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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비, 아직도 철부지 같아?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8.02.18 04:17조회 수 4949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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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리만치 먼저 소개하지 못해 아쉬운 아티스트, 앨범, 트랙들이 종종 있다. 나중에 어찌어찌 소개해봤자 무슨 산업, 어디 땅이 뜬다는 소문을 듣고 뒤늦게 투자해 호시탐탐 이득을 챙겨보려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 기분이 영 찝찝하기만 하다. 또 가만히 있자니 주식하는 사람들이 외치는 금단의 언어인 ‘그때 샀어야 했는데!’를 마음속으로 연신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잘된 게 괜히 배가 아프고 나만 알고 싶었다든가 하는 그런 촌스러운 마음은 또 아니다. 그저 해야 했던 일을 하지 않은 것만 같아 못내 아쉬울 뿐이다. 그런데 만약 그 소개하지 못한 것이 가면 갈수록 우량주로 평가되고, 급기야 주식 상장을 해버리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그 애매한 기분이 최근 들어서는 2014년, [새우깡] 때부터 쭉 유심히 지켜봐 왔던 슈퍼비(Superbee)를 볼 때마다 팍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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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허슬로 레전드를 꿈꾼다


모두가 알 듯 슈퍼비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정규 1집 [Rap Legend]와 정규 2집 [Original Gimchi]를 2주 간격으로 내놨다. 선발매 싱글, CD only 트랙까지 합쳐서 무려 스물다섯 곡을 한꺼번에 쏟아냈고,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시기를 넓혀서 보면, 사실 그는 원래부터 어느 정도 허슬러였다. 거진 다섯 달을 투여했다는 <쇼미더머니 5>나 그 이전의 <쇼미더머니 4>, 두 번의 경연을 치르면서도 2016년 마세라티 차를 산 기념으로 냈다는 [The Life is 82 : Maseratape], 2017년 [How to be A Happy Boy]가 그 증거다. 이번엔 단지 그 기질에 특이점이 와서 더 크게 터진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다만, 이 허슬은 기본적으로는 자연 발생적일지라도, 디테일하게는 꽤나 노골적인 의도와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앞으로나란히를 하듯 앨범이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발매된 건 둘째 쳐도, “Rap Legend”, “Ice On Wrist”, “뱀구렁이” 같은 곡의 가사를 보면 세 살짜리 꼬마도 슈퍼비가 1집을 낸 지 2주 만에 2집을 낸 데에 꽤 큰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두 장의 정규 앨범을 연달아 냈다는 걸 무려 세 곡에 걸쳐 강조한다니, 작자 본인이 그 사실 자체에 어느 정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정규 1집 다음은 2집 난 rap game을 살려

정규 1집 2주 뒤에 2집 래퍼들은 이직 아님 구인 구직

1집 어제 내고서 2집을 또 drop해

- Rap Legend, Ice On Wrist, 뱀구렁이 中 -


조금은 과잉되게 의미 부여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가사 면면을 뜯어보면 그 음악적 허슬의 기저에 깔린 의식이 충분하게 보여 한꺼번에 앨범을 두 장이나 냈다는 물리적인 행동이 상당히 필연적이고 설득력 있어 보인다. 슈퍼비는 [Original Gimchi] 속 동명의 인트로에서 시작하자마자 '니 동생처럼 생긴 놈이 버는 벌이는 억 소리'라는 가사를 뱉는다. 이어 ‘관련도 없으면서 내가 최고란 사실에 왜 니가 괴로워하냐’며 반문한다. “Without Dope”에서도 비슷한 뉘앙스, 내용의 라인을 선보인다. 심지어 “Forgive me”에서는 모두가 자신이 망하기를 바라고, 넘어설 수 없는 또 하나의 법을 제시한다며 정말 억울한 건지, 아니면 은근히 조롱하는 건지, 아무튼 애처롭게 노래한다. 언뜻 자신의 성공에 시기와 질투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는 식의 많고 많은 힙합 가사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올해 25살임에도 여전히 앳된 소년 같은 슈퍼비의 비주얼과 보편 대중들이 힙합, 래퍼하면 떠올리는 기존의 마초적인 이미지 사이에서 생긴 간극이라는 다소 특수한 맥락에서부터 비롯된다. 이제는 힙합이 우락부락한 흑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다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마초성을 딛고 커온 장르가 힙합인 만큼, 터프하고 강직한, 소위 ‘남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치가 우선시되는 건 여전하다. 그 와중에 ‘초딩 외모’로 분류되고 '꾸러기' 같은 외양의 슈퍼비가 스웨깅하는 랩을 하고, 돈을 싹싹 긁어모아 외제차를 사니, 누구도 순간적인 괴리감은 어쩔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슈퍼비는 그 편견 아닌 편견들을 뚫고 내가 짱이라는 걸 외치기 위해 이전과 똑같이 <쇼미더머니 6>에 나가기보다는 두 장의 정규 앨범을 한 번에 내놓는다는 가장 임팩트 있고 효과적인 허슬의 방식을 고른 셈이다.

