 건지 궁금해요.

그 당시 차트 음악들과는 완전 달랐던 앨범이었죠. 울림과의 계약은 제가 특별히 원해서 한 건 아니고요. 저는 울림이라는 회사가 뭔지도 몰랐어요, 사실. 매스미디아에서의 그 일이 있고 나서 우리는 마스터링까지 된 1집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레코딩과 믹스 마스터 비용을 낼 수 없는 황당한 상황이었어요. 그게 몇 천만 원이나 되는 액수였는데, 아무리 알바를 해도 그 빚을 갚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 ‘우리의 꿈은 여기서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는구나.’라며 단념을 하고 있었던 때에요. 씨비매스가 깨지면서 다이나믹 듀오는 비교적으로 쉽게 다른 회사로 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고, 결국 갔고요. 이미 가치가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씨비매스만 믿고 있었기에 갈 곳이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그때 재유 형이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가 음악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여기저기 매일 돌아다니셨어요. 우리에 대한 이력서 같은 걸 만들어서 무수한 회사에 돌리고 여기저기 찾아가 애원하고 그러셨죠. 그러다가 소개를 통해 울림을 만나게 되셨고, 자신의 곡비까지 포기해 가면서 우리를 계약서 앞까지 이끌어주셨어요. 재미있는 사실 하나. 우리가 울림과 만나야 하는 전날, 저는 아직 무명이었던 홍철이 형(노홍철)과 어린 시절 친구들이랑 술 먹다가 길바닥에서 잤어요. 그땐 음악의 꿈을 포기하려는 과정이었기에 많이 방황하고 있었거든요. 아침에 눈 떠 보니 문자가 와있더라고요. 오늘 계약한다고… (웃음) 그래서 그 상태 그대로 갔어요. 엉망진창 모습으로요. 재미있게도 그 날 홍철이 형이랑 친구들이랑 찍었던 사진이 인터넷에 있어요.





LE: 당시 울림은 지금처럼 기반이 있는 회사가 아니고 이제 막 시작을 하는 회사였나요?

동률이 형(김동률)이 계약을 이미 했을 때죠. 물론 곧 떠나셨지만요. 그 당시에 저는 솔직히 이 업계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고, 가요계에 대해서 진심으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재고 따지고 그럴 것도 없었죠. 그냥 제가 들고 있는 이 마스터를 누가 내준다고 하니까 ‘그래, 내자.’라는 생각이었죠.





LE: 1집 앨범 자체가 이미 마스터가 확실하게 나온 상태에서 회사만 구하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거군요.

네. 마스터를 들고 거의 한 1년을 견뎠을 거예요.





LE: 지금의 울림은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회사가 되었어요. 악감정이 없다면 소회가 남다를 법도 해요. 어떤가요?

관심 없어요.





LE: 당시에 앨범이 그리 대중적인 편이 아니었고, 울림도 지금의 매니지먼트,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자리 잡기 이전의 회사였을 텐데요. 1집이 아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면서 회사 차원에서나 본인들 입장에서나 느낀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아니면 앨범을 내기 전 회사에서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그 당시 업계나 음악 씬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았어요. 대중적인 타이틀곡을 만든다고 “I Remember”라는 곡을 만들었는데, 그게 80년대에 대한 기억이잖아요. 그런 주제를 대중적인 주제라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그때의 우리들의 순수한 무지를 증명하는 것 같아요. 그 당시 활동하는 걸 영상으로 보면 진짜 엉망이에요. 뭘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LE: 무대에서의 모습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힙합만 좋아하고 랩만 하고 그런 것만 생각했지, TV에 나가서 뭘 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거든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의 동선부터 의상까지, 전반적으로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했어요. 과거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멍청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누가 우리에게 억지로 시켰다고 하기에는 잘 모르니까 좋다고 한 거죠, 우리도. 우리 자신들을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지를 몰랐고,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으니까요. 아니, 사실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음악 만드는 것 외에는요. (앨범은) 만 장이 나갔던 걸로 기억나요. 지금 지표로 보면 나쁘지 않았던 건데, 우리가 소위 말하는 업계 시선에서 봤을 때는 거의 있으나 마나 한 앨범과 활동이었죠.





LE: 대중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사실 많은 힙합 팬들, 에픽하이 팬들 중에 에픽하이의 초창기, 혹은 전체 커리어로 따져도 최고의 앨범으로 1집을 꼽는 분들이 많아요. 아무래도 힙합의 진득한 맛, 본연의 맛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본인은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에게는 1집이 첫걸음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의미가 있는데요. 추억으로 봤을 때는 큰 의미가 있지만, 음악적으로는 저 자신의 미흡함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 앨범이에요. 랩퍼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지도 얼마 안 되었을 때고, 들어보면 정리가 안 되어 있는데… 마음에 안 들어요. 취미로 음악 할 땐 영어로만 랩을 하다가 에픽하이를 만든 후 한국어로 랩을 해야 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사전 뒤져가면서 했으니까요. 제 목소리가 날아다니는 것도 싫어요. 물론 어려서 그랬던 것도 있겠지만… 아직 제 톤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녹음했다는 점이 아쉬워요. 1집을 명반이라고 얘기하시는 분들은 아마 트랙들이 좋아서 그런 거겠죠? 재유 형이 대부분 트랙을 만들었고, 개코와 최자도 참여했고… 제가 보기에는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의 트랙들이 좋았기 때문에 명반이라고 해주는 거지, 특별히 저희의 역량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저에게는 음악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앨범은 못 되어요.





LE: 사실 그런 조악한 맛은 우탱클랜(Wu-Tang Clan)이 가장 먼저 냈던 앨범 [Enter The Wu-Tang (36 Chambers)]와 비슷한 이유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에이, 우탱클랜이랑 비교하면 안 되죠. (웃음) 우탱클랜은 그 조악함을 진짜 프로답게, 일부러 그렇게 했던 거고요. 우리는 그 당시에 아마추어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나온 거니까 다르죠.





