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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망디의 ‘패션 부적응자’ - ⑥온전한 내가 되는 것


망디의 ‘패션 부적응자’

‘정석’이라는 말은 나에게 항상 불편한 존재였다. 학교에 다닐 때나 사회에 나온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공부, 대학에서 시작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패션에 관해서도 그렇다. 천편일률적인 것이 싫었다. 재미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 글은 ‘패션’에 대해 삐딱하게 보는 내 시선이 담겨있다. 결코 부정적인 면이 화두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틀에 박힌 패션관을 조금은 '틀어서' 보자는 취지이다. 그게 또 재밌기도 하고. 우리는 어쩌면 비정상 안에서 정상인으로 잘 버텨내며, 오히려 부적응자라는 낙인을 얻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이어질 이야기는 이런 부적응자들의 지옥에서 작은 공감을 갈구하는 소심한 끄적임이다.


*한 달에 한 번 연재될 연재물임을 알려드립니다.


런웨이와 스트릿 씬을 당당함과 쾌활함으로 가득 채웠던 모델 카라 델레바인(Cara Delevingne)의 한 인터뷰를 보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더 이상 패션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가면서도 매우 충격적이었다. 스타일 하나 끝내주는 패션 모델이 패션이 무엇인지 모른다라. 현재 그녀는 영화배우로 전향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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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그 성격상 애매한 부분이 많다. 나는 패션에 관해 ‘실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났다. 패션이 그저 비싼 옷을 사는 거라고? 브랜드 택을 보지 않으면 전문가도 알 수 없는 것이 패션이라고? 패션이란 문화를 무시하는 말들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높은 차원이라 불리는 패션 공부를 해왔고, 또한 하고 계신 지식인들에게는 죄송스럽지만) 이런 모호함을 한편으론 부인할 수 없다. 


나의 옷 입기는 고등학교 졸업을 기점으로 다양해졌다. 교복을 벗어 던진 당연한 상황에 스무 살이 되었다는 혈기왕성함으로 이리저리 다니며 많은 것을 경험하려 했다. 그림에 대해 동경하면서도 잘 그리지 못하는 나에게, 패션은 그림과 같았다. 이것저것 입어보며 하나의 입체적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 그것이 큰 매력이었다. 이맘때쯤 “옷을 말 그대로 잘 입기 위해선 날마다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스콧 슈만(Scott Schuman)의 말은 아이러니하지만 나에게 큰 울림을 줬다. 하루는 커리어 맨이 되었다가도 또 하루는 록스타가 되는 것. 그럼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것. 다양한 옷 입기 경험을 함으로써 나에게 맞는 진정한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했다. 그의 말대로 나는 그날그날 입고 싶은 옷을 입었고 지금은 내가 생각하는 어느 한 스타일 그 언저리에 머무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스타일이겠지. 


옷을 입고 글을 쓰는 나에게 패션의 ‘애매함’은 항상 혼란을 가져왔다.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다. 아래는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나의 일례들이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놈에게 연락이 왔다. “망디, 오랜만에 집 앞에서 뭉치자!” 음, 그럼 오늘은 아끼던 셔츠를 꺼내야겠다. 그 날 나는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크리스토퍼 르메르(Christophe Lemaire)의 반소매 셔츠를 입고 나갔다. 은은한 사틴 소재로 만들어진 이 셔츠는 과하지 않은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어, 그해 여름 나의 비밀병기(?)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할아버지 옷을 빌려 입고 온 것 아니냐는 친구들의 장난 섞인 비아냥에 “너희가 패션에 대해서 뭘 알아! 이 자식들아”라며 너스레로 응수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단정하게 입어야 한다.” 부모님이 나긋하지만 강경한 목소리를 내신다. 나는 그날 톰 브라운(Thom Browne)의 회색 재킷과 질 샌더(Jil Sander)의 크롭 팬츠를 골랐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몇 분 지나지 않아 곧 넉넉한 품을 자랑하는 재킷과 발목을 한참이나 가린 바지로 갈아 입어야 했다.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누구의 시각으로 언더커버(Undercover)의 잘 빠진 가죽 재킷과 컷아웃(Cut-Out) 진은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그저 그런 옷이 되었고, 슈프림(Supreme)의 박스로고와 베이프(BAPE)의 카모플라주도 어느 이에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로 평가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패션에 관해 일하고 즐기면서 이 추상적인 굴레에서 벗어나길 원했던 것 같다. 조금이나마 명확한 명제로 만들기 위해 정리한 나의 몇몇 글을 보며 몇 년간 나를 뒤따라 오던 이 고민에 대해 은연중 많은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애매함이 패션에 (조금 더 돋보이는 것일 뿐) 국한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보이기도 한다. 관심의 차이에 가까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스타일 자체가 열등하고 저급하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흔히 하는 ‘구리다. 별로다.’ 라고 하는 것들은 현시점 자신의 취향의 기준에 의한 것이지 그 자체로서의 본질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나도 모르게 되지 말자고 다짐했던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새삼 든다. 나도 모르게 ‘패션 꼰대’가 되어가고 있었고 세상은 뭐 그런 것 아니겠냐며 그냥 그러려니 보내려는 나 자신이 함께 오버랩 된다. 그런 생각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돌다, 그동안의 애매했던 모호함이 조금은 명확해지고 있다. 이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야. 있고 없고의 문제지. 패션에 대해 우월감과 열등감이 존재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온전한 나를 찾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찌 보면 온전한 내가 되는 것이 이 흐릿함을 선명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처럼 되려 노력하지 않을 때, 가장 나다운 일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살아보는 여행을 한다고 말할 수 있듯. 그들처럼 먹고, 그들처럼 보는 것은 더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처럼’이 아니라, 온전한 내가 되어 체험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다. 이렇듯 우리는 꾸준히 온전한 나를 찾는 과정에 살고 있다. 


온전한 내가 됨으로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의 존재 자체를 폄하하고 깎아내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여전히 패션은 돌고 돈다. 무엇이 더 진보적이고 트렌디 하다는 것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기준일뿐이다. 이렇듯 ‘각자의 기준’에서 비롯된 스타일의 평가는 있을 수 있다. 그의 스타일이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을 수 있다. 나와 맞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가치관, 선호하는 브랜드 자체를 깎아내릴 수는 없다. 꼭 잊지 않자 다짐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참 어렵다.



글 l MANG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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