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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그 많던 믹스테입은 왜 못 팔게 됐을까

Melo2016.06.12 23:21추천수 6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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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그 많던 믹스테입은 왜 못 팔게 됐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2013년 초에는 힙합엘이를 비롯한 각종 힙합 커뮤니티와 SNS상에서 때아닌 믹스테입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당시 힙합엘이는 블럭(bluc) 에디터가 작성한 <범죄는 범죄일 뿐이다>(링크)라는 강한 논조의 기사를 게재하며 이에 반응한 바 있다. 물론, 그 기사 하나로 당시 불법으로 믹스테입을 판매하고, 그 행위를 SNS로 홍보하기까지 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가 완전히 일단락됐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 그러한 행위를 당당하게 하는 이는 사실상 완전히 없어지게 됐다. 아무래도 힙합 씬 내에서 몇몇 플레이어, 리스너들이 낸 자성의 목소리와 그로 인해 일어난 문화적 인식의 변화 때문이 아닐까 한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이제는 2000년대 중•후반 즈음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자신의 믹스테입을 오피셜한 루트로 판매하던 시기를 희미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씬을 향유하는 새로운 층위로 자리 잡은 상태다. 그로 인해 ‘믹스테입은 무료로 공개하는 결과물’이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의문은 언제든 제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간에 한국힙합 씬은 <쇼미더머니> 전후로 나뉘어지고, 향유하는 이들의 연령, 성향, 힙합 문화를 인식하는 방식도 전반적으로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믹스테입에 대한 지금의 인식은 어쩌면 과거를 되뇌이고, 과오를 반성하며 다져졌다기보다는 시쳇말로 ‘물갈이’로 인한 상황적이고 환경적인 맥락에서 형성된 셈이다. 무지에 의해 잠복해 있는 그 무언가는 다시금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그 점을 포착해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는 차원에서 기획한 게 이 기사다. 본 기사는 믹스테입 유료 판매를 둘러싼 이야기를 개략적으로 요약함과 동시에 이에 관한 씬 내부 관계자들의 인터뷰와 같은 생생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쓰인 아카이브성 글이다. 그렇기에 본문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부분적으로 편집하거나 발췌한 인터뷰 내용에 좀 더 집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범죄는 범죄일 뿐이다>를 포함한 기사 중반부와 말미에 관련링크로 첨부해둔 총 네 개의 기사 역시 이 사안에 관해 관심이 있는 편이라면 꼼꼼히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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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주춤한 감이 있지만, 댓핍(Datpiff)은 여전히 최대 규모의 믹스테입 사이트다

홍보를 위한 문화적 허용

믹스테입 문화가 미국힙합 씬 안에서 어떻게 형성되었고, 발전되었는지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또다시 설명하기보다는 리드머(Rhythmer)에서 이를 잘 정리해둔 두 개의 글이 있기 때문이다. 기초적인 이해가 부족하다 생각된다면 2011년 3월 올라온 <?uestionlove: 믹스테잎(Mixtape)의 세계>(링크)와 2013년 1월 올라온 <리드머 첨삭지도 6강: 믹스테잎은 돈 받고 파는 게 아닙니다.>(링크)를 일독해보길 권한다. 이중 후자의 경우에는 <범죄는 범죄일 뿐이다>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으며, 믹스테입이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 포맷임에도 왜 문화적 측면에서 허용되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래퍼들이 막대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스튜디오 앨범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음악적 역량을 입증할 수 있기에 ‘무료’로 믹스테입을 공개하는 데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로써 베테랑 래퍼들도 더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됐고, 신인 래퍼들도 자신을 보다 효과적으로 프로모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다른 아티스트의 결과물(아카펠라, 인스트루멘탈)을 가져다 쓰는 것까지 허용할 뿐이지, 소량이라도 가격을 매겨 믹스테입을 판매하는 건 허용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

기사를 위해 간단히 인터뷰한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 역시 홍보 효과 측면에서 믹스테입이 가지는 의의가 현재에 와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이야기했다. 시대에 따라 믹스테입이란 포맷도 변화해오긴 하지만, 대형 기획사에서 홍보를 발표하는 것이라고 해서 믹스테입의 본질을 해치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LE: 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믹스테입이란 개념이 국내, 외로 문화적으로 가지는 의미나 의의가 조금 변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를 대조적으로 보았을 때, 어떻게 변했다고 생각하는가?