모두 내가 너무 가난해져 내 차를 팔기를 바래
지하철역 거지 아저씨 옆에 살기를 바래 
계속 내가 내 무덤을 파기를 바래 그래서 내가 파면 
내 넌 그럴 줄 알았다래 병 주고 약도 없네

- Forgive me 中 –







악동은 영악함으로 랩스타가 되어간다


이 전개는 마치 컨테이너에서 살던 초졸 혼혈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랩스타가 된 도끼의 인생 경로가 변주된 버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한국 사회 내에서 차별의 도구로 빈번히 쓰이는 부, 학력, 인종이라는 기준에서 거의 최하위에 위치했던 도끼에 비할 바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슈퍼비의 이번 앨범들은 꽤 노골적으로 도끼의 실루엣을 그가 지향하는 하나의 상으로 제시한다. 힙합 때문에 이렇게 잘 먹고 잘산다며 뜨거운 애정을 드러내고(“찬양가 (Hip-Hop is Love)”), 그 힙합을 하는 걸 반대하는 기존의 체제에 반항한다(“Fuxx School”). 그 두 가지 맥락을 합친 곡이 스물다섯 곡 중 가장 감성적인 축에 속하는 “랩을 안 했다면”이다. “Without Dope”을 비롯해 또 다른 몇몇 트랙에서는 다른 래퍼들이 놀 때 열심히 일한다며 래퍼로서의 허슬을 과시한다. 비약일 수도 있겠으나, 심지어 그 허슬이 자신이 애정하는 힙합에게 충성을 표하며 바치는 일종의 제물처럼 다가오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그 모든 언사를 펼치는 주인공이 앞서 언급했듯 힙합에 대한 사회 통념상 일반적인 시각, 이미지에 썩 들어맞지 않는 슈퍼비다. 도끼에 비해 비교적 작은 범주일 순 있으나, 어쨌든 그도 나름대로 어떤 환경적인 허들을 넘고 더 개운하게 증명하기 위해 두 앨범을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양상이 비슷할 수 있었던 건 캐릭터상 도끼는 한국에서 보고 자랄 마땅한 롤모델이 없었던 반면, 많은 젊은 래퍼들이 그렇듯 슈퍼비는 도끼라는 롤모델을 지척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기까진 주관적 해석이다. <7INTERVIEW>에 따르면, 슈퍼비는 실은 한두 달에 한 개씩 앨범을 내는 미국의 래퍼들에게 자극을 받아 일처럼 여기지 않고 재미있게 두 앨범을 만들었다고 한다. 노력이 수반되었겠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힙합에서는 허슬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기에 축복받은 DNA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내가 이 사회에 주어진 공식대로 선생 말대로
근데 울엄마는 판사 의사 할 거 아님 공부하지 말랬고
그럼 난 지금 뭐했을까
(…)
그토록 원하던 게 이뤄지다니
10대를 지새운 이 밤이
20대가 됐지만 still grindin

- 랩을 안 했다면 中 -


그렇다면 슈퍼비는 단순히 도끼의 아류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가벼워 보여서 그렇지, 그는 도끼와 구분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갖고 있다. 물론, [Rap Legend]만 놓고 보면, 많은 구간에서 목을 잔뜩 옥죈 채로 타이트한 플로우를 소화해내는 게 도끼의 그것처럼 보이긴 한다. 하나, “지존”, “Studio Life”의 멜로디컬함이나 “찬양가 (Hip-Hop is Love)”, “Fuxx School”의 산뜻함은 오로지 슈퍼비만이 구사할 수 있는 재치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듯, [Original Gimchi]에서 시작하자마자 솔쟈보이(Soulja Boy)의 “Crank That”이 슬쩍 생각나는 “Original Gimchi”나 “Ice On Wrist"로 버블검 트랩을 선보이며 진지한 톤으로 접근한 [Rap Legend]와 확연히 대비되는 순간을 연출한다. 카리스마는 떨어지되, 음악적 자유도는 높고, 그에 따라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많다. 랩스타와 ‘Kid’, ‘Boy’ 같은 단어로 대변되는 소년의 아이덴티티가 공존하니, “Cuz I’m Happy”처럼 한없이 발랄하기만 한 트랩 넘버도, 퓨처(Future)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듯한 “I Be Bee”처럼 소리적으로 흥미를 돋우는 트랙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아, 그리고 슈퍼비는 지금도 [새우깡] 때처럼 ‘나는 금나라, 넌 마동포 다 털어’, ‘이 노래도 죽여 (…) 난 지미뉴트론 랩하는 버전 분명’ 같이 골 때리는 라인을 수없이 쓸 줄 안다. 그는 그렇게 한국힙합 씬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케이스가 되어가고 있다.

이 축복을 좋은 rap으로 보답해야돼
이게 없었으면 나는 거지야 거지
우린 Hip-Hop을 더 많이 사랑해야돼
구원받은 은혜 잊으면 절대 안돼

- 찬양가 (Hip-Hop is Love) 中 -





1년하고 조금 더 전에 더 이상 아쉬워하지 않기 위해 [The Life is 82 : Maseratape]에 관한 리뷰를 쓴 적이 있었다. 당시 글 안에 ‘힙합이라는 장르 음악 안에서 이미 레드 오션인 스웩이라는 테마를 스트레이트하게만 소화하는 건 그다지 메리트가 없다’는 말을 써 넣었었다. 당시 슈퍼비의 앨범을 복기해보고, 또 지금 그의 피지컬을 생각해보면 과연 일리 있는 판단이었을까?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나, 그 사이에 슈퍼비가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는 것 하나만큼은 뚜렷한 사실처럼 다가온다. 대단히 입체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는 이제 자신의 무기가 무엇인지 잘 알고, 또 그것을 아주 날카롭게 가다듬어 제대로 휘두를 줄 아는 것만 같다. 더 나아가 힙합에서는 마르고 닳도록 언급되는 덕목 중 하나인 ‘I Don’t Give a Fxxk’을 허슬과 함께 제대로 시전하니 슈퍼비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보다 더 리얼할 수 있겠는가? 그 누가 슈퍼비를 두고 계속해서 철없고 멋없어 보인다며 싫어해도 그는 자신의 말마따나 'Rap Legend'까진 아니더라도 2010년대 후반의 랩스타로 기록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글 | 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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