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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의 알앤비: Donna Summer – Bad Girls (1979)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8.10.28 21:17조회 수 59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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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의 알앤비(그.알)>는 류희성 현 재즈피플 기자, 전 힙합엘이 에디터가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장기 연재입니다. 1960년부터 2015년까지, 해당연도에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아티스트와 앨범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알앤비/소울의 역사를 모두 꿰뚫을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디스코의 여왕’이라 불렸던 도나 섬머(Donna Summer)는 여러모로 기존의 소울/훵크 아티스트들과는 달랐다. 과거 흑인음악가 대부분이 남부 주의 소작농이나 목사를 부모로 두었던 것과 달리 도나 섬머는 동부의 보스턴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정육점을 운영했고, 어머니는 교사였다. 대도시에서 자란 도나 섬머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고, 음악도 체계적으로 배웠다. 록 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뮤지컬 <헤어(Hair)>에 참여해 독일에서 지내며 공연도 했었다. 마른 체형에 호감형 외모였기에 모델 활동, 코러스 싱어 등 다양한 일을 병행했다. 어떠한 영역에서 전문가나 프로페셔널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중 조르조 모로더(Giorgio Morodor)와 피트 벨로트(Pete Bellotte)와 만난다. 전자음악 프로듀서이자 레이블 사장이었던 조르조 모로더는 도나 섬머와 계약을 맺고 유럽에서 활동을 개시했다.

유럽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2집 앨범 [Love To Love You Baby]가 그러했다. 이 앨범에서 도나 섬머가 택한 스타일은 연약한 여성상, 그리고 야릇한 사운드였다. 속삭이듯 노래하고, 신음소리를 내는 식이었다. 타이틀곡 “Love To Love You Baby”는 훵크의 리듬감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도 단순화한 사운드와 가사를 내세웠다. 미국 진출의 시발점이 됐다. 디스코텍에서 사용할 긴 버전으로 제작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어서 발표한 [A Love Trilogy]에선 디스코텍에서 틀 수 있도록 LP의 첫 사이드에 18분짜리 "Try Me, I Know We Can Make It" 한 곡만을 수록했다. 스타일적으로는 전작과 같았다. 가볍고, 반복적이고, 연약했다. 이 시기에 디스코는 흑인음악을 넘어 대중음악을 휩쓰는 돌풍이 되어 있었다. 장르적인 상승세와 맞물려 도나 섬머는 급상승 기류를 탔다. 내는 싱글마다 댄스 차트 1위를 휩쓸었다. 팝 차트 상위권까지 진출했다. ‘디스코의 여왕’이란 칭호가 따라붙었다. 그러던 중 강력한 상대를 맞닥뜨린다. 1977년 편에서 소개했던 디스코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의 사운드트랙을 만들었던 비지스(Bee Gees)였다. 비지스는 팝적인 감각으로 디스코를 새롭게 다듬었고, 이를 통해 누린 인기는 도나 섬머를 압도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 Donna Summer – Hot Stuff


한 해에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던 도나 섬머는 1978년에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9년에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충분한 작업 시간을 갖고 완성한 새 앨범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없단 사실을 직시했던 걸까. 러닝타임을 길게 해서 LP의 한 면을 채우지 않고, 오히려 두 장의 LP에 열다섯 곡을 빼곡하게 담았다. 이 앨범은 두 개의 히트 싱글 “Hot Stuff”와 “Bad Girls”로 설명할 수 있다. 두 곡은 디스코 차트는 물론, 팝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앨범을 대표하는 격이며, 다른 수록곡들도 같은 형태를 띠었다. 반복적인 디스코 사운드,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와 보컬이 중심을 이룬다. 도나 섬머는 그 속에서 그저 순종적일 것 같고, 자기 의지는 전혀 없어 보이는 기존의 여성상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있는 주체적인 개인으로 자리한다. [Bad Girls]는 도나 섬머가 음악적으로, 또 한 명의 개인으로 큰 도약을 하게 한 작품이다.

그러나 [Bad Girls]가 발매된 1979년 시작된 디스코의 몰락과 함께 도나 섬머도 금세 하락세를 맞이했다. 그전까지 디스코는 1970년대 음악 산업의 흐름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시였다. 다양한 전자악기의 진보는 음악을 하기 위해 녹음하고 무대에서 연주할 밴드를 작곡가 겸 프로듀서 한 명과 노래할 가수 한 명이라는 최소 인력으로 대체했다. 박자 체계나 음악의 구조 역시 대단히 간편해졌다. 몇몇 훵크 밴드는 디스코로 전향했다. 그중 수준 높은 연주를 선보였던 시크(Chic) 같은 디스코 밴드도 있었지만, 큰 흐름은 단순화되는 쪽이었다. 이에 록 마니아들이 반발했다. 록은 1960년대에 꽃을 피우기 시작해 1970년대 들어 다양한 방면으로 뻗어 나가며 예술성을 만개했다. 그 다양한 방향성에는 디스코를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됐다. 하지만 대체로 백인 남성이 소비층이었던 록 소비자, 마니아들은 흑인들과 성 소수자들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시작한 단순하고 상업적인 디스코에 불만을 표했다. 그들은 ‘디스코는 구리다(Disco Sucks)’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반대 운동을 펼쳤다. 디스코는 국가적 망신 같은 것이 되었고, 1979년 7월 12일 MLB 경기에서 <디스코 파괴의 밤>이라는 행사가 열리고 말았다. 그렇게 디스코는 처참히 몰락했다. 1980년대 들어서 디스코에 근간을 둔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이 등장했으나, 자신의 음악이 디스코라 불리기를 원하는 아티스트는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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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섬머 또한 그 시대적 흐름에 따라 순식간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셈이다. 1980년대에는 "에이즈는 동성애자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신이 준 벌"이라 말해 그의 음악을 사랑해준 동성애자 팬들의 마음까지도 돌아서게 했다. 이후에 발언을 철회했지만, 그땐 너무 늦어버렸다. 결국, 디스코의 몰락과 섣부른 발언으로 인해 도나 섬머는 1970년대의 스타로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 세계적으로 1억 장이 넘는 앨범을 팔아치운 거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건 도나 섬머가 이 판매 수치의 대부분을 디스코로 인기를 누렸던 1975년에서 1979년 사이에 적립했다는 것이다. 당시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짧은 전성기를 누렸음에도 그 시대와 장르를 압도했던 아티스트, 그에게 ‘여왕’이란 칭호는 전혀 과장된 타이틀이 아니다.


*관련링크
그해의 알앤비 이전 시리즈 보기 1 (1960 ~ 1974) / 보기 2 (1975 ~)


CREDIT

Editor

류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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