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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LE's Essay: 스물 일곱의 녹색이념

title: [회원구입불가]Melo2017.02.19 02:18조회 수 11275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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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LE's Essay: 스물 일곱의 녹색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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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사원, 누군가는 취준생, 누군가는 졸업 예정자인 내 세대를 두고 한 번은 이렇게 자조했었다. 정해진 길로 가기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고, 가고 싶은 데로 가기엔 아직은 굴레를 완벽히 벗어던지지 못해서 애매해져 버린 게 아닐까. 전 세계와 통하는 인터넷은 무지막지하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지만, 우리의 부모님들은 산업화를 겪으며 살기 위해서는 꼭 쓸모 있는 짓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생존을 위협했던 IMF를 손수 이겨낸 이 땅의 역군들이었다. 그렇지만 내 기억 속의 IMF는 희미했고, 그보다는 월드컵과 WBC에서의 4강 신화가 훨씬 선명했었다. 조그만 희망을 얻었고, 어떤 걸 택해도 잘하기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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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안의 가치 있는 보석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걸 물리쳐야만 했다. 노력한 만큼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게 된 사회의 비정함, ‘사짜 직업을 가져 화이트칼라가 되길 원했던 부모님들의 바람, 거기에 발맞춰 하루에도 몇백 개씩 기출 문제를 푸는 또래들과의 경쟁, 대학에 가면 원하는 걸 할 수 있을 거라며 꿈을 억누르며 생겨났던 같잖은 피해의식. 가슴 속에 조금은 뜬금없는 장래희망 하나쯤 가지고 있었다면 누구든 그것들로부터 자신이 철없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만 했다. 차라리 그때부터 그런 의미조차 무색하다 생각하고 그저 웃긴 자료를 모아놓는 조그만 커뮤니티라도 하나 만들었으면 돈이라도 많이 벌었을까. 어쨌든 그러지는 못했고, 야구에 만약이란 게 없듯 인생에도 만약이란 줄곧 없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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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마음에 한창 래퍼들의 출신 대학을 알아볼 때가 있었다. 시쳇말로 '오버'가 아니면 힙합이 크게 돈이 되지 않던 시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길래 저렇게 활동할 수 있는 건가 싶었다. 썩 넉넉지 않은 집안인 주제에 돈 안 된다는 글은 쓰고 싶어 했다(대개 그 나잇대 아이들이 그렇듯 랩도 하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사정을 아예 나 몰라라 할 순 없어서 마음 속으로 일종의 타협을 했었다. 내 삶의 방식을 입증해야 한다는 자기 강박은 그때부터 시작됐었다. 돌다리도 십수 번 두들겨 보고 건너며 삶에 보험이 있길 바라는 나약함 속에서 피어난 안전한 똥배짱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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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주제에 많게는 15살도 더 차이 나는 평론가들의 것을 흉내 내며 3년 내내 쓴 졸필을 내밀어 대학에 가서는 말그대로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찐따'가 됐었다. 점수에 맞춰 온 너네들과 내가 이렇게 다르다고 마음속으로 일갈했었다. ‘대학교계의 대안 학교로 불리던 대학에서조차 각종 어학 시험과 자격증으로 자기 삶의 지표를 세우려 했던 이들을 알량한 우월감에 힘입어 깔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나 나나 어차피 돈을 좇아가며 먹고 살고 싶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 실은 그 과정이 떳떳한지 아닌지를 내 멋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는내 인생이 이 다음과 다음, 그리고 그 다음이 뻔히 보이는 계단처럼 되지는 않길 바랐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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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일종의 마취제 같았다. 널널하기 짝이 없어 나이롱 같았던 학과 시스템은 찌는 한여름의 어느 날처럼 나를 퍼져 있게 만들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어느새 증명을 보여주려 했던 대상의 실체도 점차 불분명해져 갔다. 그럼에도 나를 올곧게 세우고자 함에 혈안이 된 탓에 자연히 실력은 늘었고 구력도 쌓여갔다. A4 너댓 장을 꽉 채워도 자판기 바닥 아래라도 쓸면 나오는 한 푼조차 떨어지지 않던 내 것에 으로 환산되는 가치가 생겨나기 시작했었다. 공강 시간에 배를 채워주던 게 밥버거에서 건실한 순댓국과 시원한 아메리카노로 바뀌었고, 얼마나 지난한 세월을 보냈다고 고작 3년 전을 늙은이같이 회상하는 꼰대스러운 때가 많아졌었다. 때로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글 좀 쓰는 유일무이의 존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일련의 쾌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 사이 내가 나를 잡아먹고 있음은 알고 있는 듯 은근히 모른 체했었다. 종종 이 글은 돈이 되는가, 아닌가를 저울질했었다. 때로는 돈이 안 되지만 쓰고 싶었던 글은 미뤄놓고 돈은 되지만 딱히 욕심나지 않는 글을 먼저 썼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평범한 스물다섯, 스물 여섯에겐 나름 충분한 통장 잔액은 그렇게 나 자신을 과신하게 하고, 조금은 비열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도 건방짐을 적으로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으로는 매일같이 씨름했었다. 남들이 못 보는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내 나름대로의 성공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한 그 순간, 돈이라는 더 큰 이념이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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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내망상이라지만,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들을 물리친 끝에 얻은 지금의 모습은 꽤나 초라하다. 수입은 같아도 졸업을 하고 냉혹한 사회의 기준으로 보니 바닥을 내리찍었다. ‘쓰고 싶은 것보다 써야만 하는 것이 많아진 상황에서 써 내려 간 문장들은 대부분 관성 혹은 클리셰에 갇혀 어수룩하게 춤추고 있다. 그저 익숙해진 거일 뿐이라는 위안의 말 앞에 내가 떠올린 생각은 결국 이 판의 이 된 것밖에 더 되나였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고민한다. 아직까진 순수한 문장들로만 채워진 완벽한 한 편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있는지. 쉽게 돈 앞에 몸을 굽히지 않을 순 없게 됐지만, 그래도 믿고 싶다. 그 옛날, 고작 하나의 글을 씀에도 몇 날 며칠을 골똘히 생각하던 10년 전 그때의 내가 있기를. 타협이란 게 무엇인지조차 잘 몰랐을 때의 그 아이가 남아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글만큼은 완벽히 순수하진 못하더라도 열여섯의 그 아이와 스물일곱의 내가 함께 쓴 글이다.



♬ 김태균 - 암전 (DF Live)



글 | Melo

이미지 | 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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