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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굿바이, 아무로 나미에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8.09.15 01:11조회 수 5216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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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of J-POP’ 혹은 ‘제이팝의 여신’ 아무로 나미에(安室奈美恵)의 은퇴가 정말 눈앞으로 다가왔다. 데뷔 25주년을 맞은 지난해 9월 16일로부터 나흘 후인 자신의 생일, 아무로 나미에는 ‘팬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다음 해인 2018년 9월 16일에 연예계를 은퇴하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여왕의 은퇴 소식은 팬들뿐 아니라 일본 음악계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오랜 기간 일본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서 음악, 댄스, 패션까지 수많은 영역에서 영향을 끼쳐 온 그녀의 커리어를 되돌아보려는 움직임도 여러 방면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 글에서는 폭넓은 장르를 오갔던 아무로 나미에의 커리어에서도 힙합/알앤비를 제이팝 안에 구현한 시기를 중심으로 그녀의 음악을 돌아보려 한다. 아무로 나미에를 이야기할 때, 90년대 솔로 데뷔 직후 맞이한 화려한 댄스 가수로서의 전성기나 발라드 히트 넘버들이 가장 많이 언급되지만, 분명히 그녀는 한때 ‘Queen of Hip-Pop’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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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일본을 사로잡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아무로 나미에의 커리어 초반을 이야기할까 한다. 그녀의 데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아무로 나미에는 너무나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친구를 따라 우연히 방문했던 오키나와의 가수/연기자 육성 학원인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 원장의 눈에 띄어 노래와 춤을 배우게 됐다. 이 시기에 흑인음악과의 첫 접점이 생겼다. 당시 TV를 통해 자넷 잭슨(Janet Jackson)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자넷 잭슨의 춤과 노래는 아무로 나미에가 가수 활동을 본격적으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향후 활동을 이어갈 때도 롤모델이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하지만 그 영향을 겉으로 드러낸 건 훨씬 나중이었다. 1992년에 같은 학원의 동료들과 슈퍼 몽키즈(Super Monkey’s)로 데뷔했지만, 그룹의 음악 스타일은 당시 유행하던 유로 댄스에 가까웠다. 이후 몇 년간의 활동을 거쳐 주목을 모으자, 아무로 나미에는 스타 프로듀서 고무로 테츠야(小室 哲哉)의 지원 아래 화려하게 솔로로 데뷔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90년대 후반, 그녀의 음악은 발표하는 족족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대형 히트를 이어나갔다. 패션과 스타일을 따라 하려는 ‘아무라(‘아무로’에 영어식 접미사 ‘-er’을 붙여 아무로 나미에의 패션 등을 추종하는 이들을 칭하는 표현)’들이 대량으로 생겨나는 등 사회 현상이 되기도 했다. 열본 열도가 '아무로 앓이'를 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아무로 나미에 - CAN YOU CELEBRATE? [TV-CM(1997)]

하지만 “CAN YOU CELEBRATE?”으로 200만 장의 싱글 판매고를 올리고,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돔 투어를 성공시키던 최전성기에 연달아 커다란 사건들이 발생한다. 1997년 절정의 인기였던 20살의 아무로 나미에는 돌연 15살 연상의 댄서와 속도위반 결혼을 발표하고 휴식기에 들어가며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출산 이후로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9년에는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급기야 2002년에는 이혼까지 맞았다. 개인적으로 겪어야 했을 아픔과 스트레스를 다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는 동안 사생활에 대한 반감과 새로운 음악적 시도 사이에서 대중들의 반응도 조금씩 식어갔다. 어쩌면 많은 젊은 스타들처럼 그녀도 90년대의 추억으로 남겨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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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p-Pop' 여왕의 시대

인생을 뒤흔드는 여러 사건 사이에서 아무로 나미에의 음악적 방향성도 전환점을 맞는다. 특히, 첫 솔로 활동 시점부터 그녀의 성공을 견인해 온 프로듀서 고무로 테츠야와의 작별은 의미가 크다. 아무로 나미에는 2000년을 기점으로 고무로 테츠야의 참여 비중을 줄이고, TLC, 보이즈투맨(Boyz II Men)과 같은 미국의 힙합/알앤비 아티스트들과 작업해 온 프로듀서 댈러스 오스틴(Dallas Austin)을 기용하는 등 본격적으로 흑인음악 사운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break the rules]를 끝으로는 고무로 테츠야와 댈러스 오스틴의 공동 프로듀스 체제도 막을 내렸고, 이후로는 아무로 나미에가 스스로 작품을 프로듀스하기 시작했다. 혹자는 이 시기를 아무로 나미에의 커리어 위기나 침체기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90년대의 열광적인 붐이 사라졌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많은 팬을 지닌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였다. 오히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 시기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아무로 나미에의 스타일은 이후 커리어를 이끌어가는 커다란 자산이 된다.