LE: 이제 딱 10년째가 되어서 1집 앨범 트랙 중에 이 트랙이 참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10년 뒤에 (Dear Me)”. 혹시 최근에 들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10주년 영상 속에 흐르는 피아노 음악이 “10년 뒤에 (Dear Me)”를 플래닛 쉬버(Planet Shiver)의 필터(Philtre)가 연주한 거예요. 가사가 얼추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그땐 10년이 지나면 우리가 많이 변해 있을 거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린 여전히 그때의 엔지니어와 작업하고 있고, 그때 만난 똑같은 친구들과 똑같이 음악하고 놀고 있어요. 우리의 삶에 들락날락했던 사람들은 어딜 가서도 들락날락할 사람들이었고요. 이 일을 하면서 많이 듣게 되었던 비아냥이 ‘에픽하이 변했다.’인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세요. 중요한 것 중에 변한 건 거의 없어요.





LE: 1집에서 2집으로 건너오면서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이라 하면 역시 음악적인 색깔과 무게감, 그리고 프로듀서진인 거 같아요. 개코 님도 1집에서 프로듀싱을 많이 했는데, 다이나믹 듀오와 많은 인연이 있어요. 같은 무브먼트(Movement)이기도 하고 한데… 에픽하이, 타블로에게 다이나믹 듀오는 어떤 존재인가요?

은인들이죠. 일단 저와 제 팀이 음악을 할 수 있게 첫 푸쉬를 해 준 사람들이니까… 그거에 대해서 영원히 고마워하죠.





LE: 무브먼트는 요즘 특별히 뭉치는 경우나 합동 공연을 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많이 없는 것 같던데, 어떤 상태인 건가요? 개인적인 연락은 있는데 활동이 없는 건가요?

이 질문의 정답을 아는 사람은 아마 무브먼트 내에서도 단 한 명도 없을 거예요. 친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건 당연히 있죠. 전체적으로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시는 것 같은데, 정확한 정보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진짜 몰라. (전원 웃음)





LE: 예민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올해 가장 큰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컨트롤 대란이었는데요. 다이나믹 듀오가 태풍의 중심이었고 해서 보시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드셨을 것 같아요.

컨트롤… 뭐라고 해야 하죠?





LE: 대란… (웃음)

대란. 그 ‘대란’이 일어날 때, 에픽하이는 태국에서 락 페스티벌 공연을 하고 있었어요. 그곳에 있는 동안 그 일의 시작과 끝이 모두 일어났어요. 그래서 저희는 데이터 로밍이나 그런 걸 신경 쓰느라 (웃음) 무슨 일이 왜 일어난 건지도 확실히 몰랐어요. 가사들 속 내용은 저희도 처음으로 접하는 거였고요. 돌아왔을 때는 이미 일단락된 상황이었죠. 스윙스(Swings)는 잘 모르고, 나머지 구성원들은 전부 저와 친해요. 센스(E-Sens)도, 쌈디(Simon D)도, 최자, 개코도 이런저런 걸 따질 필요없이 안타까워요. 제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팀 하나가 없어져서 아쉬움이 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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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혹시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셨나요?

누가 저를 건드릴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웃음)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가, 저라는 사람은 타진요 사건이 증명했듯이 장점마저도 쉽게 약점이 되는 공격하기 쉬운 타겟이니까요. 아시다시피 저를 공격하면 어느 정도의 관심도나 호응도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혜택도 있겠죠. 저에게는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타블로’는 약점투성이란 말이에요. 이미 제 약점들이 뭐 뭐 뭐인지 매뉴얼처럼 공개되어있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많고, 이런 디스 잔치가 일어났는데, ‘누구 한 명은 나를 까겠지…’라고 지나가듯 생각은 했어요. 근데 아무도 안 하더라고요. (웃음) 관심 밖?





LE: 다시 프로듀싱 얘기로 넘어오면, 2집에서는 타블로 님도 프로듀싱 진에 이름을 올리는데요. 프로듀싱을 시작한 게 1집에서 2집 사이의 시기였나요?

사실 트랙메이커로서의 저의 데뷔곡은 다이나믹 듀오의 “이력서”라는 곡이에요. 아무튼, 저와 투컷이 앨범을 전반적으로 프로듀싱 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보다 1집의 부진이었죠. 1집 활동이 끝났을 때, 회사에서 저희를 불러서 ‘외부 작곡가들에게 페이를 줄 수 없다. 제작비는 이것밖에 못 주니 너희가 직접 만들든가 말든가 해라.’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러면서도 히트곡을 바라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할 줄도 모르는데… 그냥 질렀었어요. '만들 수 있다.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하느냐?’라고 물었더니 나온 대답이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나 엠플로(M-Flo)였어요. 그래서 저는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다 만들겠다.'라고 질렀죠. 멤버들은 나오자마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질렀느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때 몇 달 동안 이것저것 되는 대로 만들다가 나온 게 "평화의 날"이었어요. 엠플로스러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죠. '살아야지, 약속은 지켜야지.'라는 생각에 만든 거죠. 그러면서 투컷도 1집 때부터 (작곡에 대한) 로망은 있었으니까 트랙을 만들고 하다 보니 한 앨범을 완성하게 된 거예요. 저희가 프로듀싱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그렇게 된 건 아니고, 안 하면 더 이상 음악을 못하게 될까 봐 절박함으로 밀어붙인 거죠. 다행히 "평화의 날"이 잘 돼서, 회사도 '뭐지? 할 줄 알았네?'라는 반응이었고, 저희도 스스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거죠. "평화의 날” 덕분에 그때까지 한 푼도 벌지 못하던 저희가 원룸도 구할 수 있었고, 말 그대로 먹고살 수 있었기 때문에 고마운 곡이에요. 그리고 그때의 작업들 덕분에 올 시퀀싱 작법으로 아예 갈아탈 수 있었죠.




LE: "평화의 날"을 처음 들고 갔을 때 회사의 반응은 어땠나요?

울림은 "Lady"라는 곡을 타이틀로 하라고 했어요. 서현승 감독님이 뮤직비디오를 찍기로 했고, 이미 "Lady"로 콘티가 다 잡혀있었죠. 미친놈이었던 제가 회사 몰래, 촬영 전 날 새벽에, 서현승 감독에게 전화해서 "평화의 날"로 콘티를 바꿔 오라고 부탁했죠. 우리 마음대로 그 다음 날 "평화의 날"로 찍고 있었어요. 그 당시 사장님이 뒤늦게 오셔서 그 사실을 보고 의자를 던지고 나가셨어요. 뭐하는 거냐고. (웃음) 결국 제 판단이 맞았어요.