강: 믹스테입의 기원까지 올라가면 너무 복잡해지니 힙합에만 국한하여 답하겠다. 과거 믹스테입은 하우스 파티용으로 곡들을 모아 만든 편집 앨범 형식과 아마추어 랩퍼의 홍보용 음반 형식으로 나뉘었다. 따지자면, DJ 버전과 래퍼 버전으로 나뉘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점점 후자 쪽으로 무게 중심이 기울었다. 무엇보다 현재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 래퍼들도 마케팅, 혹은 창작욕의 분출 창구로 믹스테입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따라 문화적 의미가 바뀐 부분은 딱히 없다고 생각한다. 형식이 조금 변하고 제작 의도가 첨가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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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대형 기획사의 마케팅 의도가 개입된 소속 래퍼들의 믹스테입이 본질적인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반문하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예전부터 홍보는 믹스테입을 제작하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다. 더구나 대다수 믹스테입이 무료 공개기 때문에 이는 문제 삼을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기존에 발표된 유명 곡들의 비트 위에 랩을 얹던 것과 달리 신곡을 담아 앨범 못지않게 만들게 되었다는 것도 큰 변화이며, 최초 테이프에서 CD에 이어 음원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포맷이 바뀐 것 역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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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크게 활동이 없지만, 당시 라마의 시도는 획기적이었다


어쩔수 없는, 하지만 잘못됐던


이렇듯 문화적 맥락이 있는 미국힙합 씬과 달리 한국힙합 씬은 그러한 의식이 거세된 채로 믹스테입 문화를 받아들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힙합은 몸소 겪어온 우리의 문화라기보다는 외래문화였고, 그렇기에 몇몇 특정한 문화적 코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언어적 한계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로만 퉁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믹스테입 문화가 기형적으로 자리잡은 건 우리로서는 겪을 수밖에 없었던 홍역이었다. 아무튼, 2005년에 들어서야 한국힙합 씬에도 믹스테입 문화가 서서히 자라나기 시작했었다. 그 시작은 바로 지금은 희재(Hee Z)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래퍼 라마(Rama)였다.

LE: 한국힙합 씬도 시장의 변화와 함께 믹스테입의 형태나 유통 경로 등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여러모로 변화해왔다. 일단, 시초는 2005년에 나온 라마의 믹스테입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힙합 씬은 믹스테입이란 형태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용했다고 보는가?

강: 라마의 믹스테입, 특히 [Gene Recombination]은 미국 힙합 씬에서 만들어지던 믹스테입의 형식을 재미있게 재현했던 결과물이었다 기존에 발표됐던 곡을 살짝 비틀어 재구성하는 지점이 대표적인 예다. “씨바날봐라” 같은 곡이 그랬다. 이후,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름값 있던 래퍼들이 홍보와 더불어 돈벌이 수단으로 믹스테입을 만들고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중 후자는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강일권 편집장의 말처럼 라마의 믹스테입은 그야말로 이전까지 씬에 존재하지 않았던 형식의 결과물이었다. 믹스테입에서 래퍼가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낼 수 있는 지점인 ‘재구성’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대로 이후 믹스테입은 CD가 많이 팔리던 그 시절 기성 래퍼들의 수익 모델 중 하나가 됐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해 힙합엘이와의 인터뷰(링크)를 가졌던 딥플로우(Deepflow)에게서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었다.