그중에서도 이혼 후에 발표한 ‘SUITE CHIC’ 프로젝트는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앨범 제작에 관여한 엠플로(m-flo)의 버벌(VERBAL)과 이마이 료스케(今井了介)는 “일본의 자넷 잭슨은 누구일까?”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로 나미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본인 의사도 물어보지 않은 채 아무로 나미에가 부를 데모 곡들을 제작해 보냈다고 한다. 아무로 나미에 음악의 시작점이자 롤모델이 자넷 잭슨이니 당연한 결과일까? 그녀는 ‘아무로 나미에’의 이름으로 내는 작품에서는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이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아무로 나미에도 이제까지의 노선을 탈피해 방향을 전환할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마침내 2003년, 아무로 나미에를 프런트우먼으로 다수의 힙합/알앤비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프로젝트 앨범 [WHEN POP HITS THE FAN]이 발표됐다. 앨범에는 아무로 나미에와 함께 화스토크라스(FIRSTKLAS, 지브라(ZEEBRA)+이마이 료스케), 버벌(엠플로), 다보(DABO), 아이(AI), XBS, 이마이 다이스케(今井大介), 아키라(AKIRA), 무로(MURO), DJ 와타라이(DJ WATARAI), 샤카좀비(SHAKKAZOMBIE)의 츠치에(TSUTCHIE), 소울 스크림(SOUL SCREAM)의 DJ 셀로리(DJ CELORY), 아쿠아리우스(AQUARIUS)의 약코(YAKKO), 미치코(MICHICO), 야마키 류이치로(Ryuichiro Yamaki) 등 당시 일본 힙합/알앤비 씬을 대표할 만한 래퍼, 싱어, 프로듀서들이 대거 참여했다. 높은 완성도는 당연한 결과였다. 성공적인 도전이었다. 실제로 이후 작품들의 사운드를 살펴보면, 이때 만들어진 세련된 팝 알앤비, 힙합 베이스의 사운드가 아무로 나미에의 새로운 음악적 방향성을 설정하는 큰 기준점이 되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 'SUITE CHIC' (Feat. FIRSTKLAS) - GOOD LIFE (Live)

[WHEN POP HITS THE FAN]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된 정규 6집 앨범 [Style]은 ‘SUITE CHIC’ 프로젝트 작업에서 얻은 자신감과 방향성을 본격적으로 살린 작품이었다. 일단 ‘SUITE CHIC’ 프로젝트로도 함께했던 지브라, 버벌 등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것부터 눈에 띈다(이후 아무로 나미에가 지브라와 엠플로의 곡에도 참여하며 교류를 이어갔다). 전설적인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Teddy Riley), 많은 협업을 해온 댈러스 오스틴을 비롯해 해외 작곡가들이 다수 참여한 것도 새로운 시도의 일환이었다. 특히, 세 번째 싱글로 발표된 “Put 'Em Up”은 원래 댈러스 오스틴이 TLC에게 주려던 곡이었다고 한다. [Style]은 직전의 정규작들인 [GENIUS 2000]과 [break the rules]까지 이어지던 고무로 테츠야와 댈러스 오스틴의 공동 프로듀스 체계가 끝나고 고무로 테츠야의 손을 완전히 떠나 탄생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비록 대중적으로는 이전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음악적으로는 성공적인 방향 전환이었다. 추가적으로 2004년 5월에는 처음으로 아무로 나미에의 내한 공연이 주최되기도 했다. 당시 4차에 걸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2004년에 들어서야 마무리됐음을 고려하면, 제이팝 가수의 대규모 내한 공연은 무척 파격적인 일이었다.

♬ 아무로 나미에 (Feat. AI) - Uh Uh,,,,,, (Live in Korea)

2005년 한국에서도 동시 발매된 7집 앨범 [Queen of Hip-Pop]은 타이틀에서부터 자신감과 음악적 정체성의 확립을 보여준다. [Style]이 90년대와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면, [Queen of Hip-Pop]은 그 스타일에 대한 확신에 찬 표현 그 자체다. “ALARM”이나 “WANT ME, WANT ME” 같은 싱글을 비롯해 많은 수록곡이 당시 미국에서 큰 인기였던 씨애라(Ciara), 미씨 엘리엇(Missy Elliott) 등을 떠올리게 하는 트렌디한 사운드를 담고 있었다. 물론, 제이팝 특유의 멜로디컬한 맛을 살린 “GIRL TALK”나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발라드 넘버 “ALL FOR YOU”도 있었다. 앨범은 차트에서 존재감을 보이며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환 아무로 나미에를 알렸다. 또한, 이후로도 이어지는 세 명의 메인 프로듀서 체제가 갖춰지면서 프로덕션 면에서도 안정감을 확보하게 됐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다. 전작에도 참여했던 미치코 & 티.쿠라(T.Kura) 부부 프로듀서와 새롭게 합류한 나오위엠티(Nao'ymt)까지, 셋은 [Queen of Hip-Pop]을 시작으로 한동안 아무로 나미에의 대부분 트랙을 담당하며 프로듀싱 면에서 아무로 나미에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 아무로 나미에 - WANT ME, WANT ME