LE: "평화의 날"이 그동안 한 푼도 벌지 못하던 돈을 벌게 해준 곡이라 하셨는데, 에픽하이의 음악 내부에서 대중적인 트랙과 대중적이지 않은 트랙 자체가 양분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2집부터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그 양분이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자 딜레마인데요. 제 안에는 두 가지의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Lesson One (Tablo’s Word)", "출처"같은 곡을 좋아하며 만드는 제가 있고요. "우산"이나 “Airbag”같은 노래를 좋아하며 만드는 제가 있어요. 동일한 비중으로요. 매우 다른 색깔 둘을 한 틀 안에서 만드니까 그걸 에픽하이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서 다 해버려서 우리 팀이 사랑을 받는 것 같긴 한데, 부작용도 생기죠. 호불호도 생기고, 팬들 사이에서도 갈라지고… 줏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안 할 수는 없거든요. 굳이 한색을 접어야 한다면 저는 차라리 음악 자체를 접는 게 나아요.





LE: 예전 라디오스타에 출연하셨을 때 보니까 처음에는 대중적인 코드의 트랙에 투컷 님이 강력하게 저항하다가 통장을 보고 나서 그다음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대중적으로 가자고 했다는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그런 것이나 투컷 씨가 만드시는 트랙들을 보면 확실히 타블로 씨가 만드는 트랙들의 스펙트럼보다는 좁지만, 힙합에 가까운 쪽인 것 같기도 해요. 실제로 두 분의 성향에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요. (웃음)

저는 드레이크(Drake)를 매우 좋아하고 투컷은 드레이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설명되나요?





LE: 그런 대중적인 것과 대중적이지 않은 것, 무조건 잘 팔렸다고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순 없지만, "Fly" 가 그 이후에 잘 된 케이스였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대중적인 것과 예술적인 부분에서의 접점을 어느 정도 잘 찾았다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런 딜레마에 대한 고민은 당시에 어느 정도 해결해주지는 않았나요?

원래 "Fly"는 에픽하이를 위한 곡이 아니었어요. 그 당시 탤런트 박신혜 씨가 가수로 데뷔를 하려고 했었는데, 이승환 선배님께서 타이틀 곡을 저에게 부탁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어떤 음악을 원하시는지 물어봤더니 승환이 형도 엠플로같은 걸 만들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엠플로가 인기가 많았어요. (웃음) "Fly"는 박신혜 씨를 위해서, 제가 생각하는 그 사람의 색깔에 맞춰서 만든 곡이었어요. 근데, 다 만들고 생각을 해보니 색깔 이런 걸 떠나서 '이건 에픽하이가 해야겠다. 이걸 에픽하이가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겠다. 확실히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우리가 받아야 하는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겠다. 이걸로 인해 우리가 하기 싫은 걸 좀 덜 할 수 있겠지.'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에픽하이의 곡이 된 거예요. 저도 그 노래가 그렇게 잘 될 줄은 몰랐어요. 놀랐고, 고마웠고 지금도 공연할 때마다 ‘Fly’를 부르는데, 그 노래를 할 때엔 그 당시로 돌아가요. 관객들도, 저희도 그 당시로 돌아가 기쁜 생각이 많이 들어요. 동시에 조금 슬프기도 해요. 그런 날들이 갈수록 저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게요.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Fly” 때문에 우리가 정상에 올라섰는데, “Fly” 때문에 회사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3집이 신인 계약의 끝에 나온 건데, 그 당시만 해도 음원 판매에 대한 조항이 불확실했거든요. 말도 안 되게 ‘Fly’가 음원 대박을 쳤는데, 막상 우리 셋은 음원 수익 중 1원도 못 받았어요. (웃음) 인간적으로 우리가 만들었는데 조금은 줄줄 알았는데… (웃음)





LE: "Fly"도 그렇고, 앨범 자체도 굉장히 잘 되었잖아요? [Swan Songs]라는 앨범도 굉장히 잘 되었는데요. 그 당시 앨범이 전체적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고, "Fly"만 좋아하는 게 아니고 에픽하이의 음악 자체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네. 그 때 "Paris"라는 곡도 있었고, "Let It Rain"이라는 곡도 있었고…





LE: "이별, 만남 그 중점에서..."도 있었죠.

그것도 3집이었나요? (웃음)





LE: 4집 앨범인 [Remapping Of The Human Soul]에서 돋보이는 것은 역시 트랙수, 앨범명, 그리고 피처링진이었는데요. 2,3집에서 보여준 것과는 확실히 다른, 비교적 짙고 찐한 느낌의 무거운 트랙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당시 4집을 준비하던 마음가짐이 어땠나요?

마음의 병이 있었어요. 3집과 4집 사이에 1년을, 작업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냈거든요. "Fly"와 3집의 큰 성공을 봤을 때, 공백기를 갖는다는 건 미친 짓이었죠. 들어오는 CF와 방송 일을 다 했으면 회사도, 우리도… 뭐, 돈은 많이 벌었겠죠. 그런데 그런 일들을 하기 싫었어요. 그때 제가 프로듀서로서 곡 부탁을 받은 게 100건이 넘어요. 전부 거절했어요. 행사와 축제들마저 중단시키고 1년을 포이동에 있는 작은 골방 같은 녹음실에 처박혀서 음악만 만들었어요. 재계약 주도권을 저희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공백이었죠. 기억하시는 분들만 기억하시겠지만, 3집 전후로 저의 예능, 시트콤같은 스케줄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았어요. 처음엔 다 고맙고 즐거운 일이었지만, 결국엔 음악과 상관없는 회사의 이득을 위한 필요 이상의 고문으로 느끼게 되었죠. 거의 한순간도 못 쉬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하게 되는 것들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편집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저를 미디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는 것에 혐오감이 생겼죠. 저는 대학교 때부터 조울증이 있었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쉽진 않은데, 그땐 극으로 달했어요. 그래서 나왔던 앨범이 4집이었던 것 같아요.





LE: 피처링진 같은 경우에는 이전의 무브먼트 위주의 참여진과는 다르게 언더그라운드의 뮤지션과의 교류가 꽤 눈에 보였어요. 일부러 찾겠다는 마음가짐이었던 건지, 지금도 그분들과 연락하고 지내는지 궁금해요.