LE: 사실 [Rap Hustler]를 이야기하면서 믹스트릿닷컴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말씀을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웃음)

D: 당시에 저는 되게 신나 있었기 때문에… 뭔가 어떤 새로운 움직임 같은 걸 하고 싶어 했었어요. 믹스테입 사이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당시에 저도 굉장히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신인들을 서포트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신인들의 믹스테입 발표가 활발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중략) 사실 (믹스트릿닷컴을 안하는 데에) 결정적이었던 건 제 믹스테입 판매 개시를 시점으로 3일 만에 소니(Sony) 뮤직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이거 다 걸린다. 하지 마라. 판매 중지해라.”라고 해서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에서 판매가 중단됐죠. 근데 제가 믹스테입을 존나 많이 팔 줄 알고 한 오천 장 찍었었거든요. 천 몇 백 장 팔고 바로 중단되어서 집에 아직도 쌓여 있어요.

LE: 근데 그래도 3일 만에 천몇백 장이면 꽤 높은 수치 아닌가요?

D: 네. 그때 많이 팔렸었던 거죠. (중략) 그러면서 ‘아, 이제 우리나라에서 믹스테입 못 내는구나.’ 생각했었죠. 근데 지금은 되게 당연한 거지만, 그때 당시에는 무료 배포라는 개념이 좀 생소했죠. 그냥 “망했다, 시발.” 이런 느낌이었어요. (전원 웃음)

LE: 사실 근데 기존 비트를 사용해서 믹스테입을 만들었는데도 돈을 받고 판다는 것 자체가 지금 조성된 인식으로는 용인이 안 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시점에서 그때의 믹스테입 붐을 바라보면, ‘인식이 덜 잡혀 있었던 시기였구나.’라는 걸 실감 많이 하실 것 같아요.

D: 시대의 특수성을 타고난 약 3, 4개월간의 붐이었죠. 그때 딱 내보지 않았다면 그 느낌을 모르는데… 아무튼,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건데요. 당시에 저희가 열심히 하고, 팬들이 언더그라운드를 조명하고 있긴 했지만, 그건 진짜 우리나라 0.01%만 아는 사실이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마이너한, 어떤 비주류의 움직임이었죠. “와, 2008년에 진짜 그랬지.”라고 해도 사실 아무도 모르잖아요. (전원 웃음) 약간 해적판 느낌이었던 거죠. 옛날 와레즈(Warez) 사이트 같은… 그런 거죠. 그리고 저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다니는 오타쿠였기 때문에 동인지 문화에 인식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원피스> 패러디물을 만들어서 박람회 같은 게 열리면 거기서 오타쿠들이 자기가 만든 동인지들을 팔아요. 팬시 상품 같이 만들어서… 그런 걸 어렸을 때부터 접했기 때문에 약간 마이너한, 해적판 문화라고 생각했는데, 소니 뮤직에서 전화가 오니까 겁이 난 거죠. “아, 네. 알겠습니다.”하고… 근데 저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었을 거예요. 워낙 우리가 마이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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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이미지를 사용하게 됐다


답변에서 보듯이 제대로 믹스테입 붐이었던 시기인 2000년대 후반을 전후로 래퍼들에게 믹스테입은 말 그대로 ‘재미있는 것’이었다. 페이가 따로 책정되지 않는 품앗이 방식의 공연 수익 구조하에서 ‘언더그라운드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생존이 걸려 있다고 해서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러도 괜찮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보면 아티스트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 행위이기도 하다. 또한, 힙합플레이야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오피셜한 루트로 판매할 수 있게끔 했던 것도 문제가 있었다. 강일권 편집장은 이에 대해서 강경한 어조로 말을 보탰다.