그로부터 2년 후인 2007년 발표된 앨범 [PLAY]는 아무로 나미에가 원하던 힙합적인 요소를 갖춘 세련된 팝 알앤비를 중심으로 다양성을 더한 앨범이었다. 그녀는 이 앨범으로 7년 만에 오리콘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대중적인 측면에서 과거의 위용을 회복해 나간다. 흑인음악적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댈러스 오스틴과의 협업, 고무로 테츠야와의 작별, 도전이었던 ‘SUITE CHIC’ 프로젝트, [Style]과 [Queen of Hip-Pop] 같은 변화의 흔적은 여전히 앨범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지난 앨범에 확립된 3인의 프로듀서진이 [PLAY]에서도 큰 변동 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로 나미에를 과거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던 대중들도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전성기 못지않은 인기 부활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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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팝 여신의 부활

새로운 음악으로 대중들 앞에 재등장한 아무로 나미에의 날갯짓은 여기서부터 불이 붙는다. 헤어 제품 브랜드 비달 사순(Vidal Sassoon)과의 콜라보로 발표한 싱글 [60s 70s 80s]는 트렌드를 이끄는 패션 아이콘이자 음악적 진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티스트라는 두 가지 존재감을 모두 가진 아무로 나미에였기에 가능한 캠페인이었다. 60년대(The Supremes - Baby Love), 70년대(Aretha Franklin – Rock Steady), 80년대(Irene Cara – Flashdance... What a Feeling) 팝 명곡들을 리메이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는 노래와 뮤직비디오, 그리고 이를 활용한 광고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 아무로 나미에 - NEW LOOK

2008년 발표된 베스트 앨범 [Best Fiction]은 오리콘 앨범 차트를 완전히 정복하고 판매량이 100만 장을 돌파했다. 그야말로 여신의 귀환이었다. 하지만 아무로 나미에는 다음 해 발표한 [PAST<FUTURE]에서 또 한 번 변신을 꾀한다. 자신의 과거를 집대성한 베스트 앨범 [Best Fiction]의 사진을 찢는 파격적인 커버 아트워크는 과거의 스타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녀의 태도와 자신감을 압축해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태도는 이후의 활발한 활동으로 증명된다. 아무로 나미에는 2010년대 들어서도 제드(Zedd),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 등과 협업하며 EDM 장르로 다시 한 번 과감히 변신을 시도했다. 새로운 프로듀서진을 영입하고 보컬로이드인 하츠네 미쿠(初音ミク)를 피처링으로 불러들이는 등 실험과 도전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각종 베스트 앨범과 오리지널 앨범 세 장을 내놓았다. 물론, 2010년대 들어서 방송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대신 공연 활동을 매우 활발하게 펼쳤다(2012년에는 두 번째 내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녀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멘트 하나 없이 긴 공연 시간 내내 파워풀한 안무와 노래를 동시에 선보이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데뷔 25주년인 2017년에는 은퇴 발표 이후인 11월 공개한 올타임 베스트 앨범 [Finally]가 발매 첫 주에 100만 장을 돌파했고, 두 달 만에 200만 장을 돌파했다. 연말에는 무려 14년 만에 NHK의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戦)>(1950년대부터 시작되어 매년 그 해의 대중음악계 인기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연말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짤막한 인터뷰와 함께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Hero”를 열창했다. 마지막 투어 <namie amuro Final Tour 2018 ~Finally~>도 올 6월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제 정말 마지막 인사만을 남겨두고 있다. 아무로 나미에는 은퇴 전날인 오늘, 9월 15일 고향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에 참가해 마지막 무대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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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말 안녕.

은퇴를 눈앞에 둔 아무로 나미에의 26년 음악 인생. 그 빛나는 세월 속에서 가장 저평가된 시기는 역시, 자넷 잭슨을 동경하던 소녀가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나 ‘Queen of Hip-Pop’으로 멋지게 귀환하던 때였다. 앞서 말했듯 '아무로 열풍'이라고 할 만큼 열광적이었던 인기가 하락세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이 시기를 침체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나, 이 시기는 분명 그녀의 결단과 노력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던 시기다. 누군가에게는 'Queen of J-POP', 하지만 나에게는 'Queen of Hip-Pop', 아무로 나미에의 은퇴를 아쉬움과 함께 축복한다.


CREDIT

Editor

soul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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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2018.9.15 01:46 댓글추천 0

    제일 좋아하는 분 중에 하나 입니다. 그녀와 misia 일본 음악가중 리스펙트 하는 인물입니다.

  • 2018.9.15 17:02 댓글추천 0

    리튜드님 말고 이런 심도있는 글을 누가 쓸 수 있을까 했는데 역시군요. 저는 옛날 옛적(?) 이누야샤 ost 컴필 앨범에서 come이라는 곡을 들었던 것이 아무로 첫 입문이었습니다 ㅎ.. 오묘한 기분이 오가는, 비오는 밤입니다.

  • 2018.9.16 01:22 댓글추천 0

    고생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8.9.16 06:14 댓글추천 0

    걱정마십셔 언젠가는 돌아올겁니다.

  • 2018.9.16 23:21 댓글추천 0

    구하라랑 너무 닮았네요

  • 2018.9.17 08:01 댓글추천 0

    고생많았어요. 저에게있어선 never end에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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