제가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이유였죠. 제가 좋아하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열심히 잘하고 있는 친구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자기 생각과 랩과 음악을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 친구들과 교류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LE: 그럼 한국 언더그라운드 씬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체킹해오셨던 건가요?

지켜보고 체킹한다는 개념은 너무 권위적인 것 같고, (웃음)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언더그라운드의 팬이에요. 제가 뭘 하고 있던 간에 귀는 항상 언더그라운드 쪽을 향해 있어요.





LE: 앨범의 “Flow”라는 트랙에는 에미 히노우치라는 일본 여가수 분이 참여했었는데요. 그 외에도 김연우, 나윤권, 루싸이트 토끼의 조예진 등등 장르와 메이저, 마이너, 인디펜던트를 가리지 않고 교류를 해오셨더라고요. 그간 앨범의 게스트를 섭외하는 데에 메이저, 마이너, 인디펜던트 이런 건 가리지 않고 섭외하시는 것 같아요.

네, 전혀 상관없어요. 저는 언더그라운드 힙합도 많이 듣고, 인디 음악도 많이 듣고 듣다가 '이 사람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 이 사람의 정서가 마음에 든다, 이 사람이 내가 쓴 멜로디와 내가 쓴 가사를 제일 잘 표현할 것 같다.'라고 판단이 되면 부탁을 하고 교류를 하게 되는 거죠. 유명한 사람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보면 에픽하이 타이틀곡들의 피처링은 거의 덜 알려진 사람들이죠.





LE: 자주 함께 작업해온 다른 뮤지션으로는 울림 당시 넬(Nell)의 김종완 씨, 또 의외로 진보 씨와도 꽤 많은 작업을 했어요. 진보 씨의 최근 행보를 지켜보고 계셨는지, 그 당시에는 어떻게 연결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종완이는 같은 소속사여서 했던 게 아니라 친구여서 했던 거죠. 저 때문에 울림으로 왔으니까. 진보 같은 경우는 제가 예전에 진보의 EP 하나를 듣고 너무 좋아서 같이 작업하자고 했던 거고요. 재미있게도 진보 역시 울림에 왔었죠. 와서 상처만 받고 나갔지만요. 잘하는 사람들이니까… 제가 연결을 원해서 함께 하게 된 거죠.




LE: 4집 타이틀곡, "Fan"이라는 트랙이 그전까지의 퍼포먼스와 달랐다는 느낌이 드는 게 춤을 추셨었잖아요. 달리는 듯한 느낌의 안무가 있었는데, 랩에 집중되는 무대라기보다는 퍼포먼스가 있었던 무대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것도 타블로 씨가 기획하신 건가요?

"Fan"을 준비할 때 저는 일렉 밴드 느낌으로 하고 싶었는데 결국 댄서들과 함께하게 되었고, 안무팀이 짜준 오리지널 안무에서는 그분들만 춤을 추고 저희는 그냥 걸어 다니며 공연을 하는 식이었어요. 근데 우리 스스로 지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후렴 부분에 안무팀이 뒤에서 달리듯이 추는 춤을 간단하게 따라 해봤죠. 투컷을 무대 앞에 세운 것은, 그리고 중간에 댄스 브레이크에 메인으로 내세운 것은… ‘뒤에서 판 닦는 애’라는 소리를 듣는 게 개인적으로 너무 싫어서였고요. “Fan”을 할 때 투컷의 인기는 어마어마했죠. (웃음)





LE: 사실 에픽하이가 ‘타블로와 아이들’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래요?





LE: 네. 제가 알기에는 그런데

아, 네.





LE: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에픽하이하면 타블로하고… 나머지 둘? 이라고 이야기했던 걸 가끔 본 것 같은데, 그런 얘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얘기에 대해선… 멤버들의 생각이 중요하겠죠. 기분 나쁘겠죠. 하지만 저는, 만약 저의 멤버들이 그런 얘기를 접한다면, 기분 나빠하기 전에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더 큰 열정을 갖고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투컷 같은 경우는 포지션이 DJ와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그에게서 프론트맨만큼의 존재를 바라는 건 불공평하죠. (웃음) 사실 투컷은… 랩퍼를 했었어야 해요. 시간을 10년 전으로 돌릴 수 있다면, 랩하길 권했을 거예요. 성격이나 다방면에서 박식한 걸 보면 죽이게 했을 것 같아요. 저와 대화하면서 펀치라인 많이 터트리거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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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 이후에 5집에서도 “Fan”처럼 안무가 있었죠?

네. 동선 맞추기 정도? 사실 BPM 128 + 대의 음악 있죠? 우리가 "Fly", "평화의 날”, “Fan” 같은 노래들을 할 땐 그 템포에 랩을 하는 팀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다 빅뱅(Big Bang)의 "거짓말"이 나오면서부터 그런 노래들이 많아진 건데, 그 BPM 대가 춤을 추지 않는 사람에게는 정말 무대에서 뻘줌한 BPM이에요. 그루브를 타기도 애매하고요. 빅뱅 같은 친구들은 춤을 잘 추니까 그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완전 몸치들이기 때문에 그 BPM 대에서 매우 불편해요. (웃음) 뭔가 확실한 동선이나 이런 걸 짜놓지 않으면 어쩔 줄을 모르는 게 있어서… 그래서 그런 무대들이 나온 것 같아요.





LE: 힙합은 원래 90에서 100 정도가 적당한

그렇죠. 고개만 끄덕이고 있어도 괜찮아야 하는 장르인데… 우리가 속도를 확 올려버렸으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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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후 얘기를 계속 이어서 해볼게요. 약간의 안정세를 띠는 5집 앨범, [Pieces, Part One]과 소품집 [Lovescream]이 이후에 나왔는데, 사실 인제 와서 돌이켜보면 이 두 앨범은 비교적 아쉬운 작품, 혹은 만드는 초점 자체가 달랐던 앨범 같아요. 커리어에서는 조금 거쳐 가는 앨범들이었다는 느낌도 드는데요. 어떤가요?