LE: 지금에 와서 한국힙합 씬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할 때, 2000년대 후반에 언더그라운드 안에서 유명세를 떨친 래퍼들이 한창 믹스테입을 팔며 주가를 올리던 시절이 없었다고 덮고 숨길 수는 없을 것 같다. 부끄러운 기록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에 와서 그 당시가 회자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화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강: 당시 그들의 판매 방식은 매우 잘못됐었다. 일단 기존에 발표된 미국 힙합 비트들을 그대로 사용하여 만든 믹스테입을 대놓고 스토어에서 판매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더구나 정식으로 유통되는 음반가에 버금가는 판매가로 말이다. 이건 정말 아쉬운 행위였으며, 믹스테입의 본질까지 호도하는 것이었다.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을 떠나 이 부분은 냉정하게 비판해야 할 과거다. 참고로 미국에서도 이 같은 형식의 믹스테입을 판매하는 일이 있어왔지만, 어디까지나 음성적이었고, 가격도 공CD 값에서 조금 더 받는 정도였다. 돈을 벌고자 한 게 아니라 홍보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곡으로 구성하여 스트리트 앨범이나 다름없는 믹스테입 시대가 열리면서 이제 기존 비트를 이용하여 만든 믹스테입을 판매하는 일은 사라진 거나 다름없어졌다.

LE: 당시 믹스테입을 CD로 제작해 판매하는 행위가 한 음반 배급사로부터 제재를 받으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뮤지션은 판매 도중, 혹은 판매 이전에 제작한 CD를 전량 회수하기도 했다고 알고 있다. 당시 음원 배급사의 관계자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연락이 왔다고 알고 있는데, 해당 관계자는 어떤 것을 문의해왔던 것인가? 가능하다면 관계자의 직급이나 이름 등도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강: 전격적인 제재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단, 몇몇 팝 음반사가 자사의 음원을 무단으로 사용하여 만든 믹스테입들이 정규반 못지않은 가격에 팔리고 있는 걸 문제시 삼아 제재를 계획했던 건 맞다. 당시 소니 뮤직의 한 담당자가 내게 문의해 와 알게 됐던 사실이다. 그간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의 배고픈 현실을 고려하여 눈 감고 있었지만, 너무 도를 넘어선 것 같아 제재를 가하려는데, 그럴 경우 혹여 한국힙합 씬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가가 (담당자가 한) 질문의 핵심이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점은 이미 래퍼들이 팔 만큼 팔고 빠진 때였다. 그래서 나도 조언할 게 별로 없었다. 어차피 제재해도 돈 벌고 빠질 사람들은 다 빠진 상황이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LE: 믹스테입 자체를 온라인으로 판매, 유통하는 건 전격적인 판매 행위이기 때문에 문제 삼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법적인 차원이 아닌 문화적인 차원에서 공 CD에 구워 판매하는 행위까지는 용인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일종의 ‘허슬’이니까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 이건 앞선 질문에서 어느 정도 답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덧붙이자면, 이건 용인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가면 아주 위험한 얘기가 된다.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이 얽힌 아주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기도 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팔고 싶어 판다는 이를 막을 권한은 없다. 하지만 그 뒤에 따를 법적 책임은 감수해야 한다. 적어도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하라는 얘기다. 그런데 일전에 보니 한국에선 일부 신인 랩퍼와 아마추어 랩퍼들이 힙합 문화를 내세우며 판매를 정당화하려 하더라.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시 강조하지만, 본인이 팔겠다는 걸 막을 순 없다. 그러나 법적 책임을 인지하고 힙합을 방어막 삼진 말았으면 한다.

LE: ‘샘플링’에 대한 용인을 예로 들면서 믹스테입 판매에 관해 옹호하는 사람도 과거에는 적잖이 있었다. 이에 대해 지겹도록 의견을 개진해오셨겠지만, 한 번 더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해주신다면?

