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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서로 다른 환경의 두 전설, 김창완과 이집션 러버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7.10.09 15:28조회 수 191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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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말, 레드불 뮤직 아카데미 베이스캠프 서울(RBMA Bass Camp Seoul, 이하 RBMA 베이스캠프 서울)이 열렸다. 베이스캠프가 열리는 동안 많은 행사가 있었고, 열여섯 명의 국내 참가자들이 서로 음악적인 교류를 가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집션 러버(Egyptian Lover), 김창완, 제시 란자(Jessy Lanza), 제임스주(Jameszoo)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이 있었다. 그중 두 전설, 이집션 러버와 김창완의 강연에 관한 정보를 일부 공개한다. 두 전설은 레드불 뮤직 아카데미 베이스캠프 강연자라는 점 외에는 공통분모가 없지만, 두 사람의 강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래 전 각자가 활동했던 시기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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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션 러버


이집션 러버(Egyptian Lover)는 롤랜드 사의 TR-808이라는 드럼머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유명해졌고, 80년대에 랩 음악과 전자음악을 결합하며 선구자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음악은 댄스 뮤직이며 동시에 랩이 있었고, 무엇보다 섹시함을 어필하고자 애썼다. 이집션 러버가 RBMA 베이스캠프 서울에서 한 이야기는 편안하면서도 유쾌했고,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에 있어 더욱 재미있었다.


그는 당시에 투 턴테이블과 믹서로 두 개의 판을 동시에 운용하는 것 자체가 파격적이었고, 선구자적인 행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힙합의 탄생을 실제로 만나는, 흡사 역사의 현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사실 그렇게 거창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집션 러버는 당시 생겨났던 많은 이벤트를 담백하게 회상했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쉬(Grandmaster Flash)가 스크래치를 처음 선보이고, 자신도 그걸 보고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80년대에도 믹스테입이 있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해줬다. 동시에 엉클 잼스 아미(Uncle Jamm’s Army)에 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엉클 잼스 아미는 70년대 후반부터 존재했던 LA의 파티 크루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댄서, 프로덕션, 프로모터가 함께 존재했다. 당시 LA에는 이러한 존재가 거의 없었고, DJ라는 포지션을 인식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엉클 잼스 아미는 볼룸 파티, 하이스쿨 파티 등 큰 파티를 맡으며결국 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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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자기 자랑도 곁들였다. 1984년, 그가 [On the Nile]이라는 앨범을 발표했다는 점, 거기에 수록된 “Girls”와 “Egypt, Egypt”가 흥했다는 점을 빼놓지 않았으며, 음악도 직접 들려줬다. 당시 DJ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역할을 잘 해냈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러 왔다는 이야기도 했다. 후에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디제잉을 카피했다고. 그러면서 후발주자로 월드 클래스 레킨 크루(World Class Wreckin’ Cru)가 생겨났고, 당시 구성원으로는 닥터 드레(Dr. Dre), DJ 옐라(DJ Yella), 닥터 락(Dr. Rock)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LA에는 DJ들의 크루가 생겨났고, 그들끼리 앨범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N.W.A가 탄생할 수 있었던 기반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후 그는 드럼 머신, 정확히 롤랜드 사의 TR-808과 사랑에 빠졌다. 드러머인 친구는 별로라고 했지만, 그는 "이게 자신이 원하던 것이"라며 음악을 만들었다. 처음 드럼 머신이라는 존재를 알았을 때 너무 놀랐고, 그렇게 드럼 머신의 세계에 눈을 뜨며 비트를 바꿨다고 한다. 엄마한테 돈을 꿨다는 이야기는 어쩐지 익숙하게 들렸지만, 그는 결국 808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는 아이디어가 많았고, 댄스 뮤직을 만들었고, 결국 808은 음악 시장에서 뜨기 시작했다. 물론, 극진한 808 사랑에도 불구하고 영화 <808>에 출연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집션 러버는 808에 있어 명실상부 선두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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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김창완이라는 인물을 짧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산울림의 음악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후에도 김창완은 자신의 이름을 건 밴드를 통해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연기, 라디오 등 다양한 방면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길게 설명하기보다는 그의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그가 RBMA 베이스캠프 서울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김창완은 차분하게 인사하며 시작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도 있었는데, 어릴 적에는 음악을 구할 길도 없었고 부모님 중 음악을 하신 분도 없었기에 무지의 상태에서 시작한 음악이 오히려 후대에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백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조차 유통된 게 없었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당시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혹은 지금 생각하는 펑크 음악과 같은 것들이 세상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만들었다고. 김창완과 형제들은 단지 실험을 했고, 그것이 다른 어떤 놀이보다 재미있었다고 한다. 남자 형제 셋이서 기타를 치고 이것저것 두드리며 가슴 벅차게 행복한 놀이를 했고, 매일 그 놀이가 즐거웠다고 전했다. 그래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즐겁고 재미있게 놀았다고 한다. 덧붙여 형제들이 아니었으면 그 음악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산울림과 김창완밴드의 차이점을 혼자서 되뇔 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했다. 형제만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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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희의 “슬픈 모습 보이기 싫어”에 관한 이야기였다. 김창완은 당시 구체 음악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는 악기가 아닌 소리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혼자서 음악 작업을 해놓은 것이 있는데 샘플링과 유사한 방식일 것 같다는 추측도 했다. 요즘은 그런 음악적 상상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구현 가능한 장비와 소재들이 생겨났는데, 김창완이 구체 음악에 빠져 있을 때는 아무 것도 없는 시절이었다. 그때는 디지털 이전의 시기라 머릿속에서만 있지, 구현해내는 방법이 신통치는 않았다고 한다. 물론 현대음악과 그 속의 음악인들이 한 여러 시도가 있었겠지만, 당시 퍼포먼스를 대중이 볼 수 있는 자리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튜디오 안에서 상상력을 담아내 보려 했던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영화음악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김창완은 "나만 좋아하는 음악,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었다”고 하며 “지금 들어보니 좋다”고 하기도 했다. 또,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당시 제가 혼자 즐겨 하던 게 뭐냐면, 무작위로 소리를 채집해서 테입으로 루프를 만들고, 그걸 거꾸로 돌린다거나 하는 거였는데, 그러면 새로운 비트가 형성됐어요.” 차 밖의 풍경과 비트가 맞는 경우를 예시로 들기도 했다. 차를 타며 음악을 듣다 보면 풍경과 맞을 때가 있는데, 비트라는 것이 먼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추후에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드를 그릴 때 몸을 먼저 스케치할 수 있지만, 반대로 배경을 칠해서 누드를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만들어진 비트에 뭔가를 추가하려 하지만, 거꾸로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비트로부터 음악을 발견하고 싶다는 노력이 생기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김창완은 가이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을 강조했다. “오늘 이야기했던 것들이 달아나야 할 장소지, 찾아가야 할 목표는 아니”라며 답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한, 자신의 음악 이외의 활동들에 관한 짧은 소회도 전했다. 두 시간가량 이어진 렉처는 한 자리에 있지 않는 삶을 사는 그의 멋진 과거와 현재를 모두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글 | bl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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