그래요? 그렇다면… 그 전에 너무 많은 것을 해서 지쳐있었을 수도 있죠. 4집과 5집 사이에 이터널 모닝(Eternal Morning) 앨범도 나왔었고, 애니밴드(Anyband)라는 프로젝트도 제가 프로듀싱했으니까… 에너지만 넘치고 정신적으로는 지쳐있던 시기였을 거예요. [Lovescream] 직전엔 해체도 의논했으니까요. “1분 1초”는 사실 우리의 굿바이 곡으로 시작된 곡이에요.





LE: 방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5집으로 거쳐 가기 전에 이터널 모닝이라는 감상용 앨범이 발표되는데요. 이 앨범에서는 타블로 님의 어떤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즐거웠어요. 매우 즐거웠어요. 처음으로 제 멤버들을 벗어나서 작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저에게 필요한 산책이었어요.




LE: 페니(Pe2ny) 님과 인터뷰했을 때 이터널 모닝에 대해 여쭤봤었는데요. 역할 분담이 잘됐고, 빠르게 끝났던 앨범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작곡을 하고, 페니가 프로듀싱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작곡과 프로듀싱의 차이가 뭐냐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페니는 힙합적인 방식으로 작업한 거고, 저는 순수 작곡 방식으로 작곡한 앨범이죠. 역할 분담을 그렇게 나누지 않았으면 아마 그렇게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LE: 트위터로 이터널 모닝의 다른 이름이 뭐였으면 좋겠냐고 남기신 걸 본 것 같아요. 이터널 모닝의 다음 프로젝트랄까요? 그런 것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현재는 에픽하이가 아니면 솔로로서의 작업만 하고 싶어요.





LE: 앞서 말한 앨범들 이후에는 오랜 기간 함께했던 울림 엔터테인먼트와 결별을 선언하고 맵더소울(Map The Soul)이라는 회사를 세우며 독자적인 노선을 지향하시는데요. 당시에는 어떤 의도가 있었나요?

따지고 보면 울림 안에서도 음악 하나는 인디펜던트처럼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럼에도 다른 가수들이 있는 회사이기에 제약이 많았어요. 눈치를 봐야 하는 것들이 있었고요. 우리의 위치가, 우리가 계속 잘되지 않으면 다른 가수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에 그걸 의식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이 모든 것을 벗어나야 음악을 진짜 음악답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맵더소울을 만든 건데, 안타깝게 제가 경영진으로 고용했던 사람중 한 명이 회사에 자금 전부를 횡령했었어요. 사실 그래서 맵더소울이 엉망이 되고 결국 문 닫게 된 거예요. 처음으로 얘기하는 것 같네요.





LE: 약간 불가피하게 문을 닫게 된 거라 봐야겠네요? 의지는 있었는데도

네. 우린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요. 나쁜 놈 투성이인 바닥에서… 힘들었어요.





LE: 맵더소울 당시 도끼 님을 소속 아티스트로 데리고 있으셨는데, 어엿한 레이블의 CEO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랩퍼가 된 것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어떤가요? 일리네어 레코즈(Illionaire Records)의 음악에 대한 생각도 궁금해요.

맵더소울 때도 도끼는 ‘데리고’ 있을 만한 크기에 존재가 아니었어요. 일리네어 레코즈로 성공을 거둔 것은 당연한 거예요.





LE: 혹시 그런 힘든 경험 때문에 다시 또 YG 엔터테인먼트(YG Entertainment – 이하 ‘YG’)라는 매니지먼트 회사와 함께하게 된 것인가요? 관리해주는 사람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타진요 사건이 바로 겹쳐 일어났기 때문에 뒤돌아보면 맵더소울 때나 그 전에 겪었던 시련들은 귀여운 정도죠. (웃음) YG에 오게 된 건 혜정이와 양현석 사장님 때문이지, 어떤 경험의 영향은 없어요.





LE: 그 당시 북앨범을 내셨었는데요. 당시 트랙들이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힙합과 힙합이 아닌 것을 구별하기가 애매하긴 하지만, 좀 더 힙합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우리가 자주 하던 대중적인 트랙이 아예 없었죠. “Map The Soul”이라는 우울한 힙합 트랙이 타이틀곡이었으니까요.





LE: 북앨범을 비롯해서 매번 앨범을 단순히 트랙 수나 음악뿐만 아니라 사진, 아트워크, 앨범의 구성 등에 있어서도 신경을 많이 써오셨었는데요. 이런 포스트 프로덕션에 관해서도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셨던 건가요?

미친 듯이 신경을 쓰지만 포스트 프로덕션은 항상 교류이기에 제가 상상하는 것이 100% 현실로 옮겨진 적은 없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차라리 신경을 안 쓰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LE: 다른 이야기로 옮겨와 보면, 맵더소울 설립 후의 첫 정규 앨범인 [e]가 나왔었어요. 다른 앨범에 비해 어떤 틀이나 규격에 맞추지 않고 그 당시에 만들어진 트랙들을 그때그때 만들어서 풀려고 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그런지 트랙들도 많았던 거 같고, 트랙들의 느낌도 다 제각각이었던 것 같아요. 만들 당시에 어떤 생각으로 만드셨었는지 궁금해요.

그 앨범을 만들면서 저와 혜정이가 아이를 갖게 됐기 때문에 앨범 중에 유일하게 믹스 세션도 참여 못 했었어요. 정신이 없었기에 기억이 잘 안 나요. (전원 웃음)





LE: [e]라는 앨범이 2CD 정규 앨범인데, 2CD 정규 앨범을 두 번이나 내셨었잖아요. 원래 작업량 자체가 많은 편이신가요? 다작하시는 편인지 궁금해요.

예전에는 다작했고요. 이제는 정반대에요. 제가 정식으로 발표한 마지막 트랙들이 [열꽃] 앨범이에요. 그게 2년 전이에요. 그 이후로 정식으로 발표한 트랙이 없어요. 예전에 막 내던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달라요. 지나치게 신중해졌어요.





LE: 그렇게 바뀌게 된 데에 대한 어떤 계기 같은 게 있었나요?

제가 제 10년을 되돌아보고 예전의 앨범과 곡들을 다 돌아보면요. 제가 스스로도 ‘아, 이건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표현했다.’라고 생각되는 노래가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사람들이 좋다고 해도 제가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곡이 많지가 않고, ‘이 노래는 왜 이렇게 대충 만들었을까?’, ‘이 노래는 왜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노래들이 많아요. 저 같은 사람은 문신을 절대 해서는 안 돼요. 문신을 하면 분명히 후회할 사람이에요. 아무리 잘 나와도요. 제 지난 10년엔 불필요하고 민망하고 제가 싫어하는 노래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제는 제가 만드는 곡이면 더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신중하다 보니까 2년이 지나가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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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 앨범에는 유독 MYK 님의 참여가 많아요. 이전부터 인연이 깊으신데요.