강: 길게 얘기할 것도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샘플링과 문제가 되는 믹스테입의 예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논해야 할 사안이다.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부디 샘플링에 대한 기본 지식부터 쌓고 오길 권한다. 리드머에 가면 내가 심혈을 기울여 썼던 샘플링 관련 칼럼(<해묵은 떡밥, 샘플링을 말한다: About Sampling>, 링크)이 있다. 많은 도움이 될 거다. 맞다. 깨알홍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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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은 (무조건적인) 자유가 아니다


앞서 답변에서 볼 수 있듯 한국힙합 씬의 생존과 성공을 향한 뒤틀린 욕망은 그렇게 음반 배급사에 의해 사그라지게 된다. 누군가는 공분을 터뜨렸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믹스테입은 타의에 의해서나마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물론, 이후에도 몇몇 레이블과 래퍼가 믹스테입을 공연장에서 판매하기도 했지만, 그조차도 201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서두에 말한 것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믹스테입 시장(?)이 재편된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며, 독특한 이 형태의 결과물들을 어떻게 여겨야 할까? 이에 강일권 편집장은 한마디로, “힙합은 자유다.”라는 말로 퉁칠 일이 아니라며 끊임없이 힙합 씬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LE: 중간에 과도기가 있긴 했지만, 이제는 SNS나 공연장 등지에서 믹스테입을 판매하는 행위가 사실상 완전히 사라졌다. 최근 한국힙합 씬에서 기성 뮤지션이나 소위 ‘아마추어’라 불리우는 래퍼들이 믹스테입을 배포하는 방식은 이제 어느 정도는 선을 지키며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강: 그렇다. 피지컬 매체가 아닌 온라인 믹스테입 시대가 열리면서 인제야 한국힙합 씬에서도 믹스테입을 배포하는 방식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LE: 사실 현재의 한국힙합 씬은 과거 믹스테입 판매가 횡행했던 시대를 보냈던 때를 다소 희미하게 기억하는 제네레이션이 주된 소비층으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앞서 잠시 이야기가 나왔던 것처럼 과거의 기록이 자칫 왜곡되거나 미화되어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제네레이션에 해당되는 이들에게 그 기록을 온전히 전달하려면 이 계열의 종사자들(뮤지션, 매체 관계자 등)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강: 종사자들부터 장르는 물론, 본인이 몸담고 있는 씬과 문화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 하고 끊임없이 지식과 정보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사랑한다면 말이다. 무엇보다 이는 비단 믹스테입 뿐만이 아니다. 힙합이 워낙 특수한 상황에서 태동한 음악이자 문화 아닌가. 역사적으로 힙합은 고정관념과 주류 시스템에 맞서며 성장했지만, 그 안에 있는 많은 창작자와 종사자는 뿌리와 본질에 대한 탐구를 매우 중시해왔다. 즉, “힙합은 자유다.”라는 말로 퉁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LE: 마지막으로 힙합엘이가 믹스테입먼쓰를 기획하고 있다.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래퍼들이좀 더 부각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는 의도도 있다. 어느 정도 용인되는 선에서 믹스테입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는 많은 래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강: 오늘날 믹스테입의 세계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누구나 쉽게 만들고 배포하여 퍼트릴 수 있게 됐지만, 주목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만약 본인이 무명이거나 인지도가 낮은 상태에서 믹스테입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싶다면, 정식 앨범 작업 못지않게 심혈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꽤나 많은 아티스트, 매체를 사례로 인용하며 과거 한국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자리잡은 믹스테입 문화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되짚어 봤다. 조금 우려되는 건, 이 글의 목적을 단순히 예전의 잘못을 끄집어내 그 대상을 두들겨 패고자 함으로 볼까 하는 부분이다. 단언컨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나조차도 기사를 쓰며 그 당시 아무런 문제의식 없었던 나를 반성하게 됐다. 다만, 나를 비롯해 그 당시 한국에서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즐기고 있던 이 중 대부분은 그저 믹스테입을 유료로 판매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 그 자체가 없었을 뿐이다. 지금은 그것을 타의에 의해서이긴 하나, 어느 정도 다시 제대로 쌓아 올린 상태다. 모르면 알면 되고, 배우면 된다. 그다음,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알고 배우게 된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부끄러웠던 과거를 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이 씬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가 올바른 방법으로 좋은 믹스테입을 맘껏 내놓아 주기를 바란다.


*관련링크


글│Melo
이미지│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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