네. MYK는 거의 멤버였죠.





LE: 요즘에는 솔튼페이퍼(SALTNPAPER)로도 활동하시더라고요. 계속해서 MYK 님과 함께하셨던 이유가 궁금해요.

좋아서요. 사람도, 음악도요.





LE: MYK 씨가 영어를 많이 쓰시는데 한국계의…

MYK는 한국말을 잘 못해요.





LE: 요새는 그래도 좀…

비슷해요. (웃음)





LE: 그런 MYK 님을 비롯해서 타블로, 그리고 에픽하이와 작업을 꽤 자주 했던 덤파운데드(Dumbfoundead), 케로원(Kero One)과 같은 랩퍼 분들이 어떤 비슷한 궤를 달리는 것 같아요. 영어를 많이 쓰는 한국계라는 점에서요. 특별히 그런 랩퍼 분들과 자주 함께하는 이유가 있나요? 아니면 그냥 우연한 건가요?

저는 친구를 사귈 때 어떤 언어를 하느냐, 어떤 국적을 갖고 있느냐를 따지지 않아요.





LE: 저희가 [열꽃]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Epilogue] 앨범을 한번 짚을지 말지 고민 중인데요. (웃음) 혹시 [Epilogue] 앨범에 관해 하고 싶으신 얘기가 있으신가요?

[Epilogue] 앨범은 다시 울림에서 냈는데… 그때 얘기는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아요. 생각만 해도 화가 나고, 눈물도 나요.





LE: 그럼 [열꽃] 얘기로 바로 넘어가도 될 것 같네요.

2, 3년을 확 뛰어넘어가네요. (전원 웃음)





LE: 혹시 그 사이에 있었던 일에 관해 하고 싶으신 얘기가 있으신가요? 자신의 개인적인 일이라든가… 워낙 많이 알려진 이야기들이기는 하지만요. 혹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개인적인 이야기 같은 게 더 있으신가요?

그 당시에 저에 대해 공개되지 않았던 게 있나요? 제 내장이 도마 위에 조각조각 놓여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덧붙일 얘기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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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래서 그 시기를 거쳐 YG와 계약을 하시면서 [열꽃]을 발표하시게 되시는데요. 우선 YG와 계약하시면서 복귀하게 된 계기나 왜 YG와 계약하시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당시에 타블로가 YG와 계약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조금 의아한 조합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그전에 YG의 행보를 감안한다면요.

타진요 사건을 겪을 때 저는 극도의 외로움을 느꼈어요. 그 당시에 제 편에 서 있어 준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침묵으로 응원해준 사람들은 있었겠지만, 목소리를 내준 사람들은 극소수였어요. 큰소리로 우정을 외치던 사람들도 여론의 눈치를 보며 제가 내미는 손을 못 본 척했죠. 그딴 걸 신경 쓰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게 YG에요.





LE: 근데 사실 YG라는 회사는 미국 힙합, 팝 쪽의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한 회사잖아요. 근데 에픽하이의 음악을 들어보면 어떤 그런 트렌드에 영향을 받는다는 느낌은 없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양현석 씨 입장에서도 그렇고, 타블로 씨 입장에서도 그렇고 같이 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각자 있었을 것 같기도 한데요. 말씀하신 것을 들어보면 그런 것보다 개인적인 이유로 계약을 하게 되신 것 같기는 한데, 그런 음악적인 성향 때문에 고민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어요.

그런 고민을 한 적도 없어요. 양현석 사장님이 제 음악을, 제가 만든 [열꽃]의 노래들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보였고요. 그리고 저를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존중한다는 게 확실히 보였어요. 그 외에 따질 게 있나요? (웃음)





LE: 갑자기 생각난 것인데요. 실제로 YG 구내식당은 밥이 그렇게 맛있나요?

좀 짜요. (전원 웃음)





LE: [열꽃]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해보면,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조금 우울하고 냉소적인…

조금요? (전원 웃음)





LE: 우울과 냉소를 비롯한 희망도 보이고, 갖가지 감정들이 이전보다 더 적나라하게 담겨 있는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전과 다르게 그렇게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게 된 것의 원인이라고 하면 역시 앞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처음으로 솔로 작업을 한 거잖아요? 만들면서 느꼈던 게… 저는 기댈 곳이 없는 게 가장 저답다는 걸 느꼈어요. [열꽃]을 만들 때요. 기댈 멤버도 없고, 기댈 회사도 없고, 정말 저 혼자서 외롭게 만든 앨범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가사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그냥 전체적인 정서도 그렇고, 의도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봤을 때 가장 저와 가까운 무언가가 나온 것 같아요.





LE: 생각해보니 [열꽃]이 결혼하신 이후에 첫 앨범이신가요?

아니요. 결혼하고 나서 첫 앨범은 [Epilogue]였어요.





LE: [열꽃]에 대한 강혜정 씨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그때 혜정이에게는 제가 어딘가를 나가서 뭘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기 때문에… 제가 숨 쉬고 있는 게 굉장히 큰일이었기 때문에 모든 단어와 음이 고마웠을 거예요.





LE: 지금 커리어대로 쭉쭉 얘기하고 있는데… 

드럽게 일이 많았네. (웃음)





LE: 음악적인 이런저런 이야기는 뒤에 따로 있으니 계속 이어서 7집 앨범 [99]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게요. [열꽃] 이후에 에픽하이의 멤버 분들이 제대하시면서 두 분도 모두 YG와 함께하게 됐는데요. 그전부터 두 분이 계약하면서 에픽하이가 YG 소속으로 활동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던 건가요?

제가 YG와 계약을 할 때 에픽하이도 여기서 같이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었고, 양현석 사장님도 에픽하이를 좋아한다고 하셔서… 당연했죠.





LE: 그런 YG에서의 에픽하이의 첫 앨범인 [99]를 좋게 본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쉽게 생각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어요.

아쉽게 생각하는 분들 많았죠.





LE: 미쓰라 씨 같은 경우에는 10주년 기념 공개곡인 “420”의 가사에서 [99] 앨범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했었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좋지 않은 평가가 있었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희가 만들고 부르는 노래들만 아니었다면 훌륭한 곡들인 것 같아요. (웃음) [99]의 수록곡이 된 곡들은 전부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주일 후에 만들기 시작했던 곡들이에요. 솔직히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 아니, 그 무엇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그저 미친 듯이 바쁘게 움직였어요. 아픈 노래는 부르기 싫었고, 아픈 가사는 쓰기 싫었어요. 저답지 않은 앨범이죠. 하지만 좋은 앨범이에요. 정신없이 그 시기를 지나가게 도와준 멤버들과 YG 프로듀서들에게 고마워요.





LE: 그럼 혹시 앞으로 개인 작품, 솔로가 나온다면 그 작품은 에픽하이의 음악과는 다른, 그리고 [열꽃]과는 흡사한 앨범이 될까요? 예측하기 쉽지 않나요? (웃음)

모르죠. 저도 다른 뮤지션들처럼 프로답게,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겪든 간에, 속내가 어떻든 간에, 일정한 색깔과 퀄리티를 지킬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제가 만드는 것들은 제 그 당시의 마음과 삶에 너무나 큰 영향을 받아요. 저는 그냥 나오는 대로 밖에 못하겠어요. 흥미롭게도, 제가 아프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열꽃] 같은 앨범이 또 나오도록… (웃음) 그렇게 바라지 않으셔도 충분한 아픔을 갖고 있습니다.


북앨범~7.jpg


LE: 일단 가사 자체는 꾸준히 쓰시는 건가요? 요즘 쓰고 계시는 가사의 내용들이 좀 궁금하기도 한데요.

가사는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매일마다 써요. 제가 깨어있는 순간이면 매 순간 쓰고 있어요. 머릿속에서도, 메모지 위에다가도요.





LE: 사실 국내에서는 펀치라인하면 타블로 씨가 거론이 많이 되는데요. 요즘도 가사를 쓰실 때 그런 언어적 유희가 들어간 가사를 많이 쓰시나요?

펀치라인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쓴 적이 없어요. 1집 앨범부터 들어보시면, 심지어 아까 말씀하셨던 “Wow Who”에서도 마지막 마디가 아마 펀치라인일 거예요. 랩에 있어서는 라임과 같이 당연한 거라 여기고 해왔는데…





LE: 크게 신경 안 쓰시는 것 같네요. ‘아, 써야겠다.’라고 하고 쓴다든가, 혹은 그런 것들을 모아놓고 필요할 때 뽑아 쓴다든가… 최근에 인터뷰한 인터뷰이 분은 자기 전에 머릿속에 단어 여러 가지를 띄워놓고서 그것들을 어떻게 조합시켜서 우연히 만나는 것들을 메모해놓고 그런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떠오르면 적어 놓는 경우는 있는데… 랩퍼가 ‘아, 나 라임을 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랩을 쓰진 않잖아요. 저에게 펀치라인은 그래요. 펀치라인이란 게 화두가 되었을 때, 사실 당황했어요. ‘아, 그럼 내가 여태까지 했던 가사들은 이해 못 하고 있었던 건가?’ 싶어서요. (웃음)





LE: 대략 커리어 순서대로 질문은 드린 것 같고, 인터뷰가 거의 막바지인데요. 아까 힙합엘이에 대해서 간단하기 얘기해주셨었는데요. 혹시 힙합엘이 자주 오시는지, 어떻게 알고 계셨었는지 궁금해요.

제 멤버들은 힙합엘이의 가사해석 때문에 힙합엘이를 좋아해요. 저는 외국 블로그를 많이 보는 편인데, 멤버들과의 대화가 굉장히 수월해졌어요. (웃음) 제가 보고 있는 걸 그 친구들도 해석된 버전으로 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너무 좋아요. 사람들이 국내 힙합의 성장이나 발전을 논할 때가 있잖아요. 국내 힙합의 성장에 있어서 커뮤니티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정말 아끼는 사람들한테는 칭찬도 해주면서 쓴소리도 하잖아요. 뮤지션들에게 호응도 해주고, 동시에 쓴소리도 해주는 커뮤니티들이 많아야 해요. 악플은 어딜 가도 악플이지만, 애정이 있는 쓴소리는 다르죠. 힙합엘이 뿐만 아니라 다른 커뮤니티들,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나 디시트라이브(DC Tribe) 같은 힙합 성향의 커뮤니티들이 중요하고 고마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비교적으로 뒤늦게 등장한 힙합엘이도 역시 우리 뮤지션들에게 알게 모르게 힘을 더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LE: 저희가 인터뷰에서는 거의 국내 힙합을 많이 다루는데, 외국 힙합 뉴스나 뮤직비디오, 가사해석들이 많은 사이트에요. 타블로 씨는 최근에 어떤 외국 힙합 음악을 듣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굳이 외국 힙합이 아니라도 좋고요.

저는 [Yeezus] 진짜 좋아했고요. 맥밀러(Mac Miller) 앨범. 그 두 앨범을 최근에는 가장 좋아했어요.





LE: 힙합도 많이 들으시겠지만, 혹시 타장르의 음악도 많이 들으시나요?

제가 원래 락도 좋아하고… 국내 인디 밴드의 음악도 많이 듣고요. 정성이 느껴지는 노래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누가 부르든 간에 고마워하며 들어요. 





LE: 최근에 힙합 안에서 트렌드인 트랩 뮤직 같은 스타일의 음악은 안 들으시나요?

아니요. 좋은 건 들어요. 스타일을 구분하지 않고 다 들어요. 노래가 그 노래만의 메리트가 있으면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LE: 오늘 입고 오신 오드퓨처(Odd Future)…

아, 네. (웃음) 얘네도 좋은 거 되게 많은 거 같아요. 타일러(Tyler, The Creator) 앨범에서 “Rusty”라는 노래의 타일러 벌스를 너무 좋아했거든요. 그리고 “42”인가? 무슨 노래가 있는데, 피아노 위에서만 랩하는… ‘I Went To 6 Flags’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랩이 있는데… 다음 가사는 제 입으로 하기 좀 그렇고요. (전원 웃음) 그 노래도 되게 좋아했어요. 전 다 좋아해요. 웬만해서는요.





LE: 10년을 넘게 함께 해온 에픽하이의 두 멤버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간단하게 한마디 해주셔도 좋을 거 같아요.

에픽하이… 질문형으로 해주시면 참 편한데… (전원 웃음) 질문형으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싶은 얘기를 유도할 수 있는 질문…


IMG_7646.jpg


LE: 질문형이요? 그럼 넘어가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앞으로 음악을 어떻게 할 생각이라는 추상적인 계획도 좋고, 아니면 구체적인 앨범 계획도 좋고요.

어렵네요… 계획은 모르겠고요. 그냥 저의 현재 마인드를 말씀드리는 건 어떨까요? 제가 지난 10년을 음악 해오면서 가장 확실하게 배운 것은 우린 진실도 쉽게 거짓이 되고, 그만큼 거짓도 쉽게 진실이 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진실은 종교가 아니에요. 누군가가 믿는다고, 안 믿는다고 그 가치가 흔들리지 않아요.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저를 어떻게 규정짓든, 어떤 타당성을 내밀면서 저를 부정하든… I DON'T GIVE A FUCK. 저는 제 가족과 제 사람들만 제 가치를 알면 됐어요. 이 마인드가 생기는 데까지 10년이 걸렸어요. 제가 이 생활을 하면서 잃은 것들은 너무 크고 많은데, 얻은 것은 고작 이 마인드 하나밖에 없어요. 앞으로는 이 마인드를 잃지 않고 살 거고, 음악 할 거예요. 다만… 저의 능력이 이 마인드를 따라잡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도록 매일마다 소망하고 노력하고 있는데, 걱정돼요. 부족함이 너무 많기에 못 해낼 것 같으니까요. 이 걱정과의 싸움이 저의, 그리고 저와 함께하는 동료들의 앞으로의 계획이자 행보여야 해요.





LE: 인터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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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글 | Melo, Bluc
인터뷰, 사진 | Bluc, 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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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1
  • 22a
    11.18 23:04
    최고의 리릭시스트
  • 11.18 23:21
    제 사춘기를 지배했던...짱입니다 제 우상..
  • 11.18 23:30
    힙합입문을 에픽하이로했고 국내 페이버릿엠씨에 타블로는꼭넣습니다 인터뷰알차게하는le에서보게되서좋네요
    맵더소울닷컴들락거렸고그때가가장에픽하이다웠다고생각했는데이런속사정이있을줄몰랐네요 항상응원합니다
    개인적으로는에필로그앨범도좋아하는데..울림이제생각보다뮤지션위주의회사는아니군요 몰랐네요
  • 11.18 23:34
    이건 뭐 스웩을 안누를 수가 없네요ㅎㅎㅎ
  • 11.19 00:42
    헐..타블로와인터뷰라니.. 드레이크를좋아하다니..헐..신기해
  • 11.19 01:07
    가사하면 타블로 최고의 리릭시스트 타블로
  • 11.19 01:53
    본격적으로
    한국힙합에도
    빠져들게 만들어준
    최고의 그룹 에픽하이
    최고의 리릭시스트 타블로

    타블로..
    가사도 잘쓰고..
    예쁜 아내와..
    귀여운 딸까지..
    SWAG!
  • 11.19 06:14
    ㅠㅜ타블로 사랑해요
  • 11.19 08:57
    와 정말 멋지네요
    많은 아픔을 갖고 있는 타블로님..
    정말 국내힙합에서 개인적으로 최고라고 생각되는 몇 안되는 팀.. 에픽하이.
    언제나 응원하고 지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에픽하이
  • 11.19 10:58
    요즘 들어서 긴 글은 잘 안읽게 되는거 같은데 오랜만에 정독했습니다..말이 안나오네요 역시 최곱니다 타블로 bb
  • 11.19 13:05
    한국의 탈립콸리
  • 11.19 13:31
    한국에 최고의 뮤지션!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 감사합니다!!
  • 11.19 13:35
    힙합엘이의 인터뷰는 역시 믿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 11.19 15:17
    Swag
  • 11.19 17:35
    인터뷰글들중 처음으로 한글자도 안빼먹고 다읽었다.. 타블로는 내 영원한 시작점이자 리스펙
  • 11.19 21:05
    에픽덕에 입문했네요 팬된지도이제7년....항상 응원합니다♡
  • 11.20 00:24
    글 안에 있는 동영상까지 다 재생하면서
    정독했습니다.
    항상 큰소리치며 응원하지는 못 하더라도
    곁에 무언으로 응원하는 소중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네요
    10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에픽하이 짱짱맨
  • 11.22 07:40
    좋은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항상 에픽하이를 좋아하는 팬으로써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 11.22 14:19
    역시 타블로는 노다웃.
  • 11.22 14:33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힙합 뮤지션이라 그런지 인터뷰 한 글씨도 빼놓지 않고 정독했네요. 요즘 작업 계속 하고 계신 것 같던데 기대하고 있습니다!
  • 11.23 02:05
    에픽하이 앨범 얼릉 내줘
  • 11.23 18:13
    근데 타블로 옆에서 돋보이려면 얼마나 열심히 해야되죠?
  • 11.25 01:58
    인터뷰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진짜 정독했어요
  • 11.25 02:24
    겨울에 반팔티 아마추워~
  • 11.28 03:53
    정독
  • 12.1 05:57
    잘 봤습니다
  • 2.9 23:15
    ㄷㄷ사스가 힙엘
  • 2.11 08:45
    잘읽고갑니다
  • 하루야돌고래사줄까?ㅋㅋ
  • 9.4 04:23
    에픽하이는 거의 90%이상 대부분의 곡이 통샘플이나 표절이죠.
    뮤직비디오도 표절이고.

    안걸리면 자기 창작물.
    걸리면 힙합장르적 샘플링.
    그러다가 심각하게 문제시 되면, '오마쥬'.
    https://www.youtube.com/watch?v=K3ijV7kDg5M

    제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에픽하이 뮤직비디오 맵더소울도
    결국은 표절이였죠. 제가 좋아했던 곡들 비트나 멜로디도 다 표절이였던 듯.
  • 9.6 11:52
    Tablo! The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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